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기옥 기자】
【도움말 |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민수 교수】
300여 명의 희생자를 낸 세월호 사건. 특히 어린 학생들의 희생이 커서 전 국민이 안타까워하며 슬픔에 잠겨 있다. 사회 안전망과 구조적인 문제 등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꽃다운 나이에 그 어떤 구조의 손길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차가운 물속에서 고통 받았을 어린 학생들을 생각할 때 희생자 가족만이 아니라 전 국민이 크나큰 우울과 불안, 죄책감, 그리고 뼈저린 슬픔을 느끼며,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세월호 집단 트라우마’ 또는 ‘집단 우울증’이라 부르며, 희생자 가족만이 아니라 이를 위한 치료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우울증을 이겨내는 방법, 멘탈테라피는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엄청난 재난 목격이 심각한 우울증으로
“세월호 사건을 생각할 때마다 너무 우울하고 눈물이 나고 너무 괴로워요.” “물속에서 고통 받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인터넷에서는 세월호 사건으로 인한 우울증 때문에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글들이 넘쳐나고 있다. 실시간으로 구조상황을 지켜보면서 기대했던 구조소식은 끝내 듣지 못하고 결국엔 참사의 현장을 목격한 셈이 되면서 우울과 불안, 무기력감과 죄책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인간관계의 어려움이나 사건·사고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감을 느낄 수 있고, 이는 매우 정상적인 반응이다. 이때 잠시 슬럼프 상태에 빠지더라도 우리는 다시 활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회복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장기간 계속될 때는 문제가 될 수 있다.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민수 교수는 “고무줄이 지나치게 늘어나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지 못하듯이 침울한 기분이 비정상적으로 오랫동안 계속된다면 우울의 증상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의학적으로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 동안 우울한 기분을 느끼는 상태가 2주 이상 계속된다면 우울증으로 진단하게 된다.
내 우울증은 어떤 모습? ‘가면우울증’도 놓치지 말자!
우울감이 오랜 기간 계속되는 것 외에 우울증에는 다른 어떤 증상들이 나타날까? 모든 병이 다 그렇듯 우울증 역시 빠른 진단과 치료가 매우 중요하기에 우울증의 다양한 증상들을 알아두면 자신에게나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니 참고하자.
우울증의 핵심 증상은 ▶부정적인 기분이다. 즉 단순히 우울하다고 느끼는 것만이 아니라 개운치 않은 기분, 쓸쓸함, 희망이 없다는 생각 등 여러 가지로 표현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울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면 안심해도 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은 서양인과 비교했을 때 많은 사람이 우울한 기분보다는 ▶두통 ▶가슴 통증과 복통 ▶소화불량 ▶어지러움 등의 신체 증상을 더 많이 호소하는 편이다. 우울증이 가면을 쓴 것처럼 신체 증상 뒤에 숨겨져 있다고 하여 이를 ‘가면우울증’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런 증상이 있을 때도 세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이민수 교수는 “활동량이나 입맛, 몸무게, 수면 패턴의 변화는 스스로 쉽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살펴보는 것이 우울증 조기 자가진단에 특히 적합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우울증이 심해지면 집중력과 주의력이 떨어지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죄책감이 나타나 가정생활과 학업, 그리고 직장에서의 업무 수행에 지장을 준다. 이뿐만 아니라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이런 시도도 하게 되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
따라서 위와 같은 정신적, 심리적, 신체적 증상을 느끼게 되면 전문의를 찾아 상담을 받고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마음의 감기’ 우울증을 해소할 멘탈테라피~
이민수 교수는 두 가지 이유에서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한다. 첫째, 10명 중 1명은 우울증에 걸린다는 연구보고가 있을 정도로 우울증이 감기처럼, 생각보다는 매우 흔한 질환이기 때문이다.
