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서의규 기자】
【취재협조 |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 이현석 회장】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편하게 화상으로 연결된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이른바 원격의료 세상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고혈압이나 당뇨병으로 오랫동안 동네의원을 집 드나들 듯이 해왔던 노인 환자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은 귀가 번쩍 뜨일 만한 소식이리라.
반면 상당수 의사들은 원격의료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환자 치료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1차병원인 동네의원을 고사시킬 정책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원격의료를 도입하고자 하는 취지는 도서지역 등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환자들의 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인데 의사들은 치료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현 의료전달 체계를 붕괴시킨다고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아이러니한 상황에 당면한 원격의료, 그 허와 실을 짚어본다.?
정부가 외치는 원격의료 도입 근거는?
원격의료를 도입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햇수로 25년이나 될 만큼 확고하다. 보건복지부와 산업자원통상부(구 지식경제부) 등 각 부처는 최근 몇 년간 원격의료를 시범사업 형태로 진행해 왔다. 그러다가 지난 10월 29일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의 골자는 의사와 환자 간 원격진료를 동네의원(1차병원)을 중심으로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원격진료 대상은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자, 거동이 어려운 노인·장애인, 도서벽지 거주자 등으로 한정했다.
여기에 원격의료를 효과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패널티 조항도 법안에 담을 예정이다.
복지부가 입법예고를 강행하는 배경에는 원격의료의 효과에 어느 정도 확신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진행한 원격의료 시범사업 결과가 좋았다는 반증이다.
복지부 시범사업은 지난 2008년부터 총 4곳(강원 강릉시, 경북 영양군, 충북 보령시, 충남 서산시)의 도서벽지 주민들을 대상으로 시작됐다. 보건진료소에 환자가 방문하면 보건진료 소장(간호사)이 만성질환자의 생체정보(혈압, 혈당 등)를 입력한다. 이어 보건지소의 공중보건의(원격지의사)가 입력자료를 보고 필요하면 환자와 화상면담을 시행하고, 보건진료 소장에게 의료지식과 기술을 지원하는 형태다. 엄연히 말하면 의사-의료인 간의 간접 원격진료인 셈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점은 현행 의료법에는 의사-환자 간의 원격진료는 불법이지만 의사-의료인 간의 원격진료는 허용된다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 진행된 ‘강원도 공공 u-Health 서비스 사업’ 역시 의료인이 개입하는 원격의료 방식이었다.
결국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도입의 효과를 제대로 파악할 만한 시범사업 요건을 갖췄다고 볼 수 없음에도 정부는 그간 추진한 시범사업 결과를 원격의료 도입의 근거로 삼고 있는 상황이다.
동네의원 의사들로 구성된 단체인 대한의원협회는 최근 성명을 내고 원격지 의사와 환자와의 화상면담 과정이 일부 포함된다고 해서 원격진료로 볼 수는 없다고 맞섰다. 이 과정에서 현지 의료인이 반드시 개입하기 때문이다.
의원협회 윤용선 회장은 “강원도 공공 u-Health 서비스 사업 중 만성질환 원격관리 시스템은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 시범사업이 아니라 현행 의료법이 허용하는 의사와 의료인 간 원격의료 사업이며, 현행 의료법의 원격의료 규정만으로도 정부와 지자체가 충분히 의료접근성을 제고할 수 있음을 잘 입증해주고 있다.”고 반박했다.
원격의료 시범사업 결과는 ‘글쎄’
그렇다면 정부의 원격의료 시범사업 결과는 두 손 두 발 들어 원격의료 도입을 환영할 만큼 좋았을까?
한림대병원이 작성한 강원도 공공 u-Health 서비스 사업 결과 보고서를 훑어보면 그것도 아니다.
보고서에는 환자의 고혈압 관리 조절률(97.1%)이 원격의료 미 이용자(92.9%)보다 향상됐고, 당뇨 환자 조절률도 등록 시 7.18mg/dl에서 6.87mg/dl로 좋아졌다고 나와 있다.
