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서울ND의원 박민수 의학박사】
건강을 위한 최선의 방책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채식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과거의 영양결핍 시대에 대한 보상으로 육식이 급격하게 늘어난 데 대한 견제의 묘가 발휘된 단적인 예다. 사회적 패러다임의 변천과정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다보니 단 1%의 육식도 포함되지 않은 식탁이 가장 고급스럽고 가치 있다는 의식이 붐을 이루며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채식주의의 변형된 형태로 사찰음식에 대한 열기도 뜨겁다. 사찰음식 시연회나 전문식당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성인병을 막아주는 식사법이라고 주창하는 현미채식의 인기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채식 열풍을 냉철한 취사선택의 눈으로 잘 선별해야 한다. 맹목적 채식이 불건강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버드대학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채식주의자가 육식과 채식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은 질병에 시달리고 수명도 짧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채식주의가 불건강? 왜?
건강을 위해 미각과 포만감을 포기하고 어렵사리 채택한 채식주의가 왜 불건강의 원인이냐며 반문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현대인의 먹거리 불균형에 그 이유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인은 영양 불균형, 영양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 세계적인 영양전문가인 스티브 뉴전트는 가령 현대인이 먹는 사과는 과거 우리 선조들이 먹던 사과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영양소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화학비료, 농약, 과잉경작, 지력의 쇠퇴, 긴 유통과정 등 다양한 이유에서 현대인이 먹는 먹거리는 과거의 먹거리에 비해 영양소가 점점 비어간다고 말한다. 결국 이런 현대적 먹거리 상황에서 채식을 시도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일 수 있는 것이다.
또 대부분의 인구가 도시에 사는 요즘 도시 거주민들에게 채식이 위험한 이유는 식자재의 긴 유통 과정의 문제에도 있다. 채소나 과일의 영양소는 밭이나 과수원에서 캐내기 직전에 최고의 영양소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던 것이 하루만 지나도 절반의 영양소도 제공하기 어려워진다. 또 공기 중에 노출되면서 산화되어 몸에 위해를 가하는 음식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셀레늄 부족을 예로 들어보자. 과거 토양이 비옥하던 시절 거의 모든 야채들에는 풍부한 셀레늄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마트에서 구입하는 야채에서는 극히 미량의 셀레늄도 발견하기 어려워졌다. 셀레늄은 몸 안의 유해산소를 없애는 강력한 항산화(抗酸化) 효소인 글루타치온 퍼옥시다제의 구성 성분이며, 면역기능을 높여 암을 예방하는 없어서는 안 될 영양소다.
우리나라는 현재 셀레늄 결핍 국가로 지정되어 있다. 브로콜리, 양배추, 마늘 등에 많이 든 셀레늄은 앞서 지적한 이유 탓에 평균적인 식사만으로는 하루 필요량을 모두 채우기 힘든 영양소가 되고 말았다.
똑똑한 채식 실천 가이드
채식의 반대급부로 고기나 생선을 많이 먹으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식탁에서 채소와 과일, 견과류의 양을 늘리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식생활 패턴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채식과 반채식의 갈등 속에서 어떤 식사법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오키나와 장수노인들의 식사방식이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그들은 푹 삶은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다. 또 훈자 지방의 장수 노인들이 양젖을 이용해 만든 ‘라시’라는 발효유를 즐긴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 비타민 B는 다량의 채소 섭취로도 매우 얻기 힘든 영양소이기 때문이다.
채소와 현미밥, 각종 견과류, 해조류, 과일 등이 주를 이루는 밥상에 일주일에 2~3차례 안전하고 품질 좋은 육고기(최근 방사해 키운 유기농 축산물이 늘고 있다), 생선, 어패류를 올리는 것이 식탁의 기본을 지키는 비결이다.
채식을 선호한다면 매크로 비오틱을 실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매크로 비오틱은 육식을 거부하는 채식주의에 가깝다. 필자는 매크로 비오틱의 전체 입장을 따르기 보다는 자신만의 영양 설계에 있어 매크로 비오틱의 원리들을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매크로 비오틱은 일물전식의 원칙을 취한다. 가령 사과를 먹더라도 껍질을 버리지 않고 먹는 것이다. 당근이나 감자의 표면도 필러로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먹는 것이다.
매일 일상적으로 밥상에서 만날 수 있는 대표적인 매크로 비오틱은 열무김치나 총각김치다. 무를 먹을 때도 무만 먹는 것이 아니라 무청을 함께 먹어야 한다. 배추도 배춧잎만 먹는 것이 아니라 배추뿌리까지 함께 먹어야 바른 영양 섭취가 된다.
더 나아가 거의 손대지 않는 파뿌리를 제거하지 않고 깨끗이 씻어 함께 조리하는 것이 바로 매크로 비오틱의 요리 원칙이다.
채식도 맞춤형으로~
어떤 장수보고서에서는 산사의 스님들이 가장 장수하는 집단으로 발표된 바 있다. 그들의 건강비결 가운데 하나도 분명 철저한 채식일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관찰한 바로는 사찰식은 자칫 부족해지기 쉬운 영양분을 채워 넣기 위해 세심한 배려를 한 매우 정제된 균형식에 가깝다. 채식을 실천하자면 그에 따르는 남다른 정성과 노력이 요구된다는 반증이라 할 수 있다.
채식도 맞춤형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자신의 영양 문제에 대한 과학적이고 총체적인 분석 없이 무모하게 남 따라 행하는 채식은 수명을 줄이고, 각종 건강 문제에 봉착할 수 있는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채식을 원한다면 영양을 생각하라는 것이 필자의 권고이다.
채식은 백세장수로 가는 최대의 동지가 될 수도 있지만 뜻하지 않은 장애물이 될 수 있다. 더불어 채식은 선택의 대상이지 절대적인 맹목의 대상이 아님을 명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