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서울메디칼랩 김형일 의학박사】
Q 사장은 강남의 큰손으로 사채시장에 이름나 있다. 한때는 강남 일대와 서울 근교에 부동산 투자로 거금을 굴렸었지만 지금은 주식시장에만 조용하게 알려져 있다. 그의 일상은 여행과 골프였다. 몇 달 전 골프장에서 넘어져 긴급히 A대학병원으로 실려 갔다.
뇌혈관장애(중풍)나 신경기능장애를 맨 먼저 의심하여 CT촬영을 하였으나 별다른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Q 사장은 배도 아프고 소변이 탁하고 거품도 심하였다. 피곤증, 현기증, 두통, 구역질 등이 동반되었다. 그래서 또 MRI촬영까지 하게 되었다. 그것을 받고 나니 이제는 더 죽을 것만 같았다. 눈알이 빠지는 듯 아프고 귀에서 소리도 나고 너무나 피곤하고 온몸이 아파 움직일 수가 없었다.
혈액검사에서는 몇 가지 검사항목 수치가 정상치의 상한선까지 올라가 있었고, 혈당치가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고혈당증 치료를 시작하자마자 이내 증세가 호전되었다. 그러나 수일이 지나자 다시 피곤증이 더 심하게 느껴졌다. 혈당치도 더 올라갔다. 당뇨병 치료약을 더 올렸지만 증상은 더욱 나빠졌다.
혈액정밀분석(Hematologic analysis) 결과 Q 사장은 췌장선암(腺癌 adenocarcinoma)으로 판명되었다. 그래서 췌장기능이 떨어지고 인슐린 분비량이 감소되었던 것이다. 피로와 두통, 당뇨병 등은 췌장암의 단순한 증상들에 불과했던 것이다.
암이 초기에 발견되었으므로 개복 수술의 필요성은 적었다. 우선 항암제 치료를 받기로 했다. 화학요법 치료를 받는 동안에 무척 괴로웠으나 그 후 병세는 놀라울 정도로 호전되었다. 화학요법만으로도 암이 관리되었던 것이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강남 사채시장의 큰손으로 군림하고 있다. 다만 가끔씩 혈액정밀검사를 받아볼 뿐이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사망원인은 혈관장애와 악성종양, 그리고 성인병이 Big3로 되어 있다. 혈관장애나 성인병의 첫 시작 증상은 아무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암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그저 만성피곤증(Chronic fatigue syndrome)으로 나타날 뿐이다. 그런 것들은 구조적·형태적 변화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성능과 성분의 변화가 생기거나 어떤 물질이 좀 더 많아지거나 좀더 줄어드는 기능과 상태의 변화가 가만히 찾아올 뿐이다.
정상세포로부터 변이된 암세포는 정상세포 시절에는 내보내지 않던 암세포 특유의 정보 기미(Scent)나 흔적 등을 핏속으로 흘려 내보낼 수밖에 없다. 이런 것들을 ‘암표지자(tumor-marker)’라 한다. 이 흔적을 추적하여 암을 재빨리 알아내는 방법을 바로 ‘혈액정밀검진(Hematologic assay)’이라고 하며 조기암 발견에 이용되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다른 더 비싸고 어렵고 힘들고 거대한 검사를 해야만 암을 빨리 찾는 것인 줄로 착각하고 있으나, 실상 CT나 MRI 등은 암이 훨씬 더 커진 다음에야 확인될 수 있는 것이다. 큰 사고가 없는 한 인간은 대부분 암과 성인병으로 인생을 마감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정기적인 혈액정밀검사로 그 시작과 진행을 알아볼 수 있다. 아주 거대하고 비싼 검사를 해봐야만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