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기옥 기자】
【도움말 | 고려대 의대 안산병원 종양혈액내과 성화정 교수】
피를 팔아 장가도 가고, 처자식도 먹여 살리고, 병든 아들 치료비까지 마련하는 허삼관의 삶을 그린 중국 작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가 국내에서 <허삼관>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다. 먹고 살기 위해 생명과도 같은 피를 팔아가며 가족을 지키려는 허삼관의 모습이 슬프면서도 감동적이었는데…. 그러나 요즘은 먹고 살기 위해서 피를 팔지도 않는데, 먹을 것도 풍족해 비만이 걱정인 시대인데도 피가 부족한 사람들이 많다.
40대 중반의 여성 A 씨의 경우 건강검진 결과, 빈혈지수(혈색소 수치)가 낮아 빈혈 관리가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았고, 30대 후반의 여성 B 씨는 해마다 빈혈지수가 떨어지더니 급기야 한 자리 수치가 되어 빈혈 판정을 받았다. 피를 판 것도 아닌데 피가 부족해지는 이유는 뭘까? 또 빈혈이라고 하면 대부분이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기곤 한다. 철분이 많은 음식을 잘 먹거나 약국에서 철분제를 사서 먹으면 된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되는 걸까? 피가 부족해지는 이유와 빈혈지수가 낮을 때 해야 할 현명한 대처법을 알아보았다.
헤모글로빈(혈색소) 수치와 빈혈
건강검진 결과지에는 빈혈 여부를 알아보기 위한 ‘혈색소’ 또는 ‘헤모글로빈’이라는 검사항목이 있다. 이 수치가 여자 성인은 12g/dL, 남자 성인은 13g/dL, 6~16세 사이의 청소년은 12g/dL, 6개월에서 6세 미만의 소아는 11g/dL, 임산부는 11g/dL 미만이면 빈혈이다.
고려대 의대 안산병원 종양혈액내과 성화정 교수는 “피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으로 주로 이뤄져 있는데, 혈색소, 즉 ‘헤모글로빈’은 이들 중 적혈구 수치를 대변하는 수치”라고 말한다.
적혈구는 폐에서 산소와 결합해 심장 순환을 통해서 온몸에 산소를 공급해준다. 적혈구 안에는 헤모글로빈(혈색소)이라는 단백질이 있는데, 적혈구 안에 헤모글로빈이 적으면 산소 운반도가 떨어진다. 따라서 헤모글로빈(혈색소) 수치를 보면 적혈구 안에 산소를 운반해 줄 수 있는 운반체가 얼마나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헤모글로빈(혈색소) 수치가 낮다는 것은 몸에 적혈구가 부족하고 피가 부족하다는 것이고, 그래서 대사에 필요한 산소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해 조직의 저산소증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직의 산소 부족이 ‘빈혈’이 된다.
성화정 교수는 “산소를 운반해줄 수 있는 적혈구가 부족해 온몸의 산소 운반도가 떨어져 빈혈이 되면 숨이 차고, 어지럽고, 기운 없고, 짜증 나고, 피로를 자주 느끼고, 심한 경우엔 잠도 잘 안 온다.”고 말한다.
빈혈의 원인을 밝혀라!
성화정 교수는 “건강검진에서 헤모글로빈(혈색소) 수치가 떨어져 있다면 그건 명확한 빈혈”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빈혈의 원인은 철분 결핍성 빈혈이고, 철분 결핍성 빈혈의 원인은 빠른 성장, 월경과다, 출산, 심한 다이어트, 위장관 출혈 등”이라고 말한다.
치료는 결핍된 철분을 공급하는 동시에 철분 결핍이 일어난 원인을 찾는 것이다. ▶청소년의 경우 빠른 성장이나 월경과다로 인해 철분 결핍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30~40대의 경우 위암이나 대장암으로 인한 위장관 출혈일 수 있으므로 이와 관련한 검사를 해야 한다. 특히 ▶여성의 경우 자궁근종 등의 산부인과질환으로 인한 월경과다일 수 있으므로 산부인과 검사를 한다. ▶성장이나 월경을 하지 않는 노인의 경우 위 내시경이나 대장 내시경을 통해 암 검사를 해 철분 결핍의 원인을 찾는다.
성화정 교수는 “혈색소 수치가 낮으면 빈혈이지만, 그렇다고 빈혈이 최종진단은 아니다. ”고 말한다.
