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정희 기자】
【도움말 |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안혁 교수】
심장판막 이상으로 혈액이 제 방향으로 흐르지 못해 누워서 잘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던 주부 심점숙 씨(44세). 심장판막 이상은 일상적인 어려움을 넘어 다른 합병증까지 불러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위험한 증상이다. 그녀는 얼마 전 인체조직 사후기증자의 심장판막을 받아 이식수술을 받았다. 인공 심장판막은 평생 혈전제를 복용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반면 인체 심장판막은 그럴 필요가 없다. 회복도 빠르고 부작용도 거의 없다. 심 씨의 배우자 김진극 씨는 “돈으로 구할 수도 없는 귀한 판막을 얻었어요. 아내가 건강해져서 기쁩니다. 돌아가시는 길에 뜻있게 기증해 주신 분께 정말 감사합니다.”라며 밝게 웃었다. 심 씨의 이식수술을 직접 집도하기도 했고, 현재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안혁 교수의 도움말로 조직기증에 관해 알아본다.
재활부터 생명 구하는 데 크게 기여
장기이식과 달리 아직 용어조차 생소한 인체조직 이식. 인체조직은 뼈ㆍ연골ㆍ근막ㆍ피부ㆍ양막ㆍ인대나 건ㆍ심장판막ㆍ혈관 등을 말한다. 용어는 생소하지만 이미 인체조직 이식은 재건수술, 스포츠의학 등을 통해 우리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피부는 화상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데 기여한다. 인대와 건은 운동선수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손상된 무릎이나 발목 치료에 쓴다. 뼈는 고관절 치환술이나 뼈암 환자의 수술과 척추 재건술에 필요하다. 혈관은 심장을 비롯한 혈액 순환 기능을 복구시키고 심장판막은 생명 보존을 위해 이식한다.
흔히 아는 유명인 중에는 국가대표 축구선수 박지성, 이동국이 겪은 전방십자인대파열 재건술도 인체조직 이식술에 해당한다. 기증된 건(힘줄)으로 무릎관절, 발목관절, 어깨근육관절 등에서 손상된 인대 대용으로 이식한다.
기적의 수술로 유명한 ‘토미존스 수술(팔꿈치 인대접합수술)’도 인체조직 기증으로 가능해진 결실이다. 수술 전보다 한결 튼튼한 팔꿈치가 된다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현역 최고의 투수로 불리는 한화의 류현진은 고등학교 시절 토미존스 수술을 받았다. 강속구를 되찾고 지금껏 활약하고 있다.
이처럼 인체조직 이식술은 인체조직을 다른 결손된 부위에 붙이는 것이다. 질환이나 상해에 의한 골절이나 손상, 악성 골종양으로 인해 제거된 뼈의 대체, 치주질환 치료, 턱과 얼굴 기형의 복원 등을 위해 필요하다. 정형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치과, 성형외과 등에서 널리 치료에 이용한다.
장기 기증 VS 인체조직 기증
인체조직 이식보다 널리 알려진 장기 이식은, 현행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장기의 종류를 심장ㆍ폐ㆍ신장ㆍ간장ㆍ췌장ㆍ소장ㆍ췌장ㆍ골수ㆍ각막으로 규정하고 있다. 안혁 교수는 “간단히 말해 심장은 장기고, 심장판막은 조직”이라고 설명한다.
장기는 자체로 살아 있으면서 생사를 오갈 만큼 중요한 기능을 하는 큰 덩어리라면 조직은 그 장기가 제 기능을 다하게끔 돕는 역할을 할 때가 많다. 인체조직 이식의 유무가 생사를 가르는 급박한 상황을 반전시키는 경우는 드물다. 안혁 교수는 “생명과 직결되지 않는다고 덜 중요한 것은 아니다.”면서 “장애 유무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삶의 질과 밀접하다.”고 말한다.
또 하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기증자의 생물학적 사망유무다. 장기이식은 뇌사자의 장기를 떼어내 환자에게 이식하는 반면 인체조직 이식은 사체에서 필요한 조직을 떼어내 환자에게 수술한다.
신장이나 간장ㆍ심장과 같은 장기는 살아 있는 사람이나 뇌사 상태의 기증자에게 제한적으로만 기증받을 수 있다. 뇌사 판정 후 장기를 기증할 때까지 기증자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진 곳에서만 이식할 수 있다. 반드시 허가 받은 뇌사 장기관리 전문병원에서 실시한다. 기증자와 수혜자의 혈액형을 맞춰서 장기에 따라 수 시간 내에 이식을 마쳐야 한다. 장기기증을 할 수 있는 뇌사자는 우리나라의 경우 연간 사망자 25만여 명의 1%에 불과하다. 이중 고령자와 질병감염자를 제외하면 실제로 기증 가능한 사람은 1500명 정도다.
