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조아름 기자】
시작은 가벼웠다. 기획회의를 하는 자리에서 “요즘 대장암 환자가 많이 늘었다는데, 저도 대장이 안 좋아서 좀 걱정이 되네요.”라고 말하자, 다른 기자가 “그럼 대장내시경 한 번 받아보세요.”라고 맞받아 친 게 화근이었다. 이 대화를 들은 편집장은 “여기에 대장내시경 받아본 사람 ? 아니, 없어? 조 기자, 그럼 이참에 대장내시경 체험기 한 번 써보면 어떨까?” 권유(?)했고, 흔쾌히 OK 했다. 사실 그깟 내시경, 더군다나 수면내시경인데 뭐 힘들겠냐 싶었다. 하지만 직접 해보고 나서야 왜 사람들이 대장내시경 하면 치를 떠는지 알게 됐다.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본다, 대장내시경~
“헐~ 누나가 무슨 마루타야? 그걸 직접 해보게?”
수면내시경은 보호자의 동행이 필요하다는 말에 남동생에게 같이 가달라는 SOS 요청을 했더니, 남동생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뭐, 이번 기회에 대장도 한 번 들여다보는 거지. 내가 대장이 좀 예민하잖아.”
그랬다. 나는 약간 과민한 대장의 소유자였다. 아마도 불규칙한 식생활과 음주, 과식, 운동부족이 내 대장을 예민하게 만든 것은 아닌가 싶다. 대학시절 부모님 곁을 떠나 생활하게 되면서부터 말이다.
‘그래도 내 대장은 끄떡없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생활한지 10년. 그런데 올해 들어 부쩍 볼일 보기가 불편해졌다. 변비와 설사를 오가기도 했고, 볼일 후 가끔 피를 보기도 했다. 변에 점액질의 하얀 코도 묻어나와 ‘이게 혹시 용종에서 분비되는 점액이 아닌가?’ 남몰래 걱정했다. 몇 해 전 아버지가 용종 제거 수술을 한 것도 떠올라 슬슬 겁도 났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대장내시경 검사는 50세 이후부터 건강검진에 포함된다. 하지만 대장암이 최근 육류 위주의 서구화된 식습관과 각종 스트레스, 음주, 흡연 등으로 크게 증가하면서 젊은 연령층에서도 그 발병률이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40세 이후부터 많이 권장하는데, 현재 한국 남성의 대장암 발병률은 아시아 1위, 세계 4위 수준이다.
대장암은 특별한 초기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미 3~4기 진행암이 돼서야 발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만큼 조기발견이 어렵기 때문에 정기적인 대장내시경 검사는 대장암을 예방할 수 있는 척도라고 할 수 있다. 항문으로 내시경을 삽입해 대장 전체를 직접 관찰하기 때문에 장출혈, 설사와 변비, 배변 습관, 염증성 장질환, 악성 질환 등 대장에 발생하는 거의 모든 질환이 진단 가능하다.
4리터 세장제 마시기는 끔찍한 악몽이었다!
5월 1일로 대장내시경 검사를 예약한 후, 미리 관장약을 받기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 간호사의 사전 설명을 들은 후 받아온 것은 세장제인 코리트에프.
상자를 열어보니 500ml 용량의 흰 플라스틱 통과 분말 형태의 세장제가 8개의 비닐 스틱에 담겨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레몬향이라고 적혀 있어 부담 없이 먹을 수 있겠다 싶었다.
간호사가 알려준 대로 검사 전날 점심은 흰 죽만 먹었고, 저녁은 먹지 않았다. 이제껏 끼니를 거른 적이 없던 나는 점심 때 흰 죽을 두 대접이나 먹었다. 지금 못 먹으면 영원히 못 먹을 사람처럼.
퇴근 후 저녁 8시, 짐짓 비장한 각오로 500ml 물통에 코리트에프 한 봉을 털어 넣고 섞었다. 먼저 냄새부터 맡아봤는데, 냄새는 괜찮았다. 하지만 입에 넣는 순간, ‘도대체 이 맛은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카리***이라는 이온 음료에 소금물과 비눗물을 섞은 맛이랄까, 밍밍하고 미끌한 게 그 맛이 오묘했다. 오만상 다 찌푸리며, 그래도 500ml를 벌컥벌컥 단숨에 비웠다. 비위가 강한 편이었던 나에게 그래도 한 번은 먹을 만했다.
