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윤말희 기자】
고추장마을 순창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조용하고 작은 도시 순창은 그야말로 축복받은 땅이다. 그것은 비단 고추장 맛이 전부가 아니다. 전 국민의 바람이요, 인류의 소망인 무병장수의 산증인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수수께끼 같은 생로병사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순창… 그곳을 다녀왔다.
장수고을 순창에 가다!
전라북도 순창은 고요했고 사람들의 표정은 온화했다. 하지만 취재 도중 당황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그것은 어르신들의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하나 같이 팽팽한 얼굴과 당당한 걸음걸이 그리고 한시도 손에서 일을 놓는 적이 없었다. 젊은 사람 못지 않게 활기차 보였고 그야말로 건강해 보였다.
이것이 순창의 모습이었다. 순창은 전국 최장수의 지역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65세 이상은 수도 없이 많지만 고작 어린 축에 낄 정도니 할말 다했다. 거기에 100세 이상의 노인들도 꽤 있고 다들 한분 한분 건강해 보였다.
순창은 노령산맥 기슭에 연평균 13.2도의 온화한 기온과 맑은 공기, 깨끗한 물 등 자연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자연환경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으니 순창에서 사는 사람들은 절로 건강해 질 수밖에 없나보다.
또한 여러 가지 환경과 함께 순창군이 장수노인들에게 톡톡히 역할을 하고 있다. 암 조기 검진을 실행하는 데도 국가지원 암 조기검진대상자 외에 일반 군민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 암검진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더불어 순창군에는 2009년까지 주거·의료·여가·문화복지·생산시설을 고루 갖춘 종합복지형 은퇴자 마을 조성과 건강장수 ‘웰빙타운’ 조성, 노인전문요양원을 개원할 예정이며 서울대 부설 장수연구센터 건립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장수고을답게 순창군에서는 노인건강증진을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순창군의 철저한 ‘건강증진 사업’과 자연이 준 최고의 선물 ‘청정지역’이 장수노인들의 건강 비결일까?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세 분의 장수노인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CASE 1. 시간을 거슬러 사는 백세인 박복동 할머니
순창군 구림면 방화마을에 사는 박복동 할머니(104세)는 유명인사다. 각지에서 할머니를 만나러 오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락날락거리니 할머니 자신이나 그의 며느리 그리고 동네 분들은 외지인을 꺼린다. 그저 조용히 살고 싶다고 쓴소리를 하신다.
왜 각지에서 사람들은 박복동 할머니를 찾는 것일까? 박 할머니는 놀랍게도 104세이기 때문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얼굴에는 윤기가 흐르고 머리숱은 수북하고 검은 머리가 종종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요즘에는 나이 때문에 귀가 좀 안 들리는 것과 이가 없다는 것 빼고는 아주 건강하다. 하지만 이가 없어도 술안주로 마른오징어를 먹고 동네 분들과도 대화를 참 잘 한다. 기분 좋은 날은 덩실덩실 춤도 추고 노래도 곧잘 한다.
이런 할머니 옆에는 든든한 며느리가 있다. 며느리는 박복동 할머니와 늘 같이 다니면서 목욕이며 집안일까지 하는 단짝 친구나 다름없다.
“어머니에게 특별한 것이 없는데 사람들이 자꾸 와서 귀찮게 한단 말이지. 시골에서 뭐 특별한 게 있겠어? 그냥 세 끼 챙겨먹고 일하고 자는 거지. 반찬도 시골반찬이라서 뭐 별다른 게 없어. 김치, 고추, 파김치, 고추장, 된장에 콩밥만 먹는 거야. 가끔 고기 사와서 김치찌개나 끓여먹고.”
이가 없는 박복동 할머니는 밥도 잘 잡수시고 고기도 즐겨 드신다. 못 씹을 것 같지만 그래도 잘 드신다. 하지만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동네 분에게 참 기막힌 이야기를 들었다.
“이 할매가 술을 좋아해. 식사하기 전에 소주나 막걸리를 꼭 2잔 정도 마셔. 늘 그래왔어. 이것 봐 지금도 막걸리를 마시잖아. 술을 마시면 힘이 솟아서 일도 잘 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나이에 비해 과다한 음주량에도 불구하고 할머니가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교수는 술과 건강에 큰 관심을 가질 정도라고 한다.
술안주도 딱히 정해진 것 없이 새우깡이나 김치 그리고 오징어가 전부지만 더도 말고 딱 2잔만 늘 식사 전에 마신다.
그리고 또 하나 수면시간에도 원칙이 있었다. 그냥 일이 끝나면 바로 잔다고 하지만 대략 할머니의 수면시간은 9시간 정도다.
“어머니는 7시에 일어나서 이불 개고 세수하고 아침식사하고 노인정에 가서 동네 할머니들과 놀거나 일을 하세요. 그러다가 점심 먹고 또 놀러 가고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 저의 어머니 일상이에요.”
