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양희순 기자】
편안한 마음가짐, 녹즙과 버섯 복용이 암치료에 많은 도움
사람이든 짐승이든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세상에 태어남과 동시에 언젠가는 죽음이라는 생의 마감을 맞이하게 된다. 물론 살아 있는 동안 얼만큼의 시간을 어떻게 살았는지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원초적 두려움은 권력자이든 재산가이든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다. 신이 아닌 이상 그것은 인간의 가진 한계이기 때문이다.
▶간암 극복 후 사업을 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적극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안광수씨의 건강한 모습.
안광수씨는 이러한 인간의 한계에 직면해 당황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바로 간암이라는 무서운 병에 걸려 투병생활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간암 환자’라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뒤엎어 놓았다. 그리고 지금 그는 누구보다 당당하고 즐거운 삶을 살고 있다.
구로공단의 서적회사에 임원으로 근무하던 안광수씨는 호탕한 성격으로 평소 술과 사람을 좋아했다고 한다. 때문에 거의 매일 친구들이나 동료들과 술자리를 갖곤 했는데 그런 이유로 새벽녘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가곤 했다. 그러던 중 지난 91년 7월 소화가 안되고 항상 피곤해 술로 인해 위가 나빠진 줄 알고 위암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어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몇 가지 검사를 한 후 병원에서는 간경화인 것 같다면서 입원해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때까지 안광수씨는 자신이 간암 환자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하루 이틀만 병원에 있으면 다 끝나겠거니 생각했었다.
“B형 간염이 있었는데 그 때문이겠거니 생각했죠. 내가 그렇게 큰 병에 걸렸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까.”
당시 그의 간에는 지름 5.5cm 크기와 2cm 크기의 3개의 암 덩어리가 있었고, 3∼6개월 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판정을 받았었지만 가족들은 안광수씨가 혹시나 충격으로 더욱 기운을 잃을까 하여 간암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2차에 걸쳐 항암치료 받아
입원 후 각종 검사를 한 뒤 의사가 “혈관촬영을 하자”고 했단다. 혈관 촬영이라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그는 별 의심 없이 퇴원의 날만을 기다렸다고. 사실 혈관 촬영이라는 것은 색전술이라는 항암치료로 그의 암 진행상태가 해부학적으로 절제 불가능한 곳으로 수술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색전술은 사타구니의 동맥을 통하여 대동맥에 주사바늘을 통하여 가느다란 관을 간 근처까지 집어넣고 종양의 영양동맥에 색전물질을 주입하여 혈류를 차단하는 치료법으로 종양의 괴사 내지는 축소를 꾀하는 치료법이다.
문맥혈과 동맥혈의 이중 혈류를 받는 정상 간조직과는 달리 간암은 거의 대부분 동맥혈로만 혈류를 받고 있어 이를 차단하면 암 조직만 선택적으로 괴사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치료법은 동맥을 구멍을 내기 때문에 지혈을 하기 위해서 똑바로 누워서 그 곳을 최소 6시간 이상 누르게 되는데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너무 힘들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다 받는 검사쯤으로 생각했죠. 그런데 1개월 후에 그 검사를 다시 하자는 거예요. 그래서 그 검사는 더이상 하지 않겠다고 했죠.”
그때 의사가 그의 아내를 불러 항암치료를 받지 않으면 6개월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단다. 그래서 그의 부인은 2차 항암치료를 하기 위해 간암이라는 사실을 그에게 알려 줬다고.
“이게 왠 날벼락인가 당황했습니다. 그 느낌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겠습니까? 그건 당해 본 사람만 알 거예요.”
처음엔 그도 ‘암이니까 이제 죽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또 병원에 있으니 ‘설마 살 수 있겠지’하는 기대감도 들고 자신의 마음을 종잡을 수 없었다고 한다.
수술을 할까 했지만 암세포가 수술이 불가능한 곳에 있어 수술을 할 수도 없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고. 의사는 “지금 상태로 봐서 색전술을 시행하는 것만도 다행으로 생각해야 된다.”면서 계속 항암치료를 할 것을 권했다고 한다. 하지만 항암치료의 고통은 너무나 끔찍했다고.
“소화도 안되고, 속이 따갑고 거의 1개월 동안은 식사도 잘 못하고 그랬어요. 2차에 걸친 항암치료를 받고 어차피 누구나 죽음 앞에 서게 되는 것 담담하게 받아들이자고 생각했죠.”