그런데 정작 원격진료에 참여한 의사는 원격의료 정보의 완전성, 적시성에 대해 5점 척도 중 2.90(보통 이하)의 낮은 점수를 주는 등 환자가 앞으로 원격의료를 활용할 의지가 낮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 같은 강원도 시범사업에 든 비용은 약 40억 원으로 원격 의료장비 구입에만 32억 3300만 원이 들었다. 한마디로 원격의료 도입에 드는 비용은 막대한데 그만한 효과는 보지 못했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무엇보다 의료계와 일부 시민단체가 우려하는 점은 원격의료를 위해 소요되는 장비 구입비가 동네의원 및 대상 환자들에게 상당한 부담이 되기 때문에, 민간 차원의 원격진료는 자본력이 뒷받침되는 대형병원만 가능하게 된다는 부분이다. 실제로 의료계와 시민단체에 따르면 원격의료 도입 시 동네의원은 약 1000만 원 이상, 환자는 최소 100~150만 원가량의 비용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판이 커지고 있는 원격의료
원격의료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 판이 더 커지고 있다. 정부는 이것을 ‘창조의료’라고 주창하고 있는데 의료산업도 창조경제의 한 맥락으로 보는 것이다. 원격의료를 합법화해 환자의 의료접근성도 높이고 유헬스산업을 성장시키겠다는 포부인데, 뭔가 선후가 바뀐 듯하다.
어쨌든 원격의료 범위를 IT산업 부흥으로 확장시키고 있는 일등공신은 산자부다. 지난 11월 산자부는 약 3년(2010.4~2013.6)간 진행한 스마트케어 시범사업 결과를 발표하면서 원격의료 도입의 필요성을 거들었다.
총 355억여 원을 투입한 스마트케어 사업은 대학병원에 다니는 당뇨·고혈압·대사증후군 등 만성질환 재진환자 3447명을 대상으로 원격서비스(화상상담, 전화상담, 헬스리포트 등)를 제공한 사업이다.
산자부는 만성질환자에게 원격의료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약물복용과 함께 기기를 통한 자가 건강측정, 건강정보 제공 등으로 생활습관 개선을 유도하므로 단순 약복용보다 치료효과가 더 높다고 판단했다.
그런 반면 의료계는 산자부의 스마트케어사업 역시 의사-의료인 간 원격의료로 판단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학병원 중심의 임상시험 결과를 동네의원으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원격의료의 허와 실
이처럼 원격의료 도입을 둘러싸고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은 크게 좁혀지지 않을 모양새다. 하지만 원격의료를 이용하는 주체는 환자 본인이다. 환자가 저렴한 비용으로 고혈압이나 당뇨 등의 만성질환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면 원격의료를 선택하는 게 맞다. 그런 측면에서 의사들이 말하는 원격진료의 장점과 단점을 눈여겨 볼 만하다.
대면진료는 의사와 환자 간의 신뢰 형성을 중요시한다. 특히 만성질환자들은 의사와 자주 만나 소통해야 실제 치료 효과도 좋아진다. 원격진료가 대면진료를 대신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원격의료로 인한 오진 우려도 만만치 않다. 만성질환 환자들의 건강관리를 단순히 혈당수치와 혈압 등의 데이터 전송만으로 원격으로만 처방하게 되면 약물조절에만 의존하게 될 수 있다. 전송 데이터의 정확성도 병원에 내원해 진찰을 받는 것과 비교해 차이가 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위험천만한 합병증을 놓치거나 부수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다른 질환을 미처 발견하지 못해 환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자칫 의료소송으로 번질 수 있어 의사들의 소극적 진료를 초래할 가능성도 높다.
이에 반해 원격의료가 진료의 질과 공공성을 높일 수 있는 부분도 없진 않다. 짧은 시간의 대면진료보다 오히려 긴 시간을 화상의 의사와 소통하며 만성질환을 관리할 수 있어서다. 도서벽지에서 어렵게 보건소를 이용하던 노인환자나 요양원 환자들의 경우 의료 접근성이 향상되는 효과도 간과하기 어렵다.
바야흐르 의사와 환자가 서로 화상진료실에서 만나는 날이 가까워 오고 있다. 하지만 대면진료 때보다 의료의 질이 떨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 그건 환자의 생명과도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의사-의료인 간,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의 질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수가, 의료소송제도, 의료장비지원 등 다양한 외부환경이 먼저 조성돼야 함을 명심하자.
원격의료 찬성
1. 환자가 대면진료 보다 오래 의사와 대화할 수 있다.
2. 장애인이나 도서벽지에 사는 어르신들이 편하게 진료를 볼 수 있다.
3. 고혈압이나 당뇨 등 만성질환자들이 수시로 건강관리를 할 수 있다.
4. 환자가 내원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어 유용하다.
원격의료 반대
1. 환자와 의사가 원격의료장비를 갖추는 데 비용 부담이 크다.
2. 간단한 생체정보만을 원격으로 주고받다가 합병증을 놓칠 수 있다.
3. 의사의 오진 위험성과 의약품 오남용 우려가 크다.
4. 의사와 환자의 신뢰 형성이 어려워 치료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이현석 박사는 고려대의대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아산병원에서 흉부외과 전문의 과정을 거쳤으며 현재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 이사, 현대중앙의원 원장을 역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