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도움말 |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과 서민 교수】
굳이 아프지 않아도 먹는 약 중에 구충제가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 머릿속에 박힌 “봄, 가을에는 구충제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기생충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기생충을 제대로 알게 된 사람이 많아지면서부터다.
그 중심에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과 서민 교수가 있다. 그는 기생충을 너무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고, 심지어 착하다고까지 말한다.
국민 기생충박사 서민 교수에게 기생충이 우리의 ‘동지’인지 ‘적’인지 들어봤다.
구충제, 먹을까? 말까?
예전에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피해갈 수 없었지만 이제는 자취를 감춘 검사가 있다. 대변으로 하는 기생충 검사다. 의무적으로 하던 검사가 없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기생충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여전히 기생충은 공포의 대상이다. 봄, 가을이 되면 구충제를 꼬박꼬박 먹는 사람이 많다. 과연 이렇게 기생충을 무서워하며 구충제를 먹어야 할까?
결론은 그럴 필요가 없다.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과 서민 교수는 “구충제를 먹지 말라는 것은 기생충을 몸에서 기르자는 게 아니라 이제 우리나라 기생충 감염률이 많이 떨어져서 과거와 달리 모든 국민이 구충제를 먹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나마 있는 기생충도 구충제가 듣지 않는 디스토마류가 많다.
기생충이 많이 없어진 요즘은 기생충을 통해 질병을 이겨낼 수 있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서민 교수는 “기생충이 없어져서 알레르기 질환이 늘어났으므로 이것을 이용해 알레르기 질환을 줄이는 방법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기생충이 ‘착한’ 이유
서민 교수는 강연과 칼럼에서 기생충을 ‘착하다’고 말해 많은 주목을 받았다. 기생충이 착하다? 언뜻 들어서는 이해가 안 되는 말이다. 서민 교수는 “기생충은 숙주(사람)가 편안히 잘 살아야 자신도 좋은 것을 알기 때문에 되도록 숙주를 건드리지 않고 산다.”고 말한다.
기생충은 원래 우리 몸에 살던 세균 같은 존재다. 우리 몸에는 100조 마리가량의 세균이 있다. 기생충은 세균에 비해 크기가 커서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세균과 다른 점이다. 세균에 비하면 기생충이 우리 몸에 꼭 필요하다고 볼 수 없다는 점도 다르다.
지구에 수많은 생명체가 사는 것처럼 우리 몸에도 세균과 기생충이 사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생충을 좋아하지 않는다. 더구나 기생충은 위생이 잘 갖춰진 환경을 견딜 수 없다. 정기적으로 구충제를 먹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기생충이 줄어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굳이 없어진 기생충을 무서워할 필요도, 혐오할 필요도 없다.
개회충은 주의해야!
우리 몸에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는 기생충이 대부분이지만 조심해야 할 기생충도 분명 있다. 개회충이 대표적이다. 개회충은 개의 회충이다. 그래서 개한테 가야 편안함을 느낀다.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가면 낯설어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그러다 눈, 뇌 등 치명적인 곳으로 갈 수 있다.
서민 교수는 “개회충은 주로 소간을 통해 걸리므로 소의 생간을 먹으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또 한 가지! 기르던 개를 버려서는 안 된다. 개회충이 양산되는 이유는 사람이 개를 너무 많이 버리기 때문이다. 집에서 개를 기르면 개회충에 감염될 일이 없다. 개를 버리면 그 개가 개회충에 감염되어 대변으로 개회충의 알을 마구 뿌려대는 것이다. 개를 버리지 않으면 개회충이 사람에게 돌아올 일을 미리 막을 수 있다.
기생충을 너무 무서워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안심해서도 안 된다. 특히 혈액 속에 호산구 수치가 높다면 기생충 검사가 필요하다. 서민 교수는 “호산구는 백혈구의 한 성분인데 기생충이 있을 때 올라간다.”며 “2% 이내가 정상이지만 10%가 넘으면 기생충 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소간, 타조간, 멧돼지 육회, 자라 등 우리가 보통 안 먹는 음식을 날로 먹으면 기생충에 걸릴 위험이 있다. 이런 것들을 먹고 이상 증상이 나타난다면 기생충 검사를 할 필요가 있다.
논란의 주인공 ‘고래회충’
지난 2015년 3월 있었던 ‘고래회충 논란’을 기억할 것이다. 고래회충은 생선회를 먹으면 감염될 수 있으며 고래회충이 위벽을 뚫는다, 고래회충은 약으로 죽일 수 없다는 등의 보도가 쏟아져 나와 전국이 생선회 공포에 휩싸였다. 고래회충은 극심한 복통을 유발할 수 있는 기생충이다.
하지만 고래회충이 위벽을 뚫거나 치료 방법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회를 먹고 고래회충에 걸리는 사람도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고래회충은 개회충처럼 사람의 기생충이 아니라 고래의 기생충이기 때문에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다행인 것은 고래회충은 크기가 너무 크기 때문에 멀리 가지 못 하고 대부분 사람의 위에 머문다. 위에는 위산이 나오기 때문에 이 위산을 피하려고 고래회충은 위벽에 머리를 박는다. 이 과정에서 사람이 배가 아플 수 있다. 고래회충은 위벽에 머리를 박는 것이지 위벽을 뚫는 것은 아니다. 치료방법도 없는 것이 아니라 내시경으로 고래회충을 제거하면 된다.
기생충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아직도 체중이 줄었을 때, 밥을 먹어도 배가 고플 때 기생충을 의심하는 사람이 많다. 팔다리에 스멀스멀 뭔가 기어가는 느낌이 들 때도 기생충의 움직임을 상상하기도 한다. 이런 의심이 심해지면 기생충 망상증에 걸려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기도 한다.
이럴 때마다 기생충은 억울하다. 걸핏하면 가만히 있는 기생충을 들먹거리기 때문이다. 기생충은 박멸되다시피 거의 없어졌고, 웬만해서는 숙주인 사람을 건드리지 않는다.
이제 기생충을 공포의 대상에서 빼자. 앞서 언급한 알레르기와 기생충 감염의 관계처럼 기생충을 통해 얻을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이 기생충 박멸 시대를 사는 적절한 자세가 아닐까?
서민 교수는
서울대 기생충학 박사이며 칼럼니스트로도 활약 중이다. 기생충학의 대중화를 위해 수많은 강연을 하고 칼럼을 써왔다. 저서로는 <서민의 기생충콘서트> <서민의 기생충열전>, <서민적 글쓰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