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기옥 기자】
【도움말 | 강남을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최삼욱 교수】
조 모(33) 씨에게 오늘도 지름신이 강림했다. 이달만 해도 매일 3시간씩 월급의 1.5배가 넘는 액수의 물건을 구매했다. 장바구니가 하나둘 채워질 때마다 허전한 마음도 채워진다. 카드결제일에 돈을 빌리느라 애를 먹을 때면 ‘다시는 쇼핑을 안 하리라.’ 다짐하지만, 어느새 모니터 앞에 앉아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세상의 모든 위로를 다 얻은 듯한 이 순간을 결코 끊어버릴 수 없을 것만 같다.
충동적으로 많은 물건을 구매했을 때 흔히 “지름신이 강림했다.”고 한다. 과하게는 아니더라도 이런 경험이 한두 번쯤은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조 모 씨처럼 “쇼핑으로 기분이나 스트레스를 푼다.”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쇼핑으로 마음을 달래고 위안을 찾는 것이 과연 괜찮은 걸까? 제대로 사용되지 못하고 집안에 쌓여있는 물건들을 볼 때면 자괴감이 밀려오고, 혹시 쇼핑 중독에 빠진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빈번한 지름신의 강림이 실상은 ‘쇼핑 중독’은 아닌지 알아보았다.
PART 1. 나, 혹시 쇼핑 중독?!
소설이나 영화 등을 통해 이미 많이 알려져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인 ‘쇼핑 중독’. 하지만 쇼핑 중독은 알코올중독이나 도박중독처럼 질병으로 공식화되어 있지는 않다. 그래서 일부 연구자들은 ‘강박적 구매 장애’로 표현하기도 한다. 쇼핑이 즐거운 나는 과연 중독일까? 아래 질문에 답해보자.
● 스스로 또는 다른 사람들이, 당신이 쇼핑을 너무 자주 하거나 쇼핑에 너무 많은 돈을 쓴다고 생각하는가?
● 통제하기 어려운 쇼핑 충동이나 쇼핑을 통해서만 해소되는 극도의 긴장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 쇼핑하고 나면 잠깐이라도 긴장의 완화나 만족감을 경험하는가?
● 쇼핑 문제가 사회생활, 결혼생활, 가족관계, 재정적 혹은 직업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개인적으로 심각한 스트레스가 된 적이 있는가?
(미네소타 충동장애 면접(MIDI), Grant et al, 2005)
위의 질문들은 쇼핑 중독 여부를 체크하는 아주 간단한 물음이다. 과연 몇 개에 “예”라고 대답했는가? 이중 단 하나라도 해당이 된다면 전문의에게서 더 자세한 평가를 받아보는 게 좋다.
강남을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최삼욱 교수는 “물건을 구매할 때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정을 달래고 위안을 받기 위해서 물건을 사고, 또는 구매할 때는 기분이 좋지만 곧 우울해지거나 죄책감이 드는 것이 쇼핑 중독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인 쇼핑은 필요한 물건을, 사용하기 위해서, 예산의 범위 내에서 구매하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물건을 사고, 많은 돈을 쓴다고 해서 다 쇼핑 중독은 아니다. 다음의 경우에 해당되면 쇼핑 중독 의심군이다.
● 쇼핑의 빈도가 증가하거나 전보다 더 비싼 것을 사게 되고(내성)
● 쇼핑하지 않으면 우울감 등을 느끼고(금단현상)
● 온종일 쇼핑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고(집착)
● 구매하기 위해 빚을 지거나 해서 가족 등과 갈등이 발생하고(신뢰문제)
● 쇼핑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느끼면서도 자제하거나 조절이 안 되고(통제문제)
● 쇼핑을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거짓말하기)
● 특히 부정적 감정을 피하려는 목적으로 쇼핑(회피성 쇼핑)을 한다.
위에 해당하면 전문의의 도움이 필요한 심각한 쇼핑 중독이라 하겠다.
PART 2. 스스로 확인하자, 쇼핑 중독 자가진단법~!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다양한 쇼핑 중독 자가진단법이 나와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의학적인 연구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니 재미 삼아 해보는 정도로 여기면 좋겠다. 쇼핑 중독이 의학적으로 규정된 정신질환은 아니기에 별도의 진단 기준은 아직 나와 있지 않지만, 여기서는 쇼핑 중독에 관한 권위 있는 의학적 연구논문에서 제시한 쇼핑 중독 자가진단법을 소개한다. 아래 문항 중 자신에게 해당하는 개수를 세어보자.
<쇼핑 중독 자가진단법>
1. 쇼핑을 마칠 때 돈이 남아 있으면, 그 돈을 다 써야만 한다.
2. 다른 사람들이 나의 구매 습관을 알게 될까 봐 두렵다.
