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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희망가] 위암 7년 생존자 길호관 씨가 사는 법

2015년 11월 건강다이제스트 장수호

【건강다이제스트 | 이기옥 기자】

“백세 시대! 앞으로 20년 일하고 나머지 20년은 즐기며 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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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미대 출신의 실력을 인정받는 디자이너였다. 독립해 자신의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었던 외환위기! 그 여파는 거셌다. 그리고 쉽게 끝나지 않았다. 그 고통이 너무 크고 너무 오래 지속돼서였을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위암! 그래도 희망을 잃진 않았다. 위장을 다 절제해야 했지만, 열흘이면 퇴원할 수 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뜻밖의 2차 수술, 연이은 두 번의 내시경 수술, 그리고 의료소송까지…. 온 힘을 다해 품었던 희망은 번번이 보란 듯이 꺾여나갔고, 3개월 만에 만신창이의 몸으로 겨우 퇴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퇴원 후 암 관리는 생존을 위한 또 하나의 치열한 전쟁이었다. 스스로 방법을 찾아가는 고독한 여정이었다.

그렇게 7년! 단 한 순간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는 한 희망은 배신하지 않는다 믿었다. 현재 건강에서는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일에서는 광고, 디자인 전문회사 그룹 와이(Group Y(구. 윤디자인연구소))의 부회장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사람. 바로 서울 광진구에 사는 길호관(61세) 씨다.

“백세 시대, 앞으로 20년 일하고 나머지 20년은 즐기며 살 겁니다!”

포기하지 않을 또 하나의 희망을 가슴 속에 품고 사는 길호관 씨의 암 극복 비결을 들어봤다.

5개월간 소화제 처방… 그런데 위암!

속이 쓰리고 더부룩했다. 그 정도가 심상찮아 동네 내과를 찾았다. 의사는 소화불량이라며 소화제를 처방해주었다. 여전히 소화가 잘 안 되는 것 같았고, 속이 답답하기도 해 설사약을 먹기도 했다. 2007년 여름부터 그렇게 5개월간 소화제를 먹으며 지냈다.
그해 연말, 대학 후배들과 송년회에서 소주 몇 잔을 마셨다. 그런데 다음날! 심한 복통에 잠이 깼다. 뱃속을 비틀어 쥐어짜는 것 같았다. 대변이 초콜릿보다 더 짙은 시커먼 색이었다.

“순간 큰일 났구나! 싶었습니다. 위염? 위궤양? 위암? 분명 그중의 하나일 거로 생각하니 겁이 덜컥 났습니다.”

2008년 1월, 건강검진공단(하계동)에서 장 검사에 더해 위장 검사도 했다. 결과는 예상했던 세 가지 중 하나, 바로 위암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암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소화불량이라며 몇 달간 소화제만 먹은 자신이 바보 같았다.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원망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동네 병원에서 했던 실수를 똑같이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제일, 가장 유명하다는 병원을 찾아갔다. 조직검사 결과는 위암 1기. 암이 임파선으로 전이가 되지 않아 항암치료를 안 해도 되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암의 위치가 문제였다. 위장의 중간 윗부분이라 개복수술로 위장 전체를 완전히 절제해야 했다.

위암 판정 소식을 듣고 의사이자 당시 천안의 충무병원 병원장이었던 친형이 전화했다. 형은 “혹시 수술이 잘못될지 모르니 신변정리를 하고 입원하라.”고 했다.

“아들, 딸 불러서 통장 비밀번호까지 다 알려주었습니다. 그동안 건강에 무심하게 살았던 게 후회됐죠.”

실력 있는 디자이너 출신으로 자기 사업을 운영하며 승승장구했던 길호관 씨.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외환위기는 그를 길고도 어두운 터널 속에 떨구어 놓았다. 그곳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스트레스와 심리적 압박감은 견디기 힘들 정도였고, 술과 담배는 일상이 되었다. 건강을 챙긴다는 것은 사치였다. 그렇다고 암이라니! 너무 가혹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체념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포기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이 시련이 삶의 전환점, 제 인생의 전화위복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었습니다.”

