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윤말희 기자】
“남편은 제 울타리이자, 생명의 은인입니다”
2번의 위암 수술과 위 완전 절제라는 치명적인 상황에서도 꿋꿋하고 밝게 살아가고 있는 윤진순 씨(58세). 십 년 넘은 투병기간 동안 좌절·희망·고통을 수도 없이 느꼈지만 남편이 있어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고 말한다. 가냘픈 몸으로 끈질긴 병마를 이겨내 이제는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윤진순 씨. 그녀의 생생 투병 이야기를 들어본다.
고난의 여름, 그 덥던 어느 날
1984년 초여름이었다. 퇴근길에 남편이 사온 참외를 먹고 잠이 든 윤진순 씨는 신트림이 계속 나고 입덧증세가 심해서 남편과 대전에 있는 큰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 내시경 검사를 한 결과 그녀는 위암 3기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하지만 남편은 아내가 걱정돼 그녀 몰래 가족회의를 열고 수술날짜를 앞당겨 잡았다. 그때 당시 위의 2/3를 절제하는 대수술을 강행했지만 윤진순 씨는 심한 위궤양 치료인 줄 알았다고 한다.
윤진순 씨가 조금이라도 걱정할까봐 그녀의 남편 안종백(61세) 씨는 회사에서 그녀에게 줄 약의 설명서에 있는 ‘위암’ 이라는 단어를 매직으로 지우고 자기가 직접 거짓 설명서를 만들어 줄 정도로 아내의 사랑이 극진했다. 안팎으로 아내의 병간호와 회사일까지 도맡아 했던 남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연찮게 자신의 병을 알게 된 그녀는 더없이 남편에게 고마웠고 미안했다. 항암치료 기간 동안에는 주근깨며 입덧이 날로 심해졌고 부작용이 악화됐지만 그녀는 살겠다는 의지로 3년 동안 주일마다 꾸준히 병원에 다녔다.
그렇게 5년이 지나고 나서야 근치가 됐다는 병원의 진단을 받고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뿐. 1990년 악몽의 여름이 한차례 또 찾아왔다. 찬 음식을 먹은 것처럼 속이 냉함을 느끼게 된 그녀는 병원을 찾았고 그 결과 수술봉합자리에 물혹이 생겨 있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됐고 암이 아니라서 항암치료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2번의 수술로 힘이 들었던 그녀는 다시는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길지 않은 소망이었다. 위암 수술 11년 만에 또다시 악몽의 여름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11년 만에 또다시 악몽은 시작되고
1995년 그때도 여름이었다. 이제는 위암과는 이별을 했다고 생각했건만 불길한 일이 벌어졌다. 울렁한 기분이 들더니 물풍선 만한 핏덩어리가 그녀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출혈이 많이 나서 응급실에서 위 세척을 받고 검사를 한 결과 암이 다시 생겼다는 거예요. 또한 위랑 간이 근접한 상태라서 간 부분도 절제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이렇게 그녀는 간을 조금 떼어내고 위를 완전 절제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처음 수술과는 달리 회복이 느렸다. 처음 수술 때에는 수술 후 8일만에 집에 갈 정도였지만 이번에는 기력이 많이 쇠약해진 탓인지 머리가 멍해지고 연체동물처럼 팔과 다리에 힘이 없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3번째 퇴원 후에는 살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계속 들었어요. 그래서 그때 당시에 23살인 큰아들을 꼭 장가를 보내자고 마음을 먹고 제대 한지 얼마 안 된 아들을 결혼 시켰어요.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그 후 손녀딸이 생겼는데 그 아이를 보면서 새로운 희망이 생겼어요. 새 생명을 보면서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부쩍 생겼고 커 가는 모습을 보면서 꽃밭에서 살고 있는 마음이 들었어요.” 라며 그때를 회상한다.
남편은 제 울타리이며 생명의 은인
그녀는 남편에게 간혹 웃으면서 “당신은 밥통이 있으니 밥통 양반이에요.” 라고 말하면 남편 왈, “저 여자는 자신이 밥통이 없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가봐.”라며 놀린다고 한다. 부부는 정 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부인은 수술날짜가 잡히면 걱정 없이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는다. 하지만 남편은 걱정 때문에 한숨도 못 자고 늘 걱정하기가 일쑤다. 예전에 처음 아내가 수술을 하고 난 다음에 남편은 걱정으로 4일 동안 화장실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아내 옆을 지켰다. 또한 병원에서는 수간호사를 자처할 정도로 아내를 위해서 공부하고 챙기기에 바빴다. 출근하기 전에는 아내를 위해서 특별 보양식으로 검정깨죽도 직접 쑤어주고 아내에게 좋겠다 싶은 음식은 아무리 비싸도 마다하지 않았다.
“5개월 치 봉급을 첫 번째 수술비로 다 내고, 항암제 때문에 기운을 못 쓰는 저를 위해서 제일 좋은 영양제도 아까워하지 않았던 양반이에요. 또 제가 고구마를 너무 좋아하는데 저를 위해서 요즘은 고구마 밭까지 일구고 있어요. 얼마나 고마운 사람인지 몰라요.” 예나 지금이나 자신보다 부인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아깝지 않다고 말하는 안종백 씨. 자신은 먹어보지도 못한 홍삼엑기스나 각종 보양식들이 하나도 아깝지 않고 아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해줄 수 있다고 말한다.
내 몸은 내가 지켜야
언제나 밝은 모습만 보였던 아내는 3번째 수술 전날 남편에게 애원을 했다. “나 좀 더 살게 해줄 수 없나요?” 그 말에 가슴이 무너진 남편은 “당신은 살아!” 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늘 강해 보였던 아내가 잔뜩 겁에 질려 있는 모습을 보니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꼭 지켜주고 싶었던 남편. 그리고 이런 남편이 언제나 고맙고 죄스럽다고 말하는 아내.
“남편은 저를 새로 태어나게 한 사람이에요. 그 누구보다 저를 아끼고 사랑해준 사람인데 아직까지 한 번도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했어요. 기운이 생기면 제일 먼저 남편을 업어서 다니고 싶을 정도로 감사합니다.”
지금은 남편이며 주위 친지 등 고마움을 갚아야 할 사람이 너무 많기에 자신의 몸은 과보호를 할 정도로 끔찍이 챙기고 있다는 그녀.
“만약 누가 공짜로 수박을 준다고 해도 무거워서 이제는 쳐다도 안 봐요. 염치불구하고 무거운 것이 있으면 몸을 위해서 제가 자제를 해요. 제 몸은 제가 챙겨야지 주위사람들에게 폐가 안 되고 오래 살 수 있을 거예요.”
병마로 인해서 고생하고 힘들었지만 그 속에서 희망과 행복 그리고 가족애를 느꼈다는 윤진순 씨와 그의 남편 안종백 씨. 서로를 위해서라면 아까울 것이 없고 평생을 같이 살고 싶다는 부부의 애틋한 소망이 꼭 실현되기를 기원해본다.
※암을 극복한 사례 인터뷰는 대한암협회(www.kcscancer.org)와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