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소현 기자】
“사람들이 저더러 ‘기적의 여인’이라고 불러요!”
“아주머니, 살아줘서 고마워요. 난 작년에 아주머니 돌아가시는 줄 알았어요. 아주머니 보고 내가 힘이 납니다.”
아파트의 경비아저씨가 그녀에게 건네는 말이다. 3번의 암수술, 1번의 뇌수술….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힘든 수술을 꿋꿋하게 이겨낸 사람.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일러 ‘기적의 여인’이라고 부른다. “봄을 맞이한 나뭇잎의 연두빛이 하루하루가 다르게 진해지는 것을 관찰해 본적이 있느냐?”며 자신처럼 해맑고 순수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 바로 김송임 씨(50세)가 그 주인공이다.
억척스럽게 살았지만 허무감이 몰려온 시절
두 형제가 그렇게도 먹고 싶어 하던 통닭을 선뜻 사줄 수도 없을 만큼 어려운 시절이 있었지만 “열심히 살아보자.”라는 각오로 성실한 남편과 생활력 강한 아내는 20여 차례 걸친 이사 끝에 1994년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친딸보다 며느리를 더 아끼던 시어머니의 임종을 맞이한 김송임 씨의 몸에서 그동안 그녀를 지탱해주던 어떤 힘이 빠져나간 듯, 공허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찾아온 우울증. ‘열심히 살아도 그렇게 허무하게 가는 게 인생인가보다. 이렇게 살아서 무엇 하나.’라는 생각에 아파트 9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모진 마음을 먹기도 수차례….
하지만 결코 식구들에게 표현하지 못한 채 무기력한 생활이 이어졌다. 먹고 살만해지니 또 한 번의 고비가 찾아왔다. 2002년 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그간 생활고로 인한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왔고 온 몸이 이유 없이 아팠다. 우울증이었다. 병원에 가서 약도 처방받아 먹었지만 약을 의지하긴 싫었다.
곧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전단지를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기분은 나아졌지만 이상했다. 동료와 똑같이 일해도 송임 씨는 금방 허기가 졌고 갈증도 잦았다. ‘열심히 돌리니까 그런가보다.’라며 허기가 지면 초코우유, 빵처럼 밀가루 음식이나 단 음식을 찾았고 소변도 잦았다. ‘피곤해서 허기가 지는 것이고, 많이 먹은 만큼 소변으로 나오는 거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과 등산을 갔다가 심한 갈증과 함께 몸의 기운이 빠지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안 되겠다 싶어 찾은 병원에서 당뇨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당뇨관리는 전혀 하지 않고 약물에만 의존하는 생활을 계속했다. 그 와중에서도 전단지 돌리는 일은 3년간 계속됐다.
어느 날 갑자기 ‘4번씩이나’
▶2006년, 첫 번째 수술 : 식욕도 떨어지고 말라만 갔다. 자꾸 잠이 오고 기억력도 떨어지는 것 같았다. 설거지를 하다가 어깨가 아파서 그릇을 깨기도 수차례. “왜 자꾸 덜렁거리느냐.”는 남편의 말을 뒤로 한 채 알 수 없는 피로감이 그녀를 짓누르던 어느 날, 가슴 밑에 콩알 만한 혹이 잡혀 병원에 갔다. “2년마다 검사했을 때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는데…” 설마 했지만 유방암이었다. 치솟을 대로 치솟은 혈당을 조절하고 암 진단 후 두 달 만에 수술을 받았다.
▶2007년, 두 번째 수술 : 1차 수술 후 조직검사를 했는데 종양이 또 하나 발견됐다. ‘수술 한 지 얼마나 됐다고…’ 속상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다시 수술대 위에 올랐다. 당뇨가 있어서 몸이 회복되는 시간도 더디 걸리고 수술하고 나서 몸이 말이 아니었지만 병실에서 먼저 마음을 열고 밝게 생활하니 모두들 암 환자 같지 않다고 할 정도로 꿋꿋하게 12번의 항암치료와 35번의 방사선치료를 견뎌냈다. “밝게 생활했지만 그래도 두 번의 수술을 하면서 외로울 때도 있었고 속상할 때도 있었지요. 그럴 때마다 제가 믿는 신께 기도하고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어요. 물론 친구들과 지인들의 긍정적인 위로도 큰 힘이 됐고요.”
▶2007년 10월, 세 번째 수술 : 9월 초 세수를 하다가 남자 목젖처럼 목에 무엇인가 잡혔다. 편도가 부었나 싶어 병원을 방문했는데 갑상선 암이었다. “아니, 암 수술한지 1년도 안됐는데 또 암이라니요?” 어이가 없었다. 온 식구가 자신의 뒷바라지로 힘겨웠을 텐데 또 암이라니, 또 수술을 받아야 한다니…. 믿고 싶지 않은 충격적인 소식 앞에서 잠 한 숨 못자고, 결국 수술 며칠 전 식구들에게 사실을 고백했다. 남편은 “지금 당신 농담하는 거 아니냐?”며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수술은 예정대로 10월 12일 진행됐고 무사히 성공적으로 끝났다.
