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도움말 | 밝은희망부부클리닉 민옥기 부부상담사】
어느 부부나 싸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싸움으로 서로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이해하며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하면 된다. 하지만 자주 싸우는 부부는 대부분 싸움의 ‘싸’자만 들어도 지긋지긋하다. 화해의 ‘화’자에도 관심이 없다. 싸움을 화난 감정을 쏟아내는 용도로만 쓰고 있기 때문이다. 잘못한 점을 제대로 사과하지 않은 채 ‘얼렁뚱땅’ 넘어가고 다시 같은 문제로 싸운다. 싸움에도 기술이 필요하듯, 화해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부부 싸움을 행복한 시행착오로 만들 화해의 기술을 소개한다.
CASE 1. 싸움이 무서운 남편 이야기
A 씨는 아내와의 냉전이 무서워서 하고 싶은 말도 못 하고 산다. 아내는 말을 곱게 하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사람이다.
A 씨가 하는 행동에 사사건건 불만투성이지만 늘 참아왔다. 아내가 아이들 앞에서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보다는 나아서다.
15년을 같이 살았어도 싸우고 난 후 아내의 행동은 한결같다. 유치하기 짝이 없다. 싸우고 나면 아이들이 있든 말든 A 씨를 본체만체하고 말도 무시한다. 완벽하게 아내가 잘못한 일이라도 A 씨가 화내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그렇게 지낸다.
경조사나 부부 모임에 싸운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마음에 없는 사과를 한 적도 여러 번이다. 이제는 방법을 바꿔서 아예 싸울 일을 만들지 않는다. 싸우지 않지만 아내를 향한 마음은 점점 식고 있다.
요즘은 사춘기 중학생 아들이 반항했다는 이유로 아들까지 투명인간 취급하는 모습이 보기 싫어 집에 가고 싶지 않다. 없던 정도 뚝뚝 떨어지고 있다.
아이들이 성인만 되면 뒤도 안 돌아보고 이혼할 계획이다. 이렇게 평생 살고 싶지는 않다.
CASE 2. 사과를 모르는 남편과 사는 아내 이야기
B 씨는 남편의 뻔뻔함에 매번 질리고 있다. 남편은 뭐든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이다. 좋은 성격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 자신이 잘못해놓고도 B 씨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비상한 재주가 있다.
엊그제는 남편이 몰래 친구에게 거금을 빌려줘서 크게 싸웠는데 B 씨가 당장 돈을 받아오라고 소리치자 남편은 휴대폰을 바닥에 던지고 밖으로 나가는 엄청난 잘못을 했다. 다음 날 아침은 더 가관이었다. 사과 한마디 없이 “다음 주 당신 생일에는 어디서 밥을 먹을까?”라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싸우고 난 후라고 믿기 어려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이번에도 제대로 된 사과를 못 받겠다는 생각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생일 이야기보다 사과가 먼저 아닐까?”라고 좋게 이야기했지만 남편은 사과는 안 하고 딴 이야기만 했다. 대꾸를 안 했더니 화를 내며 집을 나갔다. 이렇게 말이 안 통하는 남편과 살 바에는 외로워도 이혼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부부 싸움은 나쁘다?!
사사건건 마음이 척척 맞아 안 싸우면 좋겠지만 부부가 일심동체로 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서로 마음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다. 아무리 다른 점이 많아도 사랑이란 이름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러한 ‘차이’는 ‘부부 싸움’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꼭 부부 싸움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밝은희망부부클리닉 민옥기 부부상담사는 “부부가 싸우면 나쁜 감정을 쌓아놓지 않을 수 있다.”며 “서운하고 억울한 감정을 표현하는 속전속결형 부부 싸움은 부부관계에 활력소가 되고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싸우다 보면 상대를 더 잘 알 수 있다.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말, 상황이 악화되는 말 등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부부 싸움의 패턴과 주제는 결혼 생활의 지혜를 알려주기도 한다. 민옥기 부부상담사는 “안 싸우는 부부보다 잘 싸우는 부부가 되는 것이 부부의 삶을 더 견고하고 건강하게 지켜준다.”고 말한다.