두 번의 개복 수술

2008년, 1월 28일에 입원한 길호관 씨는 나흘 뒤인 2월 1일에 위장 완전 절제 수술을 받았다. 의사는 수술이 잘되었다고 했다. 안도했다. 열흘만 지나면 퇴원이라고 생각하니 힘도 났다. 하지만 무엇이 잘못됐던 걸까? 이튿날부터 39도를 넘는 고열이 계속됐다. 온몸이 저리고 정신은 혼미하고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해 몸부림칠 기운조차 없었다. 이유를 물어도 의료진은 묵묵부답. 진통제와 수면제를 번갈아 맞으며 20일을 보냈다. 동생이 고열에 시달린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형은 의료진과 대화를 나눈 후 물었다. 재수술이 결정됐는데, 죽을 수도 있다는데, 재수술에 동의하겠느냐고. 재수술에 동의했다. 오로지 한 생각뿐이었다. ‘고열로 시달리다 죽느니 다시 수술하는 게 낫겠다.’

2월 25일, 2차 수술을 받았다. 고열의 원인을 알 수 없어서 다시 개복했고, 개복해보니 뱃속에 벌집처럼 고름이 맺혀있었다(복막염)는 게 의료진의 설명이었다. 배에는 피고름을 빼내는 피 주머니 3개가 달렸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수류탄이 매달려 있는 듯했다. 빨리 수류탄들을 떼어내고 퇴원하기만을 바랐다.

두 번의 내시경 접합 시술

그러나 이 희망도 곧 물거품이 되었다. 피고름이 멈출 생각을 안 했다. 계속 차올라 왔다. 접합이 잘 안 돼 계속 새는 거라며 내시경 시술로 접합을 하자고 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두 번의 개복도 모자라 이번엔 접합 시술이라니!

이러다 만신창이 되겠다 싶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2차 개복 수술 후 9일 만에 다시 내시경 시술을 받았다. 마취 없이 의사와 대화하면서 해야 하는 내시경 수술은 너무도 힘들었다. 1시간 반 만에 끝난 시술. 완전 초주검이 되었지만, 이젠 끝이겠구나 싶어 위로가 됐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록 계속 썩은 물이 고였다. 담당의사는 다시 내시경 시술을 하자고 했고, 4월 3일, 또다시 내시경 시술을 받았다.

의료사고의 주인공으로…

두 번째 내시경 시술 후, 일주일이 지나자 더는 썩은 물이 나오지 않았다. 이제야 퇴원하겠구나 싶었다. 경과를 지켜보던 중 내과엘 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진료기록을 보던 내과의가 말했다. “비장도 자르셨네요?” 2차 개복수술과 두 번의 내시경 시술의 원인이 밝혀지던 순간이었다. 1차 수술 때 레지던트가 메스로 비장을 건드린 걸 모르고 봉합을 했고, 그 때문에 복막염이 생겨 2차 수술 때 비장까지 절제했는데 접합이 잘 안 되어 두 번의 내시경 시술을 했던 것이다.

“눈앞이 노랬습니다. 명백한 의료사고였습니다. 그 사실을 의사들이 숨겼다는 것에 대해 분노를 참을 수가 없어 온몸이 떨렸습니다.”

이 사실을 형에게 알렸고, 형은 의료소송을 준비하라고 했다. 소송을 위해 내용증명서를 작성해 병원장 앞으로 보냈다. 소송이 끝날 때까지 퇴원할 수가 없기에 퇴원은 기약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내용증명에 대한 답이 왔다. 담당의료진은 온 힘을 다했고 비장을 제거한 사실을 환자에게 알리지 않은 건 사무착오였다는 것. 원무과장은 수술동의서가 있기 때문에 의료소송에서 이길 수가 없다며, 변호사 비용 날리지 말고 포기하든가 적절한 선에서 합의하라고 했다. 변호사 친구와 친형은 완벽한 증거가 될 수 있는 녹취 내용이 있으며, 이길 수 있으니 소송을 하라고 했다. 빨리 나아야 한다는 한 가지 목표 외에 소송에서 이겨야 한다는 힘든 목표가 하나 더 생겨버렸다.

“그나마 위암을 빨리 발견했고, 수술만 잘됐으면 열흘이면 퇴원할 수 있었는데, 몸은 망가질 대로 다 망가지고 의료소송까지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모든 게 다 원망스럽더군요.”

