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코모키수면센터 신홍범 의학박사】
한 침대 광고에서 발명왕 에디슨은 말한다. “숙면을 취한다면 4시간 이상의 잠은 사치”라고. 생전에 에디슨이 연설한 필름 일부를 사용해서 내보내고 있는 광고 카피다. 에디슨은 4시간만 자고 열심히 연구해서 축음기 등 수많은 발명품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여기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당시 에디슨과 라이벌이었던 테슬러는 “에디슨은 정말 4시간을 잔다. 밤에만.”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에디슨이 밤에 4시간을 잔 것은 사실이지만 낮에 수시로 낮잠을 잤다는 것이다. 4시간을 자면서 그런 창조성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우리들의 잠에 얽힌 비밀을 풀어보자.
잠을 잘 못 자면…
‘하룻밤인데 어때?’ 하룻밤 잠을 잘 못 자도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많지만 잠을 제대로 못 자면 그 후환은 결코 가볍지 않다. 잠을 자지 못하면 낮 동안 졸음을 느낀다. 자는 동안 신체적인 피로가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기력도 없다. 심하면 손이 떨리고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특히 잠을 자지 못하면 뇌기능도 떨어진다. 잠을 자는 동안에는 낮에 얻은 정보가 정리되는 작업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밤에 잠을 자지 못하면 낮 동안 받아들인 정보가 정리되지 못하고 버려진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오랜 기간 불면증에 시달리는 만성 불면증 환자의 경우 뇌에 알츠하이머 치매를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진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더 많이 쌓인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불면증이 치매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할 것이다.
잠을 잘 못 자게 하는 굿잠의 방해자들
우리들의 잠을 방해하는 요소는 참 많다. 걱정이 있어도, 몸이 아파도, 심지어 배가 고파도 잠은 잘 오지 않는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굿잠 방해자는 다음 세 가지다.
첫째, 스트레스다. 고민이 있거나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잠을 자려고 해도 그 생각을 하면서 쉽게 잠들지 못한다. 그런데 이런 일이 오랫동안 계속되면 불면증으로 굳어지는 수순을 밟게 된다. 그래서 나중에는 고민이나 스트레스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잠은 오지 않는 상태가 된다. 따라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있을 때는 적극적인 스트레스 해소책을 찾아야 한다.
둘째, 코골이도 문제가 된다. 코를 골면서 자는 사람을 보면 잘 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아니다. 코골이에는 자다가 숨을 멈추는 수면무호흡증도 꼭 따라다닌다. 자다가 숨이 막히기 때문에 깊이 잠들지 못하고 자주 깨게 된다. 싸구려 잠을 자는 것이다. 이런 일이 몇 달 혹은 몇 년 지속되면 만성적인 수면부족 상태를 초래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낮에도 졸리고 기억력도 떨어진다. 그래서 머리를 베개에 붙이면 바로 잠드는 상태가 된다. 잠드는 데 문제가 없어서 불면증이 없는 좋은 상태로 보이지만 더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수면무호흡증이 있으면 혈압이 높아지고 심장질환, 뇌혈관질환의 발병 위험까지 높아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다가 숨이 막혀 돌연사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수술로 치료하기도 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치료는 비수술적 치료법인 양압술 치료법을 권한다.
셋째, 불편한 다리도 문제가 된다. 자기 전에 다리가 불편해서 쉽게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 중 상당수는 잠을 자면서 다리를 움직이는 증상이 동반된다. 하지불안증후군이라고 하는 수면질환이다. 여성에게 흔하고 나이가 들면 심해진다. 정형외과나 신경외과를 가도 잘 알지 못하고 엉뚱한 치료나 수술을 받기도 한다. 이런 증상은 뇌속 도파민의 불균형이 원인이며, 약물로 치료할 수 있다.
굿잠을 자기 위한 실속 계책들
이쯤 되면 굿잠을 자기 위해서는 어떤 계책을 세워야 할까? 궁금하다. 지금부터 굿잠을 자기 위한 식품부터 침실환경까지 우리가 상식으로 꼭 기억해야 할 방법들을 총공개한다.
1 굿잠으로 유도하는 식품의 ‘힘’
“배가 고파 잠이 오지 않으면 따뜻한 우유나 치즈를 먹어라.”는 말이 있다. 불면증 치료 지침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방법이 과연 도움이 될까?
우유와 치즈는 모두 트립토판(Trypto phan)을 함유하고 있는 음식물이다. 트립토판은 우리 몸에 섭취된 후 세로토닌(Serotonin)이라는 아미노산을 만드는 원료로 사용된다. 세로토닌은 신경의 흥분성을 낮추어 뇌를 진정시키는 작용이 있다.
트립토판은 또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을 만드는 데도 사용된다. 멜라토닌은 우리 몸이 정상적으로 분비하는 수면 유도 호르몬이다.
따라서 트립토판을 함유한 음식을 섭취하면 세로토닌과 멜라토닌 분비가 늘어나 빨리 잠들게 할 수 있다.
특히 탄수화물과 트립토판 함유 음식을 함께 먹으면 수면 유도 효과가 더 커진다. 탄수화물이 많이 함유된 음식물은 인슐린 분비를 촉진시키기 때문이다. 인슐린은 혈액 내에서 트립토판과 경쟁하는 타이로신의 효과를 감소시켜 트립토판의 효과가 더 잘 나타나게 만들어준다.
