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기옥 기자】
【도움말 |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윤대현 교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달려온 인생. 4050세대쯤 되면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싶지만 과다한 업무로 늘 피로하고,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의 추격에 조기에 퇴직되진 않을까 하는 불안으로 스트레스는 배가된다. 뿐만 아니라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노후대책 마련까지. 이런 심리적 압박을 고려하면 40대의 사망률이 30대의 2배, 50대의 사망률은 4배가 된다는 통계청의 발표를 절감하게 된다. 회사와 가정을 지키느라 시간에 쫓겨 정작 자신의 건강은 돌보지 못하고 있는 40~50세대 타임푸어족. 그들을 위한 힐링법을 소개한다.
타임푸어족(Time poor族)의 비애
언제부턴가 ‘푸어족’이라는 말이 넘쳐나고 있다. ‘가난한’ 또는 ‘부족한’이라는 의미의 ‘poor’는 대개 경제적인 문제와 관련이 되어 있다. 결혼비용이 두려워 결혼식을 기피하는 젊은이들을 칭하는 ‘웨딩푸어족’, 열심히 일해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 계층을 의미하는 ‘워킹푸어족’, 집은 보유했지만, 대출이자를 갚느라 빈곤한 생활을 하는 ‘하우스푸어족’ 등등. 그렇다면 타임푸어족은? ‘정신없이 바쁜 일상으로 늘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경제적인 상황과는 달리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다. 그럼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사람들, 타임푸어족은 왜 생기는 걸까?
윤대현 교수는 “바쁘다는 것은 마음의 문제”라며 “마음이 바쁘다는 것은 현대인들이 삶 속에서 불안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우리는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를 성취하기 위해 달리고 있다. 이렇게 ‘성취해야 할’ 미래만 생각하다 보니 현재 삶의 여유는 사라져 타임푸어가 되고 마는 것이다.
4050세대, 타임만 푸어한가?
20~30대 달릴 만큼 달렸고 이제는 안정된 지위와 풍부한 경험으로 삶의 여유를 가질 것만 같은 40~50대. 이대로라면 4050세대야말로 인생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첫째, 네버엔딩스토리, 자녀양육이 발목을 잡는다
사교육 천국인 한국에서 자녀교육비는 아무리 퍼부어도 늘 부족하다. 겨우 대학에라도 보내놓았더라도 한숨 돌릴 여유는 없다. 등록금에 책값에 대학생들이 반값 등록금을 외치며 거리로 나설 때 4050세대도 뛰쳐나가 그들과 함께하고 싶을 정도다.
어찌어찌 대학을 졸업한다 해도 산 넘어 산이다. 취업할 때까지 거둬 먹여야 하고, 결혼이라는 엄청난 관문도 남아있다. 뼈 빠지게 벌어도 늘 부족한 느낌, 여기에 더해 자녀들이 자신을 무능한 가장으로 여길까 조마조마한 마음까지 가세하면 숨이 턱턱 막혀온다.
둘째,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은퇴도 복병
대개가 아날로그 세대인 4050. 워드니 파워포인트니 엑셀이니 그깟 인터넷 검색으로 자료를 찾지 않아도 서류 작성 잘했고 성과도 잘 냈던 세대다. 그러나 하루하루 급속도로 변하는 디지털 시대와 넘쳐나는 정보는 또 하나의 인생 복병이다. 부하 직원에게 초등생도 안다는 프로그램 사용법을 물어보느라 진땀을 흘리고, 정보의 바다에서 헤매느라 매일매일 익사할 지경이다. 그리고 점점 옥죄어 오는 은퇴, 그리고 승진에서 누락될 때마다 엄습하는 조기 은퇴에 대한 압박. ‘낀 세대’ 4050에게 살아남아야 한다는 스트레스는 나날이 커져만 간다.
셋째, 전 세계 40대 사망률 1위에 빛나는(?) 건강
아무리 1등이 좋다지만 이런 1위를 원하진 않았다. 회사에 충성하며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했을 뿐인데 과로는 어느새 도를 넘어 심장마비를 일으켜 40대 돌연사가 심심찮게 보도된다. 40대 돌연사를 피했다 해도 자녀양육과 직장 생활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담배나 술로 풀다 보니 폐암과 간암이 몸속에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앉았다. 상처뿐인 영광이라고 가정과 회사에서 인정받을 만큼 잘 살았더라도 건강은 만신창이다.
4050 푸어족을 위한 맞춤 힐링법 3가지
자녀양육만으로도 언제나 경제적으로 부족(poor)하고, 디지털 시대에 대한 적응도 은퇴 후 준비도 부족(poor)하고, 건강 상태도 빈약(poor)한 4050세대. 이들을 리치족(rich族)으로 만들어줄 방법은 없을까? 4050 푸어족을 위한 맞춤 힐링법을 소개한다.
1 균형 잡힌 시간관을 갖자
아직도 끝나지 않은 자녀양육과 은퇴준비, 그리고 챙겨야 할 건강. 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은 더 불안해지고, 스트레스는 더 심해지고, 시간은 더더욱 부족하게 느껴진다. 먼저 균형 잡힌 시간관을 가짐으로써 삶의 여유를 가져보자. 윤대현 교수는 “타임푸어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관계가 있고, 또 시간관의 문제로 볼 수 있다.”며 “미래준비(불안)형 시간관보다는 현실쾌락형 시간관을 가져보라.”고 말한다.
