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은혜 기자】
“시련은 극복하라고 있는 것, 언제나 절망은 금물입니다”
발견과 동시에 사망선고가 내려지는 암, 이겨냈다는 사람도 찾기 힘든 암, 그래서 모두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암! 췌장암이다. 조기에 발견하면 얼마든지 치료될 수 있는 다른 암과는 달리 췌장암의 예후는 결코 좋지 않다. 생존자도 찾기 힘들다. 그런데 여기, 수술해도 3개월, 안 해도 3개월이라는 췌장암 진단을 받고서도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존 보고서를 써내려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 곽동호 씨(51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최근에는 대형 교통사고까지 나서 시련이 겹쳤지만 그래도 췌장암에 대한 희망의 증거가 되고 있는 사람. 그런 그가 밝히는 췌장암에 대한 희망보고서를 들어본다.?
2006년 1월 11일의 악몽
불행은 언제나 예고가 없다.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멀쩡히 직장 잘 다니던 사람, 전기공학도 출신답게 전기설비 분야에서 인정도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사람, 곽동호 씨의 삶은 그랬다. 늘 일이 많아 일벌레처럼 일하지 않으면 안 되었지만 그렇다고 힘들어하거나 불평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2005년 접어들면서 이유모를 피곤함 때문에 많이 힘들었어요. 아침에 아내가 깨워도 잘 일어나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너무 과로해서 그러나 싶어 약국에 갔더니 간장약을 주더군요.”
그 약을 먹자 조금 살만해졌고, 다시금 바쁜 직장일에 묻혀 살았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소화가 잘 안 되면서 속이 더부룩한 증상이 나타났다.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증상이 오래 계속되자 가까운 내과를 찾았다. 진료를 마친 의사가 말했다. “신경성인 것 같다.”고. 그러면서 위장약을 처방해주었다. 또다시 위장약을 먹으며 몇 달이 흘렀다. 그러는 사이 2006년 새해도 밝았다. 모두들 새해를 맞아 들떠 있던 어느 날 아침, 아니 정확히는 2006년 1월 11일의 일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나오는데 아내가 다급한 목소리로 ‘당신 눈이 노랗게 보여요. 얼굴도 노래 보여요.’하는 거예요. 전날까지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하룻밤 사이에 눈이 노랗고 얼굴이 노랗다니 무슨 말인가 싶어 급히 방으로 들어가 옷을 벗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광경이 벌어져 있었다. 온몸이 노래져 있었던 것이다. 하룻밤 사이에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해본 일이었다.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다. 황달이었다. 즉시 입원을 했고, 이것저것 각종 검사가 이어졌다. 초음파, X레이, CT 등 숱한 검사가 이어졌고, 며칠 뒤 검사 결과가 나왔다. 의사는 말했다. 췌장에 종양 같은 게 보인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머릿속이 하얘지더군요. 참으로 어처구니없게도 간암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도 하고 있었어요.”
그것은 지난 2006년 1월 16일의 일이었다. 이때 그의 나이 47세였다.
고난도 수술이 행해지고
췌장에 종양이 보인다는 말을 듣고도 간암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는 곽동호 씨. 그때까지만 해도 췌장암의 악명을 잘 모르고 있었다. 췌장하면 인슐린을 만드는 곳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주변에서 췌장암에 걸린 사람을 본 적도 없었다.
췌장암에 대해 전혀 무지했던 그에게 큰 병원에 가보라는 의사의 말은 참으로 의아했다. ‘그냥 수술하면 되지, 큰 병원까지 가라고 하느냐?’며 투덜대기까지 했다.
하지만 진단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온 그의 동생은 사태의 위급함을 알았나보다. 서울대 출신인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 서울대병원에 예약을 했고, 그 다음날 곽동호 씨는 곧바로 입원을 했다.
“입원하자마다 바로 응급실로 빼더군요. 그만큼 상태가 위급했나 봅니다. 그리고 또다시 각종 검사가 이어지더니 췌장암 초기니까 수술하면 괜찮다면서 수술을 하자고 하더군요.”
하지만 가족들에게 전해진 통보는 이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가족들에게는 췌장암 말기라는 통보가 전해졌고, 수술해도 3개월, 수술 안 해도 3개월이라는 시한부 통보도 함께 전해진 상태였다.
이런 사실은 전혀 모른 채 수술실로 향한 곽동호 씨. 힘든 수술이었다. 10시간 이상 걸렸다. 췌장의 2/3를 잘라내고 십이지장, 담도, 담낭, 소장 등을 잘라내는 고난도 수술이 행해졌다.
항암치료 거부하다
수술은 잘됐다고 했다. 중환자실에서 이틀 만에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엄습한 것이 뜨거운 통증이었지만 그래도 살아 있음에 만족했다. 그리고 2주 후에는 퇴원해도 된다는 허락도 받았다.
“하지만 후속 조치로 방사선 30회와 항암치료 6개월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퇴원하자마자 방사선치료부터 시작했어요.”
총 30회를 해야 하는 방사선치료. 처음 3회와 마지막 3회는 항암치료와 병행해서 방사선치료를 받았다. 항암제를 먼저 맞고 4시간 후 방사선 치료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항암제만 맞으면 정신이 이상해지는 거예요. 문득 옆에 있는 아내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면서 제 자신을 제어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뇌신경계통에 항암제의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었다. 안 되겠다 싶었다. 결국 방사선치료 30회가 끝났을 때 그는 결심했다. 항암치료는 안 하리라. 병원에서도, 가족들도 모두 말렸지만 끝내 그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암 공부를 시작하다
항암치료를 거부한 곽동호 씨. 그런 그가 이때부터 새롭게 시작한 일이 있었다. 암에 대한 공부였다. 서점에 나가 암 관련 서적을 수십 권 구입한 그는 이때부터 암의 정체를 알기 위한 첫 행보를 시작했다. 그런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췌장암을 이겨낸 사례를 찾는 일이었다.
