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나이 들수록 균형 잡힌 소식하세요!
건강한 사람은 모르겠지만 병치레 좀 했다는 사람은 공감할 것이다. 병을 고치러 간 병원에서 때론 피로를 잔뜩 얻어서 올 때도 있다는 것을. 병원에 가서 이 검사, 저 검사를 받고 이 진료과 저 진료과를 전전하는 경우다. 정확한 진단을 하고 제대로 된 치료를 하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아픈 몸을 이끌고 넓은 병원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니는 것은 절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노인이라면 더 그렇다. 최근 이대목동병원 가정의학과 이홍수 교수가 중심이 되어 설립한 노인의학센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누가 뭐래도 백세 시대다. 누구나 노인이 되며 나이 들면 아픈 곳도 많아진다. 이는 이홍수 교수가 한평생 노인 건강에 열정을 쏟은 이유이기도 하다. 노인의학 전문가 이홍수 교수를 만나 건강한 노년의 조건을 들어봤다.
노인의학 한길 인생
20년 가까이 걸렸다. 1998년, 미국 로체스터의과대학 연수 시절이었다. 이홍수 교수는 노인의학 시스템이 잘 구축된 그곳에서 노인의학을 배우고 경험할 기회를 얻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노인의학 시스템을 갖추고 싶었다.
귀국한 후에는 노인의학에 뜻이 있는 의사 몇 명과 노인의학연구회를 만들어 한국식 노인의학의 초석을 닦았다. 그 후로도 대한임상노인의학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가운데 마음껏 노인의학을 연구하며 뜻을 펼쳤다. 몇 년 전까지는 서울특별시 서남병원에서 백세건강센터를 운영해 지역사회 노인질환의 예방과 치료 및 재활에 힘을 보탰다.
이러한 열정의 결과물이 올해 4월 이대목동병원에 문을 연 노인의학센터다. 노인의학센터가 생소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실제로 노인을 전문으로 하는 의학센터는 전국에 몇 개 되지 않고, 있다고 해도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아 더 의미가 있다.
“노인 환자는 여러 진료과에 걸친 다양한 의학적 문제를 가지고 있어 포괄적인 진단 및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노인의학센터에서는 노인 전담 가정의학 주치의가 상주해 진료를 봅니다. 또한 자원봉사자를 통해 진료, 검사, 수납 등을 헤매지 않고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 병원 내 체류 시간을 줄여주고 있습니다.”
이홍수 교수는 노인이 될수록 주치의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노인질환은 여러 질병이 같이 오고 증상도 모호하다. 어떤 병이든 식욕이 떨어지고, 기력이 없고,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증상이 생기는 식이다. 병이 여러 가지면 약도 여러 가지를 먹기 때문에 약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자신을 잘 아는 주치의가 있다면 증상의 원인을 찾는 일도, 약 부작용을 예방하는 일도 쉬워진다.
그래서인지 노인의학센터의 출발은 산뜻하다. 폭발적으로 환자가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다녀간 환자는 대부분 만족하고 돌아간다. 노인의학센터를 주변에 알리겠다는 환자도 있다. 이런 반응은 이제 적절한 노인 맞춤 진료가 필수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균형 잡힌 소식은 건강한 노화의 기본
백세시대라지만 ‘골골백세’가 많은 것은 노인의학이 필요한 이유이자, 뼈아픈 현실이다. 누구나 늙지만 건강하게 늙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 있다. 이홍수 교수는 단연 ‘균형 잡힌 소식’을 권한다.
“나이가 들수록 균형 잡힌 소식이 중요합니다. 지방, 탄수화물 위주의 음식 섭취는 줄이고 미네랄과 비타민이 풍부한 음식을 자주 드셔야 합니다. 균형 잡힌 소식은 건강한 노화의 기본 축입니다. 또한 적극적으로 사람을 자주 만나고 교감하면서 사는 것이 좋습니다. 대인관계가 왕성하면 스트레스 예방은 물론 치매까지 예방할 수 있습니다.”
아침을 운동으로 여는 남자
균형 잡힌 소식과 대인관계가 건강 장수의 비결이라면 건강 장수의 가장 큰 적, 암 예방법은 무엇일까? 이홍수 교수는 암을 예방하기 위해 다음의 9가지 생활습관을 제안한다.
1. 과다한 지방 섭취를 피해야 한다. 특히 동물성 지방을 피해야 한다.
2. 짜지 않게 먹어야 한다.
3. 항산화 물질이 풍부한 채소와 과일을 자주 먹는다.
4. 소시지, 베이컨 등 가공한 육류 섭취를 피한다.
5. 규칙적으로 생활한다.
6. 규칙적으로 운동한다.
7. 물을 많이 마신다. 하루에 1.5리터 이상은 마셔야 한다.
8. 오래된 식재료로 음식을 해먹거나 냉장고에 오래 보관한 음식을 먹는 일을 피해야 한다. 곰팡이가 생겼을 수 있다.
9. 피부를 햇빛에 과도하게 노출되지 않게 한다.
균형 잡힌 소식이 건강한 노년을 보내는 데 중요한 식습관이라고 강조하는 이홍수 교수! 이홍수 교수 역시 균형 잡힌 소식을 실천하고 있다. 가볍게, 가볍게, 더 가볍게가 이홍수 교수의 하루 식단이다. 아침은 간단히 먹는다. 병원에서 먹는 점심도 가볍게 먹으려고 노력한다. 심지어 저녁식사는 작은 토마토 4~5개와 치즈가 전부다. 회식에 가도 채소 위주로 먹고 나온다.
“조금만 과식해도 살이 찌는 체질이라서 식단 조절에 신경 쓰고 있습니다. 가볍게 먹어도 영양을 골고루 챙기려고 노력합니다.”
60세를 바라보는 나이지만 특별히 아픈 데가 없다는 이홍수 교수는 소식도 모자라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을 1시간 넘게 한다.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은 수영하고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은 달리기와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
“수영은 스스로 강도를 조절할 수 있고, 충분한 유산소운동과 근력운동이 됩니다. 또 하나 수영이 좋은 점은 명상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수영 시간은 몸은 쓰고 있지만 여러 가지 머릿속에 엉킨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명상 시간입니다.”
이홍수 교수의 이러한 건강한 습관에는 공통점이 있다. 여지를 남기는 것이다. 꼭 매일 운동한다, 소식해야 한다는 생각은 자신을 옥죄는 강박감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그래서 반드시 해야 한다기보다는 그러려고 노력하는 식이다. 이러면 지키기 어려울 것 같지만 반대다. 부담이 없으니 지키기가 쉬워진다.
환자에게 귀를 활짝 여는 의사
노인의학 분야 국내 최고 명의로 꼽히는 이홍수 교수는 제자에게 전수하는 진료 노하우도 평범하지 않다. 이홍수 교수는 제자에게 문제의 답은 환자가 쥐고 있다는 말을 꼭 한다. 환자가 왜 아프다고 생각하는지, 왜 그렇게 생각을 하는지 등 환자가 생각하는 병의 시나리오를 들으면 더욱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사의 귀가 열려야 제대로 된 치료의 길이 열리는 것을 경험한 이홍수 교수 역시 환자를 진료할 때 이 점은 꼭 지키려고 노력한다.
시작 단계인 노인의학센터가 노인의학의 꽃을 피우는 씨앗이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다만 그곳에 환자 소리에 귀를 연 의사가 많다면 생각보다 노인의학이 더 빨리 우리 삶에 안착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