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정희 기자】
【도움말 |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이정권 교수】
깊은 밤, 잠자리에 누워 울타리를 뛰어넘는 양의 숫자를 세던 박모 씨. 2천 마리까지 세다가 결국 포기했다.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괴롭게 탄식한다. 몸은 피곤하고 눈은 감기는데 도무지 숙면을 취할 수 없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밤만 괴로운 게 아니다. 낮에는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겁다. 회사에서는 책상에 앉아 졸다가 부장에게 주의를 듣기도 했다. 이런 증상이 벌써 일주일째다. 박 씨의 스트레스가 하늘로 치솟고 있는데, 해결책은 없을까?
생체리듬 깨는 무더위의 위력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됐다. ‘잠을 못자서 피곤하다’ ‘자도자도 잠이 쏟아진다’ ‘소화가 안 된다’ ‘기운이 없다’ ‘어지럽다’ ‘나른하다’ 등 일명 ‘여름 피로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여름 피로는 식욕부진과 체중감소, 불면증과 피곤함을 몰고 온다.
낮이면 더위에 지쳐서 무기력해지기도 하고 밤에는 더위 때문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잦아진다. 냉방시설이 잘 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도 실내외 기온의 급격한 변동으로 여러 가지 안 좋은 증상이 나타난다. 또 여름철 음식은 상하기가 쉽고 세균이 번식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 복통이나 설사 등 장염도 자주 생긴다. 강한 자외선 때문에 피부가 약해지고 야외 활동이 많아져 손상이 심해지기도 한다.
더위가 계속되면 몸의 체온이 올라간다. 이에 따라 뇌의 시상하부의 식욕조절기능을 담당하는 중추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식욕이 떨어지고 기력이 소진되는 것이다. 심하면 자율신경에 이상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러한 증상을 방치하면 인체 내 면역기능에 이상이 생겨 몸의 저항력이 떨어진다.
피로가 쌓여 저항력이 떨어지면 감기 같은 감염성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 또 잠복해 있던 만성질환이 나빠질 수도 있다. 정신집중력이 떨어져 작업능률과 판단력 저하, 망각증상이 생기기도 한다. 무기력해지고 자주 짜증을 내는 등 정신활동과 행동장애를 유발할 수도 있다.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이정권 교수는 “건강관리에는 계절이 따로 없겠지만 특히 무더운 여름철에는 일상생활의 리듬이 깨지기 쉽기 때문에 몸을 챙기는 데 더 신경 써야 한다.”고 당부한다. 대표적인 여름철의 질병에 대한 대책을 알아본다.
더위 먹었을 때 열피로ㆍ열사병 조심
흔히 더위를 먹었다는 말을 많이 한다. 피로감ㆍ짜증ㆍ무기력ㆍ집중력장애ㆍ식욕부진 등 여러 증상이 나타난다. 일의 능률이 떨어지고 작업장에서는 산업재해로 연결될 수도 있는 위험이 있다. 이정권 교수는 “이런 증상은 만성병의 초기증상일 수도 있지만 일시적으로 그런 경우 가장 흔한 원인은 과로와 더위로 신체리듬이 깨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수면은 기온과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무더운 여름철에는 잠을 설치기 십상이다. 기온이 오를수록 잠자는 동안 심박수가 증가하고, 몸 움직임이 잦아진다. 잠의 깊이도 얕다. 따라서 잠을 자고도 통 잔 것 같지 않고 원기 회복이 안 되는 수면상태가 계속되다 보면 일의 능률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대략 섭씨 27도의 실내온도가 잠자기에 가장 적절한 온도로 알려져 있다. 이정권 교수는 “신체리듬을 회복하려면 실내 온도가 오르지 않게 조절하는 한편, 낮에 30분 정도 정도 낮잠을 자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좀 심하게 더위를 먹었을 때 증상도 알아둔다. 고온에서 장시간 힘든 일을 하거나 심한 운동으로 땀을 다량 흘렸을 때 열피로가 나타난다. 대개 어지럽고, 기운이 없고, 몸이 나른해지고 피로감을 쉽게 느낀다. 땀으로 나간 수분과 염분이 제때 보충되지 않아서 일어난 질병이다.