“그런데 수십 권의 책을 다 뒤져봐도 췌장암을 이겨낸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더군요. 그제서야 췌장암 진단을 받고서도 간암이 아니라며 좋아했던 제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알게 됐어요.”
파고들면 들수록 췌장암은 두려운 존재였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는 일. 방법을 찾아보자 결심한 그가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야채스프와 현미차였다.
“야채스프로 위암을 고친 사례는 수없이 많더군요. 위암에 효과가 있다면 췌장암에도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우선 야채스프에 들어가는 재료를 구하고 아내가 집에서 직접 끓이기 시작했어요.”
그 덕분이었을까? 야채스프를 먹기 시작하면서 왠지 몸이 가벼워지고 좋아진 느낌이 들더라고 말한다.
그러자 새로운 의욕도 생겼다. 그동안의 지식을 총동원하여 항암생활요법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가 항암치료도 포기하고 목숨 걸고 실천했다는 항암생활요법은 다음과 같다.
하루 세 끼 식사는 죽으로~
야채 + 현미 + 해산물로 만든 죽을 밥 대신 먹었다고 한다. 밥은 먹을 수가 없었다. 췌장의 2/3를 잘라낸 탓에 소화효소가 분비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탓에 밥 한 숟가락도 배가 불러서 먹을 수가 없었다. 밥 대신 하루 세 끼 죽을 먹었고, 죽 한 숟가락도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었다.
홍삼엑기스는 훌륭한 면역 증강제
홍삼엑기스는 곽동호 씨가 적극 추천하는 면역력 증강식품이다. 인삼에 들어있는 면역력 증강 성분인 진세노사이드가 20여 종이라면 홍삼에는 30여 종이나 들어있다고 한다.
웃음요법도 꾸준히 실천
곽동호 씨는 웃음은 만병통치약이라고 말한다. 아침마다 산에 올라가서 하하~ 웃었다. 30분 운동하고 30분 웃고~ 이런 생활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 년 365일 꾸준히 실천했다.
생각도 바꾸다
‘암세포가 왜 생겼을까?’ 그것은 곽동호 씨가 언제나 천착한 화두였다.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여러 가지 서적도 탐독했고, 최신 논문도 훑었다. 그리하여 비로소 내린 결론이 있다. 암세포는 주인한테 미움 받은 세포들이 살기 위해 변한 것이지 근본적으로 나쁜 세포는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암세포는 사랑으로 감싸야 한다는 것. 생각을 이렇게 바꾸자 억울하다는 생각도, 불행하다는 생각도 거짓말처럼 사라지더라는 게 곽동호 씨의 귀띔이다.
마사지요법도 매일매일~
발부터 시작해 전신을 정성스레 마사지해주는 마사지요법도 곽동호 씨가 꾸준히 실천한 항암요법 중 하나라고 말한다.
전신 이완요법은 틈틈이~
긴장을 이완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같은 이완요법은 호흡수련을 통해 가능하다. 하는 방법도 쉽다. 온몸을 축 늘어뜨린 채 호흡을 배꼽 아래로 쭉 내리고 긴장을 풀어주면 된다. 틈나는 대로 수시로 해주면 좋다고 한다.
끊임없는 자기 암시를 하다
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자기 암시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암 완치도 자유로워지는 방법이지만 암세포와 평생 같이 살자고 생각하는 것도 암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방법이라는 게 곽동호 씨의 말이다.
만약 암이 통증을 일으키면 “너희들도 내가 죽으면 같이 죽어야 하니 같이 살자고 설득을 한다.”는 것이다.
반신욕, 족욕을 자주 하다
혈액순환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면역기능을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게 곽동호 씨의 말이다. 반신욕, 족욕 등의 온열요법은 암세포 사멸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암 성질을 건드리지 않고 무력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그동안의 연구 결과 우리 몸의 체온이 1도 올라가면 면역력은 10배 증가한다고 밝혀졌기 때문이다. 우리 몸의 체온을 1도 올릴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반신욕이라는 것. 42도씨의 온도로 반신욕을 하면 암세포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즐겁게 노래 부르기
노래를 부르면 암세포를 제압하는 NK세포가 증가한다는 임상 결과가 발표돼 있다. 실제로 노래를 신나게 부르면 NK세포가 30% 증가한다는 게 곽동호 씨의 귀띔이다.
따라서 평소 집에서도 노래방에 가서도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는 것은 암세포를 달래는 데 효과가 있다.
이런 생활 덕분이었을까? 췌장암 진단을 받은 지 4년째로 접어든 2010년 3월까지 곽동호 씨는 누구보다 건강한 일상을 살아왔다. 인터넷 다음 카페에 한국췌장암환우협회도 개설해 췌장암 환자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왔다. 하지만 지난 3월 뜻밖의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그는 또 한 번 생사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이제는 그 후유증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지만 우려되는 건 암세포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면역력이 급격히 저하된 상태에서 또다시 재발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
“하지만 저는 믿고 있어요. 인생의 한계상황은 절대 없다는 것. 지금 이 상황이 최악인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이 상황도 결코 한계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될 테니까요. 그래서 목숨 걸고 실천했던 항암생활요법을 다시금 시작했어요.”
곽동호 씨는 그것이 그의 삶에 또 한 번의 축복을 안겨주리라 굳게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