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박선희 기자】
“가정이 평안하고 행복해야 모든 것이 가능해”
연기자로 신앙인으로 바쁜 나날, 지난 인생에 후회는 없어
삶이 즐거운 사람은 그 얼굴이 맑고 빛나기 마련이다. 하고 싶은 일들을 모두 해봤고 현재의 삶에 만족하기에 성공적 삶을 살았노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연기자 한인수씨의 얼굴은 그래서 더욱 환해 보였다. SBS 대하사극 ‘여인천하’ 촬영준비로 분주한 그를 만나 연기자로서, 신앙인으로서 그리고 일상인으로서 그간의 삶을 들어봤다.
아무리 열심히 산 사람이라도, 아무리 잘 나가는 사람이라도 대부분 사람들의 경우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면 몇 가지의 후회쯤은 남기 마련이다.
그러니 누군가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해 “별 후회없이 살았다”고 말한다면 그는 아마도 꽤 성공적 삶을 산 사람일 게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리 흔치 않은 일.
연기자 한인수(54)! 그가 바로 그 흔치 않은 이들 중 한 사람이었다.
어지간한 인생의 신산(辛酸)은 다 맛보았을 50대 중반의 나이, 조금의 주저도 없이 “전혀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말하는 그의 자신감 넘치는 어조에서 조금은 놀랐다. 연륜에서 꽤 많은 차이가 남에도 벌써 기자에겐 후회돼 되돌아봐지는 일들이 적지 않은 탓이다.
후회가 없다는 건 어쩌면 자신의 꿈과 의지, 신념대로 살아왔다는 방증일 수도 있을 터.
“제가 하고싶은 건 다 해봤거든요. 젊은 날 주목받는 주인공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연기자로서 나름대로 갈채와 인정도 받아봤고, 신앙도 갖게 됐고, 의정활동(경기도 의회 3대 도의원)도 해봤고…. 전혀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 싶어요.”
이런 그인지라 당연 현재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 ‘성실히 최선을 다하자’는 게 그의 평소 생활지론이라니, 그만큼 그가 그에 부합해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일 게다.
대하물에서 더 빛나는 연기자
브라운관 속에서 비쳐지는 그 역시 대부분 성실하고 반듯한 모습이다. 그래선지 악역과는 거리가 멀고 주로 교수나 의사 같은 전문직이나 왕 등의 점잖고 중량감 있는 배역들이 많았다. 특히 그는 현대물보다 사극 등 대하물에 더 잘 어울린다는 얘길 많이 듣는데, 그 자신 역시 사극이 연기하기에 더 편하다고.
“그간 사극을 많이 해왔고, 남들도 어울린다는 말을 자주 해서 그런지 몰라도 상당히 편하게 하고 있어요. 또 사극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현대물에 비해 수염이나 의상 등에서 여러 가지 자기 커버가 되거든요. 그래선지 마음의 부담감도 덜해요.”
사실 사극은 그 특성상 호흡이 긴 대사와 발음, 발성 및 개성있는 캐릭터를 소화해 낼만한 탄탄한 연기력이 필요하다. 대부분 연극무대를 거친 중년 연기자들이 사극에서 빛을 발하는 것도 이 때문.
그 역시 현재 대한민국예술원회장으로 극작가이자 연출가, 평론가로 유명한 차범석 선생으로부터 연극을 배웠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면서 배웠어요. 기본적인 인격도 봐주지 않을 만큼 가차없으셨죠. 요즘 젊은 연기자들은 그에 비하면 행운아들이죠. 당시 그런 아픔과 눈물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차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이 항상 남아 있습니다.”
아마도 그의 탄탄한 연기력의 근간은 이렇듯 혹독하게 기본기를 배우고 숱한 작품들을 통해 익히고 연마한 덕분인 듯 싶다.
중학시절 영화촬영 보고 배우에의 꿈 키워
그가 처음 배우에의 꿈을 갖게 된 건 중학 시절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영화배우 김진규, 김지미씨의 동인천역전 촬영 모습을 보고서부터이다. 한 마디로 그 자리에서 반했던 것. 그래서 고교 진학도 일부러 연극, 미술로 유명한 서라벌예고를 들어갔다. 이후 연극부장으로 활약하며 연기상도 여러 번 탈 정도로 연극에 온 열정을 쏟았다.
연극을 하면서 그는 성격이나 생각, 생활패턴에 있어 많은 변화를 겪었다고 한다. 특히 남 앞에서 부끄러워 고개도 제대로 못들 정도였던 내성적, 소극적 성격과 주점에서 술을 마시는 여자들을 보면 술자리를 엎어버릴 정도의 보수적, 봉건적 성격을 개조할 수 있었다고.
