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정희 기자】
【도움말 | 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김재현 교수】
자영업을 하는 문상용 씨(42세ㆍ남)는 언젠가부터 늘 머리가 아프고 감기를 달고 산다. 힘이 없고 배가 고픈 것도 못 참아 주변의 눈총을 받기 일쑤다. 식사 때가 되기 전부터 공복감이 심해 손이 떨리고 식은땀이 난다. 이러한 증상 때문에 급하게 밥을 찾곤 해 별명이 ‘밥도둑’이 됐다.
그의 가족과 친구들은 그가 밥을 찾아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보고 웃지만 밥은 그에게 절실하다. 웃음거리가 되던 그가 병원에 가서야 알게 된 증세는 ‘저혈당증’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병으로 유명한 저혈당증은 인슐린 분비에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다. 모른 채 가만 두다간 몸은 물론 마음까지 상처받는 이 병,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
혈액 속 당의 농도가 뚝 떨어지면 저혈당?
자동차는 석유 에너지로 달리고, 컴퓨터는 전기 에너지로 일한다. 우리 몸도 이처럼 활동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뇌는 포도당에서 에너지를 얻어 일을 한다. 정상인의 혈당은 공복 시 70~100mg/dl, 식사 2시간 후에는 140mg/dl 정도다. 이를 넘지 않고 일정하게 유지된다.
그런데 만약 혈액 내 당이 줄어들면 어떻게 될까? 뇌기능도 떨어지므로 위험한 상태에 이른다. 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김재현 교수는 “다른 조직은 당이 없더라도 유기지방산 등을 당으로 바꾸어 쓰지만 뇌세포는 그렇지 못하다.”면서 “당이 40~50mg/dl 정도로 떨어지면 마치 산소가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치명적인 기능 저하가 나타나게 된다.”고 말한다.
이처럼 혈액 속의 당의 농도가 낮아지는 급박한 상태를 저혈당증이라고 한다. 저혈당증이 나타나는 혈당치는 일정하진 않지만 일반적으로 50mg/dl 이하인 경우를 저혈당증으로 간주한다.
당뇨병이라고 하면 고혈당을 떠올리게 된다. 저혈당이라는 것은 상대적으로 생소하게 들릴 수 있다. 고혈당은 아주 높지 않으면 당장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저혈당은 50mg/dl 이하인 상태가 몇 시간 지속되면 뇌사, 중풍, 심장 손상을 동반하기 때문에 더 위험할 수 있다.
당뇨병 환자는 혈당 조절이 잘 되지 않는다. 균형 자체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높은 혈당을 낮추는 기능뿐 아니라 낮은 혈당을 높이는 기능도 떨어진다.
따라서 저혈당증은 당뇨병 환자에게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위험한 합병증 중 하나다. 당뇨인 50% 이상이 한 달에 한 번 이상, 25% 이상이 일 년에 한 번 이상 꼴로 심한 저혈당 증상을 겪는다고 한다.
당뇨병 환자나 그 전 단계에서 주로 발병?
주로 당뇨병 환자에게 잘 나타나는 저혈당증. 당뇨병 치료 과정에서 인슐린을 지나치게 많이 투여하거나, 경구 혈당강하제를 과도하게 복용해 걸릴 수 있다. 그 외에도 식사를 제대로 못해 당분 섭취가 부족하거나, 운동을 갑자기 많이 해 당분 소모가 많아지는 경우에 잘 발생한다. 당뇨병 환자가 운동을 할 때 손발이 떨리고 힘이 없어지며, 현기증이 난다면 운동을 즉시 멈춰야 한다.
당뇨병 환자가 아니라도 저혈당증에 걸릴 수 있다. 술은 종종 저혈당을 유발한다. 특히 만성 영양실조 환자나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당량을 마시면 증세가 나타난다. 알코올은 간에서 포도당 합성뿐만 아니라 혈중 포도당 배출도 줄이기 때문이다.
또 장기간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그렇다. 항인슐린 호르몬의 일종인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들이 지속적으로 분비되다가 분비 기능에 이상이 나타나면서 분비량이 줄어든다.
갑상샘 기능이 떨어졌을 때도 저혈당증이 지속적으로 나타날 여건이 만들어진다. 여성은 월경 중, 임신 초기, 출산 뒤에 저혈당 빈도가 높다.
심하면 뇌손상, 사망에 이르기도
잘 알아채고 조치를 취해야 하는 저혈당증.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첫 반응은 배가 고파서 무언가 먹고 싶어진다. 온몸이 떨린다. 기운이 없으며 식은땀이 난다. 심장이 쿵쿵 뛰고 불안해지며, 입술 주위나 손발 끝이 저릿저릿하다.