▶2009년 1월, 네 번째 수술 : 퇴원 후 3번 태어난 기분을 느끼며 ‘몸이 회복되면 가까운 곳으로 여행도 떠나고, 자전거를 타고 강가와 들로 다니며 자연도 만끽하고 기분도 전환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몸을 추슬렀다. “이제는 우리 4식구 오순도순 건강 지키면서 행복하게 살자 했지요.” 하지만 예기치 못한 복병이 숨어 있었다. 2008년 12월 병원에 가서 우연히 찍은 PET 검사 결과 ‘어쩜, 세상에 이런 일이라며…’ 모두들 그녀를 두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뇌하수체에 문제가 있었다. “뇌에 물이 차서 많이 아팠을 텐데요.”라고 묻는 의사에게 “전 아픈 곳이 많아서 그런지 아픈지도 몰랐어요.”라는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3번째 수술까지는 잘 견뎌왔지만 “머리에 종양이라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하염없이 눈물만 흐를 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는 김송임 씨.
“매우 위험한 수술이라서 수술 도중에 죽을 수도 있다.”며 수술을 부담스러워 하는 의사에게 ‘결과가 어떻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작성하고 수술실로 향했다. 수술 후 회복실에서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지만 지금 그녀는 누구보다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살아있다.
가족은 나의 힘, 남편은 외조의 대왕
남들은 한 번 받을까 말까 하는 굵직한 수술을 한 번도 아니고 네 번이나 받으면서 누구라도 좋으니 자신의 처지에 대해 단 한 번도 원망하는 마음을 가져 본 적이 없느냐고 물으니 “’제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무려 네 번씩이나요!’라는 원망은커녕 그냥 덤덤히 받아들였어요. 큰일이 연이어 뻥뻥 터지니까 솔직히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던 거지요.”라고 말하는 김송임 씨.
그래도 그녀는 답답한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이 의지하는 신에게 연애하듯 써내려간 노트 덕이라고 믿는다. “적을 곳이 있으니 원망하는 마음이 저도 모르게 글을 쓰면서 녹아 없어졌나 봐요.”라고 말한다.
또 남편을 비롯한 가족의 따뜻한 보살핌과 정서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4번의 수술과 투병생활을 밝게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그래서 남편과 아들들에게 고맙고 또 고마울 뿐이다.
처음 유방암 판정을 받기 전 송임 씨의 어깨가 아플 때부터 지금까지 설거지는 쭉 남편의 몫이다. 아침 일찍 출근하기 전 가끔씩 그녀의 아침식사를 준비해 두는 것뿐만 아니라 “건강하게 살아만 있어 달라.”며 집안일은 손도 못대게 하는 남편이야 말로 ‘외조의 대왕’이라고.
“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할 때 남편이 가끔 ‘당신 정말 괜찮지?’라고 물은 적이 있어요. 제가 일반적인 환자들과 너무 달라서 두렵다고 하더라고요. 병원에 있을 때 환자이면서도 항상 행복하다고 말하고 다녔으니까요.” 하지만 환자일지언정 살아서 숨 쉬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행복했다고.
“지금도 그래요. 파랗고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어서,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햇빛을 보고 숲속을 걸으면서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신기해요.”
김송임 씨는 분명히 자신이 살아 있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고 싶고, 언젠가는 <KBS 아침마당>에 출연해서 자신처럼 4번 죽다 살아난 사람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가니, 자신을 보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힘을 얻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한다.
사실, 김송임 씨의 갑상선에는 또 0.4mm의 종양이 생겼다. 아직 수술할 크기가 안돼서 수술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뇌수술을 받고 정기적으로 병원 검진을 받다가 얼마 전 우연히 알게 됐다. 그래도 그녀는 낙심하지 않는다. “4번의 큰 고비를 넘기고 나니 ‘이것쯤이야.’라는 생각이 들어요.” 행여 잘못되지 않을까 혹은 ‘왜 나에게 또 이런 일이’ 라며 불평해봤자 건강에 이로울 것이 하나 없다고 덧붙인다.
이렇게 큰일을 4번이나 겪으면서도 변변한 보험 하나 없지만 그래도 “하나님 앞에 보험을 들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진짜 생일 말고 4번째 수술한 날인 1월 31일이 자신의 또 다른 생일이라며 “올해 생일은 병실에서 보냈지만 내년 1월 31일엔 스스로에게 축하해 줄 수 있는 작은 이벤트를 마련할까 해요.”라고 말하는 김송임 씨의 얼굴은 아이의 얼굴 그 자체다.
김송임 씨의 조금 특별해보이는 하루 생활
♠ 5가지 흰색 식품은? No!
특별히 챙겨먹는 음식은 없지만 기름지지 않은 음식 위주로 먹고, 미원·설탕·밀가루·흰 밥·흰 소금은 절대 입에 대지 않는다.
좋아하는 주꾸미를 데쳐서 된장에 찍어먹되 된장, 상추쌈, 고등어구이 등이 주된 반찬이다.
*tip> 투병생활을 할 때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어서 홍삼 우린 물, 당근주스, 호박고구마, 포도, 산에서 캔 자연산 마를 말려서 간 후 검은콩 가루와 혼합하여 물에 타서 마셨는데 이것이 기운을 회복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 스트레칭은 남편과 함께 매일 한다
유방암 수술을 받은 사람들은 특히 어깨와 팔이 잘 붓고 굳기 쉽기 때문에 몸을 이완하는 스트레칭이 필수다. 김송임 씨는 몸의 근육도 이완시키고 남편과의 관계도 돈독해지는 스트레칭이 참 좋다고 한다.
♠ 산책과 여행을 즐긴다!
체력이 허락하는 한 근처의 산을 산책(등산이 아님)한다. 또 몸의 컨디션이 좋을 때는 집과 한 시간여 거리에 위치한 근거리를 여행한다. 그러고 나면 삶에 대한 감사가 절로 터져 나온다고.
♠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자신을 살려주신 데는 필경 하나님의 뜻이 있으시겠지”라며 즐거운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