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조아름 기자】
당뇨는 한국인 사망원인 질환 1위일 뿐 아니라, 당뇨합병증으로 인한 사망률 역시 세계 1위로 암보다 더 무서운 질환이다. 그런데 여기, 당뇨와 즐거운 사투를 벌이는 한 남자가 있다. 평생 당뇨를 동반자로 삼아 관리하고 있다는 염동식(42세) 씨. 당뇨인들을 위한 네이버 동호회 ‘당뇨와건강’에서 운영자 ‘아르마’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당뇨인들이 점점 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당뇨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이번에는 당뇨 12년차인 그의 당뇨 투쟁기를 들어보자.?
‘나 좀 당뇨에 걸리게 해주세요’였다!
2000년 가을, 갑자기 지하철 계단을 오르기가 힘들어졌다. 또 평소 느끼지 못했던 갈증을 느끼면서 자주 음료를 찾게 되었다. 하지만 염동식 씨는 그저 나이 탓이려니 생각하고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제 서른을 넘기면서 체력도 급감하나 보다 생각했어요. 갈증이 나도 이게 당뇨 증상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죠. 당시 당뇨 자체가 뭔지도 몰랐던 때였으니까요.”
대개의 직장인이 그러하듯 그 역시 하루 종일 컴퓨터와 씨름하고, 툭하면 인스턴트 커피와 담배, 출출할 때는 간식으로 컵라면을 즐기던 시절이었다.
“인스턴트 커피를 무척 좋아했어요. 일을 하다가 습관적으로 담배와 함께 커피를 마시곤 했죠. 일이 끝나면 동료, 친구들과 어울려 들이키는 맥주는 정말 꿀맛이었어요. 돌이켜 보면 온통 몸을 혹사시키는 행위들만 한 셈이죠.”
나이 탓만 하며, 하나둘 나타나는 몸의 이상 증세는 무시했다. 그렇게 일 년을 보냈다. 그럭저럭 버틸 만했고, 일상생활에 별 지장도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체력 저하와 갈증은 점점 더 심해져 갔다. 어떨 때는 온몸이 쑤셔서 걸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찾은 한의원. 마침 혈당측정기가 있어 한 번 재봤는데 혈당 수치가 공복인데도 260mg/dl이 나왔다. 한의원에서는 내과 진료를 권했다. 식사 후 찾은 동네 내과에서 측정한 혈당 수치는 400mg/dl 이상이었다. 그제서야 알게 됐다. 당뇨병 환자가 돼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덤덤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400mg/dl이란 혈당수치가 얼마나 높은 수치인지 몰랐어요. 의사가 높다고 하니, 그냥 높은가보다 생각했죠. 물론 이때부터 의사가 처방해준 혈당강하제를 복용하기 시작했지만 기존 생활을 바꾸진 못했죠. 운동은 여전히 나의 적이었고, 야채는 독이었어요. 당시 생활 자체가 ‘제발 나 당뇨에 좀 걸리게 해주세요.’나 다름없었어요.”
당뇨합병증으로 얼룩진 몸, 공부를 결심
당뇨 진단은 받았지만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운동이 좋다는 말에 우선 무조건 뛰었다. 하지만 이미 다리와 발이 시린 증상이 있었기 때문에 걷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다. 허리와 무릎에 통증이 계속 됐고, 특히 다리와 발은 한여름에도 시리고 쓰라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러한 증상은 ‘말초신경 합병증’ 때문이었다.
“운동이 좋다는 것은 알았지만, 당뇨와 운동의 관계는 잘 몰랐던 때였어요. 말초신경 합병증은 절대 다리에 충격을 주는 운동이나 행동을 해서는 안돼요.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무작정 뛰었으니 다리 시림과 통증이 점점 심해지는 것은 당연지사였죠.”
더불어 당뇨약의 부작용으로 하루 10~20회 정도의 설사가 지속되던 때였다. 어느새 70kg을 넘던 몸무게는 49kg으로 빠져 있었다.
“살이 없어 딱딱한 의자에 앉기만 해도 엉덩이가 아파 앉지 못했고 매트리스를 깔고 자도 엉덩이와 등이 아파 그 위에 이불을 더 깔고 옆으로 누워야만 잘 수 있었어요. 합병증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었죠.”