혈색소 수치는 몸의 이상 신호를 알려주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빈혈이 생긴 원인을 찾으라고 우리에게 알려주는 신호다. 일례로 빈혈의 원인이 철분 결핍성 빈혈이고, 철분 결핍성 빈혈이 생긴 원인은 자궁근종 때문임이 밝혀졌다면 ‘자궁근종으로 인한 월경과다, 이로 인한 철분 결핍성 빈혈’이 최종진단명이 된다.
혈색소 수치는 이런 최종진단을 할 수 있도록 몸에 이상이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이므로 빈혈이 있다면 반드시 검사를 받아 그 원인을 밝혀야 한다.
빈혈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1 철분 저장 창고를 꽉 채워라
철분 결핍성 빈혈이라고 확인이 되면 약은 6개월 이상 먹어야 한다. 철분은 일종의 중금속이기에 우리 몸에서 배설되는 경로가 출혈 외에는 없다. 정상적으로 식생활을 잘하고 출혈이 없다면, 혈색소는 늘 일정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대량 출혈을 했거나 위궤양이나 십이지장궤양 또는 출산 때문에 피를 과량으로 쏟는다면 몸에서 대량의 철분이 빠져나가는 것이기에 철분을 보충해줘야 한다.
성화정 교수는 “철분이 부족한 경우 매일매일 철분이 많은 살코기를 먹거나 철분제를 먹어서 철분 저장 창고를 꽉 채워줘야 한다.”고 말한다. 철분제가 암세포의 먹이가 된다는 생각에 철분제 섭취를 꺼리기도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철분 결핍성 환자의 철분 섭취는 반드시 필요한 치료이며, 수개월은 먹어야 철분 저장 창고가 꽉 찬다. 반면에 몸의 철분 창고가 꽉 차 있는 상황인데, 단순히 어지럽다고 해서 철분제를 계속 먹으면 철분 중독 증세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철분 결핍인지를 확인하고 먹어야 한다.
2 편식하지 마라
다이어트나 채식 위주의 식사로 편식을 하는 경우에 철분이 부족하기 쉽다. 성화정 교수는 “빈혈이 있다면 영양관리에 신경 쓰는 게 좋다.”고 말한다. 어떤 식으로든 편향된 식단은 굉장히 위험하다. 평소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먹어야 하며, 채식을 할 경우 굉장히 잘해야 한다. 채식에 관한 공부를 해서라도 건강한 채식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철분 공급에 제일 좋은 건 육식이다. 하지만 시금치, 해조류, 미역, 다시마, 검은콩, 브로콜리 등 채소에도 철분은 굉장히 많이 들어 있다.
3 적혈구 모양도 예뻐야 한다
혈색소 수치가 11.5g/dL인 사람은 정상 범위인 12g/dL과 큰 차이가 나지 않으니 그나마 괜찮은 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적혈구의 모양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성화정 교수는 “적혈구 안에 헤모글로빈이 꽉 차 있으면 적혈구 모양이 예쁘고 동그랗고 크기가 일정하지만 철분이 부족하면 적혈구 모양이 작다.”고 말한다.
일례로 혈색소가 11.5g/dL인데 적혈구 모양이 예쁘고 동그랗고 크기가 일정하면 철분 상태가 양호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11.5g/dL이라도 적혈구 모양이 작다면 이미 철분 결핍 상태이기에 철분 검사 후 철분을 채워줘야 한다. 이 역시 충분한 철분 섭취를 통해 철분 저장 창고를 꽉 채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4 어지럽다고 다 빈혈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어지럼증을 느끼면 빈혈이라고 생각한다. 성화정 교수는 “보통 어지럼증을 빈혈이라고 생각하지만 의학적으로는 적혈구가 낮은 경우, 헤모글로빈(혈색소)이 낮은 경우를 일러 빈혈이라고 정의한다.”고 말한다. 어지럼증은 빈혈만이 아니라 뇌졸중, 수면 부족, 만성피로, 이명 때문에도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성화정 교수는 “어지럼증과 빈혈을 구별하기 위해서는 헤모글로빈(혈색소) 수치를 확인해야 하며, 혈색소가 낮지 않고 정상인데도 계속 어지럽다면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다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따라서 어지럽다고 무조건 철분제를 먹으면 안 된다. 어지럼증의 원인이 따로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화정 교수는 고려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를 취득하였다. 현재 고려대 의과대학 내과학 교실 교수이며, 고려대 의대 안산병원 종양혈액내과에서 혈액암, 종양, 혈액질환, 항암치료, 빈혈, 골수이식을 전문으로 진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