【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젊어지고 싶으면 혈관 관리를 빨리 시작하세요!”
일찍이 세종대왕은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짜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쎄)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이철환 교수는 일찍이 훈민정음을 만든 이유 중 ‘사맛디 아니할쎄’ 즉, 소통이 안 되는 것에 주목했다. 세종대왕이 통하지 않아서 훈민정음을 만들었듯 이철환 교수도 심장계 중환자실 전공의들과 ‘사마’의 시간을 만들었다. 이 시간을 통해 자신이 가진 모든 지식과 노하우를 전수하고 최신 의학 지식 등을 공유한다. 사마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는 단연 급성 심근경색 같은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다. 실수 없이 반드시 살리기 위해서다. 살리기 위해 소통하고, 소통해야 살아 있음을 느끼는 의사! 이철환 교수가 전하는 심장을 살리는 바른 소리를 듣고 왔다.
건강 100세의 전제 조건
다들 100세 시대라고 한다. 너도나도 100세까지 살고 싶다. 앞에 조건이 붙는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그런데 그게 어렵다. 진짜 어렵다. 나이만큼 형편없이 늙어버린 혈관이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망 원인 1위는 암, 2위는 심장병, 3위는 뇌졸중이지만 80세 이후만을 고려해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80세 이후에는 대부분 사람이 암이 아닌 혈관질환 즉, 급성 심근경색증과 뇌졸중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우리는 원래 안이 깨끗하고 말랑말랑한 혈관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수도관이 낡듯 세월이 흐르면 동맥의 내막에 나쁜 콜레스테롤이 서서히 쌓인다. 이 때문에 염증이 생기고 혈관 벽이 뚱뚱해지는 것을 동맥경화증이라고 하며, 자칫하면 생명을 앗아가는 급성 심근경색증과 뇌졸중은 이 동맥경화증의 합병증이다.
안타까운 것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동맥경화증은 누구에게나 생긴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정도의 차이다. 누구나 생기지만 누구는 나이가 많아도 동맥경화증이 심하지 않고, 누구는 젊어도 동맥경화증이 심할 수 있다. 동맥경화증은 집안 내력과 고혈압, 고콜레스테롤혈증, 흡연, 당뇨병 같은 위험 인자가 많을수록 젊은 나이에 생기며, 그렇지 않을 경우 좀 더 늦게 시작된다. 다시 말하면 예방 관리를 일찍 시작할수록 더 오래 건강하게 혈관을 지킬 수 있다.
“위험 인자 관리를 일찍부터 철저하게 하면 동맥경화증의 진행 속도를 늦추고 동맥경화증의 무서운 합병증인 급성 심근경색증과 뇌졸중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혈관을 망가뜨리는 양대 위험인자인 혈압과 콜레스테롤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이 외 금연과 적절한 운동 등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한다면 100세 이상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습니다.”
골고루 먹고 꾸준히 운동해야
동맥경화증 경고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해도 너무 겁은 먹지 말자. 적절한 예방약을 복용하고 위험 인자 관리를 잘하면 70~80%가 생명을 위협하는 뇌졸중, 급성 심근경색증을 예방할 수 있다.
동맥경화증의 속도를 늦추면 건강 100세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은 반길 만한 일이다. 그럼 실생활에서는 어떤 노력을 하면 좋을까?
첫 번째는 균형식이다. 특정한 음식을 먹는 것보다 골고루 잘 먹는 것이 이롭다.
두 번째는 운동이다. 혈관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운동은 특별한 운동이 아니다. 하루에 30분~1시간 정도 빨리 걷고 이를 일주일에 5회 정도 하면 된다. 반면 격렬한 운동은 해로울 수 있다. 격렬한 운동을 지나치게 하면 동맥경화반의 파열을 일으켜 오히려 급성 심근경색증의 원인이 되기도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철환 교수도 혈관 건강법에 관해서는 언행일치를 보여주고 있다. 골고루 아무것이나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다. 운동은 따로 시간을 내지 않고 매일 아침 출근할 때 한다. 집에서 병원까지 걸어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시간이 조금 이르다. 아직 어스름이 채 걷히지 않은 시간에 30분 정도 빨리 걷는다. 이는 오래된 습관 때문이다. 전임의, 조교수 시절부터 급성 심근경색증 응급환자가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집에 가면 바로 잠부터 잤다. 그러다 보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생겨서 출근을 일찍 한다. 덕분에 아침 운동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또 한 가지, 이철환 교수는 즐겁게 살려고 노력한다.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다 보니 즐거운 일이 많다. 일단 하는 일이 즐겁다. 심장내과 의사로 사는 것은 다른 분과에 비해 비교적 확실한 진단을 할 수 있고, 치료 효과도 분명해서 즐겁다. 심장학지의 편집장보를 맡고 있어서 바쁘지만 즐겁다. 투고된 논문을 평가하고 좋은 논문을 선정하는 작업이 고되지만 국제학술지로서 심장학회지의 위상을 높일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주말에는 즐거움이 하나 추가된다. 공부해서 남 주는 일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토요일 오전, 이철환 교수와 심장계 중환자실 전공의들은 특별한 공부 시간을 가진다. 주중에는 너무 바빠 다 같이 모이기가 힘들어서 중지를 모아 토요일 오전에 모이기로 했다. 바로 이철환 교수가 가장 좋아하는 마음껏 소통하는 시간이다.
“한 주 동안 교육적이거나 어려운 증례가 있었다면 같이 토의하고 최신 지식을 함께 공유하고 있습니다. 전공의들은 우리나라 국민의 건강을 책임질 소중한 내과 의사이기에 제가 가진 모든 지식과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연구 분야에서도 우수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좋은 토대를 마련해 주는 것이 목적입니다.”
지난 20여 년간 급성 심근경색증 환자의 응급치료를 많이 해온 이철환 교수는 막힌 심장혈관을 재개통한 후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새 삶을 찾는 환자를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껴왔다. 예고 없이 단 몇 분 만에 생과 사가 갈리는 것이 급성 심근경색증이므로 후배 의사들과의 이러한 소통이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고, 한 사람에게라도 실수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자신의 의학 지식을 아낌없이 나눠주는 일이 즐겁기만 하다.
그의 즐거움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바쁜 와중에 취미도 즐긴다. 우주와 고고학에 관심이 많아서 퇴근 후에는 이 분야를 시청하다가 행복하게 잠이 든다.
호기심은 나의 힘!
우리는 보통 나이가 들수록, 지식이 늘어갈수록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것이 호기심이다. 하지만 이철환 교수의 호기심은 줄어들 기미가 없다. 무엇을 하든 호기심이 있어야 열정적으로 즐겁게 살 수 있고, 호기심이 없으면 수동적이 되어 삶의 동력을 잃게 된다고 여긴다. 그래서 ‘언제나 호기심’이 생활 철칙이다. 뭘 보든 ‘반짝반짝한 눈’이 트레이드마크다.
의학 지식으로 막힌 심장 혈관을 서로 통하게 해주고, 진심 담긴 조언으로 세대 간을 통하게 하며, 환자에게는 쉬운 말로 혈관 관리법을 설명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소통왕 이철환 교수. 이철환 교수는 이러한 소통의 하루가 차곡차곡 쌓이면 혈관 때문에 생기는 억울하고 불필요한 죽음이 줄어들 거라고 굳게 믿는다. 그래서 언제나 누구든 무장해제 시키는 따뜻한 웃음으로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