그렇게 배우에의 꿈을 키우던 그가 브라운관에 데뷔한 지 어느새 3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지난 72년 MBC 탤런트 5기 출신으로 고두심, 박정수, 현석 등과 동기생이다.
데뷔 이후 꾸준한 활동을 통해 대표적 남자 중견연기자의 위상을 지켜오고 있는 그는 현재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SBS 대하사극 ‘여인천하’와 아침 연속극 ‘이별없는 아침’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또 얼마 전부터 시작한 MBC 세태풍자 콩트 코미디 ‘오늘 밤 좋은 밤’의 <총리일기>코너에서는 지금까지의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먼 희극적 요소를 지닌 인물로 분하고 있다.
“대학총장으로 총리 자문위원 역인데, 점잖은 역할을 주로 맡다가 과연 시청자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지 그게 가장 걱정이에요. 그러나 제 나이엔 변화를 주는 연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해 이번에 모험을 하게 됐습니다.”
연기자란 게 늘 고정된 이미지만 연기할 수도, 또 그래서도 안되지만 간혹 주위에서 이미지변신이라 하여 너무 무리수를 둔 나머지 좋지 않은 결과로 끝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런 노파심을 잠깐 비췄더니 “연기에 있어 자기만족이란 없는 거”라며 “연기자는 주어지는 배역 속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연기란 항상 부족함으로 남는다는 것.
신앙이 주는 마음의 평안이 가장 큰 건강비결
연기자에게 건강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한 번 작업에 들어가면 식사를 제때, 제대로 못하는 것은 물론 밤을 세우는 경우가 많아 건강을 해치기 십상. 따라서 평소 몸관리는 곧 자신에 대한 투자이기도 하다.
“연기자들은 규칙적 생활이 어려운 데다,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직업도 아니기 때문에 자기 몸을 스스로 아끼고 돌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게 되는 것이죠.”
그의 경우 다행히 자신의 몸을 잘 컨트롤하는 편으로 술, 담배도 이미 지난 84년부터 끊은 상태. 주로 여행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요즘은 바빠서 떠나지 못하고 있지만 평균 6개월에 한 번씩은 꼭 가까운 곳이라도 찾는다고. 최근엔 늦게 배운 골프도 건강 관리에 한 몫 한단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건강의 첫째 비결은 신앙이라고 한다. 독실한 크리스찬인 그에게 신앙이 주는 마음의 평안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건강원인 셈.
따라서 그는 방송 출연 외에 국내외 간증집회나 선교 연극 등에도 열심이다. 지난 해엔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순교한 주기철 목사의 일대기를 다룬 선교연극 ‘돌박산에 핀 꽃’에서 주기철 목사역을 맡아 좋은 반응을 얻었고, 올 11월에는 2년전 창단, 대표직을 맡고 있는 극단 예사랑(예수사랑)의 작품 공연을 기획중에 있다. 또한 지난 4월부터는 극동방송‘한인수의 테마찬양’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그야말로 연기자, 신앙인으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
이와 아울러 그는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어서 현재 비정부기구(NGO)인 코리아월드비젼(선명회) 친선대사와 굿피플(Good people) 홍보대사로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들에게 사랑을 나누고 있기도 하다.
기본 중시하는 원칙주의자
한인수씨를 직접 접해본 이들은 TV에서 보여지는 것과 달리 매우 자상하고 부드럽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에겐 그 자신 스스로 인정하는 엄격한 면이 있다. 바로 법과 윤리적, 도덕적 규범의 준수다. 일례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흔한 ‘끼어들기 운전’ 같은 경우만 해도 그에겐 절대 용납이 안 되는 일이다.
“전 항상 정상적이고 반듯한 게 좋아요. 생활 테두리 속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이웃과 더불어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그래서 한때는 심각하게 이민 갈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점점 개인주의로 흐르고, 각박해지는 것 같아요. 교육, 정치도 엉망이고 치안도 갈수록 나빠지는 것 같구요. 내 질서, 내 생활 속에 충실하면 언제든지 피해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곳, 좀더 자율스럽고 넓은 곳에서 살고 싶더군요. 도의원 하고 이래저래 시간이 흐르다보니 기회를 놓쳤지만 지금도 이민에의 미련은 남아 있어요.”
그는 분명 기본을 매우 중시하는 원리원칙주의자인 듯 느껴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매우 까다롭거나 그리 딱딱한 사람인 것만은 아니다. 그가 중요시하는 건 ‘자유스러움 속에서의 질서’인 것.
“저희 가정만 봐도 상당히 자유스럽고 민주적입니다. 아이들의 경우 자기 애인 얘기까지도 시시콜콜 저에게 다 얘기하고 지내요. 아내도 제게 모든 걸 의논하고 얘기하죠. 저 역시 마찬가지구요. 그러나 그 안에서도 지킬 건 지키는 것이지요. 너무 엄하거나 사사건건 간섭하고 문제삼으면 답답해서 못살죠.”
