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은혜 기자】
“욕심을 버리면 하루하루가 행복합니다”
불행은 언제나 예고가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네 삶 속으로 들어와 혹독한 시련을 안겨준다. 평범한 가정주부로 오십 평생을 살아온 신경식 씨(57세)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녀는 암 진단을 받았다. 아무런 준비도 없었다. 평범한 그녀에게 암이 생길 줄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두 번 세 번 검사를 해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직장암이었다.
그 후의 일은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가 처진다. 인간으로서 차마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그 시련은 오늘을 행복하게 사는 원동력이 됐단다. 그녀의 지난 이야기를 들어봤다.
종종 배가 아팠다
그리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한 남자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로 평범한 삶을 살았다는 신경식 씨. 그런 그녀의 삶에 잔잔한 파문이 일기 시작한 것은 50세에 접어들면서부터다. 어느 날 갑자기 배가 뒤틀리듯이 아팠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장이 뒤틀리듯 아프더니 몇 시간 지나니 괜찮아졌다. 그래서 그 일은 곧 잊혀졌다.
그런데 3개월 후 똑같은 증상이 다시 나타났다. 뒤틀리듯 배가 아팠고 서너 시간 지나니 말짱해졌다. 그 후로도 가끔씩 그런 배 아픔은 나타났지만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렇게 2년 정도가 흘렀을 때 신경식 씨는 대변에 머리카락 같은 검은 줄기가 이어져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느낌이 안 좋았다. 그래도 애써 위로했다. ‘별일 아닐 거야.’ 그럴 즈음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매년 실시하고 있는 건강검진 안내장이 집으로 배달됐다. 예전 같았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우편물이었다. 건강만큼은 자신이 있었던 그녀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건강검진을 한 번 받아볼까 생각이 들더군요. 배도 종종 아프고 대변에서 검은 머리카락 같은 것도 보이고. 조금 걱정이 됐거든요.”
그래서 받게 된 건강검진. 그런데 검진을 마친 담당의사가 혈변이 보인다면서 빨리 내시경을 찍어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정확한 것은 조직검사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이럴 경우 암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군요.”
참으로 느닷없었다. 암이라니… 그렇게 쉽게 암에 걸려? 믿기지 않았다. 젊어서부터 병원이라곤 가보지 않은 건강한 몸이었다. ‘오진일 거야. 그럴 리 없어.’
하지만 일주일 뒤 나온 조직검사 결과는 충격이었다. 암이었다. 직장에 7cm 크기의 암이 보인다면서 곧바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저는 믿을 수 없었어요. 오진일 거라고 확신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으로 꼽히는 00병원에 가서 다시 검진을 받았어요.”
그러나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암이 확실하다고 했다. 2007년 10월, 52세의 신경식 씨는 그렇게 암 통보를 받아야 했다.
갑자기 암 통보, 수술 날짜를 잡다
하루아침에 암 환자가 되어버린 기막힌 현실. 20여 일 뒤로 수술 날짜가 잡히고, 그때부터 신경식 씨의 하루하루는 지옥이 따로 없었다고 한다.
“정말 암임을 실감하게 되자 눈물이 쏟아지는데 멈출 수가 없었어요. 뜨거운 눈물이 나오면서 목이 메여 말도 제대로 안 나왔으니까요.”
정말 이렇게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서럽고 허무했다. 정말 인생 별 것 아니었다. 그렇게 며칠을 울고 또 울면서 지쳐갈 즈음 불현듯 이러다가는 수술도 하기 전에 지레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어요. 만약 지금 죽는다 해도 조금 일찍 가는 것이니 편안히 생각하자 마음을 고쳐 먹었어요. 그랬더니 비로소 눈물도 멈추고 제가 처한 현실도 받아들일 수가 있더군요.”
그런 덕분이었을까? 수술은 참 잘 됐다고 했다. 암은 6cm 크기였고 위치도 좋아 수술 시간도 1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잘 됐다는 수술은 그 이튿날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치달았다.
