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조아름 기자】
살아가다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건강에 고비가 온다. 그런데 여기 두 번의 고비를 넘긴 여자가 있다. 40대 초반 포상기태라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다 목숨까지 위태로웠던 이덕분 씨(60세)는 50대 중반 또다시 구강암에 걸렸다. 그리고 암과 싸우고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내년 1월 1일 ‘구강암 완치’ 판정을 받겠지만, 암 관리는 평생 지속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그녀. 이번에는 그녀의 암 극복기를 들어봤다.
포상기태와 무시무시했던 항암치료
그녀에 대한 첫 인상은 병의 그늘은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한 주부였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평범하지 않았다.
벌써 19년 전의 일이다. 당시 마흔 한 살이었던 이덕분 씨는 갑작스런 하혈로 ‘포상기태’라는 진단을 받았다. 포상기태? 조금은 생소한 병명이었다. ‘개구리알임신’이라고도 불리는 포상기태는 태반의 영양막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질환이다. 그래서 소파술을 통해 종양을 제거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한 달 동안 하혈이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수술 후에도 하혈이 계속 되자, 결국 자궁을 들어내자는 쪽으로 의견이 나왔어요. 이미 아이가 둘 있었고 무엇보다 몸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기에 망설일 틈이 없었어요. 그 당시 이미 악성종양으로 전환된 상태였던 것 같아요.”?
자궁 적출 후 그녀는 의사의 권유대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 항암치료가 문제였다. 그녀를 죽음의 문턱으로 밀어 넣었던 것이다.
19년 전이니 항암치료 역시 지금보다 훨씬 무지막지했다. 2차 항암 치료가 끝나고 혈소판 부족으로 혼수상태에 빠진 그녀는 5일 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말 그대로 죽다 살아난 셈이었다. 그 인생의 고비에서 그녀는 삶을 되돌아 봤다.
“하나님이 벌을 주시나 보다 했어요. 모든 병의 원인이 미움과 시기, 질투라는데, 당시 시어머니와의 갈등이 좀 있었거든요. 그런데 나도 나이가 들면 누군가의 시어머니가 될 테고, 시어머니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해하고 용서하니 스트레스가 한결 덜했어요. 그때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고 기뻐하는 마음을 갖자고 다짐했죠.”
입안에 살아있던 암세포
그녀는 그렇게 마음의 응어리는 풀어냈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다시 생활은 바빠졌다. 남편은 회사를 다녔고, 그녀는 혼자 슈퍼를 운영했다. 매일 새벽같이 나와 밤 10시에 퇴근하는 삶의 반복이었다. 그런데 약 5년 전 입에 염증이 생기면서 그녀의 삶에 두번째 고비가 왔다.
“처음에는 단순한 피로 탓으로 여기고 이비인후과를 방문해 구강염 치료를 받았어요. 그런데 염증 바로 옆에 새 살이 툭 불거져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조직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던 중이었는데, 며칠 사이에 또다시 살이 불거져 나오잖아요. 의사가 큰 병원에 갈 것을 권했어요. 문득 예전 항암치료 후 입안이 헐었던 생각이 스쳐 지나갔어요. 입안에 염증이 생겼던 바로 그 자리였거든요. 이상했죠. 느낌이 좋지 않았어요.”
좋지 않은 예감은 왜 꼭 맞을까? 이번에는 구강암이었다. 그것도 2기 말에서 3기로 넘어가는 단계였다.?
또다시 수술과 항암치료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수술을 꼭 해야 될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 둘이 그녀를 잡았다. 이제 다 컸으니 효도할 시간을 달라는 말에 그녀는 마음을 다잡았다. 결국 2008년 1월 1일 수술 예약을 잡았고 다시 한 번 암과 싸우겠노라 다짐했다. 지금 거실에 걸려있는 가족사진은 그때 찍은 사진이었다. 바쁘단 핑계로 그동안 한 번도 찍어보지 않았던 가족사진을 찍고, 그녀는 보름 후 있을 수술에 대비해 몸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여수에 있는 요양원으로 향했다. 그동안만이라도 피를 깨끗하게 정화해 볼 심산이었다.
