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은혜 기자】
【도움말 | 연세유&김 정신건강의학과 유상우 박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직장인 이미라 씨(35세)는 월요일 출근길이 제일 싫다. 월요일 아침이면 유난히 붐비는 지하철 때문이다. 지각도 불사하고 서너 대는 그냥 보내기 일쑤다. 붐비는 지하철은 이미라 씨에게 지옥이다. 숨이 턱턱 막히고 식은땀이 줄줄 흐르면서 미쳐버릴 것 같은 질식감으로 괴롭다.
버스를 타도 좀 붐비다 싶으면 숨이 턱턱 막혀온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멈춰서면 어쩌나 바들바들 떨려온다. 최근에는 영화를 보던 중 갑자기 숨이 턱턱 막혀오는 공포를 느낀 후 그 좋아하던 영화도 일절 끊었다. 만원버스에서도, 붐비는 전철에서도, 사람들로 꽉 찬 영화관에서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웃고 떠들고 즐거운 사람들이 너무도 부러운 이미라 씨…. 하나둘 하지 못하고, 가지 못하는 곳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그 증상이 ‘공황장애’ 때문이라는 걸 안다. 그러나 좀체 병원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있다.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이 두렵고, 걱정스럽고, 용납도 안 된다며 본지로 문의를 해왔다. “공황장애 그거, 완치될 수는 있는 건가요?”
그래서 마련했다. 세상에서 주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질환으로 알려진 공황장애, 그 공포에서 벗어날 해법을 찾아봤다.
이경규, 이병헌, 김하늘, 김장훈까지…
‘웬 연예인 이름일까?’ 하겠지만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공황장애를 겪었거나 겪고 있다고 스스로 밝힌 연예인들이다. 많은 연예인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명 ‘연예인병’으로도 통하는 공황장애.
초창기에는 ‘공황’을 ‘공항’으로 잘못 알아듣고 ‘공항 가는 것을 무서워하는 병인가 보다.’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다지만 그 실체를 알고 보면 이 증상만큼 두려운 존재도 드물다.
배우 김하늘 씨가 <힐링캠프>에 나와서 한 말 중 일부다. “영화 촬영 중 눈과 얼굴을 다 가리는 신을 찍다가 공포를 경험한 후 극장도 못 가고, 엘리베이터도 타기 힘들고, 비행기도 타기 힘들어 중간에 내려달라고 한 적도 있어요. 왠지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은 공포라고 해야 하나요? 그래도 지금은 노력을 많이 해서 좋아졌어요. 비행기를 못 탈 것 같은 데도 일부러 계속 탔어요. 공황발작이 올 때는 한 2분간 ‘그냥 죽자’ 생각했어요.”
어디 다쳐서 꿰매야 하는 것도 아니고, 병실에 드러눕는 병도 아니다 보니 대부분 ‘별 것 아닌 증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 당사자가 느끼는 고통의 강도는 실로 크다.
심지어 한강다리 건너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고, 자동차에서 신호대기 상태만 되어도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 광장공포증 때문에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는 행동들, 엘리베이터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극장엘 가고…하는 일상의 행동에 심각한 제동이 걸리면서 삶의 질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기 일쑤다.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 사우나실, 극장 등 막힌 공간에서 당장 빠져나올 수 없다고 느낄 때 극도의 불안감과 공포감을 경험하는 것이 대표적인 공황장애 증상이기 때문이다.
다년간 공황장애를 연구해온 연세유&김 정신건강의학과 유상우 박사는 “당장 죽을 것 같은 공포를 경험하는 질환은 공황장애뿐”이라며 “공황장애는 그야말로 공포의 극치를 달리는 병”이라고 말한다. 도대체 그 이유는 뭘까?
죽을 것 같은 공포감, 왜?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공황장애? 그걸로 죽진 않잖아. 실제로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거잖아. 그러니 마음만 좀 굳게 먹으면 되는 거 아냐?”