둘째, 우울증은 천의 얼굴을 가진 질환이기 때문이다. 마치 감기에 걸리면 병명은 하나이지만 몸살, 콧물, 코막힘, 가래, 기침, 목의 따가움 등 여러 증상을 호소하는 것처럼 우울증 역시 우울한 기분 외에도 식욕, 수면, 집중력, 판단력, 기억력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감기 같은 우울증. 일상에서 우울감을 덜어내는 방법과 우울증을 치료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1 ‘부정적인 기분’ 해소로 우울감 덜기
우울증의 핵심 증상은 ‘부정적인 기분’이다. 우울감을 느끼게 하는 원인을 파악해 이러한 기분을 덜어낼 수 있다면 우울증도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부정적인 기분으로 이끄는 사고나 생활방식을 긍정적인 기분으로 이끄는 것으로 변화시킨다면 이것이 곧 일상에서의 우울감을 덜어낼 수 있는 멘탈테라피가 될 것이다.
부정적인 기분이 들었을 때 그것에 골몰하지 않도록 하고, 기분을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노력을 해보자. ▶ 좋은 기분이 들게 했던 음악을 기억해 두었다가 이런 때에 들으면서 기분 좋았던 때의 마음을 떠올려보자. ▶ 웃을 기회를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다. 웃음은 우울증에도 큰 효과가 있다. 웃으며 보았던 개그 프로나 책, 영화 등을 보면서 자신에게 웃음을 선사해보자. 우울감이 줄어들 것이다. ▶ 햇볕을 받으며 걷자. 가벼운 산책을 하며 햇볕을 쬐면 엔도르핀이 증가해 우울감을 덜어준다.
2 ‘가면우울증’ 퇴치로 우울증 덜어내기
우울감만이 아니라 신체적인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는 우울증. 이러한 우울증 치료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꾸준한 운동과 균형 잡힌 식사이다. 특히 운동을 통해 신체 건강이 향상되면서 우울한 기분을 개선해주기 때문에 운동은 우울증 치료는 물론 예방에도 큰 효과가 있다.
이민수 교수는 “운동의 종류보다는 꾸준하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각자의 신체 건강, 선호도, 접근 가능성을 고려해 유연하게 운동을 선택하라.”고 조언한다.
음식의 경우 편식을 피하고 골고루 영양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 이민수 교수는 “흔히 우울증 완화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오메가-3의 경우에는 아직 효과에 대한 결론이 나온 상태가 아니므로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이 밖에 노래하기나 그림 그리기 등 자신의 취미활동을 적극 해보는 것도 우울증 해소에 도움이 된다.
3 전문가의 손길로 우울증 덜어내기
위의 방법으로 우울증이 해소되지 않고, 장기간 우울증이 계속되고, 신체적 증상이 심각한 정도의 우울증을 겪고 있다면 전문의의 손길을 받도록 한다. 이민수 교수는 “우울증의 가장 적절한 치료 방법은 약물치료와 더불어 정신치료를 병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약물치료는 환자의 증상, 약물의 부작용, 과거 약물치료에 대한 반응, 처방 비용 등을 고려하여 적합한 약제를 처방한다. 효과는 약 2주 뒤에 나타나기 때문에 쉽게 실망하거나 빨리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복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치료 후 증상이 호전된 뒤에도 6개월에서 1년가량 계속 복용해 재발을 방지해야만 한다.
▶정신치료는 크게는 의사와 환자가 대화를 나누며 치료를 해나가는 면담 치료이다. 세부적으로는 치료 대상과 기법에 따라 역동 정신치료, 대인관계 치료, 인지행동치료, 부부치료, 가족치료 등을 하게 된다.
세월호 참사로 많은 사람이 집단우울증을 겪는 일 또한 마음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우울증에 빠져 있을 수는 없다. 희생자들의 몫만큼, 그들에게 다시는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애도의 한 방법일 수 있겠다. 그러니 이제 집단우울증, 상실감과 비통함을 훌훌 털어내고 기운 내어 일어나 보자.
이민수 교수는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을 지냈다. 현재 환태평양정신의학회 이사장이며 고려대 의대 신경정신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고려대안암병원 우울증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정신건강의학과 치매클리닉에서 진료를 하고 있다. 또한, EBS <명의>,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건강정보를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