“수술 후 몸속의 노폐물을 빼내기 위해 차고 있던 주머니에 피가 섞여 나오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천장이 빙글빙글 돌더군요. 구토도 나고 입술이 말라버리고… 그러자 의료진이 달려오고 산소호흡기가 꽂히고… 재수술에 들어가야 한다면서 새벽 4시에 가족들을 부르라고 하더군요.”
신경식 씨는 주어진 시간 만큼 즐겁게 살다 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 후의 일은 마치 꿈속 같다. 발바닥에 커다란 주사바늘이 꽂혔지만 통증은 전혀 없었다. 천장에는 여전히 별이 보이고, 어렴풋이 정말 죽는 것일까 생각도 들었다. 급박하게 전개된 이 일은 재수술을 위해 가족들의 동의서를 기다리고 있는 사이 피가 서서히 멎으면서 일단락됐다.
“피가 멎자 좀 더 두고 보자며 재수술은 안했어요. 하지만 입원해 있는 내내 조금씩 피가 나왔고, 피가 멈추지 않은 상태에서 퇴원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퇴원을 했지만 하루 만에 또다시 응급실로 실려 가야 했다. 피는 계속 흘러나오고 토하면서 천장이 빙글빙글 돌고….
“퇴원 후 한동안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걸핏하면 응급실에 실려 가기 일쑤였어요. 그렇게 한 달이 지나니까 피가 멎으면서 비로소 살 것 같더군요.”
방사선 치료 28회를 시작하다
수술 후 끊임없이 흘러나오던 피가 멎었을 때 드디어 나았다며 좋아했다는 신경식 씨.
하지만 그것으로 고통 끝 행복 시작은 결코 아니었다. 병원에서 해야 한다고 못 박은 방사선 치료를 28회 맞아야 했다.
“하루에 한 번씩 20여 회까지는 그런 대로 견딜 만했어요. 그런데 21회째 접어들면서 몸이 너무 힘들었어요. 기력도 없고 먹을 수도 없고 항문에는 염증이 생겨 앉을 수도 없었으니까요.”
사람 사는 것이 아니었다. 먹으면 토하고, 물만 먹어도 싸고, 하루에 화장실을 50~60회나 가야 했다. 짜증도 나고 우울증도 생겼다. 이러다가 못 먹어서 죽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방사선 치료 28회가 끝나던 날 그녀는 색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2008년 1월의 끝자락.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신경식 씨는 휠체어를 타고 하얀 눈이 덮인 길을 따라 경기도에 있는 한 요양병원으로 향했다.
산에 오르며 건강을 챙기다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요양병원을 신경식 씨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건강을 회복하는 산실이 돼 주었다고 믿고 있다. 방사선 치료로 초죽음이 돼 찾아든 요양병원은 병든 몸을 회복하는 노하우를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 방법이 결코 특별하지는 않아요. 아침에 일어나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운동하고, 자연에서 얻은 자연식을 감사한 마음으로 먹고, 맑은 물을 마시고, 늘 웃으면서 살고…. 참으로 쉬운 방법이었어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같은 생활프로그램을 10일 정도 실천하자 제 몸에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거예요.”
제대로 걷지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던 몸이 걸을 수 있게 됐고, 먹을 수도 있게 됐다. 그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그래서 병원에서 권한 항암치료도 시작할 수 있었다.
“사실 항암주사만큼은 맞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딸이 하도 맞아야 한다고 애원하는 바람에 한 달에 한 번씩 항암주사를 맞기 시작했어요.”
그 후유증은 바로 나타났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에 좁쌀 같은 피부 트러블이 나타났다. 그 증상은 일주일 뒤에 없어졌지만 항암주사의 부작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2회째 맞았을 때는 머리가 뭉텅뭉텅 빠지기 시작해 이발소에 가서 아예 밀어버려야 했으니까요.”
