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명선 기자】
“한 번 웃을 때마다 절망은 멀어집니다”
5년 전부터 밤잠을 설치게 하는 위궤양으로 고생했던 김성주 씨.
서른 남짓한 젊고 푸른 나이에 갑작스럽게 위암 3기말이라는 진단을 받고 위를 모두 절제((全切除)하는 수술까지 결심하게 된 그의 고민과 투병생활을 들어본다.
올해로 서른 세 살이 되었다는 김성주 씨는 언뜻 보기에도 앳된 얼굴로 여느 청년과 다름 없는 인상이다.
5년 전에도 그랬다.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남들과 다르지 않은 일상이 차곡차곡 쌓이며 미래에 대한 포부와 계획들로 멋진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날들 중의 위장병쯤은 별 것 아니라고 치부되었다.
”좀 아프다 말았어요. 만성 위염이라고는 했지만 과로로 인한 것이거나, 식사를 조금 거르는 정도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었기 때문에 한두 달 약 먹으면 또 괜찮아지곤 했어요. 그러려니 했죠. 생활하는 데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었으니 말이에요.”
속이 쓰리다 싶으면 제산제를 먹었는데 금세 진정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은 까무러치게 아팠다.
새벽 내내 아파서 잠을 못 자고, 병원 문 열기만을 기다려 진료를 받았는데 문득 이대로 두어도 괜찮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그런 생각이 들잖아요. 한 번쯤 총체적인 진실을 알고 싶다는 생각, 계속 놔두어도 괜찮은가, 정말 아무 이상 없는가 하는 생각 말입니다.”
한 번쯤 검사를 받아본다고 해서 손해볼 건 없겠다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검사에 임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살고자 하는 의지만큼 강한 것은 없다
동네 병원 의사가 큰 병원에 가서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라고 했을 때솔직히 말해 그때까지만 해도 담담했다. 그런데 수서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서 MRI까지 찍었는데 담당 의사는 정확한 언급을 피했다. 일단은 수술을 해봐야 알 것 같다는 애매모호한 말만 해 그때부터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가슴 한 가운데에 맺히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암이 3기말쯤 되니까 의사도 뭐라 단정짓기가 어려워 그렇게 말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단을 받고 나서도 김성주 씨에게는 약 한 달 보름이라는 시간의 공백이 생겼다. 수술 일정이 곧바로 잡히지 않은 탓이었다.
일분 일초가 화급한 사람에게 대기자 명단 마지막 순번은 애타고 분통이 터질 법도 한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간이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김성주 씨는 그때를 회고한다.
일단 시간이 생기니 여기저기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에 대체요법 하는 곳도 찾아가 보고, 한방병원도 찾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러 나섰던 것이다.
“수술에 대한 불안감이 많았고, 확신도 없는 상태에서 무턱대고 수술을 받는 것이 좋은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면서 스스로 공부를 한 번 해봐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인터넷을 통해서도 알아보고 여러 사람의 경험담이나 조언도 수집했지만 그럴수록 결정은 더욱 힘들어지더군요.”
우유부단해서가 아니었다. 그 누가 그런 결정을 단박에 쉽게 내릴 수 있겠는가.
사느냐 죽느냐에 대한 고민이다보니 두려움 때문에 고민이 깊어졌노라고 김성주 씨는 고백한다.
오랜 고민 끝에 결국 수술을 택했고, 작년 2월 위 전체를 절제해내고 장과 식도를 연결하는 대 수술을 받았다.
”수술 결과는 생각보다 좋았지만 무엇보다 힘든 것은 항암제 치료였습니다. 4차 항암치료까지 받다가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결국은 병원을 뛰쳐나왔는데, 병원에서는 이래봬도 유명인사랍니다. 허허허”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그가 권위 있는 대학 병원에서의 항암치료를 포기하고 나올 때는 현실에 대한 포기나 도피가 아닌, 살고자 하는 강한 의지 때문이었다.
제대로 공부해서 이겨보자
”식이요법을 통해서 도움을 받았던 사람, 실제로 효과를 본 사람 등 많은 사례를 직접 접해야 믿음이 가겠단 생각에 여러 정보를 수집했고 우연히 광주에 계신 약사 한 분의 도움을 통해 저 역시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식이요법을 실시하게 됐습니다.”
수많은 대체요법 중 김성주 씨가 관심을 가지고 선택한 것은 막스거슨 요법이었다.
항암제로 바닥난 체력을 식이요법으로 이겨보리라는 결심이 서면서 통상적인 막스거슨 요법을 막연히 따라하기보다는 내 방식대로 개조하고 맞춰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우선은 무농약으로 유기 재배한 현미와 찹쌀, 현미싸라기, 볶은 율무가루, 흑임자, 검정콩 등 5가지 곡물을 죽으로 쑤어 먹으면서 녹즙을 하루 석잔 마시는 것으로 시작했다.
녹즙은 사과와 양배추를 적당량 갈아 마시는 형태로 소화기 계통이 안 좋은 사람에게는 부담이 적고 속이 편했다. 그러나 문제는 기운을 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양껏 먹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체력이 떨어지는 맹점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적극적으로 치료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식이요법을 하려면 집에서 움직이지 않고 그야말로 먹고 자고만 열심히 해야 했습니다.”
한 달 정도를 계속 하니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덜컥 겁이 났다. 식이요법이고 뭐고 이러다 죽겠다 싶은 것이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이 없어 결국은 알부민 수액주사를 맞으면서 식이요법을 해야 했다.
”수액주사 2번 맞으니까 좀 기운이 나고, 그때부터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체력은 회복됐고, 식이요법은 즐거워졌다. 무엇보다도 반가운 소식은 수술했던 병원에서도 수술 부위가 깨끗해졌다는 진단을 받은 것이었다.
웃음으로 치유되는 병
요즘 김성주 씨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혈색이 좋아졌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단다.
대머리 기색이 조금 있던 앞머리에도 숱이 많이 늘었고 솜털도 생긴다며 화색이 돈다.
”몰랐을 땐 몰라서 못한다지만 이젠 효용도 알았고 하면 된다는 것도 알았으니 평생 식이요법을 실천할 계획입니다.”
요즘도 가끔은 전에 맛나게 먹었던 고기 식사가 그립고, 라면도 먹고 싶지만 망통회 사람들과 이런 유혹을 가다듬는다고 허허 웃는다.
”망통회는 ’망가진 밥통의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재밌죠? 위암환자들의 모임인데 만나서 서로 정신적으로 부담도 덜어주고 정보도 교환하고 시간 날 때 등산도 하는데 그런 것들이 큰 위안이 됩니다.”
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완전히 떨치기 힘들고, 무엇보다도 재발해서 겪게 될 고통과 통증을 생각하면 밤잠을 이룰 수 없다고.
그렇지만 누구나 다 태어나면 한 번쯤 죽는 것이니 그런 것쯤 초연히 받아들이고 지금 이 순간은 웃자고 김성주 씨는 말한다.
”웃는 것만큼 좋은 약도 없습니다. 제 아무리 영약이라 해도 웃음만큼 나를 적극적이고 긍정적이게 만드는 약은 없지요.”
웃음으로써 살아있는 순간을 느낀다는 김성주 씨는 한 번 웃을 때마다 죽음으로부터 또는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한발자국씩 멀어지는 기분이라며 또 허허허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