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은혜 기자】
“음식의 힘은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확실한 원인도 몰라, 명쾌한 완치법도 없어 고통스러운 증상 백반증. 백납이라고도 불린다. 피부가 하얗게 변색되면서 얼룩덜룩 얼룩을 남기는 증상이다. 의학적인 정의는 “멜라닌 세포의 파괴로 여러 가지 크기와 형태의 백색 반점이 피부에 나타나는 후천적 탈색소성질환”으로 명명돼 있다. 이러한 백반증은 사실 통증도 없고 가렵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미용상 심각한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얼굴에, 눈썹에 하얗게 변색된 점, 설상가상 그것이 점점 커지면서 얼굴, 혹은 몸 이곳저곳을 변색시키는 까닭이다. 그래서 말 못할 고통을 안겨주는 증상 백반증. 눈부신 현대의학으로도,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레이저 치료로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 백반증을 조금 독특한 방법으로 이겨낸 사연을 들어봤다.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에서 외곽으로 조금 벗어나자 띄엄띄엄 민가가 몇 채 보이고, 숲으로 둘러싸인 곳에 작은 집 한 채가 나타났다. 정갈한 마루, 하얀 수건을 머리에 쓰고 있는 모습이 고운 인상을 풍기는 사람. 이재순 씨(76세)였다. 그녀는 이곳에서 세상의 모든 욕심 다 내려놓고 소박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주인공이다.
평범한 일상이 주는 행복의 가치를 너무나 잘 알기에 오늘의 이 평온함이 너무나 감사하다는 이재순 씨.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이마의 하얀 점
정말 어느 날 갑자기였다. 아무런 통증도 없었다.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게 불현듯 나타났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왼쪽 이마에 모습을 드러낸 백반증은 그렇게 이재순 씨 삶 속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그 속도가 무서웠다. 아침에 눈 뜨기가 두려울 지경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이마에서 눈썹, 눈밑까지 확확 번지는 데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군요.”
부랴부랴 피부과부터 찾았다. 백방으로 수소문 한 끝에 용하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 피부과. 광선치료, 약물치료, 주사, 레이저… 다양한 치료법이 총동원되었다. 하지만 백반증은 별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점점 번져갔다.
안 되겠다 싶었다. 그때부터 좋다는 치료법은 모조리 다해봤다. 한의원에 가서 침도 맞고 수지침 놓기, 뜸뜨기 등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좀체 낫지 않았다. 그렇게 1년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이마에서 시작된 백반증은 눈밑까지 번져 있었고, 이재순 씨의 절망도 깊어갔다.
“이 병원, 저 병원, 용하다는 한의원까지 두루 다녀봤지만 하나같이 ‘반드시 고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 너무 속상했어요. 다들 ‘어려운 병에 걸렸다.’는 말만 하는데 그게 더 답답하고 절망스러웠어요.”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문득 전해진 소식 하나! 그것은 ‘신의 축복’과도 같은 일이었다고 회고한다.
음식에서 희망을 보다
뜻밖의 소식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전해졌다. “동생의 남편이 서울에 있는 유명 사립대 교수였는데 어느 날 문득 먹을거리를 한 번 바꿔보라고 권하더군요. 요로법에 관심이 많아 연구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이 연구모임에서 제 얘기가 나오자 회원 중 한 명이 현미생채식을 한 번 해보라고 귀띔했다더군요.”?
이때부터 이재순 씨는 조금 독특한 식사법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아침은 굶고, 점심은 현미밥 혹은 보리밥에 생채식 위주로 먹기 시작했다.
“집에서 해먹기 번거로워 현미채식식당에 가서 늘 식사를 했어요. 그곳 음식은 조미료도 거의 사용하지 않아 자극적인 맛이 없고, 야채 중심으로 차린 소박한 시골밥상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곳 현미생채식을 치료식으로 활용한다는 말을 들어서였습니다.”
무엇보다 들어서자마자 들었던 주인 아주머니의 말은 이재순 씨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고 말한다.
“백반증은 문제도 아니라며 현미채식을 하면서 체질이 개선되자 백반증은 소리없이 없어지는 것을 많이 봐왔다고 하더군요. 그 말씀은 제게 큰 힘이 됐어요. 어디 한 군데 속 시원히 낫는다는 말을 못 들어봤는데 먹는 밥을 바꾸면 나을 수 있다는 말이 허황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큰 위로가 되더군요.”
그래서 한 번 실천해보기로 했다. 이때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식당에 가서 현미채식 식사를 했다. 현미밥이나 보리밥에 청국장과 싱싱한 채소, 다시마, 단호박, 피망, 쌈채 등과 마, 우엉, 연근 등 각종 나물로 차려진 밥상을 먹기 시작했다. 저녁에는 현미떡과 간단한 과일로 대신했다.
그렇게 2개월 정도 흘렀을 때였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자고 일어나면 확확 번지던 백반증이 딱 멈췄던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빛깔도 변해 있었다. 너무나 기뻤다. 세상이 달라 보였다. 비로소 살맛이 났다.
“사실 제가 평생 종교인으로 살아온 사람이에요. 그래서 외모가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어요. 그런데 백반증이 나타나자 그게 아니더군요. 남에게 추하게 보인다는 게 또 다른 스트레스를 주면서 마음에 커다란 상처가 되더군요. 그랬던 백반증이 멎으니까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습니다.”
흔적은 조금 남았지만 그래도 행복해~
그로부터 7년 남짓 지난 지금, 이재순 씨의 백반증은 어떻게 됐을까? 얼핏 보면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이마 부위에 흔적은 조금 남아 있다.
하지만 이재순 씨는 걱정하지 않는다. “이마에 조금 남아 있어도 걱정 안 해요. 눈밑까지 내려왔던 때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너무나 감사한 일이니까요.”
그것은 모두 먹는 음식의 덕분임을 이재순 씨는 너무나 잘 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녀의 삶에도 중요한 덕목 하나가 자리잡았다.
먹는 것이 곧 근원적인 약이 된다는 깨우침이 그것이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살리는 하늘의 일로서 참으로 거룩하고 우주적인 기적으로 여긴다. 절대로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까닭에 음식 하나를 먹을 때도 소중한 친구처럼 여긴다는 이재순 씨. 비록 예전처럼 철저한 현미채식을 실천하지는 못하지만 음식은 되도록 소박하게 먹고, 적게 먹고, 감사하며 먹는다. 말없이 우리 생명을 살려주는 고마운 존재임을 뼈저린 경험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