정말 여느 시골 분들과 같은 일과였다. 목욕도 일주일에 한 번 하지만 박복동 할머니에게는 노인 특유의 몸 냄새가 나지 않는다며 며느리나 동네 분들의 자랑이 자자하다. 정말 박복동 할머니는 곱고 깨끗한 노인이었다.
104세 동안 감기약 외에는 약을 먹어본 적이 없고 90세 때 받은 백내장 수술 외에는 수술이라는 것을 해본 적도 없다고 한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호기심이 생겨서 박복동 할머니에게 손금을 보여 달라고 요청을 했다. 하지만 손금은 여느 사람과 같은 생명선을 가지고 있었다.
박복동 할머니의 장수비결은 타고난 것이긴 하지만 분명 특별했다. 식전에 마시는 술 2잔, 장수에 좋은 9시간 수면 그리고 낙천적이고 인자한 성격이 장수의 비밀이 아닐까?
CASE 2. 회혼식 올린 정일순·최경원 장수 잉꼬 부부
순창군 팔덕면 광암마을에 사는 정일순 할머니(86세)는 17살에 최경원 할아버지(92세)에게 시집와 무려 70년 가까이 함께 살고 있다. 서로 아끼며 사랑하고 있는 두 분은 정말 보기 좋은 부부다. 얼마 전에는 순창군에서 열어준 회혼식으로 다시 신혼생활을 하는 것 같다며 웃으신다.
슬하에 3남 1녀를 두고 평생을 농사일밖에 모르면서 두 분은 살고 있다. 살다보니 90세가 훌쩍 지났고 본인들은 정작 모르지만 사람들이 참 오래 살았다고 하니 그저 그런 줄 안다.
할머니는 오늘도 땔감을 구하기 위해서 장작을 구하러 가고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집안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뜨뜻한 아랫목에 앉아서 화로에 손을 올리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처음 방문했던 기자는 시골의 정겨움을 폴폴 느낄 수 있었다.
나이도 많으신 분들이 내복도 안 입고 방안에서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냉골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강추위가 걱정은 되었다. 하지만 그 두 분의 이야기는 놀라웠다.
“감기도 잘 안 걸리고 별로 안 추워. 그냥 시골에서 이러고 사는 거지. 우린 내복도 잘 안 입어.”
추위에도 강하고 할아버지가 6년 전에 맹장 수술을 받은 것 외에는 병원 출입도 안 해봤다는 두 분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식생활이 궁금했다. 하지만 겨울철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시래기만 즐겨 먹는 것이었다. 부엌에도 마루에도 시래기 말린 것이 가득 했다.
“우리 집에는 먹을 게 온통 시래기뿐이야. 물을 적게 넣고 지짐을 해서 된밥에 잘 말아서 후루룩 먹어. 거기에 김치를 올려서 먹고 바로 밭일을 하러 가. 고기는 있으면 먹는데 원래 안 좋아해서 잘 안 먹고 누룽지나 가끔 해서 먹지 뭐 특별히 먹는 것은 없어. 미역국에도 고기는 안 넣고 참기름에 미역을 달달 볶아서 그렇게만 먹지. 밥도 딱 콩밥만 먹어. 우리집 양반은 전기밥솥 밥을 싫어해서 아궁이 가마솥 밥을 해서 이불 속에 넣어서 꺼내 먹어. 난 아무거나 잘 먹는 데 말이야 “
할머니는 특별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잘 보면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밥상에서는 채소가 주를 이룬다. 밭에서 나는 채소와 김치 그리고 시래기를 즐겨 먹는다. 그 덕에 할머니는 변비라는 것도 모른다면서 웃으신다.
요즘에는 추워서 일은 잘 못하지만 날이 풀리면 늘 두 내외가 아침 5시부터 일어나서 아침을 챙겨 먹고 온종일 밭일을 한다. 일을 좋아하는 정일순 할머니는 시래기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닐 정도로 열심이다.
“내가 할아버지보다 기력이 더 좋아. 장작도 내가 해오고 일도 내가 더 많이 해. 할아버지는 요즘에 귀가 잘 안 들려서 불편해 하셔.”
할아버지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는 큰소리만 알아듣지만 할머니와 대화를 나눌 때에는 다 알아듣는다며 옆집 할머니도 신기해 한다.
최경원 할아버지는 할머니처럼 이것저것 잘 먹고 잘 자는 편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철칙은 있다. 식사는 소식만 하고 두유를 오랫동안 꾸준히 마신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두유가 뭐가 맛있냐며 할아버지에게 늘 양보를 하시면서 시래기만큼 좋은 게 없다고 말한다.
이렇게 서로 위해주면서 오순도순 살아온 두 부부는 놀랍게도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머리가 검다. 염색이라는 것은 돈 아까워서 못한다면서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그때까지 지금처럼 살고 싶다고 두 부부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