어느 일이나 마무리가 중요하듯 부부 싸움 후에도 화해라는 마무리가 필요하다. 싸움이 끝났음을 선언하는 화해가 없으면 그 싸움은 진행 중이라고 볼 수 있다. 겉으로는 끝난 것 같이 보여도 마음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 화해를 통해 싸움을 깨끗하게 정리하면 부부는 더 가까운 사이가 된다.
상황별로 알아보는 부부 싸움 화해의 기술
상황 1 잘못된 행동이나 말을 했을 때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법
우선 적절치 못한 행동과 말을 했음을 인정한다. 잘못했는지 알면서도 변명을 하면 배우자를 더 화나게 만든다. “미안해. 그 행동과 말로 당신을 화나게 했어. 다음부터는 주의할게.”라고 말한다. 미안한 마음과 충분히 화날 만했다는 공감은 갈등을 금방 없애준다.
상황 2 잘잘못을 따질 수 없고 입장 차이 때문에 생긴 싸움에 화해하는 법
이럴 경우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민옥기 부부상담사는 “잠깐 숨을 돌리고 5분이라도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고 타임아웃을 제안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상황 3 냉전이 오래된 경우 냉전을 끝내는 법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심정으로 용기를 내본다. “다녀왔어?”“식사합시다!”처럼 늘 했던 일상적인 말로 화해의 물꼬를 터보자. 정 입이 떨어지지 않으면 “오늘 저녁 데이트할까?”라는 메시지 한 통도 추천한다.
상황 4 자녀 앞에서 싸웠을 때 바람직한 화해법
‘자녀 앞에서 싸웠다면 화해하는 법도 보여준다.’라는 원칙을 고수한다.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다음 날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면 자녀는 부모의 행동에 무관심해지고 부모를 존중하는 마음이 사라질 수 있다. 다시 서로를 공격하거나 변명하지 말고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한다. 또한 “의견 충돌로 좋은 모습을 못 보여줘 미안하다.”는 말과 “화해를 했으니 걱정하지 마라.”는 말로 자녀를 안심시켜야 한다.
화해하고 싶다면…화해 강요 금지!
화해를 원하는 말이나 행동을 했는데도 배우자가 화를 풀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화해를 했는지 생각해본다. ‘당신이 이래서 내가 이랬어. 미안해.’ 식의 사과는 안 된다. ‘내가 이래서 당신이 화가 났구나.’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민옥기 부부상담사는 “누구나 화나 분노를 가지고 있으면 편하지 않기 때문에 배우자가 진정한 마음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대부분 받아주게 된다.”며 “잘못했다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사과하고 화해하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단, 상처를 줬음에도 사과했다고 무작정 용서하길 강요해서는 안 된다.
화해할 때 해서는 안 되는 행동도 있다. 화가 나 있는 배우자에게 미안하다고 해놓고 장난처럼 넘기려고 하거나 비꼬지는 말아야 한다.
화해를 받아들이려면… 나를 위한 화해를!
사과를 받았다면 용서는 사실 상대가 아닌 나를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계속 무거운 마음으로 사는 것은 나에게도 좋지 않다. ‘나는 안 그러는데 배우자는 왜 그럴까?’라고 생각하면 마음 편히 용서할 수 없다. ‘저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면 용서하기 쉬워진다. 무슨 일이든 못 이긴 척 져주면 배우자는 영원히 내 편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TIP. 화해가 끝이 아니다! 화해 후 해야 할 일》
1. 믿기로 했다면 정말 믿어준다.
2. 싸움을 만든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3. 또 같은 일로 싸우게 되더라도 다른 문제가 아닌 그 문제만 놓고 싸운다.
4. 싸울 때 ‘이혼하자’ 같은 극단적인 말을 했다면 그냥 넘기지 말고 사과한다.
5. 싸웠다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 말고 앞으로도 그때그때 솔직한 심정을 표현한다.
민옥기 부부상담사는 밝은희망부부클리닉에서 이혼 전·후 상담, 부부집단상담, 가족상담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