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김진경 기자】
“삶에 대한 애착과 아내의 극진한 정성이 절 살렸습니다”
사람은 살면서 평생 3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다는 옛말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 3번의 고비를 스치듯이 모른 채로 넘겨 버리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겨우 겨우 힘겹게 넘긴다고 한다.
이점에서 구창모 씨는 이 죽음의 세 고비를 힘겹게 넘어온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나는 암 때문에 죽을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습니다.”
3번의 암을 극복한 구창모 씨(54세)와 세상에서 오직 남편만이 소중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부인 윤종배 씨(53세), 이들 부부를 만났다.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근무하던 서울 여자는 우연히 만나게 된 경상도 사나이와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서울에 있는 모든 것을 뒤로 하고 그 남자와 부부가 되어 울산으로 내려갔다.
사랑을 따라 내려간 울산에서 이 부부는 두 아들을 낳고 행복했다. 남편은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있었고, 부인이 하던 의류업도 순조로웠다. 두 아들도 별 탈 없이 잘 자라주었다.
그러나 이들의 행복을 시샘하듯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첫 번째 고비 구강종양
이들 부부에게 검은 그림자가 찾아온 것은 87년도 어느 날이었다. 식사를 하던 구창모 씨는 그날 따라 입천장에서 튀어나온 혹이 걸리적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큰 병은 아닐 것이라며 가벼운 마음으로 찾은 병원에서는 큰 병원으로 가라는 말만 했다. 조금 더 큰 병원으로 가서 혹의 조직을 떼어낸 후 정밀 검사를 위해 서울로 조직을 보냈다. 그리고 15일 후, 그는 암이라는 검사 결과를 들었다. 병명은 구강종양이었다.
그러나 암이라는 검사 결과가 나왔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의사가 수술하면 나을 거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당시 암은 흔한 병도 아니었고, 게다가 내가 걸린 암은 그 종류도 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걱정이 된다거나 겁이 난다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는 수술을 받았고 종양을 제거했다. 그리고 다시 직장에 다녔다.
그러나 부인 윤종배 씨는 이런 사람은 공기 좋은 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구창모 씨는 완치된 것으로 믿었다.
두 번째 고비 직장암, 그리고 식이요법 시작
12월 어느 밤 부인 윤종배 씨는 꿈을 꿨다. “흙탕물이 흐르는 계곡에 올라가서 그 물을 마시는 꿈을 꿨는데, 왠지 불안한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때마침 남편에게서 옆구리가 아프다는 소리를 들었다. 검사를 받아보자고 졸라 한 MRI 검사 결과, 남편은 급성 직장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혼자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간 부인은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고 한다.
그러나 남편을 살리기 위해서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남편에게는 암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그냥 며칠 입원해서 치료만 받으면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입원 전날 온갖 음식이 가득 담긴 상을 차려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남편과 아이들은 맛있다며 먹었지만 제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남편과 하는 마지막 식사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가슴이 무너져 내렸어요.”
그러나 구창모 씨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 다음날 부인이 하자는 대로 1인용 병실에 입원해 수술날짜를 기다렸다. 그렇게 남편을 입원시키고 그녀는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갔다.
“남편을 살려달라고 불공을 드리는데 내 눈에 부처님상이 그렇게 울더라고요.”
윤종배 씨는 남편의 두 번째 수술을 끝내고 의사의 말대로 울산에서도 공기 좋은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곳에서 기력이 쇠해진 남편이 안쓰러워 보약을 지어 먹였다. 그러나 남편이 기운을 차린 만큼 암세포도 같이 기운을 차렸다. 합병증으로 온 황달 때문에 피부와 눈이 노랗게 변하고 병세는 더욱 심각해졌다.
덜컥 겁이 나 TV나 책에서 암환자에게 좋다는 것은 다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암환자, 특히 직장암으로 수술을 해서 장이 빈 사람에게 포도가 좋다는 말에 죽 대신에 포도를 항아리에 발효시켜 먹였다. 여러 가지 약초로 만든 녹즙도 함께 먹였다.
콩이 좋다는 말에 직접 청국장을 만들어 하루 한 번씩은 꼭 상에 올렸고, 청국장 외에도 콩으로 만든 음식을 자주 상에 올렸다. 음식을 만들 때는 조미료는 일체 사용하지 않고 직접 만든 들깨가루, 멸치가루 등 천연 조미료를 사용했다.
이때부터 아침이면 산으로, 들로 약초를 캐러 다니는 일도 그녀에게 있어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약초를 항아리에 넣어서 땅속에서 발효시키면 독성이 완화되고 그 효능이 좋아진다는 얘기를 듣고 직접 캐러 다니기 시작한 것이었다.
“100가지가 넘는 약초를 항아리에 넣어서 땅속에 묻었어요. 3년을 발효시켜서 남편에게 하루 소주잔으로 1잔씩 먹였죠. 먹은 지 일주일이 지나니까 노랗던 피부가 벗겨지기 시작했어요.”
세 번째 고비 상피암, 자포자기…그리고 희망
그렇게 구창모 씨는 깨끗한 공기와 식이요법으로 건강해지고, 이사와서 차린 식당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암이라는 병마는 다시 한 번 구창모 씨를 찾아왔다.
우측 윗 이빨이 흔들리길래 그냥 아무 생각없이 손으로 뺐는데 쑥 빠져버렸다고 한다. 며칠이 지나도 아물지 않아 찾아간 병원에서 오른쪽 피부 밑의 뼈가 녹아내렸다는 소리를 들었다. 대학병원에서 검사한 결과, 이름도 생소한 상피암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담당의사는 입천장과 광대뼈, 어쩌면 눈까지 도려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암이라는 소리에 정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전이나 재발도 아니고 세 군데 모두 새로 생겨난 암이라는 말에 무기력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죽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수술하러 가기 전 부인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내가 하던 모든 일을 잘 정리해서 맡으라.”고, “그래야 내가 없어도 혼란스럽지 않을 것”이라고.
그때 “당신이 뭐 죽으러 가요?”라던 아내의 말이 가슴에 꽂혔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저는 암에 걸리면 모두 죽는다는 말은 믿지 않았습니다. 미리 죽는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요. 살겠다는 의지와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지극한 간호에 저는 살 수 있을 거라는 확신과도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라며 구창모 씨는 암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