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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체험기] 갑상선암, 난소암 이겨낸 나경숙 씨 인생고백

2003년 11월 건강다이제스트 영글호

【건강다이제스트 | 양미경 기자】

“한 잔의 녹즙, 현미식, 그리고 포도즙은 제 삶의 보배예요”

아프다는 것은 삶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더욱이 삶과 죽음의 중간에서 제 존재를 확연히 드러내는 암 덩어리가 주는 아픔은 고통을 넘어선 두려움이다. 살아온 생의 3분의 1을 눈에 보이는 공포와 싸워온 나경숙 씨. 그녀에게 듣는 삶에 대한 이야기.

나경숙 씨는 아주 잘 생긴 사람이다. 여자지만 예쁘다는 말보다 잘생겼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그녀는 목소리도 성격도 시원시원하다. 그녀에게는 아픈 엄마를 대신해 알아서 모든 것을 해왔던 착하고 예쁜 딸이 있고, 20여 년의 결혼생활 동안 한결같이 듬직한 남편이 있다.

한없이 건강하고 밝기만 그녀에게서 갑상선암과 난소암이라는 병이 한꺼번에 찾아든 혼란했던 시간의 흔적을 애써 헤집기가 무안했다.

세 개의 진료카드

나경숙 씨는 현재 세 개의 진료카드를 가지고 있다. 갑상선암으로 인한 외과, 난소암으로 인한 산부인과, 잦은 수술과 마취로 인해 약해진 심장 때문에 다니는 심장내과가 바로 그것이다.

“결혼하고 얼마 후에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어요.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갑상선암 3기말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암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고 1년 후에 다시 재발을 해서 팔에서 어깨, 귀 뒤쪽까지 암세포가 퍼지는 지경까지 이르렀어요.”

광범위하게 번진 암세포를 제거하는 수술은 다행히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암의 흔적으로 말라가기 시작하던 나경숙 씨의 체력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넉넉지 않은 살림이지만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예쁜 딸 단비를 보며 삶의 의지를 다져가던 나경숙 씨.
”저희 친정 어머니가 대장암으로 돌아가셨어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나를 구성하는 작은 세계를 흔들어대는 암이라는 존재에 대해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요. 그렇지만 갑상선암 수술 후 다시 내게 불치병이라 불리는 어떤 병이 찾아들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그건 너무 가혹한 처사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나경숙 씨는 갑상선암 수술을 어렵사리 마친 2년 후, 죽을 만큼 심각한 복통으로 병원에 다시 입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난소암이라는 진단을 무방비 상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모르는 게 약이다

”참 미련하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을 들으면서도, 난소가 이미 터졌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그게 뭔지 정확히 감이 오지 않았어요. 한 달 후에 난소에 생긴 암세포가 자궁으로 전이되었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던 사실이었어요.”

나경숙 씨는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살아남은 것이 아닌가라고 자문한다고 한다.
”당시 저를 담당하셨던 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 김재욱 선생님은 수술하기가 망설여질 정도였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수술을 해도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던 모양이에요.”

그렇지만 그 상황에서도 나경숙 씨는 빨리 회복돼서 퇴원할 생각만 하고 있었다. 갑상선암 수술 후에 떨어진 체력으로 몸이 약했던 나경숙 씨는 항암치료를 할 수 있는 체력조건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항암치료 12회, 방사선 치료 6회라는 숫자를 다 채워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항암제를 한 번 맞고 나니까 오히려 삶에 대한 의지가 떨어졌습니다. 40kg도 안되던 깡마른 체구에 입에 들어가는 건 모두 토해냈기 때문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고통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결국 두 번째 항암치료는 체력의 문제로 계속 미뤄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항암치료는 그것으로 끝을 냈다.

“모두가 만류하는 병원문을 나서면서 제가 어떤 마음이 들었겠어요? 그때 제딸 단비가 5살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어요. 딸아이 한 번 제대로 보듬지 못하고 그렇게 말라죽어서는 안 되겠다는 그런 생각밖에는 없었어요.”

비록 병원 치료는 거부했지만 나경숙 씨는 제 스스로 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식이요법이었다.

하루 세 숟가락의 미음과 포도즙

나경숙 씨는 병의 기세가 등등할 때 병원문을 나섰기 때문에 음식을 소화시킬 수도 없을 정도의 상태였다.

”제가 그 당시에 먹는 양은 하루 세 숟가락의 미음이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쌀을 제외하고 현미, 콩, 보리를 모두 갈아서 만든 죽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세 숟가락이던 하루 식사가 점점 숟가락 수가 늘기 시작했고, 참으로 신기하게도 몸이 조금씩 회복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앉아있기도 힘든 와중에서도 나경숙 씨는 암에 좋다는 채소와 약초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소화시키기가 힘드니까 좋다고 가져다 준 약초들도 다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녹즙이었습니다.”

한 잔의 녹즙과 세 숟가락의 죽, 그리고 포도즙이 나경숙 씨의 암 투병 생활을 도와준 동반자였다.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해온 나경숙 씨는 성경에 포도가 좋은 과일로 묘사되는 것에 힌트를 얻어 포도즙을 하루에 1.5ℓ씩 먹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포도즙에 대한 인식이 없었을 때였습니다. 과일을 먹기는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씹을 수 없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갈아먹기 시작한 것이 포도즙이었습니다.”

나는 참 운 좋은 사람

그렇지만 점점 호전되고 있다고 생각했던 건강은 장유착이 일어나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리고 두 달 동안 물 한 모금 제대로 넘길 수 없었던 상태에서 나경숙 씨는 입술을 깨물며 복도를 걷는 운동을 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안쓰럽게 바라봤지만 그래도 그녀는 그것이 남은 가족들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을 했단다.

”그렇게 고통스럽던 어느 날, 꿈에 돌아가신 친정엄마가 나타나셨어요. 너무 반가워서 한없이 눈물만 흘리는 제게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구요. 너는 죽지 않는다. 너는 다시 건강해질 거다.”

그리고 다시 물을 마시기 시작했고 그 이후 설사도, 구토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에도 최선을 다한 제 자신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참으로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을 빠져나와 이제 환하게 웃고 있는 나경숙 씨는 지금도 식이요법을 절대로 게을리 하지 않는다. 처음 암이 발견되고 15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암이 남기고 간 상흔들은 압박스타킹을 신어야 하는 다리의 부종을 만들어냈고, 심장을 약화시켜 놓았다.

“암환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결코 절망하지 않는 마음가짐입니다. 거기에 더해 제가 추천할 수 있는 것은 현미식, 녹즙, 제철과일, 봄나물의 식단입니다. 지금도 저는 봄이면 냉이, 쑥, 질경이, 돌미나리, 씀바귀를 캐러 떠나는 봄처녀가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모두 말려서 다음 해 봄이 돌아올 때까지 생식과 국거리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투병 와중에도 6년여 동안 소록도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나경숙 씨는 지금도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소년원 아이들을 대상으로 성경책을 가르쳐왔고, 최근에는 산간벽지 노인들의 이발을 해주는 봉사활동을 위해 미용기술을 배우고 있다.

“아침 7시 30분이면 우장산에 올라서 2시간 동안 운동하는 건 기본이에요.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투병생활이라는 것이 죽는 날까지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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