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김진경 기자】
【도움말 |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종양혈액과 김병수 교수】
요즘 제대혈 보관이 점점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이는 나중에 백혈병에 걸려도 다른 사람의 골수가 아닌 자신의 제대혈로 병을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제대혈 보관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제대혈 보관이 꼭 필요한지에 대해 의문을 제시한다. 과연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일까? 제대혈과 제대혈 보관에 대해 알아본다.
제대혈과 조혈모세포
출산을 앞둔 부모나, 아는 사람 중 임산부가 있는 사람이라면 제대혈에 대해서 들어봤을 것이다. 주변에 임산부가 없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제대혈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TV 드라마에서 감기 환자보다 더 흔한 백혈병 환자를 살리기 위해 종종 언급이 되니까 말이다.
이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제대혈은 탯줄과 태반에 남아 있는 신생아 혈액을 말한다. 정상 분만 시 분출되는 탯줄과 태반에 존재하는 혈액이므로, 태어날 때 딱 한 번 채취가 가능하다. 태반에서 채취한다고 해서 ‘태반혈’이라고도 불린다.
이 같은 제대혈이 주목받는 이유는 피를 만들어내는 조혈세포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종양혈액진단과 김병수 교수는 “제대혈에는 연골, 뼈, 근육, 신경 등으로 분화될 수 있는 간엽줄기세포와 혈액세포를 생산하는 조혈모세포가 다량 들어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조혈모세포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조혈모세포가 가지고 있는 능력 때문이다. 조혈모세포는 이름 그대로 ‘피를 만들어내는 어머니 세포’이다. 즉 조혈모세포로부터 피를 구성하는 세포에 해당하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들이 분화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조혈모세포에 문제가 생기면 다음과 같은 각종 질환에 걸리게 된다.
▶조혈모세포의 수가 부족한 경우 : 재생불량성 빈혈, 과도한 방사선 노출 후 발생하는 빈혈 등
▶조혈모세포가 병든 경우 : 급성 및 만성 백혈병, 골수이형성 증후군
▶조혈모세포가 손상된 경우 : 조혈기능 저하
제대혈 보관의 필요성
이처럼 중요한 조혈모세포가 다량 들어있는 제대혈은 일생에 딱 한 번 태어날 때만 채취가 가능하다. 이때 채취하지 못하면 영원히 폐기된다. 따라서 미리 보관을 해 두면 좋다.
보관을 해 두는 것이 좋을 만큼 제대혈 이식이 갖는 장점은 다양하다.
우선 제대혈 이식은 자기 세포를 이용하는 것이므로, 이식편대숙주반응과 같은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식편대숙주반응이란 공여자의 골수가 제공받은 환자의 조직을 공격하는 광범위한 면역반응을 말한다. 이 반응이 나타날 경우 피부발진, 설사, 황달 등의 간기능 이상이 특정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실제로 골수 이식을 받은 많은 수의 환자들이 급성 혹은 만성 이식편대숙주반응으로 고생하거나 사망하게 된다. 그러나 제대혈에 있는 자신의 조혈모세포를 이식받게 되면 이러한 반응이 없다. 이는 제대혈에 있는 조혈모세포가 면역학적으로 미성숙하기 때문이다.
제대혈은 또한 조혈기능을 재생하는 능력이 크다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성인 골수보다 적은 양으로도 이식이 가능하다. 현재 제대혈 이식이 시도되고 있는 질환으로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 가장 많다. 그리고 그 외에 림프구성 백혈병, 만성 골수성 백혈병, 골수 이형성증후군, 재생불량성 빈혈 등 기존의 골수 이식이 적용되는 모든 질환에 이식이 가능하다. 이처럼 적은 양으로도 기존 골수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제대혈의 사용 범위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현재 제대혈 등에서 유래한 조혈모세포를 이용한 세포치료 기술이 급격하게 발달하고 있다고 한다.
김병수 교수는 “기술의 발달로 인해 보관된 제대혈이 미래에 보다 유용하게 사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불합리성 문제되기도
그러나 어떠한 것에도 양면은 있는 법. 제대혈 보관이 무조건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제대혈 보관에도 제기되는 문제는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제대혈 보관 비용이 비싸다는 점이다. 제대혈 채취는 항응고제가 들어있는 주사기로 제대에서 채취하거나, 중력에 의해 흘러내리는 혈액을 채취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방법으로 채취되어진 제대혈은 여러 과정을 거쳐 -196℃의 액체 질소 냉동고에 보관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처리 과정과 보관 과정은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서비스이다.
두 번째 문제는 제대혈의 양이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제대혈의 양은 대개 150ml 이하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제대혈 조혈모세포 수도 당연히 적다. 따라서 체중이 큰 소아나 성인의 이식에 제한이 있다.
세 번째 문제는 골수 이식에 비해 재발률이 높다는 점이다. 제대혈 조혈모세포는 골수보다 이식편대 숙주반응이 적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그만큼 이식편대 백혈병 반응의 효과도 낮아지기 때문에 재발의 빈도가 높다는 말이기도 하다. 즉 백혈병 세포를 공격하는 효과가 낮기 때문에 재발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질병 발생 여부에 대해 100% 확신이 없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백혈병이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질병이기는 하다. 그러나 누구나 앓고 있는 질병은 아니다. 발생 여부에 대한 100%의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사용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제대혈을 보관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김병수 교수는 “현재와 같이 제대혈이 백혈병 등 혈액암 치료를 위한 조혈모세포이식의 공급원으로만 사용되는 상황에서는 그 효용성이 낮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보관에 회의적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한다.
효용가치 무시할 수는 없어
이처럼 제대혈 보관에도 단점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들은 -물론 몇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앞으로 개선될 여지가 있다고 한다.
현재 제대혈의 양이 적은 경우에는 두 가지의 제대혈을 섞어서 이식하는 등의 시도들을 비롯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포치료 기술도 날이 갈수록 발달하고 있다. 앞으로 기술이 발전되면서 이러한 단점들은 서서히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날이 갈수록 적은 수의 자녀만을 낳는 경향이 커지면서 제대혈의 중요성은 앞으로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아직 제대혈을 보관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라는 식의 답이 나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제대혈의 효용가치를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보다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