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도움말 |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 김숙기 원장】
쿨하게 사는 것이 미덕인 시대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쿨한 사람은 환영받는다. 그런데 결혼이라는 제도가 생길 때부터 쿨하지 못해 미안한 두 사람이 있다. 고부라고 불리는 시어머니와 며느리다. 그도 그럴 것이 고부하면 ‘갈등’ 말고 떠오르는 단어가 딱히 없다. 고부화합? 고부협력? 고부조화? 이런 말은 들어본 적도 없다. 대신 고부갈등 때문에 이혼했다, 고부갈등 때문에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아졌다는 소식은 흔하게 접할 수 있다. 시월드라는 신조어도 고부갈등에서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사이좋은 고부도 분명히 있다. 딸 같은 며느리, 친정어머니 같은 시어머니라고 부르며 화목하게 사는 고부도 있다. 고부갈등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는 증거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그리고 남편의 행복한 공존법을 알아본다.
CASE 1. 주말이 싫은 며느리
주말만 다가오면 소화불량에 시달리는 A 씨는 8년째 주말며느리로 살아가는 중이다. 주말부부는 들어봤어도 주말며느리는 못 들어 봤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주말에는 며느리 역할을 해야 해서 주말며느리다.
신혼 때부터 A 씨의 시어머니는 차로 1시간 거리인 시댁에 자주 오라고 강요했다. 시어머니는 이틀에 한 번꼴로 A 씨를 시댁으로 불렀다. 회사일로 바빴던 남편보다 시어머니와 있는 시간이 많았다. 시댁에 가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었는데 시어머니의 참견은 참기 힘들었다. “우리 아들 아침은 꼭 따뜻한 국과 밥을 차려줘라.” “밖에서 고생하는 우리 아들 집안일 시키지 말아라.” “아들이 벌어온 돈 함부로 쓰지 말아라.” 같은 말들은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혔다.
이렇게 2년을 산 A 씨는 남편에게 별거를 요구했다. 놀란 남편은 그제야 중재에 나섰다. 그 결과 주말에만 남편과 함께 시댁에 가기로 했다. 그래도 A씨는 주말이 오는 게 두렵다.
CASE 2. 며느리 시집살이 중인 시어머니
B 씨는 며칠째 며느리에게 전화할까, 아들에게 전화할까 고민 중이다. 며칠 전 아들을 주려고 총각김치를 담갔다. 김치를 갖다 주러 아들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며느리를 떠올리며 이내 고개를 저었다.
손주가 태어난 후부터 며느리는 대놓고 B 씨가 찾아가는 것을 불편해했다. 아들에게 서운한 감정을 표현했더니 아들은 즉각 며느리 편을 들었다. B 씨가 찾아오면 꼭 부부싸움을 하니까 앞으로 오지 말라고 했다. 자주 찾아오지도 않으면서 가는 것도 싫어하니 기가 막혔다. 애써 둘만 행복하면 된 거라고 위안해 보지만 불쑥불쑥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5분 거리에 살면서 손주도, 아들도 마음대로 못 보는 자신의 신세가 처량했다.
CASE 3. 결혼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남자
C 씨는 15년째 두 여자 사이에서 죽을 맛이다. 두 여자는 한집에서 사는 아내와 한동네에 사는 어머니다. 요즘은 이사 문제로 골치가 아프다. 어머니는 어머니 댁 옆 아파트로 이사를 오라고 하고 아내는 이 기회에 시댁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하겠다고 선포했다.
고생하며 귀하게 키운 아들과 가까이 살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말끝마다 다른 집 며느리와 비교하는 어머니와 멀리 살고 싶은 아내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도 늘 이런 식이었다. 중재하려고 애를 쓸수록 어머니는 배신감이 든다고 했고, 아내는 마마보이라고 비꽜다. 결혼은 왜 해서 이 모양 이 꼴로 사나 싶다.