그런데 두 번째부터 배가 부르면서 겁이 슬슬 나기 시작했다. 앞으로 이걸 어떻게 먹어야 되나 싶었다. 간호사는 1회 30분 간격이라고 알려줬지만, 한 병을 비우면 그새 30분이 다 지나가 있었다. 배도 부른데, 그 맛도 역하다. 결국 먹다가 헛구역질을 해 임시방편으로 빨래집게로 코를 막고 꿀떡꿀떡 마셨다. 눈물까지 찔끔찔끔 흘리면서. 인터넷에 이거 먹다 죽을 뻔 했다느니, 다 토했다느니 하는 악담이 왜 있었는지 몸소 느꼈다. 그리고 4번째로 타 마시면서 꾸륵꾸륵 화장실에 갈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결국 마시다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냥 좍좍 나온다. 그리고 다시 나와 마저 마시다가 또 신호를 느끼고… 결국 화장실 변기에 앉은 채로 나머지를 마셨다. 5번째, 6번째는 모두 화장실 변기에 앉아 마셨다. 수도꼭지 틀 듯 항문에 힘만 주면 나온다. 점점 변의 탁도가 옅어지면서 나중엔 결국 노란 물만 나왔다. 그렇게 속을 비워내고도 탈수 증상은 없었다. 계속 마시면서 자연스레 전해질 보충이 되기 때문에 그렇단다.
아니, 벌써? 의외로 싱거웠던 대장내시경 검사
검사 당일 새벽 6시, 알람 소리에 맞춰 일어나 마지막 두 봉을 타 마셨다. 그리고 또 화장실을 갔다. 하지만 더 이상 나올 것이 없었던지 반투명 노란 물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해가 뜨고, 병원에 갈 시간이 되었다. 병원에 가서 엉덩이가 뚫린 옷으로 갈아입고 체중 재고, 체지방 측정, 그 외 이런 저런 검사 후 마지막으로 어두운 내시경실로 들어갔다.
의사의 지시대로 몸을 웅크리고 옆으로 누워 마취제를 맞은 후 가만히 있었는데… 그 이후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깨고 보니 정신이 멍하긴 했지만, 숙면을 취한 느낌이었다. 더러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못하는 사람도 있다니, 왜 차를 가지고 오지 말라는 당부가 있었는지 알 것 같다.
검사 직후 배가 거북스러워 화장실에 갔더니, 검사하면서 대장에 넣었던 바람이 한참 나오는 특이한 경험도 했다. 냄새 없는 방귀를 한참 뀌었다는 소리다.
검사 후 의사는 특별한 소견이 없었으며, 다만 작은 용종이 발견되어 조직검사를 해보니 과형성으로 정상적인 대장 점막에서 생길 수 있는 용종이라고 했다. 암이나 다른 대장질환과는 관련이 없단다. 그럼 그렇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제 당분간 ‘대장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흔히 대장내시경 검사는 불편하고 아프며, 검사 받는 자세도 민망하다고 생각해 검사를 미루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한 번의 검사로 대장암은 물론 다른 대장질환들까지 예방 가능하니 평소 자신의 대장이 미심쩍다면 한 번 받아보는 것이 좋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꼭 4리터의 세장제를 먹지 않고도 검사하는 방법이 있다. 45ml를 두 번 먹는 프리트나 포스파놀 등이 있다. 하지만 이 경우도 많은 물을 계속 마셔야 하고, 무엇보다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신장이 안 좋거나 나이가 많으면 사용할 수 없다. 무식한 방법이긴 하지만, 결국 4리터를 마시는 것이 제일 안전한 방법이라고. 뭐, 몇 년 후면 더 좋은 약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나도 대장내시경 받아볼까?>
50세 이후에는 3년에 한 번 대장내시경 정기검진은 필수다. 하지만 요즘은 40세 이후라면 한 번쯤 받아보라고 권한다. 더불어 이런 사람이라면 대장내시경을 한 번 받아보자.
●?점액변이나 혈변을 볼 때
●?변을 보는 횟수가 감소하거나 변을 보기가 힘들 때
●?없던 변비나 설사가 생겼을 때
● 변의 굵기가 가늘어지고 잔변감이 있을 때
●?배가 자주 아프거나 배에 멍울이 만져질 때
●?이유 없이 체중이 감소하거나 빈혈이 지속될 때
●?직계가족 가운데 대장암이나 가족성 용종증이 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