그 뒤 안광수씨는 담담한 마음으로 퇴원을 결심했다고 한다. 항암치료를 받는 것은 생명의 연장일 뿐이지 참다운 삶이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버섯균사체와 효모의 복용으로 나날이 건강 좋아져
퇴원 후 그는 가벼운 산책과 함께 식이요법을 병행했다고 한다. 특별히 ‘이건 안돼’하는 식의 식이요법이 아니라 간에는 야채가 좋다는 말을 듣고 매일 녹즙을 복용했으며, 버섯이 좋다는 말을 듣고 버섯을 먹었다고.
또 암에는 맵고 짠 음식이 좋지 않다고 하지만 워낙 그러한 음식을 좋아하는지라 ‘억지로 싱겁게 먹어 스트레스를 받느니 차라리 편안하게 지내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 자신의 입맛에 맞게 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육고기, 꽁치 고등어 등 등 푸른 생선을 먹지 않았고 굴, 조개, 꽃게 등을 섭취했다고. 그렇게 야채와 버섯을 먹으면서 특별히 과식하지 않고 고기를 먹지 않는 것만으로 식이요법을 대신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아는 사람을 통해 간암을 이긴 사람들의 모임인 ‘밀알회’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 전까지는 그냥 편안하게 제 현실을 받아들였지요. 가족들도 거슬리게 하지 않으려고 편안하게 저를 대해 주었고요. 그런데 밀알회를 통해서 다른 투병환자의 말을 듣고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살기 위해 가족과 함께 열심히 노력했죠.”
그는 그곳에서 추천해주는 ‘버섯균사체’와 ‘효모’ 등을 꾸준히 복용했는데 몸이 나날이 좋아지는 것이 느껴졌다고 한다.
곰팡이의 일종인 버섯은 엽록소가 없으며 약 3∼4개월간 홀씨가 발아하여 일종의 곰팡이인 균사체로 숙성된 후 버섯의 자실체(꽃, 열매에 해당)를 생성시키는데, 버섯균사체는 각종 성인병을 예방하고 면역력을 높여주며, 암을 치료하는데 효과적인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복용을 하게 되었다고.
“얼마 후 다시 검사를 한 결과 암 크기가 줄었다는 소식을 들었죠. 그때의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식이요법과 건강보조식품을 복용하면서 등산을 시작한 안광수씨는 1년 후 간암이 거의 완치되었고 4년만에 간염 항체가 생겨 더 이상 암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고 생활하게 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가족의 도움이 우선되어야 해
건강을 완전히 회복한 안광수씨는 2년 전 경기도 일산에 인쇄회사를 설립해 감사로 일하며 적극적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암 선고를 받기 전에는 매일 취하도록 술을 마셨지만 지금은 절대로 과음을 하지 않는다면서 무조건 ‘부어라 마셔라’하는 것보다는 적당하게 즐길 줄 아는 것이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또한 몸이 나아지면서 시작하게된 등산은 전에는 피곤하지 않을 정도로만 했었으나 꾸준히 시행한 결과 지금은 5∼6시간을 걸어도 끄떡없다고. 요즘은 일요일마다 건강을 위해 산에 오르고 있다면서 “왠만한 젊은이 못지 않아요”라며 자랑을 한다.
지금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안광수씨. 그러한 그가 있기까지 가족들의 힘이 컸다고 한다.
가족들은 그를 암환자로 대하지 않지만 사소한 일에도 충격을 받지 않을까 하여 자신을 편안하게 해주려고 노력했다고.
“암환자라고 부산을 떨면서 ‘울고불고’했다면 제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보다는 조용히 저를 지켜보면서 간암에 좋다는 여러 가지 음식과 보조식품들을 준비해 주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부인은 좋은 환경을 위해 공기가 맑은 산본으로 이사를 갔을 정도라고. “그때는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는 행복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투병 생활을 하면서 다른 환자들 중에 가족들의 외면으로 자포자기한 채 생활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는 것. 하지만 환자에게 가장 힘이 되는 것은 역시 가족인 만큼 가족들의 진심 어린 협조가 투병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것임을 강조한다.
또한 암은 외부의 환경 오염과 각종 인스턴트 식품 뿐 아니라 스트레스로부터 온다면서 평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은 죽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긍적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암 선고를 받고 그것을 극복한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는 자신이 환자라는 생각보다는 ‘평범하게 늙어 가는 한 가정의 가장’ 이라는 생각 뿐 다른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느 가장들처럼 자연스럽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것.
“요즘은 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큰 기쁨입니다. 지금처럼 가정이 편안하고 모두 건강하게 지내는 것이 앞으로의 소망입니다.”라고 말하며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