미래준비형 시간관은 미래를 준비하느라 현실의 삶을 누리지 못하는 시간관이다. 현실쾌락형 시간관은 미래보다는 현실에 집중하고 즐기는 시간관이다. 일례로 미래를 준비하는 데 에너지를 소모하는 사람에게는 미래준비형 시간관이 작동하고,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현실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현실쾌락형 시간관이 작동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시간관의 장단점은 무엇일까? 미래준비형 시간관은 오늘의 행복을 앗아가는 결함을 안고 있다. 또 미래만 준비하기에는 인생은 짧기 때문에 결국엔 준비만 하다 삶이 끝나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현실쾌락형 시간관은 어떨까? 어떤 면에서 보면 현실쾌락형 시간관이 나쁘지는 않다. 행복이란 건 ‘오늘’느끼는 것이지 과거나 미래에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단, 미래에 대한 준비는 전혀 없이 지나치게 현재의 쾌락에만 몰입한다면 삶을 망가뜨릴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윤대현 교수는 “마음이 건강하려면 균형유지가 중요하다.”며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기보다는 미래준비형 시간관과 현실쾌락형 시간관을 적절히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2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잘 놀자’
과로로 휙휙 쓰러져가는 4050세대. 이런 현상은 자신의 에너지를 일에 100% 쏟아 부은 부작용일 수 있다. 자신에게도 에너지를 나눠 사용해보자. 윤대현 교수는 “삶의 에너지 중 최소 20% 정도는 노는 일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잘 노는 사람이 대개는 삶을 더 행복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행복하게 살려면 잘 놀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4050세대에게는 노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늘 시간에 쫓기며 살다 보니 잘 놀라고 해도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몰라 당황하게 된다. 윤대현 교수는 “그것이 무엇이든 마음이 즐거운 일을 하라.”고 권한다.
마음 즐겁게 놀았던 시절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신에게 맞는 즐거운 놀이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냈던 놀이 또는 혼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했던 놀이를 하나 정도 떠올려 본다면 자신의 마음이 즐거울 놀이 하나쯤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혹여 찾아내지 못한다면 등산이나 캠핑, 달리기, 댄스배우기, 텃밭 가꾸기 등을 시작해보면서 자신의 것을 찾아보자.
시간에 쫓기고 상황에 치여서가 아니라 에너지를 적절히 배분하고 재충전을 하면서 일을 해나간다면 과로로 치닫지 않고 효율적으로 풍부한 경험과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런 여유를 갖는다면 은퇴에 대해서도, 은퇴 준비에 대해서도 두려움보다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3 건강을 위한 ‘취미를 갖자’
피폐해진 자신의 건강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자. 그렇다고 거창하고 무리한 계획을 세운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윤대현 교수는 4050 푸어족에게 “취미를 가질 것”을 권한다. 취미라고 하면 고전적이고 고루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취미란 ‘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힘’이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캠핑, 등산 역시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함으로써 얻는 힐링의 일종이다. 따라서 거창한 장거리 캠핑이나 처음부터 정상에 오르겠다는 무리한 등산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러 간다는 마음으로 캠핑이나 등산 등을 시작해보면 좋겠다.
굳이 등산이 아니라도 가까운 도심 속 공원을 찾아가 천천히 걸으면서 자연을 느껴보고 그 아름다움을 감상해보는 것도 좋겠다. 또한, 이는 스스로 찾아서 하는 즐거운 일이기에 취미활동을 통해 느끼는 긍정적인 에너지는 스트레스 해소에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윤대현 교수는 “이런 취미생활을 하는 이유는 경쟁에서 벗어나 삶의 여유를 찾자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남보다 더 좋은 아웃도어나 캠핑 장비를 가지려 한다면 이는 스스로를 다시 경쟁구도로 몰아가는 것이니 이를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건강을 위해 취미를 가지라는 말에 ‘나중에’ ‘한가해지면’ 취미생활을 하겠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곰곰이 생각해보라. ‘나중에’ ‘한가’해지던 때가 있었던가? 나이가 들수록 학습 능력은 떨어져 새로이 변변한 취미를 갖기는 더 어려워진다. 그러니 자신의 건강을 위해 취미 갖기를 미루지 말자. 또한, 캠핑이나 등산 외에 자신에게 맞는, 취미를 찾아 길러간다면 시간 부족에 허덕이는 팍팍한 삶보다는 여유 있고 건강한 삶을 꾸려갈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달려야 할 날들도 많겠지만, 잠깐 멈춰 숨을 고르며 지금껏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면서 앞으로의 균형 잡힌 삶을 위해 스스로를 돌볼 시간을 자신에게 마련해 주자.
윤대현 교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였고 현재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메탈피트니스 클릭닉 담당교수이며, 직무스트레스와 여성정신의학을 진료하고 있다. 저서로 <마음 아프지 마> 등이 있으며 강연, 신문칼럼기고, MBC라디오 ‘윤대현의 마음연구소’ 진행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