고부관계의 한계
대부분 아내는 결혼하면 남자 쟁탈전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큰 오산이다. 또 다른 형태의 내 남자 쟁탈전이 벌어진다. 바로 시어머니와의 남편 쟁탈전이다.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 김숙기 원장은 “고부갈등은 한 남자, 즉 아들과 남편의 애정을 차지하려는 두 여자의 뺏고 뺏기는 전쟁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 땅의 어머니들은 남편보다 자식을 위하며 살았다. 그래서 아들도 어머니 말이라면 꼼짝 못 하는 일이 많다. 어머니의 헌신을 보고 컸기 때문이다.
이런 남편의 태도는 아내에게 불안감을 준다. 자신이 남편에게 우선순위가 아닐 수 있다는 불안감이 든다. 시어머니의 말 한마디에 깜빡 죽는 남편을 보면 더욱 불안해진다.
반대로 어머니의 눈에 자기 아들은 최고의 남편이다. 착하고 멋진 내 아들과 사는 며느리를 향한 잣대는 높을 수밖에 없다. 며느리가 내 아들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데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아들을 흔들어 놓을까 걱정된다. 그래서 참견과 잔소리를 시작한다. 그것이 며느리로부터 아들을 보호하는 법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이런 전쟁의 끝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에 대한 분노를 남편에게 쏟아낸다. 남편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 공격을 당해서 억울하다. 어머니가 잘못했다고 생각해도 막상 내 어머니 흉을 보는 아내가 야속하다.
아내는 아내대로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남편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좋았던 부부 사이도 틈이 생긴다. 고부갈등이 부부관계를 망치는 것이다.
아내, 남편, 시어머니가 꼭 기억해야 할 4가지
김숙기 원장은 “고부갈등이 벌어지면 아내의 사랑하는 남편, 시어머니가 사랑하는 아들이 중간에서 고통받는다.”며 “또한 가족이 이해하고 화합하고 어울리는 시간 대신 고립된 외로운 인생을 맞게 된다.”고 강조한다. 결국 고부갈등은 모두에게 득이 될 것이 없다.
이러한 고부갈등을 사전에 막거나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3명을 모두 만족시킬 좋은 방법을 소개한다.
1 고부갈등 없이 살기…아내가 해야 할 일은?
① 시어머니를 적으로 보는 마음을 버리자!
시어머니를 사랑하는 남편을 낳고 키워준 고마운 사람으로 여기자.
② 피해의식을 줄이자!
며느리는 아랫사람이지만 복종해야 하는 대상은 아니다. 싫은 일은 공손하게 거절하고, 할 말은 하고 산다.
③ 자신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아내, 며느리로서 해야 할 도리에 최선을 다하면서 자신을 위한 삶도 산다.
④ 남편에게 시어머니 험담을 하지 않는다!
결국 팔은 안으로 굽는다. 자기 가족 험담을 듣고 싶은 사람은 없다.
2 고부갈등 없이 살기… 남편이 해야 할 일은?
① 한 여자의 남편으로 살자!
결혼한 이상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의 삶이 우선이다. 아들로서의 삶은 그다음이다.
② 아내의 고충을 잘 들어주자!
고부갈등이 부부싸움으로 번지는 이유는 며느리로서의 아내의 고충에 남편이 공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에 뻔히 보이는 아내의 고충을 보듬어주자.
③ 부부가 최우선 관계라는 것을 믿도록 신뢰를 쌓자!
어머니가 아닌 아내가 우선이라는 말과 애정 표현을 충분히 한다.
④ 며느리 역할을 강요하지 말자!
아내가 결혼한 이유는 며느리로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행복한 아내로 살고 싶어서다. 효도를 강요하지 말자.
3 고부갈등 없이 살기… 시어머니가 해야 할 일은?
① 아들을 독립시키자!
아들이 결혼하는 순간부터 며느리의 남자라는 생각을 한다.
② 아들보다 남편과 행복하자!
부부관계를 돈독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아들보다 남편에게 의지하며 산다.
③ 며느리를 인정한다!
같은 여자로서 며느리의 독립적인 삶을 인정해주고 칭찬도 아끼지 않는다.
④ 자녀 인생에 개입하지 않는다!
내 자식도 마다하는 잔소리와 참견을 듣고 싶어 하는 며느리는 없다. 아들과 며느리를 믿고 지켜보며 응원과 격려만 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