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신승철 교수 (대한구강보건협회장, 단국대 치대 교수)】
예쁜 이름의 치아 ‘사랑니’
사람은 젖니인 유치와 간니인 영구치가 난다. 태어났을 때는 입안에 치아가 하나도 없다. 생후 약 6개월쯤 지나면 아랫니 앞니부터 하나씩 나오기 시작해서 만 세 살이 되면 한 쪽에 다섯 개씩 상하좌우 모두 스무 개의 작고 귀여운 치아가 다 난다. 그 치아들로 만 다섯 살까지 이삼년간 잘 쓰게 된다.
그 후 초등학교 1학년 때에 유치 어금니 맨 뒤에 또 큰 어금니가 하나 솟아오른다. 바로 6세구치, 즉 첫 번째 큰 어금니인 것이다. 이때부터 나오거나 가는 치아는 평생을 사용해야 한다.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계속한다. 그러다 보면 모든 젖니가 간니로 바뀌고 초등학교 6학년이나 중 1학년 때에는 첫 번째 큰 어금니 뒤인 맨 뒤에 또 하나의 큼직한 어금니가 나와서 결국 한쪽에 7개씩 상하좌우 모두 28개의 영구치열이 완성된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영구치아 수는 28개라고 말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20살 정도 되면 두 번째 큰 어금니 뒤에 또 어금니가 나오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사랑니’이다. 치의학적으로는 제3 대구치라고 하고, 전통적으로 사람이 사랑할 나이가 되어서 난다고 해서 사랑니라는 예쁜 이름을 붙여 준 것이다.
하지만 사랑니는 이름처럼 그리 낭만적이지 못 하다. 우선 구강 내 맨 끝에 있기에 청결 관리가 힘들다. 그래서 쉽게 썩거나 치주병이 잘 생긴다. 또한 주위 염증으로 자주 아프게 된다. 치아가 나올 때에도 구강 내 악골 뼈의 크기가 충분히 크면 그런대로 사랑니도 쉽게 나올 수 있겠지만 대다수 현대인의 경우 구강내의 상악(윗턱)이나 하악(아랫턱)의 크기가 예전 사람들보다 작다. 그러니 사랑니가 나온다 해도 그 나올 자리가 모자라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비뚤비뚤 사랑니는 극심한 통증 유발
사랑니는 우리나라 성인들의 약 반 수 정도에서 난다. 나머지 반은 아예 사랑니의 치아 싹이 없거나 뼛속 깊이 매복되어 있어 구강 내로 나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성인의 반인 사랑니가 난 사람의 경우 어떤 사람은 상악이나 하악 어느 한쪽만 나는 경우도 있고, 상하좌우 네 곳 모두 다 나오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유전적인 요인이 많이 작용한 것이다. 즉 치아의 수와 형태, 위치 등은 대다수 선조로부터 타고난다는 뜻이다.
어찌되었건 사랑니가 나오는 중에 있는 청년 연령층은 간혹 어금니 맨 끝이 아플 수가 있는데 그 원인이 사랑니가 나오기 때문인 경우가 심심찮게 많다.
고대인들의 유골을 보면 대다수가 아래턱(하악)의 크기가 요즈음 사람들보다는 상당히 크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사랑니를 가지고 있다. 즉 사람의 정상 치아 수는 32개였던 것이다.
치아, 특히 어금니가 많다는 것은 초식을 하기 좋거나 질긴 날것 음식을 씹기 좋은 신체 구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점차 문명이 발달하면서 초식에서 육식으로, 야생의 질긴 음식보다는 식품을 부드럽게 조리하여 섭취함으로써 어금니의 중요성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인류의 외모도 점차 바뀌어 턱 자체도 작아지고 좁아졌다.
이러한 현상은 근세의 한국인 두개골과 현대인의 두개골에서도 벌써 차이가 날 만큼 한국인의 얼굴 형태도 변하고 있다. 즉 과거 우리나라 성인들은 얼굴이 넓고 둥근 달덩이 같은 미인형을 추구하는 종족으로 대다수가 사랑니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식품 자체도 부드러운 것으로 바뀌고, 패스트푸드를 선호하며, 이왕이면 서구적인 외모인 얼굴이 좁고 긴형을 선호하고 추구하다 보니 사랑니 자체가 아예 안 나오는 경우가 늘어났다. 설사 나온다 해도 공간부족으로 비뚤게 나오면서 통증을 심하게 유발시키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윗턱뼈(상악)에 사랑니가 나올 때보다는 아래턱뼈(하악)에 사랑니가 날 때가 훨씬 더 아프다. 그 이유는 사랑니 나올 공간이 상악보다는 하악에서 더 좁아서 사랑니가 악골 뼛속에서 옆으로 눕거나 비스듬하게 경사져서 올라오며 바로 앞의 치아를 뻐근하게 밀어제치기 때문이다.
