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정만 (비뇨기과 전문의, 준남성클리닉 원장)】
뚜벅뚜벅 발자국 소리를 내며 들어서는 빨간 조끼의 노인. 코디네이션의 매치가 훌륭하다.
“앉으시죠.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남자가 여길 왔으면 다 뻔한 일이지 뭘 구차하게 묻소?”
도전적이고 신경질 섞인 시비조의 말투. 단도직입이란 이럴 때 유용하다.
“잘 안 되십니까?”
“…”
조금 전의 태도로 보아 당당하게 말할 듯도 싶었지만 조금은 겸연쩍어하며 얼굴을 붉힌다. 그러면서 하는 말,
“그런데 … 나처럼 늙은 사람도 찾아옵니까?”
“그러믄요. 전혀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섹스가 뭐 젊은애들만의 전유물이겠습니까? 젊건 늙건 사람 사는 일이죠.”
잠시 창밖을 내다보던 노인이 이윽고 고즈넉이 눈길을 돌린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 역정을 구구절절 풀어내기 시작한다.
“한 마디로 한눈 팔지 않고 외길 인생을 달려온 사람이 바로 나요. 성공? 그래, 성공도 했다고 할 수 있겠지. 아내와는 10년 전 사별했구. 그런데…”
여기까지 얘기한 후 또다시 묵비권을 지키는 노인이 딱하기만 하다. 그럴 것 없는데… 상처하고 재혼했는데 잘 안 된다, 그러니 무슨 방법이 없겠느냐? 이렇게 간단히 말씀하시면 될 것을….
“여지껏 독신으로 살았수다. 그런데 술이라도 한 잔 걸치고 텅 빈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으레 죽은 마누라가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거야. 꼭 살아 있을 때처럼 따라다니면서 잔소리도 하고 옷도 벗겨 주고… 근데 문제는 아침에 일어나 보면 아무도 없는 거야. 그거 정말 미치겠대. 내가 돌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어. 안 당해 본 사람은 내 심정 모를 거야. 암 모르지 않구.”
혼자 사는 노인의 외로움이 얼마나 깊었으면 죽은 마누라가 살아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을까? 정말 애처로운 로맨스 그레이였다. 노인은 혼자 살아온 지난 세월을 필름처럼 되돌리며 풀어내고 있었다. 독신의 삶을 고수했던 날들이었지만 세월의 나이테가 숫자를 더할수록 쇠잔해진 심신을 파고든 허무, 공허, 고독이 노인을 마구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죽은 아내에 대한 상념도 희미해져 갔고 여생의 끝이 금세 눈앞에 어른거렸음도 짐작이 갔다. 외로움은 노인의 재혼을 다그쳤겠지. 아닌 게 아니라 친구의 소개로 만난 여성과 재혼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목에선 들불처럼 환한 미소까지 스친다. 늦게서야 말년의 행복을 찾은 노인.
“그런데 그놈의 물건이 꿈쩍도 하지 않아. 10년 동안 전혀 써먹질 않아선지 밤마다 내자가 그걸 붙잡고 애달아하는 걸 보면 정말이지 측은한 생각이 들어. 요새는 좋은 묘책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는데 그게 사실인가?”
실로 오랜 세월 동안 잊혀진 남성이었을 게다. 더구나 그걸 붙잡고 몸부림치는 아내에게 죄의식까지 든다는 말이 더더욱 심금을 울렸다. 쓸쓸한 노인의 동반자가 되기를 자청한 여자. 더구나 22살이나 어리다니 말벗도 되고 수발도 받고… 어찌 고맙고 사랑스럽지 않겠는가? 실로 10년 만에 느껴본 색다른 행복. 그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노인의 솔직한 심정이 가슴 짠하게 다가왔다.
“의사 양반, 당장 죽어도 좋으니 딱 한 번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어. 그래야 집사람에게….”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물끄러미 얼굴만 쳐다보는 노인의 눈길에 마음이 급해진다. 진단 결과 음경보형수술 외엔 따로 방법이 없었다.
“회춘하셔야죠. 아들 딸도 낳으시고.”
“지금 무슨 장난하나? 아들 딸은 무슨… 손주까지 본 나이에….”
수술한 자리가 뻐근한지 노인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받는다.
“아 젊은 마나님 얻으셨으니 자식을 볼 수 있지 뭘 그러십니까?”
갑자기 노인의 얼굴에 희색이 만연해졌다. 그 노인을 다시 만난 건 수개월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환한 웃음을 띤 채 기다란 선물 꾸러미를 내미는 노인의 정겨운 손길.
“이게 뭡니까?”
“내게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준 의사 양반에게 주는 보은의 선물, 골프채야. 골프숍에 들러 대가리가 제일 큰 드라이버를 달랬더니 이걸 주더라구. 역시 멋진 샷을 날리려면 대가리가 커야 하는 법!”
자신의 그 곳을 자랑스럽게 내려다보던 노인과 눈이 마주치자 나는 그만 껄껄 웃고 말았다.
TIP. 음경보형수술이란?
음경에 인공으로 만든 보형물을 삽입하여 자신이 원할 때 발기상태를 조절할 수 있도록 해주는 치료법을 말한다. 이는 가장 확실한 발기부전 치료법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 번 시술하면 기존의 자연 발기력은 원상 회복이 불가능하므로 수술을 결심하기 전 신중을 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