원무과장이 수시로 찾아와 합의해 달라고 했고, 생각 끝에 합의서에 서명했다.

퇴원 후엔 병마가 아닌 자신과의 싸움

4월 28일, 그토록 바라던 퇴원을 했다. 그러나 집으로 와보니 마음이 불안하고 모든 게 비위생적으로 보였다. 재발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요양병원을 권유받았지만, 병원이라면 진절머리가 났다. 경기도의 한 펜션에 들어가 홀로 요양을 시작했다. 자연이 주는 편안함에 별천지에 있는 듯했다.

그러나 음식은 여전히 잘 먹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먹을 수 있는 게 유동식이었는데 그것도 먹으면 토하고, 가스가 차서 속이 뒤틀리면서 숨쉬기 어려울 정도의 복통이 일어났다. 십이지장이 위 역할을 하다 보니 덤핑증후군이 일어났던 것이다. 잘 때도 안심할 수 없었다. 자는 도중에 먹은 음식이 역류해 올라왔다. 이 역시 위장이 없기 때문이었다. 베개 두 개를 겹쳐 베고 자야만 했다. 미음에서 밥을 먹기까지 6개월이 걸렸다. 지금도 빨리 먹거나 많이 먹으면 부담스럽다.

“방귀 잘 뀌는 사람이 참 부러웠습니다. 방귀로 뱃속에 찬 가스가 빠져 복통이 없어지니까요. 또 배고프기 전에 먹고, 졸리기 전에 자고, 추워지기 전에 입어야 한다는 평범한 건강의 비결이 제게는 너무도 힘든 전쟁이었고 꼭 이루어야 할 목표였습니다.”

입원 전 72kg에서 43kg으로 퇴원했다. 기운이 없어 걷는 것도 힘들었다. 몸무게를 늘려 체력을 키워야 했다. 그래서 열심히 걸었다.

매일 보폭도 늘리고 걸음 수도 늘렸다. 한 달 예정의 펜션 생활을 접고 보름 만에 집으로 향했다. 딸과 아들과 함께할 수 있어 좋았다. 몸무게도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퇴원 때 병원에서 받은 것은 식단표뿐이었지만, 퇴원 후 덤핑증후군, 식도역류, 탈수증, 궤양성대장염, 고주파 난청, 장협착증, 고혈압, 무기력증, 우울증, 대인기피증 등을 겪었다는 길호관 씨.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은 증상들을 겪으며 스스로 터득하는 게 많았다며, 스스로 자신의 몸을 관찰하고 돌보며 암을 극복해나가는 일이 참으로 힘든 자신과의 싸움이었다고 말한다.

2015년, 8월 현재 길호관 씨는….

길호관 씨는 2013년에 5년 완치 판정을 받았다. 형제들에게 완치통보 소식을 알렸는데, 동생이 뜻밖의 말을 했다. “이제야 하는 말인데 주치의가 형이 3년밖에 못 산다고 했어.”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동안 가슴 졸이며 자신을 지켜봤을 동생의 심정이 어떠했을지를 생각하자 가슴이 미어졌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덤으로 사는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도했다. 살려놓으신 만큼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베풀며 살겠다고.

2015년 8월 현재 길호관 씨는 수술 전보다 더 건강해졌다고 한다. 주치의로부터 와인이나 막걸리 등을 혈액순환에 좋을 만큼 먹어도 좋다는 말까지 들었다. 건강만이 아니라 일에 있어서도 3개의 계열사가 있는 디자인그룹의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길호관 씨는 말한다. “외환위기로 겪었던 가장으로서의 아픔이 암으로 왔지만, 결국은 전화위복이 됐습니다. 그 모든 게 제 희망대로 되었거든요. 딸은 시집갔고 아들은 취직했고, 저도 다시 일을 하게 됐죠. 이 모든 것이 다 긍정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암을 극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암을 이겨낼 수 있다는 ‘본인의 의지’이지만, 가족과 이웃들의 사랑이 더해진다면 모두가 완치될 수 있다며 늘 곁에서 최선을 다했던 딸과 형제들 그리고 친구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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