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조아름 기자】
우리가 흙을 만져보고 밟아본 적은 언제였을까.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자연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주말농장을 찾아 반농부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많고, 아파트 베란다나 건물 옥상, 혹은 다양한 자투리 공간에서 텃밭을 일구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바로 도시농부들이다. 건강한 먹을거리를 생산해 가족, 이웃들과 나눠 먹으며 삭막한 도시 속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도시 농업. 이번에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텃밭을 일구고 있는 도시 농부를 만나봤다.?
PART 1. “베란다에서 소소한 삶의 즐거움을 수확해요~”
권내경 씨(파주시 거주, 36세)
“정말 귀엽지 않나요? 이제 막 나오기 시작한 것들이에요.”
어림잡아 4평 정도 될까? 어느 아파트에나 있는 베란다지만, 권내경 씨네 베란다는 좀 특별하다. 다양한 채소들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당근은 자신을 뽑아달라고 머리를 삐죽이 내밀고 있고, 대파는 오늘도 자신의 일부를 국거리 재료로 내놓는다. 상추를 비롯해 쑥갓, 치커리 등 다양한 쌈 채소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한쪽 구석 커다란 토기 상자에는 지렁이 식구들도 있다. 지렁이가 있는 이유를 묻자, 지렁이의 변이 좋은 거름(분변토)이 된다고 한다.
그녀가 베란다 텃밭을 가꾸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2009년 파주로 이사 오면서 취미로 시작했어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채소들을 보고, 또 적게나마 그 채소들을 가족과 먹는 즐거움이 생기니 푹 빠져들 수밖에 없었죠.”
거기에 좀 더 열정을 보태 재작년 도시농업지도사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은 베란다 텃밭 강사로 활동하면서 도시에서 텃밭농사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지식과 경험을 나눠주고 있다.
그녀는 베란다 텃밭을 만드는 법을 직접 보여줬다.
“먼저 스티로폼 상자에 드라이버로 구멍을 내고, 상자 안쪽에 부직포를 깔아요. 그리고 위로 5cm 정도를 남기고, 시중에서 파는 소독된 흙을 담고, 물을 흠뻑 주면 돼요. 이후 씨앗의 3배 정도 되는 깊이로 씨앗을 심고 싹이 날 때를 기다리는 거죠. 생각보다 간단하죠?”
그녀의 6살 난 아들은 유치원을 마치고 돌아오면 어김없이 베란다에서 자신이 키우는 채소들을 보살핀다. 이제는 곤충이나 벌레도 무서워하지 않고, 하루하루 채소들이 커가는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 특히 그녀와 함께 채소들을 수확해 샐러드를 만들어 먹는 것은 아들의 큰 즐거움이라고.
물론 모든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응애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도 했고, 진딧물이 모든 채소에 옮겨가 이제껏 가꿔온 채소들을 버리기도 했다. ‘내가 이걸 왜 하나.’ 싶어 접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채소를 가꾸면서 느끼는 행복감과 내 가족이 먹을 음식을 직접 키운다는 사명감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선택한 것은 그녀가 직접 만든 ‘자연농약’이었다. 아들의 오줌을 모아 2주간 숙성시킨 후 물로 연하게 희석시켜 사용하는 오줌액비와 먹고 난 달걀껍질을 말려 현미식초에 넣어 숙성시킨 후 물로 희석해 사용하는 달걀껍질 식초액, 마요네즈와 물을 섞어 사용하는 마요네즈 희석액 등은 모두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재료들이다.
그녀는 텃밭 때문에 행복하다. 하지만 베란다 텃밭을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베란다 텃밭도 엄연한 텃밭인 만큼 농부의 마음을 가져야 해요. 시작은 쉬워도 내 손으로 채소를 기르겠다는 의지와 성실함이 없다면 쉽지 않겠죠. 물론 제대로 자라지 않았다고 해서 금방 포기해서도 안돼요. ‘좌절금지’라는 말도 있잖아요.”
PART 2. “집안에 아름다운 식물공장을 차려 봐요”
장민호·조성희 씨 부부(서울 양천구 거주, 42세·39세)
“어서 오세요, 저희 식물공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장민호·조성희 씨 부부네 거실에 들어서니 베란다 유리창에 일회용 투명컵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그리고 그 컵들에는 투명 호스들이 끼워져 있고 물이 끊임없이 공급되고 있다. 말 그대로 식물공장이다. 그 모습이 생소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컵 안을 들여다보니 흙이 아닌 콩알만 한 크기의 황토볼이 들어있다. 볼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물과 산소를 머금는다. 무게도 가볍고 반영구적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대신 흙에서 얻을 수 없는 여러 영양소는 물로 공급해 준다. 그렇다면 부부는 어떻게 수경재배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경기도 시흥에 계신 장인어른을 따라 주말농장을 한지 7년째예요. 나이 들면 귀농하겠다고 결심할 만큼 농사짓는 데 보람을 느꼈어요. 하지만 주말에만 시간을 낼 수 있다 보니,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식물을 키워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 집에서 가꿔 보기로 했죠.”
하지만 막상 집안에서 식물을 키우려니 흙이 문제였다. 때 되면 흙도 갈아줘야 하고 벌레도 걱정되고, 번거롭기도 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수경재배였다.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 이미 실행되고 있는 재배 방식을 따라해 보기로 한 것이다.
“우선 크기가 살짝 다른 플라스틱 컵 두 개를 준비해요. 화분과 물받침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작은 컵에는 물이 빠질 수 있도록 구멍을 내주고, 황토볼과 이미 싹을 틔운 식물을 넣어주는 거예요. 그리고 나머지 조금 큰 컵을 겹쳐 끼워주면 됩니다. 그럼 물을 주더라도 그 물이 밖으로 새지 않겠지요.”
그리고 바깥 컵 옆에 구멍을 두 개 뚫어 호스로 또 다른 화분들과 연결해 놓는다. 그렇게 해서 벽걸이마냥 걸어놓고 맨 위에 위치한 식물에 물을 주면 그 물이 아래로 흘러 맨 아래에 위치한 식물에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부부의 아파트는 남향이 아니다. 때문에 햇빛이 제대로 들어오는 시간이 3~4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저희는 다육식물이나 허브와 같이 햇빛이 조금 모자라도 잘 자라는 식물들을 더 많이 키워요. 그리고 싹을 발아시킨다거나 쌈채소나 토마토 등은 LED를 이용해 햇빛을 보충해 줍니다.”
그러고 보니 베란다 창가 한쪽에는 LED조명이 켜지는 설치물이 있고 거기에는 칸칸이 작은 화분들이 꽂혀 있다. 딸기, 케일, 치커리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웃자랐지만 그 모양새가 예뻐 그대로 뒀다는 청경채는 노란 꽃까지 피었다.
이렇게 집안이 식물공장으로 변화하면서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부부는 말한다.
“10살 난 아들이 아토피가 있어 고생했는데, 수경재배를 하다 보니 실내가 건조해질 틈이 없어요. 예전에는 가습기를 틀어도 실내가 넓어 습도가 30% 정도였는데, 이제는 습도가 55% 정도로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거든요. 또 식물이 많으니까 확실히 다른 집보다 공기가 좋아요. 공기청정기도 필요 없고요.”
그리고 아들이 꽃이나 나무를 쉽게 꺾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 좀 더 식물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는 것도 좋은 점이다.
부부는 수경재배를 ‘토경보다 손쉽고, 의지가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식물도 하나의 생명인 만큼,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도 필수임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