하지만 이 말은 공황장애에 대해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유상우 박사는 “공황장애는 결코 의지나 정신력의 문제가 아니다.”며 “뇌의 경보장치인 청반핵이 오작동을 일으키는 정신적, 신체적 증상”이라고 말한다.
뇌의 경보장치 오작동으로 인해 아무런 이유 없이 또는 사소한 자극에 의해서도 갑자기 극도의 공포감을 느끼는 증상이다. 심장이 터지도록 빨리 뛰고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차고 땀이 나는 증상을 동반하는 병이다. 그래서 이후 이런 공포감을 다시 겪게 될까봐 두려워하게 되는 질환이다.
이러한 공황장애는 모든 병 가운데 주관적인 고통이 가장 심한 병으로 정평이 나있다. 어떤 질환도 당장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을 수시로 경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공황장애는 다르다. 당장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증상이 엄습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증상은 2~3분 만에 감쪽같이 사라진다. 하지만 당사자는 그런 증상이 언제 또 나타날지 몰라서 불안하지만 항상 죽을 것 같은 불안은 아니라서 견딜 만하다.
유상우 박사는 “사정이 이렇다보니 엄청나게 괴로운 경험이지만 주위의 어느 누구로부터도 제대로 이해를 받지 못하는 증상”이라며 “오죽했으면 차라리 어디가 부러지거나 크게 다치는 것이 낫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한다.
혹시 나도 공황장애? 자가 체크법
많은 연예인들이 스스로 커밍아웃을 할 만큼 대중적인 질환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공황장애. 혹시 나는 괜찮을까 걱정된다면 공황장애 여부를 알아볼 수 있는 자가 체크법을 참고해보자.
1. 마치 달리는 것처럼 심장이 마구 뛰었습니까?
2. 양손에 땀이 나거나 축축했습니까?
3. 팔다리나 몸이 떨렸습니까?
4. 숨이 가빠지거나 숨쉬기 곤란했습니까?
5. 질식할 것 같거나 목에 뭔가 걸린 것 같았습니까?
6. 가슴에 통증이나 압박감 또는 답답함이 있었습니까?
7. 토할 것 같거나 속이 불편하거나 갑자기 설사를 했습니까?
8. 어지럽거나 불안정감이 있거나 머리가 멍하거나 기절할 것 같았습니까?
9. 주변 사물들이 이상해보이고 비현실적이거나 혹은 낯설게 느껴지거나 또는 당신 몸의 전체나 부분으로부터 떨어져 나온다고 느꼈습니까?
10. 자제력을 상실한다든지 미칠 것 같았습니까?
11.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되어 두려웠습니까?
12. 당신 몸의 일부가 저리거나 무감각했습니까?
13.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거나 오한이 있었습니까?
유상우 박사는 “이상의 문항 중에서 4개 이상에서 ‘예’라는 답이 나오면 공황장애 발작으로 볼 수 있다.”며 “이럴 때는 반드시 치료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고 방치할 경우 만성적인 경과를 밟게 되면서 다른 어떤 만성질환보다 더 심각한 심리적 후유증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삶의 질을 총체적으로 저하시키는 원흉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황장애 완치로 가는 똑똑한 대처법
만약 공황장애로 말 못할 고통을 받고 있다면 너무도 절실한 궁금증 하나! ‘공황장애는 나을 수 있을까?’
이 물음에 유상우 박사는 “완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 해답은 달라진다.”며 “완치는 재발 방지와 연관 지어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황장애 치료는 당뇨 치료와 매우 유사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당뇨 치료에서는 약물치료와 더불어 식이조절의 중요성이 무엇보다 강조되고 있다. 공황장애도 마찬가지다. 공황장애의 주 치료법으로 알려진 약물치료와 함께 인지행동치료를 습관화하고 꾸준히 반복할 때 비로소 개선되는 수순을 밟게 되기 때문이다.