그 후로 30회나 이어진 항암주사는 고통으로 얼룩진 시간들이었지만 그나마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요양병원에서의 자연요법 덕을 톡톡히 보았다고 신경식 씨는 말한다.
“항암주사를 맞고 나면 10일 정도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먹은 것은 다 토하고…그 고통은 말로 다하지 못해요. 그러나 10일 정도 지나면 거동할 수가 있는데 저는 늘 산으로 향했어요. 운동도 하고 나물도 뜯어서 비빔밥도 해먹고…. 지금도 늘 시간만 나면 산을 찾아요. 아마도 산의 힘으로 그 힘든 항암치료를 견뎌낼 수 있었고, 또 이렇게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는 걸 제 몸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다시금 부르는 행복의 노래
힘든 항암 치료가 끝났을 때 신경식 씨는 비로소 6개월에 한 번씩 정기체크를 하고 일 년에 한 번씩 대장내시경을 하러 오라는 담당의사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 기쁨은 아무도 모를 거예요. 화장실 앞에다 밥상을 갖다 놓고 밥을 먹기도 하고 밥 두 숟가락을 입안 가득 넣고서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먹어야 했던 비참함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어요.”
그 고통이 끝난 것만 해도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비록 여전히 화장실을 10회 정도는 가야 하고, 기저귀도 차고 있어야 했지만 그 정도는 얼마든지 참을 수 있는 거였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신경식 씨에게서 암환자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56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다. 밝은 미소, 맑은 피부, 군살 없는 몸매… 곱게 늙어가는 아줌마로 보인다. 무엇보다 배설기능이 정상으로 회복돼 더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신경식 씨. 그런 그녀가 지금도 건강을 위해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는 자신의 건강 노하우를 살짝 공개했다.
1.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은 필수!
아침 5시 기상해서 1시간 30분 정도는 꼭 운동을 한다. 걷거나 뒷산을 오른다.
2. 산에서 뜯은 산나물은 최고의 건강식
지금도 산은 신경식 씨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산에 가서 산나물 뜯기는 그녀의 특기. 별의별 산나물 종류를 다 알고 있는 그녀는 식탁에 산나물 반찬을 꼭 올린다. 산나물 비빔밥은 그녀가 늘 먹는 건강식이다. 겨울에는 말린 산나물을 데쳐서 먹을 정도로 산나물 마니아다.
3. 약재 달인 즙을 물처럼~
신경식 씨가 또 하나의 건강비결로 꼽는 것은 여러 가지 약재를 한데 달인 물을 늘 마시는 것이다. 누가 알려줘서 그러는 것은 아니라고. 꾸지뽕나무+오가피나무+엄나무+표고버섯+쑥+검정콩+솔잎순+두릅나무뿌리를 채썰어 말린 것+뽕나무잎+칡뿌리를 혼합하여 냉장고에 넣어두고 하루에 한줌씩을 두 번 끓여서 섞은 뒤 이를 물처럼 마신다고 한다.
4. 식사는 두 끼만~
현미에 강낭콩, 율무 등 각종 잡곡을 넣어서 지은 밥을 먹고, 반찬은 가리는 것 없이 다 잘 먹는 편이다.
5. 요거트와 청국장도 꾸준히 먹기
우유 1000ml에 불가리스 한 병을 섞어서 요구르트 만드는 기계에 넣으면 간단하게 요거트가 만들어진다고. 여기에 매실 엑기스 한 스푼을 넣으면 맛도 좋아 요거트는 늘 먹는다. 청국장도 그녀가 늘 애용하는 음식이다.
인터뷰가 끝나는 대로 바로 산에 가야 한다며 서두르던 신경식 씨.
그런 그녀가 꼭 전하고 싶다는 당부는 하나다. 욕심을 버리면 누구나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거였다. 암이라는 암초를 만나 혹독한 시련을 이겨낸 뒤끝에서 비로소 세상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 수 있게 된 것은 자신의 인생에 찾아온 최고의 축복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