이에 비해 조직기증은 덜 까다롭다. 기증자가 사망한 시점부터 15시간 이내에만 채취하면 된다. 수혜율도 높다. 사망자 한 명 기증으로 100명 이상이 수혜를 받을 수 있다. 스스로 인체조직 기증 신청을 하기도 한 안혁 교수는 “죽은 후에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못할 때 채취하기 때문에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면서 “절대적으로 수량이 부족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많은 사람들이 뜻있는 유언장을 쓰듯 인체조직을 기증하는 풍토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수입에 의존해 비용과 안전성 우려
지금은 의료기술의 발전에 따라 뇌를 제외한 신체의 거의 모든 조직을 치료를 위한 이식재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선진국의 경우 조직 이식재 공급은 거의 전량을 자발적 기증 행위로 충당한다. 미국은 연간 2만 5000명이 조직을 기증해 인구 100만 명당 기증자가 83명꼴이다. 우리나라는 인구 100만 명당 단 2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의료기술 발달과 삶의 질 향상으로 평균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조직이식 수요는 늘어나는데 이식할 조직이 턱없이 부족하다. 국내에 조직이식이 필요한 환자는 약 300여만 명. 절대적인 기증 조직 부족으로 치료 기회를 놓쳐 불구가 되거나 심지어 생명을 잃는 경우도 있다. 현재 상황에서 최대한 적기에 필요한 치료를 위해 전체 수요의 95%가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수입에 드는 비용만 연간 약 1300만 달러.
국내 기증이 부족해 대부분 수입하다 보니 수입 비용은 물론 우려지점이 여럿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자국민우선원칙에 따라 가장 튼튼하고 질 좋은 조직은 자국민이 받게 돼 있다. 자국민에게 주고도 남는 것을 수출하기 때문에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조직의 질과 안전성 문제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
안혁 교수는 “수입한 인체조직은 제공자의 신상에 관한 것, 즉 중요할 수 있는 질병감염 여부나 거주지역 등을 확인할 수 없다.”며 “안전성 확보를 위해서도 국내 조직기증이 활발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체조직은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에서 수입한다. 우리나라까지 들어오는 기간이 오래 걸린다. 오래 된 조직을 이식받게 되면 부작용이 더 늘어날 수 있는 점도 문제다.
가격도 천지차이다. 심장판막의 경우 수입조직은 환자가 순수하게 조직만 2000만 원 이상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국내 기증조직은 무상기증에 처리 비용만 들기 때문에 300~500만 원 정도만 부담하면 된다.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 장경숙 기증사업국장은 “잘 사는 것(웰빙) 못지않게 잘 죽는 것(웰다잉)도 중요하다.”며 “꼭 금전적인 기부가 아니더라도 우리 몸으로 충분히 아름다운 유산을 남길 수 있다.”고 당부한다.
<조금은 생소한 인체조직 기증 자세히 알아보는 Q&A>
Q 인체조직 기증은 언제 하는 것인가?
A 사망 후 15시간 이내(냉장 시 24시간)에 기증하게 된다.
Q 조직기증 희망서약은 어떻게 하는가?
A 평소 조직기증 의사를 가족들에게 밝히고,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나 대한인체조직은행 등과 같은 장기이식 등록기관의 홈페이지를 통해 전산으로 등록한다.
Q 누가 조직을 기증할 수 있는가?
A 나이제한이 있진 않으나 조직기증자는 14세에서 80세가 가장 적합하다고 본다. 기증이 가능한 연령은 기증자의 건강상태에 따라 의료관리자가 판단하게 된다. 기증 전에 철저하게 검사한다. 각종 암, 에이즈나 B형, C형 간염과 같은 질환력을 가지고 있거나, 유해성 물질에 노출 및 중독증을 가진 경우는 제외된다.
Q 인체조직 이식 후 거부반응이 생기나?
A 아니다. 인체조직은 장기와 달리 혈장성분과 살아있는 세포들을 전부 제거한다. 감염이나 면역반응을 없애고, 멸균처리를 한 것이므로 조직이식 후에 거부반응으로 인한 면역억제제는 필요 없다.
Q 인체조직 기증 후에 기증자는 어떻게 되는가?
A 조직기증 수술 후 시신은 원래 모습대로 복원해 준다. 사전에 유족과 상의한 절차에 따라 염습 후 입관해 가족들에게 인도한다.
더 궁금하다면?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 www.kost.or.kr, 02-794-2640
안혁 교수는 현재 대한흉부외과학회 이사, 대한맥관학회 이사, 대한흉부외과국제교류위원회 위원, 제19차 아시아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사무총장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