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건강칼럼니스트 문종환】
“생명의 숲에서 새생명 얻었어요”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 생태환경운동가 김재일 씨에게 붙이고 싶은 수식어다. 폐암 진단 후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마음 다스림에 전념하고 있다. 대부분의 암 환자들이 물질적인 치료법을 먼저 찾는 데 비해 마음 다스림이 우선이라는 믿음은 통상의 암 환자들에게 낯설 수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가장 지혜로운 암 투병이 아닐까 싶다. 그는 생명운동을 통해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것은 많은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고 믿고 있다.
김재일 씨를 처음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3년 전. 당시에는 화학요법 중이었던지라 머리카락이 다 빠진 상태였다. ‘어떻게 변했을까?’ 늘 궁금했다. 간간이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여전히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랬던 터라 더 기다려졌던 만남.
3년 만에 만난 그의 얼굴은 참 맑고 밝아 보였다. 항암 치료 중의 초췌함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근황을 물었다. 3개월 전에 검사받은 바로는 ‘암 활동 정지’였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이따금 기침을 했는데 기관지에 탈이 생긴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방송, 강의, 세미나 연구 활동 등으로 쉴 날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걱정이 앞섰지만 잘 이겨나갈 것이란 믿음은 있다.
시련은 새로운 삶의 기회?
김재일 씨는 환경운동가다. 교직을 떠나 자유롭게 생명운동을 시작하면서 자연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모든 생명은 자연에서 시작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정작 생명운동을 이어가고 있는 그에게 2003년 가을, 혹독한 시련이 시작되었다. 가족문제가 발단이 되어 환경생태운동가로서 새만금갯벌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도 감기, 천식, 폐암 진단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시련 앞에 잠시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암 진단을 받자 지인으로부터 확실하게 고칠 수 있다는 말만 듣고 그 분의 처방(침, 뜸, 한약 등)대로 했으나 암이 커졌고, 결국 치료 방향을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병원치료를 기본으로 하면서 채식 위주의 식단과 생즙 등 몸의 자연치유력을 증강시켜주는 생활요법을 병행했다.
그러나 수술 후 1년 6개월 만에 재발돼 다시 항암 치료를 할 수밖에 없었다. 2008년 겨울, 방송 중 기침이 심해 병원을 찾았고, 천식과 종양이 커져 기관지를 누르고 있다는 진단으로 방사선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암 환자가 거치는 과정을 그도 역시 지나왔다. 다른 환자와 다른 것이 있다면 생사를 넘나드는 힘든 과정에서도 마음의 동요가 별로 없었다는 점이다. 그는 지금 일생에서 가장 왕성한 사회활동을 펼치고 있다. 일에 대한, 또는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집념이 그를 살아있게 하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암에 대한 인식, 이제는 바꿀 때
2003년 암 진단을 받았으니 올해로 6년째다. 의료계에서 흔히 말하는 5년을 넘어섰다. 좋아하는 일을 하느라 투병에 전념할 수 없었으나 경과는 크게 나쁘지 않다. 60세를 넘긴 그에겐 할 일이 너무 많다. 할 일을 하면서 투병에 실패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일에 대한 동기부여가 필요했다. 그러려면 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었고 암은 악惡이 아니라 선善이라는 것, 즉 원수처럼 생각할 게 아니라 내 몸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이를 다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수명의 길고 짧음이 생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닐진대 삶에 집착하는 것 자체는 올바르지 않다고 강조한다.?
<섬진강 대숲에서>, <산사의 숲-침묵으로 노래하다> 저서 펴내
김재일 씨는 투병 중일 때도 집필을 포함한 사회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살아 있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꼼꼼하고 자세히 살피는 마음, 삼가고 조심하는 마음, 겸손하고 조화로운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그의 책은 우리가 살아있는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가을의 청명한 하늘 아래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창가에 앉아 국화차 한 잔 손에 들고 고요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한 권의 책이라도 읽는다면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의 역작 <산사의 숲-침묵으로 노래하다>는 병원 치료를 하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108개 사찰의 생태조사 결과를 사실상 정리한다는 입장에서 가슴 설레면서 즐겁게 작업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수술한 곳이 채 아물기도 전에 몸은 이미 산에 올라가 있었고 항암 중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발길은 이미 산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2002년부터 2008년까지 7년 동안 강원도 고성에서 해남,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사찰을 찾아다녔다.