이러한 증상은 우리 몸이 위급하다는 경보 역할을 하는 교감신경의 작용이다. 또 뇌세포가 정상적인 기능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피로감, 짜증스러움이 나타난다. 더 진행되면 두통, 졸음, 사물이 두 개로 보이고 눈앞이 아득해진다. 경련이나 정신을 잃는 심각한 상황도 발생한다.
김재현 교수는 “증상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며 “혈당이 심각하게 낮지 않은데도 증상을 심하게 느끼기도 하고, 혈당이 많이 낮은데 증상을 크게 못 느낄 수도 있다.”고 말한다. 특히 저혈당을 자주 겪은 사람은 수치가 많이 낮은데도 잘 못 느낄 확률이 높다.
김재현 교수는 “증상을 잘 못 느끼는 저혈당증은 덜 불편해 안심할 수 있지만, 더 무서운 것”이라고 경고한다. 느끼지 못하다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치료하지 않고 수 시간 방치하면 나중에 회복되더라도 뇌기능이 손상돼 식물인간이 될 수 있다.
저혈당 때문에 힘들다가 괜찮아졌다 하더라도 안심은 금물이다. 반복해서 저혈당이 온다면 나이가 젊어도 뇌손상으로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따라서 저혈당증은 당뇨병 환자라면 필수적으로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가능한 한 증상 초기에 신속하게 대처하도록 한다.
빠른 대처와 예방이 중요
저혈당증 증상을 보이면 어떻게 대처할까? 의식이 있는 환자라면 빨리 당분이 있는 음식을 섭취한다. 김재현 교수는 “이때 설탕물이나 과일주스 같이 액체로 된 것이 흡수가 빠르다.”고 추천한다. 초콜릿은 권하지 않는다. 기름이기 때문에 빨리 당으로 바뀌지 않는다. 증상을 걱정하며 아이스크림이나 빵 등 몸에 좋지 않은 고지방, 고탄수화물 식품을 많이 먹는 경우가 있다. 빠르게 당을 올릴 수 있지만 몇 시간 후 다시 빠르게 저혈당이 올 수도 있다.
운동 중에도 종종 저혈당이 오는데 이를 예방하려면 식사 후 30분~1시간 정도 지난 후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이때가 가장 혈당이 높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인슐린 주사를 맞고 있는 환자라면 운동 시작 1시간 전에 맞는 것이 좋다. 인슐린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날 때 운동을 하면 혈당이 떨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만약 저혈당증에 빠진 환자가 의식이 없는 경우라면 즉시 응급실로 내원해 수액으로 포도당을 공급받아야 한다.
저혈당증 치료는 먼저 원인을 찾는 게 급선무다. 당뇨병 환자가 아닌 건강한 사람이 갑자기 저혈당증을 호소한다면 원인 질환을 빠르게 찾아야 한다. 그 외에 인슐린 종양은 수술을 하면 저혈당증이 없어지고, 위를 절제한 다음에 오는 저혈당증은 생활습관을 바꿔주면 된다. 이때는 식후에 저혈당증이 오는 것인데, 아주 천천히 먹으면 개선할 수 있다.
당뇨병 환자나, 아직 당뇨병이 오진 않았지만 그 전 단계나 마찬가지인 인슐린 분비 기능에 문제가 생겨 저혈당증 증상을 보이는 경우는 몇 가지 주의사항을 기억해 둔다.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당뇨병으로 진행되거나 이미 당뇨병 환자라면 병이 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재현 교수는 “매일 수시로 혈당을 측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어서 인슐린 분비 능력에 무리가 되지 않게 음식을 여러 번 나눠 먹는다.
이때 저혈당이 오지 않게 단백질 섭취 비율을 약간 늘린다. 밤에 잠자는 동안 공복인 상황에서 인슐린 분비 기능에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보다 저혈당이 잘 나타날 수 있다. 자기 전 탄수화물과 양질의 지방, 단백질 위주의 간식을 약간 먹어 혈당을 유지한다. 저혈당증의 자기 관리, 즉 예방과 치료는 특별한 경우 외에는 당뇨인 자신이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한다.
TIP. 위험천만 저혈당증 똑똑한 예방법
1. 자주 혈당을 측정해 본다.
2. 인슐린이나 내복약의 분량과 사용 시간을 잘 지킨다.
3. 식사 시간을 지킨다. 식사를 못하게 될 경우 약 용량을 줄인다.
4. 장거리 달리기나 등산 등 하지 않던 과격한 운동은 피한다. 부득이한 경우 미리 당분이 들어 있는 음식을 챙겨 간다.
5. 오랜 시간 외출할 때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당뇨 회원증이나 당뇨 수첩을 휴대한다.
김재현 교수는 서울대학교병원 내분비-대사내과와 서울대학교 보라매병원 내과를 거쳤다. 현재 대한내분비학회 수련위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