말초신경 합병증뿐만 아니라 망막 레이저 수술과 미세 단백뇨도 그의 몸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이러다간 정말 죽겠구나 싶었다. 절박했다. 그래서 당뇨와 관련된 책을 찾아보고,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당뇨라는 녀석의 정체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2003년 그해 막바지는 그렇게 흘러갔다.
소식과 야채가 진리임을 깨닫다
당뇨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당뇨는 결코 약으로 치료될 수 없는 병임을 절감하게 됐다는 염동식 씨.
그래서 시작했다. 당뇨 식이요법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흔히들 말한다. 당뇨는 식이요법이 제일 중요하다고. 그 역시 이 말에 공감했다. 당뇨병에 대해 알면 알수록 확실해지는 진리였다.
이때부터 염동식 씨의 생활은 달라졌다. 일체의 술과 담배를 금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창창한 나이가 독한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당뇨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무엇을 어떻게 먹었고, 어떤 운동을 얼마만큼 했는지 꾸준히 작성하면서 혈당을 관리했어요. 식사도 병원에서 일러준 정량대로, 정해진 시간에 일정하게 하고요. 특히 미역이나 다시마 같은 해조류가 좋다고 해서 밥을 지을 때마다 항상 넣어 먹었어요. 그렇게 하니 밥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해조류도 먹게 되더군요.”
삼겹살에 소주, 돼지고기 들어간 맵고 짠 김치찌개와 밥 세 공기 대신 나물과 생채소, 잡곡밥과 해조류 반찬으로 식단이 완전히 바뀌게 됐던 것이다. 하지만 30년 넘게 고수해온 입맛을 하루 아침에 바꾸기란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한 달에 한 번 정도의 일탈은 눈감아 주는 것이다.
“사실 먹는 즐거움도 크잖아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술도 고기도 먹어요. 대신 삼겹살 대신 보쌈을, 술은 취하지 않는 선에서 먹어요.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다시 관리에 들어가는 거죠. 당뇨는 평생을 관리해야 되는 병인데, 벌써부터 지치면 안 되잖아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저 스스로에게 상을 주는 거죠.”
그런 때문일까? 그는 당뇨 관리가 힘들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즐기자는 주의다.
“당뇨 관리를 힘들다 힘들다 생각하면 끝도 없이 어렵고 괴롭겠죠. 하지만 어차피 평생 안고 가야 할 병이라면, 즐기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이제는 혈당을 체크하면서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혈당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실험할 정도로 당뇨를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래서일까? 그의 당뇨 수치는 정상에 가깝다. 합병증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런 그가 특히 당뇨식이법으로 적극 추천하는 것은 양파즙과 녹즙이다. 직접적으로 혈당에 관여하진 않지만 혈액순환을 개선하는 데 긍정적인 효과가 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양파즙과 녹즙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복용 중이다.
이 땅의 당뇨인들이여! 파이팅하자
그가 당뇨와 관련된 정보들을 찾고 배워가면서 알게 된 점은, 많은 사람들이 당뇨 증상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관리는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뇨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당뇨가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이다보니 도중에 지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대충’ 관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안타까웠다. 똑같이 당뇨를 가진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네이버 카페에 ‘당뇨와건강’이라는 동호회를 만들어 당뇨와 관련된 유용한 정보들을 회원들과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당뇨와건강’은 5만 1000여 명이 넘는 당뇨인들의 소통의 장이 되었다.
회원들은 연령대가 평균 20대 중반에서 40대 중후반으로 비교적 젊다.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오히려 일반인들보다 더 건강한 회원들도 많다는 게 그의 설명. 그리고 격월로 모임을 열어 당뇨 전문의를 초빙해 당뇨 초보자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동호회 회원들과 친목도 다진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즐겁다.
“당뇨 인구는 점점 늘고 있지만, 올바른 관리를 하지 않는 분들이 태반이에요. 그러다가 합병증이 오면 그대로 고꾸라지는 분들이 많죠.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병이고, 관리만 잘 하면 평생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게 당뇨예요.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인생이 확 달라질 수 있어요. 그러니 이 세상의 모든 당뇨인들이 포기하지 말고 ‘파이팅’했으면 좋겠어요.”
훗날 당뇨인들을 위한 체험 캠프를 열 수 있는 당뇨마을을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당뇨로 인해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오히려 더 건강한 삶을 누리게 된 그는 지금 ‘당뇨와 즐겁게 동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