가족은 인생의 근본 뿌리
그에게 있어 가정은 모든 일에 있어 우선이다.
“제 인생지론이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입니다. 항상 가정이 우선이죠. 가정이 평안하고 행복해야 그 속에서 모든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가정이 흔들려선 어떤 일이고 되지 않죠. 가정은 제 생활과 인생의 뿌리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그는 아내에 대한 고마움이 크다. 어려웠던 시절 인내와 헌신적 내조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6만원 짜리 보증금에 5천원짜리 사글세방부터 시작해 15번의 이사를 거쳐 겨우 13평짜리 아파트를 샀을 정도로 처음부터 어려운 살림이었죠. 한때는 아이 우유 값은 물론 버스비가 없을 정도로 어렵던 시절이 있었어요. 아내는 그렇게 어렵고 고통스운 시절, 제게 큰 힘이 돼줬던 사람이에요. 쌀 한 되 살 수 없었던 남편을 버리지 않고 데리고 살아줬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런 아내여서인지 그는 지금도 아내에 대한 불만이 전혀 없다고 한다. 그의 이어지는 아내 자랑.
“저도 비교적 검소한 편이지만 아내는 저보다 더해요. 예전에 7~ 8만원 정도 하는 옷을 한 벌 사준 적이 있는데, 글쎄 너무 비싸다고 잠을 못 자는 거예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몇 만 원짜리 바지 하나도 못 사 입을 정도였어요. 자식, 남편에게 투자하는 건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정작 본인의 치장에는 상당히 인색한 거죠.”
그렇다고 부부가 살면서 소소한 다툼이 없을 리는 없다. 그러나 그의 성격이 하루를 넘기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부부싸움시에는 되도록 빠른 시간 내에 화해하자는 원칙을 세워 놓고 있다. 시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틈이 생기기 때문.
이외에도 그는 ‘서로 존경하자’, ‘신혼초의 기분을 간직하고 살자’라는 부부생활의 기본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런 덕분인지 이들 부부는 아직도 신혼부부나 할 법한, 조금은 유치한 장난이나 농담도 곧잘 하며 산다고.
다음에 다시 태어나면 성직자 되고파
사람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관심사나 생각이 어느 정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한인수씨 역시 마찬가지. 그는 50고비를 넘으면서부터는 특히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한다. 이젠 살아온 인생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짧기 때문.
“친구들을 만나도 누가 암에 걸렸다거나, 어디어디에 좋은 치료약이 나왔다거나 하는 얘길 많이 하게 돼요. 그러면 문득문득 봄에 피는 꽃이나 가을에 지는 낙엽을 보면서도 그것들이 내 인생과 비교가 되고, 마지막이라는 걸 생각하게 돼요.”
그런 까닭에 아름답게 늙기 위하여 앞으로의 남은 날들을 어떻게 슬기롭고 멋지게 보내야 할 지에 대한 고민과, 아울러 건강한 동안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게 작용을 한다고 한다.
특히 크리스찬으로서 자신의 연기 재능을 살려 선교 연극 등 좀더 생활 속에서 신앙인으로서의 충실한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램. 그의 마지막 삶은 좀더 신앙쪽 일에 열정을 쏟고 싶다는 것.
“탤런트 입사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스크랩을 만들었는데 그걸 보니까 제 인생의 발자취가 그대로 나타나더군요. 명예나 욕망을 위해 줄달음쳤던 젊은 날에서부터, 중반 이후 위안잔치나 장학금 전달, 도서기증 등 사회적으로 좋은 일에 관심을 가졌던 거며, 도의원 생활 등의 정치행적, 그리고 좀더 나이 들면서부터 점차 생활의 중심이 되어간 종교 활동까지, 저의 삶의 궤적을 하나 하나 들여다보면서 앞으로 살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다시 한 번 태어나 제 2의 인생을 산다면 성직자가 되고 싶다.”고. 그의 신앙인으로서의 열정이 얼마나 큰지 짐작이 간다.
마지막으로 그의 간절한 소원이라며 들려주는 얘기.
“돈을 조금만 더 벌었으면 싶어요. 물론 풍족한 생활이라고 해서 꼭 남을 돕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좀 더 여유가 있다면 그늘지고 소외된 사람들, 장애인이나 보육원, 독거노인,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사랑과 함께 물질로서도 더 많은 위로와 기쁨을 줄 수 있을 테니까요.”
아름다운 이를 만난다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그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기자 역시 간절히 바래본다.
사진설명
*한인수 인물 2- SBS 여인천하 촬영이 있는 날, 분장을 하고 있는 한인수씨 모습. 그가 맡은 당추스님역이 가발을 두 개씩 써야 하고 옷도 두꺼운 편이라 더위로 고생을 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