유상우 박사는 “공황장애 완치를 기대한다면 약물 치료를 꾸준히 하면서 호흡훈련, 이완훈련, 인지훈련, 노출훈련 등을 습관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가운데 약물치료는 전문가의 처방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지만 호흡훈련, 이완훈련, 인지훈련, 노출훈련은 환자 당사자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소 꾸준히 실천하면서 생각 수정, 행동수정을 스스로 해야 한다. 유상우 박사가 추천하는 구체적인 실천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나 스스로 하는 실전! 호흡훈련법
공황장애 환자들은 과호흡 상태다. 전반적인 불안과 긴장도가 올라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소 호흡훈련을 실천하면 과호흡 상태를 개선하는 데 좋다.
이러한 호흡훈련의 다른 이름은 복식호흡 또는 횡격막호흡이다. 호흡훈련을 하면 위험하다, 혹은 두렵다고 느끼게 되는 요인들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는 요령은 다음과 같다.
1. 조용하고 안락한 장소에서 실시한다.
2. 복식호흡을 한다. 가슴은 가만히 두고 배로 숨을 쉰다.
3. 숨을 들이마시며 열까지 세고 나면 다시 거꾸로 하나까지 헤아린다.
4. 자신의 호흡과 숫자를 헤아리는 데 정신을 집중한다.
5. 부드럽게 호흡을 하면서 정상적인 호흡 횟수와 깊이를 유지한다.
? 이같은 호흡을 매일 2회, 한 번 할 때 10분 이상 훈련을 한다.
2. 나 스스로 하는 실전! 이완훈련법
미국의 정신과 의사 에드몬드 제이콥슨이 개발한 이완훈련법은 몸과 마음의 긴장을 감소시키는 데 좋은 효과가 있다. 훈련에 익숙해지면 대략 3분 정도 자신을 졸린 상태로 들어가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완훈련법을 일러 ‘3분의 기적’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이완훈련법 또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다. 몸의 수축과 이완을 정한 시간만큼 행하면 된다. 주로 10초 수축, 20초 이완, 30초 휴식으로 구성된다. 이 1분짜리 훈련을 3회 반복하여 3분 정도 하면 몸이 축 늘어진 신체적 이완상태로 만들 수 있다. 당연히 몸이 늘어지면 마음의 긴장도 풀린다.
3. 공황발작 시 경험하는 감각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훈련법
이 훈련법은 신체감각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공황장애 환자들은 하나같이 평상시에도 높은 불안과 긴장상태를 보이는 편이다. 이러한 긴장과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는 평소 공황발작 시 경험하는 감각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훈련법을 실천해보는 것도 좋다. 구체적인 요령은 다음과 같다.
1. 머리 좌우 30초 흔들기-30초간 머리를 좌우로 세게 빨리 흔든다.
2. 머리 30초 숙였다가 들기 -30초간 양쪽 다리 사이로 머리를 숙인 상태로 있다가 재빨리 머리를 든다.
3. 층계 오르기-층계나 발을 올려놓을 수 있는 단을 이용해서 1분간 발을 교차한다. 심장박동이 빨라질 정도로 빠른 속도로 한다.
4. 숨 멈추기 30초-30초간 숨을 멈춘다.
5. 1분간 근육 완전 긴장하기-1분간 모든 근육을 통증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긴장한다. 팔, 다리, 배, 등, 어깨, 얼굴 등 모든 곳을 긴장한다.
6. 1분간 과호흡하기-1분간 힘껏 깊고 빠르게 과호흡을 한다.
7. 1분간 빨대호흡하기-1분간 가느다란 빨대를 통해 호흡한다. 코로 숨 쉬지 않는다.