2003년 암 진단을 받았을 때는 약간 갈등을 했었다고. 그러나 시작한 일을 중단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암의 고통을 느껴볼 겨를도 없이 수천 수만리 길을 걸어서, 그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니고 또 다녔다.
사찰로 이어지는 대중교통이 없어 어떤 경우는 집을 나와 10번도 넘게 기차와 버스를 번갈아 가며 타야 했다. 그는 자동차가 없다. 차를 가지고 다니면 자연을 온전히 느낄 수 없어서다. 모든 자연은 음미하는 맛이 있고 단지 스쳐 지나간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믿고 있다. 자연이 일러주듯 그렇게 천천히 가기를 고집하는 사람. 산사를 향해 오르는 그의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산사의 숲에서 그려지는 자연, 그 중에서 겨울산은 큰 의미를 담고 있다. 빈사상태인 듯 보이나 실은 그 속에 엄청난 생명력을 만들면서 때를 기다리며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겨울 숲은 단식을 끝낸 후 야위어진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 속에 건강이 있다.
더 많은 생명을 만들고 보다 화려하게 꽃을 피우기 위해 보이지 않는 생명이 꿈틀거린다. 이 겨울 숲이 어쩌면 현재의 그의 모습이 아닐까?
“숲은, 자연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지요. 저는 다른 환자들에 비해서 행복한 편입니다. 언제나 치유 숲을 옆에 두고 있으니까요. 다른 사람들은 시간을 따로 내서 산을 올라야 하지만 저는 늘 산에 있으니 즐겁기도 하거니와, 투병에 도움도 되고…. 그러니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몸뚱이에 집착하는 삶 거부하는 주인공?
늘 우리에게 화두를 던지는 삶과 죽음의 문제. 그런데 이에 대한 김재일 씨의 관점은 조금 색다르다. 집착하는 삶을 거부한다.
“삶은 제게도 너무 소중하지만 몸뚱이에 집착해서 자신을 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 의미 있다고 여기는 일은 결코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물론 제 건강에는 마이너스 요인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저는 늘 지금 여기서 삶을 마감해도 괜찮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어요. 비록 내일 죽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내 수명의 전부라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여깁니다. 하루를 살아도 무엇인가 해 놓고 죽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 길을 택할 것입니다.”
사실 죽음에 초연해지기란 말처럼 쉽지 않음을 안다. 수많은 암 환자들을 만나봤지만 이 문제는 말로써 쉽게 설명할 수가 없다. 또 생사에 초연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도 없다. 이 말은 곧 ‘네 목숨이 아니니까 쉽게 말하지.’라는 반문이 오기 십상이다. 그래서 생사에 초연한 사람을 만나면 존경스러움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온다. 가르침이 되기 때문이다.
암은 마음의 응어리가 물질화되어 나타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응어리진 마음을 풀지 못하면 암도 풀리지 않는다. 그래서 물질적인 접근보다 앞서야 하는 것이 심리적인 접근이다. 몸에 집착해서 그것에 매몰돼버리면 자신은 없어진다. 몸속에 마음이 갇혀서야 되겠는가? 집착과 의지는 다른 것, 한 걸음 물러나 진정으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오늘 한 번 가져보자.
김재일 님은?
경북포항生,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재직하다가 40대 초반에 문화 및 환경 운동을 시작, 사찰생태연구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사찰생태연구소 대표, 두레생태기행 회장, 두레문화기행 회장, 숲해설가협회 공동대표, 국립공원위원회 위원, (사)보리방송모니터회 회장으로 활동한다. 2008년 교보생명문화환경상(특별상), 제3회 서울시 환경상(단체부문)과 환경부장관 표창을 받았고, 제18회 불이상과 제3회 대원상을 수상했다.?지은 책으로는 『생명산필』, 『생태기행(전3권)』, 『서울생태』, 『현장학습여행(전2권)』, 『숲이 희망이다(공저)』, 『전통생태학(공저)』, 『우리 민속 아흔아홉 마당(전2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