사랑니 주위에 염증과 부패균에 의한 화농으로 고름까지 생기면 이는 지치주위염으로 참을 수 없이 아프게 되고 주위가 퉁퉁 붓게 된다. 특히 평소에도 사랑니 때문에 늘 구강 내 맨 구석이 뻐근하게 느껴졌는데, 어느 날 술 좀 많이 마시고, 깨끗이 이도 안 닦고 이틀만 지나면 사랑니 부근이 매우 아프면서 염증과 고름까지 끼어 있어 매우 고통스럽기도 한다.
빼? 말어? 사랑니 함정
그렇다면 사랑니 부근에 통증이 올 때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 원칙은 제대로 똑바로 나오지 않은 사랑니는 차라리 발치해버리는 것이 맞다. 물론 사랑니가 바르게 나고 자리를 잘 잡아서 어금니로 사용하기에 충분하다면 괜히 예방적으로 미리 뽑을 필요는 없다. 그런데 그런 경우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 또한 아픈 사랑니를 치과에 가서 뽑으려 해도 그 시기와 사랑니의 존재 위치에 따라 처리법이 달라진다. 심히 아프거나 염증이 심해서 고름까지 생겼을 때는 치과에서 쉽게 뽑기도 힘들고 후유증도 심해진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아플 때는 진통제와 소염제를 복용시키고 사랑니 주위 염증 부위를 깨끗이 해 놓음으로써 염증을 완화시키고 동통을 점차 가라앉히도록 한다. 즉 사랑니 부위가 아플 때 제일 먼저 집에서라도 그 부위를 깨끗하게 닦아 놓아야 염증이 빨리 가라앉는다.
● 칫솔질 할 때 아프기는 하지만 칫솔 머리 부분의 칫솔모(털) 중 끝부분만 남기고 나머지는 가위로 잘라버린 부분칫솔을 만들어 사랑니 주위 염증 부위 중 사랑니가 나오려고 하는 부분과 주위 잇몸 사이에 부패한 부분을 깨끗이 닦는다. 클로로헥시딘이나 리스테린 같은 강한 살균 양치액으로 입가심을 하면서 치과의사가 처방해 준 소염진통제를 복용하며 하루나 이틀 동안 염증을 가라앉혀야 한다.
● 그 후 염증이 가라앉으면 사랑니를 뽑는 시술로 들어간다. 상악의 경우는 그리 어렵지 않게 발치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래턱(하악)의 경우에는 반 정도가 나오는 사랑니가 악골(뼈) 속에서 옆으로 누워있거나 비스듬하게 올라옴으로써 할 수 없이 수술이나 외과적 발치를 해야만 한다. 즉, 매복된 사랑니 부위의 잇몸을 절개하고 뼛속에 있는 사랑니를 찾아낸 다음 엔진과 치과용 드릴로 사랑니를 두 조각이나 세 조각으로 쪼갠 뒤에 하나씩 집어내는 방법을 주로 사용하게 된다.
수술시간도 사랑니의 상태에 따라 몇 십분 이내일 수도 있고 몇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사랑니 바로 밑에 하악골 속으로 하악 신경과 같은 큰 신경이 지나가기에 치과의사들은 매우 조심한다. 힘들게 수술하기에 일반 개원 치과에서는 여러 가지 여건상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 구강외과 전문의에게 이송하기도 한다.
● 사랑니 수술 발치 후에는 그 자리를 잘 꿰매어 놓아야 하고 처방된 약이나 얼음찜질도 한참 동안 해야만 덜 붓게 된다. 그리고 다음날 치과에 가서 소독도 하고 가글 용액도 사용하고 일주일 뒤에 실밥을 뽑으면 치료는 끝난다. 그로부터 두 달 정도 뒤에는 치아가 빠진 뼛속에 다시 뼈가 만들어져 채워지게 된다.
이렇게 힘들고 고생스런 치아를 예쁘고 낭만스럽게 사랑니로 이름 지어준 선조들의 저의가 의문스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