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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현의 행복테라피] ‘미투(Me too)’를 너머 ‘미퍼스트(Me First)’로… 왜?

2018년 04월 건강다이제스트 꽃잎호 98p

【건강다이제스트 | 정신과 전문의 하나현 원장】

“선생님, 저도 제 잘못인 줄 알았어요. 그게 아니라는 걸 아는 데 8년이 아니라 18년이 걸렸어요.” 어릴 적 성폭력을 당했던 한 여성분이 호소했다. 자신이 직장에서 당한 성희롱에 대해 자기 탓으로만 여기는 분위기 속에서 숨죽여 지내온 자신은 이미 마음이 벌집이 되어버렸다고 했다.

달라도 너무 다른 ‘간극’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것을 깨닫는 데 8년이 걸렸다.” 최근 한 여검사가 법조계의 성희롱 사건을 폭로하면서 했던 말이다. 이를 시작으로 문화예술계, 교육계, 연예계까지 폭로가 들불 번지듯 이어지고 있다.

시작도 충격이었지만 얼마나 성희롱, 성폭력이 만연해 있는지 그 또한 충격적이고, 얼마나 성범죄에 대해 무감각한지도 충격적이다.

이 불길은 ‘미투’운동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미투’운동이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성범죄 피해 사실을 밝히며 심각성을 알리는 캠페인이다. 이런 운동은 이들에게 공감을 표한다는 ‘위드유(With you)’운동, 자기 앞에서 성폭력이나 성희롱이 있다면 자신이 먼저 나서서 막아야 한다는 ‘미퍼스트(Me First)’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어지는 폭로에 대한 가해자들의 반응에서 그 행위에 대한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18년 동안 이어진 나쁜 습관”이라며 “행위 자체는 있었다. 강제가 아니었다.”라고 하는가 하면 그냥 “가슴으로 연기하라고 손으로 툭 친 걸 가슴을 만졌다고 진술한 애들이 있더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의 행동을 보면 습관과 범죄를 구분하지도 못하는 인식단계에 있거나 범죄라는 사실을 알고도 이렇게 이야기했다면 자신들의 행동이 얼마나 정당하지 못한가에 대한 방증이기도 하다.

한 대학연구팀에 따르면 성폭력을 경험하게 되면 전쟁에 준하는 트라우마가 생기게 된다고 한다. 뇌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어보면 감정을 주관하는 편도체나 기억력과 관련된 해마의 부피가 줄어든다. 신경내분비계가 교란돼 조그마한 자극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무감각해지고, 멍해지며, 트라우마를 일으킨 상황에 빠져 일상생활이 어려워진다.

특히 교통사고를 비롯한 일반적인 외상과 달리 성폭력의 경우 자아를 건강하게 방어할 수 있는 능력 전체가 무너질 만큼 강력한 외상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성폭력을 경험하는 경우 다음과 같은 생각에 빠지기 쉽다.

첫째, ‘내가 뭔가 잘못해서 일이 일어났다.’는 생각을 한다. 일명 ‘개인화’라고도 하는데 자신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일어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 때문에 생긴 거라고 하면서 자책감에 젖어든다.

둘째, 피해를 입은 사실을 공개하면 ‘행실이 어땠길래.’ ‘옷차림을 단정히 했어야지.’ 등 오히려 피해자를 탓하는 분위기가 큰 몫을 하고 있다.

셋째, 도움을 호소하거나 폭로를 하게 되면 사건 자체보다는 “뭔가 의도가 있어서” 폭로했다는 ‘꽃뱀’으로 취급받는 분위기는 피해자로 하여금 2차 트라우마를 입히게 된다. 그러면서 피해를 입은 사람은 더욱더 자책하며 침묵하게 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하여

우리 사회에 성폭력이 만연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리 문화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부터이다. 권위 중심적, 남성 중심적 성문화가 문제가 된다. 남성의 성적 욕구는 본능적인 것으로 관대하게 바라보는 반면, 여성에게는 순결해야 한다는 이중적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이다. 또 성관계를 서로 동의하에 이루어지는 행위로 보는 게 아니라 일방적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도 성관계로 여기는 성기 중심적 사고도 만연해 있다.

성에 관한 사고뿐 아니라 문화 전반적으로도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관계 속에서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 당연시되고 있다. 개인보다 집단을 중요시 하다 보니 타인의 고통, 특히 약자에 대한 폭력이 쉽게 용인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내가 속한 조직에 피해가 갈까봐.’라며 피해자들도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남자니까’ ‘남자라면’이라며 남성성을 강조해오며 그 속에서 권력을 먹고 자란 누군가는 범죄가 범죄인지도 모르는 괴물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과 육체에 갈퀴자국을 내고 있었다.

이제 사회는 변했고 변하고 있다. 지금은 ‘미투’운동을 통해 피해자가 직접 나서는 용기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좀 더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 일어나고 있는 ‘미투’ 응원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가 할 수 있다. 최근 남자들도 힘을 보태어 함께 응원을 하고 있다. ‘자신은 떳떳한가?’ 하는 것에 대한 반성과 함께 그 응원이 우리의 어머니, 내 딸, 내 누나와 여동생을 위하는 일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부터(Me First) 움직여보는 건 어떨까?

지금껏 교육받은 남성성의 가치와 역할을 비틀어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속에서도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생각이나 “남자가 무슨 핑크색이냐?” 혹은 “남자가 울기는” 등과 같이 남성성을 강요하는 메시지는 없는지, 지금까지 범죄행위인지도 모르고 하는 행동에 무감각해진 것은 아닌지 말이다.

스스로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누군가가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서로를 지켜줘야 한다. 이것은 남녀 성대결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남의 권리가 보호받는 세상이 내 권리도 보호되는 세상 아닌가! 그게 우리가 원하던 것이 아닌가.

보고 싶지 않았던 우리의 일면을 적나라하게 보게 되어 슬프기도 한 반면 또한 이제 시작이라는 희망이 생기기도 한다. 지난 시절 우리가 만들어낸 거대한 촛불파도는 하나의 촛불에서 시작되었다. 이제 우리는 또 한 번 진화의 단계에 접어들었고 이미 시작되었다. 우리의 미래에 희망을 걸어본다.

하나현 원장은 현재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뇌기반감정코칭학과 전임교수이자, 브레인트레이닝 심리상담센터 압구정점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뇌를 활용한 감정코칭을 통해 사람들이 스스로를 힐링하고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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