유상우 박사는 “이같은 훈련법을 꾸준히 실천하면 평상시 경험하는 신체감각이 공황발작 시 경험하는 감각과 별 차이가 없고, 또 대수로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4. 마음의 지도를 바꾸는 노출훈련법
유상우 박사는 “공황장애는 노출훈련법을 통해 회복의 정점을 찍을 수 있다.”고 말한다. 배우 김하늘 씨도 비행기를 못 탈 것 같아도 계속 타면서 공황장애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실 공황발작은 위험하다고 느껴지는 것일 뿐 실제로 위험한 것은 아니다. 큰일 날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정작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황장애 환자들은 흔히 최악으로 향하는 사고방식을 보인다. 실제는 그렇지 않은데 어떤 사건이나 상황을 끔찍하게 생각하고, 견딜 없는 위험스러운 사건으로 해석해서 과도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럴 때는 두려움의 대상이나 상황에 대해 점진적인 노출로 불안감을 줄여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비행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거야.’ 라는 공포감 때문에 비행기 타기가 두렵다면 비행기를 자주 타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몇 번 하다보면 수많은 발작에도 불구하고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지하철, 만원버스, 엘리베이터, 극장에 대한 공포도 마찬가지다. 약물치료, 이완훈련, 호흡훈련 등과 함께 노출훈련법도 꾸준히 실천한다면 공포가 공포를 부르는 공황장애로부터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유상우 박사는 “그동안의 연구 결과 공황장애는 피로의 누적, 수면 부족, 스트레스 등 우리의 생활과 관련된 몇 가지 나쁜 습관이 증상을 악화시키는 데 일조를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만약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면 자신의 생활습관을 체크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이때 그 지침이 되는 4가지 체크사항은 다음과 같다.
1. 운동 부족은 아닌지?
운동은 공황장애 치료에서도 아주 중요한 사항이다. 꾸준한 유산소운동은 치매, 우울증, 불안장애 등의 예방에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2. 빈혈은 아닌지?
공황장애를 악화시킬 수 있는 요인들의 특징은 뇌를 혹사시킨다는 점이다. 피로, 과음, 수면부족, 스트레스 등이 문제가 된다. 여기에 빈혈도 추가해야 한다. 빈혈은 어지러움, 무기력감, 쉽게 느끼는 피로감 등의 원인이 되며, 이들 증상이 공황장애 증상과 혼동되거나 공황장애를 악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빈혈이 있다면 해조류, 유제품, 고기 등을 잘 섭취해야 한다.
3. 저질 체력은 아닌지?
공황장애가 완치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은 만성피로감이나 체력 저하가 큰 비중을 차지하므로 저질 체력이면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4. 생각 과다는 아닌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답이 없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것도 안 좋다. 뇌를 쉬지 못하게 하면 공황장애 유발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유상우 박사는 “공황장애는 고통스럽기는 해도 절대로 죽는 병이 아니다.”며 “만약 공황장애가 발생하면 나의 몸과 마음이 쉬어야 하기 때문에 이런 증상이 나타난 거고, 휴식을 취하며 적절한 치료를 받는다면 반드시 회복되는 증상으로 여길 것”을 당부한다. 내 인생에서 잠시 쉬어가는 쉼표로 생각하고, 심장마비나 뇌졸중과 같은 마침표가 아닌 것을 다행으로 여기라고 권한다.
유상우 박사는 ?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연세의료원 신촌세브란스병원 정신과에서 수련, 동대학원에서 정신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연세유&김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연세의대 정신과학교실 임상지도교수. 외래교수, 한림의대 정신과학교실 외래교수로 재임 중이다. 공황장애 전문가로 지난 20년간 지속적으로 공황장애 인지행동그룹치료 클리닉을 운영해오고 있다. 2001년 최초의 동영상 인지행동치료 프로그램 ‘다나박사의 공황장애’를 개발했고, 이를 실제 치료에 적용하고 있다. 주요 저서는 <다나박사의 공황장애> <부자가 되는 뇌의 비밀> <공황장애에서 벗어나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