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최근 세계의 많은 의사가 주목하는 핫한 분야를 꼽는다면 단연 장내미생물이다. 각국 의사가 모여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해외 소화기학회의 장내미생물 연구 그룹은 몇 년 전부터 이미 포화상태라서 들어가지 못할 정도다. 미국, 유럽, 일본 등은 장내미생물을 기반으로 하는 여러 연구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장내미생물을 분석하는 새로운 기법이 보편화되면서 의사뿐 아니라 미생물학자까지도 장내미생물 연구에 뛰어들고 있다. 그 중심에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소화기내과 이동호 교수가 있다. 이동호 교수는 대변에 있는 장내 세균을 이식하는 대변이식으로 항생제를 쓸 수 없는 장염 환자를 치료한다. 장내미생물을 장기 보관하는 ‘㈜바이오뱅크힐링’을 세우고, <유산균이 운명을 바꾼다>라는 책을 출판해 여러 질병이 장내미생물과 긴밀하게 연관된 것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동호 교수를 만나 무병장수하려면 반드시 주목해야 하는 장내미생물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리 몸을 지키는 장내미생물
일찍이 히포크라테스는 말했다. “모든 질병은 장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최근 장내미생물 연구에 푹 빠져 사는 이동호 교수도 과학적인 증거를 앞세워 히포크라테스의 말에 살을 붙인다. “장내미생물을 건강하게 관리하면 많은 질병을 예방하고 고칠 수 있다!”고.
장내미생물이 이렇게 큰 관심을 받기 전이었다. 이동호 교수는 서구식 식습관으로 인해 대장암, 대장용종, 크론병 등의 환자가 늘어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왜 기름지고, 육류 위주이며, 섬유질이 부족한 서구식 식습관이 이러한 장 질환을 만들어내는지 연구하다가 맞닥뜨린 것이 바로 장내미생물이었다. 바로 연구에 착수했다. 연구를 거듭하면 할수록 장내미생물은 빅뱅이나 다름없었다. 인간이 수백만 년 동안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인간 유전자의 힘이 아니라 미생물이 함께 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장내미생물은 우리 몸의 면역시스템을 교육하고 단련시켜 면역체계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것은 쉽게 말해 우리 몸을 지키는 군대를 훈련시키는 것과 다름없지요.”
이뿐만이 아니다. 장내미생물은 우리 몸이 소화하지 못하는 것을 분해해 흡수하게 한다. 장내미생물 중 유익균은 소화시키지 못하는 전분이나 다당류를 분해하고 비타민, 엽산, 단쇄지방산 등 우리 몸에 필수적인 영양소를 배출한다. 특히 단쇄지방산은 우리 몸의 여러 면역세포 활성에 관여해 면역시스템과 염증반응을 조절하고 암 발생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몸속 장내미생물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음식물, 스트레스, 기타 요인으로 그 구성과 분포가 달라집니다. 우리가 좋은 장내미생물, 유익균을 많이 갖게 되면 만약 부모님으로부터 발암 유전자를 물려받았더라도 그 유전자의 스위치는 켜지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장 속에 유해균이 많이 살면 그 후폭풍은 상당하다. 장 속의 유해균은 장뿐 아니라 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장기와 전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암, 우울증, 치매, 비만… 장내미생물 손안에 있소이다!
장 안에 염증균과 유해균이 많아지면 장내미생물 변화로 인해 크론병, 대장용종, 궤양성 장 질환, 대장암이 늘어난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모두 장에 생긴 병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장내미생물은 뜻밖의 질환까지 관련이 있다. 장에 나쁜 세균이 위세를 떨치면 당뇨, 비만, 동맥경화, 자폐, 우울증, 치매, 유방암 등의 발병과 진행 과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여러 논문을 통해 밝혀져 있다. 이것은 장내 세균의 불균형을 해결해야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해야 할 일은 분명해졌다.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려면 우리는 하루빨리 장내미생물을 좋은 쪽으로 바꾸면 될 일이다.