따라서 적어도 수면에 있어서는 고탄수화물 식사를 하면 인슐린 분비가 활발해져 타이로신이 뇌에 전달되는 것을 억제하고 그 대신 트립토판의 뇌 전달을 촉진시켜 세로토닌, 멜라토닌 등 수면유도 물질의 생성이 늘어나게 만든다. 이런 사실을 참고하여 상황에 맞는 음식을 선택해야 굿잠을 잘 수 있다.
일례로 공부하는 학생이나 직장인의 경우는 아침과 점심식사로 단백질의 비중을 높이고, 탄수화물의 비중은 중간 정도로 맞춘 식사를 하도록 한다. 저녁식사로는 단백질은 소량, 복합 탄수화물은 다량 섭취하여 뇌를 이완시켜 주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이때 설탕 등 단순당은 뇌를 이완시키는 데 별 도움이 안 되므로 삼가자.
따라서 굿잠을 자기 위한 저녁식사로 가장 좋은 것은 ▶다량의 복합탄수화물 ▶소량의 단백질과 칼슘이다. 칼슘은 뇌에서 트립토판이 멜라토닌으로 변환되는 것을 돕는다. 그래서 트립토판과 칼슘을 함께 함유하고 있는 우유나 치즈 등의 유제품은 최적의 수면유도 음식이 되는 것이다.
2 굿잠으로 유도하는 침실환경은?
침대 매트리스는 굿잠에 영향을 줄까? 침대 광고에서는 다들 매트리스의 중요성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침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매트리스임은 말할 것도 없다. 수면검사실의 침대를 고를 때도 이 점을 깊이 고려한다.
매트리스가 너무 푹신하다면 자고 나서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너무 딱딱하다면 몸의 굴곡에 맞춰 적당히 받쳐주지 못할 것이다. 물침대가 수면에 더 좋고 긴장 이완에 더 좋은지 묻는 사람도 있다. 대개 의학적으로는 특별한 차이가 없다. 심리적인 이완을 유발한다는 장점은 있을 것이다.
굿잠으로 유도하는 잠옷과 이불은 따로 있나?
어떤 잠옷을 입는 것이 숙면을 취하는 데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도 심심찮게 받는다. 여배우 마릴린 먼로는 “무슨 옷을 입고 자느냐?”는 질문에 “샤넬 향수 한 방울을 입고 잔다.”고 답했다고 한다. ‘상황이 허락한다면’ 옷을 입지 않고 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잠옷이나 속옷을 입으면 옷이 피부를 자극하므로 촉감이 숙면을 방해할 수 있다. 옷의 솔기, 고무밴드 등이 눌리면서 혈액순환이 나빠지고 피부에 압박감이 생길 것이다.
우리가 잠을 자는 중에 이런 느낌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은 감각이 둔해서가 아니다. 말초에서 만들어진 감각 자극이 신경을 따라 대뇌로 전달될 때 시상이라는 부분에서 검열을 받아 걸러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극이 심하면 검열을 통과해서 대뇌로 전달될 것이고, 그 자극에 대뇌가 반응하면서 잠이 얕아질 것이다.
따라서 가능하면 자극을 줄여주는 것이 좋다. 그래서 옷을 입지 않고 자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런데 옷을 입지 않고 잘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능한 부드럽고 매끄러운 잠옷이나 이불의 피부자극을 줄여주면 숙면을 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굿잠으로 유도하는 좋은 베개 선택법
베개가 없으면 어떤 불편함이 있을지 생각해 보면 좋은 베개의 조건을 정할 수 있다. 우리가 천장을 바로 보고 눕는다면 목이 약간 뒤로 젖혀진다. 사람의 목뼈는 C자형으로 굽어져 있다. 바로 누웠을 때도 목뼈의 이 모양을 유지해 주어야 편안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6~8cm 높이의 베개가 적당하다.
다들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낮은 베개보다 높은 베개가 건강에 더 해롭다.
베개가 너무 높으면 목뼈가 앞으로 많이 꺾이고 경추 사이로 빠져나가는 신경이 압박을 받는다. 손과 팔 저림을 호소하는 사람들 중에 높은 베개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또 베개가 너무 높으면 기도가 좁아져 수면무호흡이 생기기 쉽다. 수면무호흡은 고혈압, 당뇨, 심장질환, 뇌졸중 등을 유발시켜 수명을 단축시키는 주범이다.
베개의 선택에 있어서는 베개의 단단한 정도도 중요하다. 베개가 너무 딱딱하거나 탄성이 좋으면 닿는 부위의 혈관을 눌러 피 흐름이 나빠지고 피부조직에도 신선한 피가 공급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너무 푹신한 베개는 머리가 완전히 파묻혀버려 수면 중에 정상적으로 나타나는 뒤척임을 방해할 수 있다.
신홍범 의학박사는 서울의대를 졸업한 뒤 서울대병원 수면의학센터 임상강사를 지냈고, 을지의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을지병원 수면의학센터 담당교수로 일했다. 현재 수면질환 전문 클리닉인 코모키수면의원 원장이며,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겸임교수, 건국의대, 성균관의대, 순천향의대, 을지의대 외래교수이다. 대한수면의학회 보험이사로 일하면서 수면의학에 필수적인 의료행위와 관련된 보험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