기쁘고 즐겁게 마음 다스려
도착한 요양원은 병실에서 확 트인 바다가 보이고, 뒤에는 산이 있었다. 요양원 분위기도 암 환자들이 있는 곳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밝아 마음이 저절로 편해지고 즐거웠다.
그리고 15일 후 그녀는 다시 서울로 돌아와 수술을 했다. 종양 덩어리를 떼어내고, 팔과 다리의 지방을 볼에 이식했다. 17시간의 대수술이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회복은 빨랐다. 그 회복 속도에 의사도 놀랄 정도였다.
보름동안 여수를 다녀온 것이 효과가 있었단 생각에 자연치료에 대한 믿음은 더 확고해졌다. 보름 후 퇴원을 하면서 의사는 16번의 항암치료를 권유했지만, 그녀는 서울 근교 요양병원에서 몸을 추스린 후 다시 여수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3개월을 보냈다. 맑은 공기를 마시고, 그곳에서 직접 키운 음식들로 소박하게 차린 건강 밥상을 받으며 기도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 두 번의 시련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마음가짐을 바꾸게 되었다. 까다롭고 걱정도 많은 완벽주의자적인 성격, 남들이 보기엔 어땠을지 몰라도 그녀 스스로는 스트레스가 컸다. 그리고 당시 이상구 박사의 뉴스타트 건강요법 강의를 틈틈이 들으면서 자신의 그런 성격이 자신의 몸을 아프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안 될 거라면 하나님 뜻에 맡기자.’는 식으로 마음을 바꿨어요. 모든 게 하나님의 뜻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니 제 가슴의 짐이 덜어지는 것 같더군요. 쓸데없는 고민은 날려버리고, 이 순간 기쁘고 즐겁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니 매 순간이 감사하고 행복해졌어요. 그러면서 가게도 접었어요. 잠시 걱정을 하긴 했지만, 그 상황에 맞게 또 삶은 이어지더군요. 그런 면에서? 두 번째 암은 오히려 축복이었죠.”
이제 내년 2013년 1월 1일이면 정확히 만 5년이 된다. 5년이 지나면 완치 판정이 내려진다지만, 그녀는 암은 완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암은 생활습관병’이라는 이상구 박사의 말처럼 그녀가 예전처럼 빡빡한 생활과 많은 스트레스, 운동은 뒷전이고 고기를 먹는 식습관으로 돌아간다면 다시 찾아올 수 있는 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두 번째 병을 이겨낸 후 비로소 자신의 삶을 찾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 치료 중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신감을 가지세요. ‘나는 살 수 있다.’는 의지, ‘암과 싸울 수 있다.’는 투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스스로 살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암세포도 움츠러든다고 해요. 암을 겁내지 말고, 식사와 운동에 신경 쓰며 자기 마음을 다스리면 그 어떤 암이라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덕분 씨가 실천하는 것들>
1. 기도한다.
매일 아침 6시에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먼저 남을 위해 기도하고, 그 다음이 가족들, 마지막으로 자신을 위해 기도한다. 이러한 기도는 마음에 평화를 주고, 하루를 여유롭게 열어준다.
2. 아침 공복에 물 한잔 마신다.
변비 예방에도 좋거니와 속도 한 번 정돈되는 느낌이다. 그녀 덕에 그녀의 가족들은 모두 아침 공복에 물 한 잔이 제일 빠른 하루 일과 중 하나다.
3. 잡곡밥을 먹고 채식한다.
밥을 지을 때 현미와 보리, 조와 수수, 콩, 땅콩 등을 넣는다. 밥만으로도 풍부한 영양을 얻을 수 있다. 또 야채는 되도록 날 것으로 먹고, 과일 또한 제철 과일로 자연 그대로의 것을 먹는다. 부족한 단백질은 콩과 견과류를 통해 얻는다.
4. 매일 걷는다.
간단한 저녁 식사 후 동네 길가나 안양천을 따라 30~40분 정도 걷고, 약 30분 정도 스트레칭을 한다. 그러면 몸도 가뿐하고, 피도 맑아지는 기분이다. 또 주말에는 꼭 등산을 한다. 산에 가서 맑은 공기도 흠뻑 마시고 열심히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