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정희 기자】
최근 6년간 우리나라가 수입한 혈액은 2000억 원어치. 연간 국민 헌혈률은 4%에 그쳐, 2008년 한 해만 해도 700억 원가량 혈액을 수입했다. 게다가 올 겨울 들어선 신종 플루로 헌혈이 줄어 혈액 공급난이 심해지고 있다. 어려운 이때도 멈추지 않고 꾸준히 헌혈해 524회를 맞은 헌혈왕 황의선 씨(55세). “헌혈은 건강한 사람의 특권”이라고 말하는 그의 건강비결을 들어본다.
그 시작은 3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 입대 후 첫 휴가 때의 일이다. 용산역에서 멈춰서 있는 헌혈차를 발견했다. 헌혈의 집도, 헌혈차도 지금처럼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호기심이 일었다. 가까이 가보니 차 유리창에 선명하게 새겨진 글귀, ‘당신의 헌혈이 세상을 구한다.’는 문구였다.
무엇이었을까? 뭔지 모를 뭉클함이 가슴 언저리를 맴돌았다. 그리고 이어서 든 생각 하나! ‘헌혈을 하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는 황의선 씨. 이끌리듯 들어가 피를 뽑았다고 한다.
“처음이 어렵지, 막상 해보니 별로 아프지도 않고 금방 끝나더라고요.”
이때부터 그의 생활은 많이 달라졌다. 2달에 한 번씩, 혹은 2주에 한 번씩(전혈은 2달, 성분헌혈은 2주) 헌혈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30년이 훌쩍 지났고, 때 맞춰 하다 보니 어느새 524회에 이르렀다.
지난 해 전역한 전직 군인인 그는 군에서도 헌혈을 많이 하기로 유명세를 탔다. 특히 육군은 매년 20만 명 이상이 자발적으로 헌혈에 참여해 혈액공급에 큰 공을 세우고 있다. 그는 2008년 육군 헌혈왕으로 선발돼 참모총장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문민정부 때는 신한국인으로 선정됐고, 국민의 정부 때는 국민에게 희망을 준 사람으로 뽑혔다. 참여정부 때는 국민포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몸이 건강하니 나누는 것 뿐”이라며 ‘헌혈천사’로 주목받는 것을 몹시도 쑥스러워한다.
대한민국 헌혈왕의 건강비결
우리나라는 혈액이 부족해 수입량이 많지만, 헌혈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제일 조건이 건강이다. 황의선 씨는 “처음 헌혈을 시작할 때는 건강하니까 했지만, 지금은 헌혈을 할 수 있는 몸을 유지하려고 건강을 더 챙기게 됐다.”고 말한다.
헌혈이 가능한 나이는 65세다. 이대로라면 600번도 문제없다고 말하는 황의선 씨. 그런 그가 밝히는 건강 비결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금연과 절주다. 담배는 지금껏 입에도 안 대봤고, 술은 가급적 마시지 않는다. 친구들도 대부분 담배를 안 피운다.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로 “요즘 담배 피우면 미개인”이라며 흡연하는 이를 놀린다. 주변에 금연을 권해도 못 끊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 어머니와 주치의가 짜고 “담배를 안 끊으면 얼마 못 산다.”고 경고했더니 바로 끊게 됐단다.
황의선 씨의 아버지는 알아주는 주당이었다. 어릴 적부터 술을 많이 드시고 호령하는 아버지가 무서웠다. 결국 과한 음주로 건강도 나빠지고 어머니보다 먼저 돌아가셨다.
그가 헌혈의 집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는 남편이 술을 많이 마셔 불화가 있었다. 남편이 헌혈을 시작하더니 맑은 피를 헌혈하고 싶은 생각에 술을 끊었다고 했다. 그녀는 “헌혈 덕분에 집안에 평화가 왔다.”고 밝게 웃으며 남편 따라 팔을 걷었다.
둘째, 물을 많이 마시고 편식하지 않는다. 특히 헌혈하러 가기 전날엔 기름진 음식을 피한다. 완전히 소화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혈장헌혈을 하면 혈액이 흐리고 보관 기간도 짧아진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헌혈한 날엔 수분보충에 더 신경 쓴다.
셋째, 꾸준한 운동이다. 군대에서는 도보로 한 시간가량 걸리는 출퇴근길을 운동 삼아 걸어 다녔다. 십 년을 걸어 다녔더니 어느새 84kg이나 나가던 몸이 66kg으로 적정 체격이 됐다. 요즘도 하루 두 시간 정도 걷거나 뛴다. 아내와 함께 집 근처 한강 둔치를 다니면 더 즐겁다.
꾸준한 건강관리 덕분인지 감기나 유행병은 대부분 그를 비껴갔다. 지금껏 병원에 입원한 경험도, 군에서 건물화재로 부분 화상을 입은 게 다다. 주변에서 그에게 “헌혈을 많이 하면 건강에 안 좋다더라.”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면 허허 웃으며 반문한다. “그럼 500번 넘게 하고 이렇게 건강할 수 있겠어요?”
헌혈을 많이 해도 건강에 전혀 해로움이 없다는 걸 몸소 입증해보이겠다며 2002년 마라톤대회에도 출전했다. 42.195km 풀코스를 달리고, 그 후로 올해까지 총 14번 완주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더 힘주어 말한다.
“이래도 헌혈이 건강에 해롭다고 생각하세요?”
나눔으로 건강해지는 세상 꿈꾸다
그에게 헌혈주기는 희망의 기다림이다. “기다림이 있는 삶은 행복하다.”며 쌓여가는 헌혈증을 세어 보는 것도 기쁨이다. 그동안 모은 헌혈증은 지인이나 소아암백혈병협회에 기증했다. 그가 근무하는 부대에서 한 병사의 여동생이 백혈병에 걸리자 병사들과 함께 헌혈증을 모아 전달한 사례도 있다.
헌혈하고 기념품을 받는 것도 즐거움이다. 군에서는 주로 남자화장품을 받아 생일 맞은 이등병에게 선물했다. “내 피를 네게 주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아들뻘 되는 장병을 격려했다.
그는 “피를 나눔으로써 더 건강한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앞으로 가능하다면 전국에 있는 헌혈의 집을 돌며 헌혈도 하고, 사람들에게 헌혈 홍보도 할 계획이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혈액 수입국이 아니라 혈액 나눔국이 되는 게 황의선 씨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