“좋은 장내미생물 환경이란 아마존 밀림과 같이 풍성하고 다양한 종이 살고 있는 상태입니다. 새가 지저귀고, 각양각색의 나비가 날고, 다양한 꽃과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는 그런 환경이죠. 장에도 미생물이 다양하면 건강을 증진하는 여러 가지 좋은 박테리아 종이 많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존 같은 장내미생물 환경을 만드는 법은 이동호 교수의 평소 습관을 참고하면 된다.
이동호 교수가 실천하는 좋은 장내미생물 환경 만드는 법
1.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충분히 먹는다.
이동호 교수는 채소와 과일 섭취에 신경을 많이 쓴다. 바빠서 아침 식사를 못하면 고구마나 과일을 먹고, 평소에는 나물 반찬과 해조류 반찬을 즐겨 먹는다. 회식 메뉴가 고기일 때는 상추, 양파, 마늘, 고추 등 함께 나오는 채소를 넉넉히 먹는다.
2. 다양한 음식을 먹는다.
다양한 채소가 들어간 비빔밥을 좋아한다. 저녁 식사는 점심식사와 재료가 전혀 다른 메뉴로 고른다. 식탁에 차려진 모든 반찬에 적어도 한 번씩은 젓가락을 가져간다.
3. 식사를 거르지 않는다.
이동호 교수 사전에 식사를 때우는 일은 없다. 우리 몸은 60조 개의 세포로 이뤄져 있다. 대충 때운 음식으로는 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세포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없다고 여긴다. 평소 환자에게도 식사를 거르지 말아야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4. 가공식품을 멀리한다.
인스턴트식품 같은 가공식품은 먹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가공식품은 맛은 있지만 비타민, 미네랄과 같은 미량영양소는 빠져 있다. 염증을 억제하고 유전자 손상을 수리해 발암을 막는 미량영양소가 부족하면 장내미생물 환경도 나빠진다.
5. 발효식품을 자주 먹는다.
대표적인 장수마을 일본의 오키나와는 지금은 장수마을이 아니다. 오키나와 사람의 식습관이 변한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오키나와를 비롯해 세계 장수마을 식습관의 공통점은 발효식품이었다. 발효식품 대신 햄버거와 같은 패스트푸드가 인기를 끌고, 다양한 가공식품이 유통되며, 기름진 서구식 식사가 흔해진 오키나와 주민의 평균수명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장수인이 즐겨 먹는 발효식품에는 다양한 유익균이 들어 있다. 이동호 교수는 된장, 청국장, 김치 등 발효음식을 자주 먹고 환자들에게도 권한다.
6. 커피 대신 차를 마신다.
이동호 교수는 도시락 회의가 많다. 영양소가 비교적 부실한 도시락을 먹은 날에는 차를 마시려고 노력한다. 녹차, 홍차, 허브차, 유자차, 생강차 등에는 항산화 물질이 풍부하다. 항산화 물질은 장내미생물을 좋은 쪽으로 변화시킨다.
7. 움직여서 스트레스를 날린다.
이동호 교수는 평소 앉아서 진료를 보고, 회의가 많은 탓에 운동량이 적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급한 일이 있을 때마다 엘리베이터가 세월아 네월아 천천히 움직이는 것도 답답했다. 그러다 엘리베이터 바로 옆에 있는 비상계단으로 탈출하니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되었다. 스트레스가 해결되었으니까 장내미생물도 좋은 쪽으로 바뀌었을 거라는 즐거운 상상은 덤으로 챙긴다.
장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누구나 건강하고 싶다. 그런데 여간해서 몸은 잘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장내미생물은 다르다. 장내미생물의 한 세대는 기껏해야 10~15분밖에 못 간다. 장 속에서는 하루에도 수없이 미생물의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환경이 바뀐다. 건강한 식습관으로 바뀌면 하루 이틀 만에도 장내미생물이 내 몸에 유리해진다. 오늘 아침에 먹은 비빔밥과 된장국 한 대접 덕분에 장은 벌써 흐뭇하게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작은 노력이 계속된다면 장내미생물은 기꺼이 우리의 든든한 건강 동반자를 자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