3. 대금을 지급할 능력이 없음에도 물건을 구매한 적이 있다.
4. 통장에 잔액이 없는 줄 알면서도 쇼핑을 위해 신용카드로 물건을 구매한 적이 있다.
5. 기분전환을 위해 쇼핑을 한 적이 있다.
6. 쇼핑하지 않으면 기분이 우울해지거나 불안해진 적이 있다.
7. 카드 한도가 거의 다할 때까지 돈을 쓰는 습관이 있다.
(출처: 강박적 구매 척도 Compulsive Buying Scale(CBS) by Faber and O’Guinn)
*위 문항 중 하나라도 해당하면 전문의로부터 더 자세한 평가를 받아보도록 한다.
많이 사면 다 쇼핑 중독? No!
알코올, 흡연, 도박, 마약과 같은 중독에 비하면 쇼핑 중독은 비교적 ‘가벼운 중독’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쇼핑 중독도 엄연한 중독성이 있고 그 중독성을 판단하는 데 있어 섬세함이 요구된다.
먼저 쇼핑 중독은 얼마나 많이 사느냐 하는, ‘양’이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두자. 주변에 쇼핑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쇼핑 중독이라고 성급한 판단을 해선 안 된다. 이런 기준이라면 정상적인 구매활동까지도 쇼핑 중독으로 몰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쇼핑이 문제가 되는 사람 중에는 쇼핑 중독이 아니라 조울증이 문제인 사람이 있음을 염두에 두자. 조울증은 기분이 들뜨는 조증이 나타났다가 기분이 가라앉는 우울증이 나타나기도 하는 질환이다. 조울증 환자가 조증 상태일 때는 기분이 붕 떠 있어 말도 많아지고 에너지가 넘쳐난다. 이런 조증 상황에서 조울증 환자들은 돈을 굉장히 많이 쓰면서 많은 쇼핑을 한다. 따라서 누군가가 엄청난 양의 물건을 산다고 해서 무조건 쇼핑 중독이라고 예단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즉 쇼핑의 양으로 판단하지 말고, 건강한 구매활동의 연장선인지, 조증 상태에서 일어나는 현상인지를 잘 구별해야 한다. 쇼핑 중독을 진단하는 전문의는 섬세한 상담 등을 통해 이러한 두 가지 경우를 감별하고 이들은 쇼핑 중독에서 배제한다.
PART 3. 쇼핑 중독? 이렇게 대처하자!~
클릭 한 번, 전화 한 통이면 언제 어디서든 쇼핑할 수 있고, 현금이 없어도 카드번호만 불러주면 결제가 된다.
많이 가진 자가 더 가치 있게 여겨지는 요즘, 쇼핑은 자신을 괜찮은 사람, 가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자신의 존재감이 높아지니 우울, 불안, 외로움, 공허감 등이 사라지고 흥분과 쾌감이 몰려온다. 결국엔 ‘그 물건’을 가지면 자신이 더욱 완전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심리적 위안과 보상을 쇼핑을 통해 얻으려는 데서 비롯되는 쇼핑 중독. 미리 막을 방법은 무엇일까?
최삼욱 교수는 “쇼핑 중독에 대한 염려로 건강한 소비까지 위축할 필요는 없다.”며 “쇼핑하는 데 약간의 문제와 위험성이 있을 경우에 예방법을 실천하도록 하라.”고 조언한다.
지금 바로 시작하자, 쇼핑 중독 예방법~
● 충동구매 No! 쇼핑 전에 반드시 구매 목록을 작성해서 목록에 없는 물건은 절대로 사지 말자.
● 하룻밤 묵히자! 홈쇼핑 등 반짝세일, 엄청난 사은품이 유혹해도 구매는 다음날로 미루자.
● 체크카드 OK! 신용카드보다는 통장 잔액만큼만 거래할 수 있는 체크카드를 사용하자.
● 자신의 문제를 알려라! 자신의 쇼핑 문제를 누군가에게 이야기한다.
● 나 홀로 쇼핑 No! 혼자 쇼핑하지 말자. 꼭! 자신의 문제를 아는 사람과 함께 쇼핑하자.
● 자기감정을 돌보자! 무엇보다도 자신의 감정을 알아채고 돌보아야 한다.
이 수칙 중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자기감정을 돌보는 것’이다. 최삼욱 교수는 “자신의 부정적인 정서를 회피하거나 보완하기 위한 대안으로써 쇼핑하지만, 그런다고 부정적인 정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라며 “내 안에 자리 잡은 부정적 정서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최삼욱 교수는 중앙대 의대를 졸업하고,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연구이사,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홍보기획 위원을 역임했으며, 경륜경정중독예방치유센터와 희망길벗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을지대 강남을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을지중독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이며 행위중독, 성인정신건강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