이럴 경우 적절한 수분과 염분 섭취, 휴식으로 쉽게 회복할 수 있다. 이정권 교수는 “열피로를 예방하려면 야외에서 땀을 많이 흘릴 때는 전해질을 함유한 수분을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이때 주의사항은 자주 물을 먹어야 하지만 맹물은 좋지 않다. 또 염분 섭취를 한다고 소금가루를 통째로 지나치게 많이 먹는 것도 안 될 일이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이온음료를 추천한다.
열피로와 달리 심각한 열 질병이 있는데, 바로 열사병이다. 뇌의 시상하부에 있는 체온조절기능을 하는 중추가 마비돼 체온이 위험할 정도로 오른다. 의식장애가 생기고 심하면 혼수상태에 빠지므로 병원에서 집중 치료를 받아야 한다. 대개 고온에 적응하지 못한 상태에서 심한 훈련을 하는 군인이나 신체기능이 떨어져 있는 노인, 환자가 걸리기 쉽다.
냉방병 이기는 방법 5가지
더운 여름철이지만 실내 냉방기기 사용이 늘어나면서 냉방병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에어컨을 지나치게 많이 쐰 사람이나 밀폐된 빌딩 내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흔하다. 이정권 교수는 “냉방병이란 말이 매체를 통해 널리 퍼졌지만 이 병이 의학적으로 확실히 정의되어 있는 질병은 아니다.”고 밝히고 “의학적으로 말하면 ‘물리적 환경 변화에 따른 신체 적응 장애’에 속하는 병”이라고 말한다. 또 냉방 자체가 원인이 되지는 않지만 밀폐된 사무실 빌딩에서 실내 공기 오염이 원인인 ‘빌딩증후군’에 속하기도 한다.
실내외 기온 차이가 많은 환경에 노출되는 사람이 잘 걸린다. 바깥에서 실내로 들어왔을 때 몸에 소름이 끼친다거나 몸이 으슬으슬 춥고 쑤시는 근육통, 앞머리가 무겁고 띵한 두통, 어지럼증, 피로감, 짜증이 잦고 일에 집중이 잘 되지 않는 것이다. 낮에 사무실에서 일할 때 코가 맹맹하고 막히거나, 재채기와 콧물 같은 감기 증상을 보인다. 아랫배가 차고 묵직하고 살살 아플 수도 있다. 묽은 변을 보거나 소화불량 증세도 생길 수 있다.
이러한 냉방병을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급격한 실내 온도 차이를 줄인다.
실내와 바깥의 기온 차이를 5도 이내로 유지한다. 여름철 평균 기온으로 계산해 보면 25도 정도가 된다. 건물이 중앙냉방이라 개인이 조절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이정권 교수는 “이때는 스스로 건강을 관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둘째, 우선 에어컨이나 선풍기 바람을 직접 쐬지 않게 거리를 둔다.
얇은 겉옷도 하나 준비해 몸이 안 좋을 때 입는다. 짧은 치마나 바지를 입어 체온조절에 취약한 차림일 땐 얇은 담요로 다리를 덮어준다.
셋째, 땀에 젖은 옷은 즉시 갈아입는다. 더위에 땀을 많이 흘린 사람은 차고 건조한 공기에 지나치게 노출되면 증발열로 몸이 더 차가워진다.
넷째, 물을 자주 마신다. 실내 습도 저하로 냉방병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주기적인 실내 공기 환기도 중요하다. 실내 공기 오염도 냉방병의 원인이라는 점을 기억한다. 한 시간에 한 번 정도 실내를 환기시킨다. 에어컨을 켠 자동차를 오래 타는 사람은 내기 순환에서 외기 유입으로 스위치를 돌리거나 창문을 내리면 된다. 실내 금연도 중요한 예방 조치다. 이정권 교수는 “최근 금연 빌딩이 늘어나는 것은 이런 점에서 아주 좋은 현상”이라고 말한다.
냉방병은 사람마다 차이가 많이 나는 병이다. 같은 환경에 노출돼도 사람에 따라 전혀 증세가 없기도 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도 있다. 각 개인에 따라 병에 취약해지는 이유를 모두 알 수는 없지만, 이정권 교수가 강조하는 부분은 ‘균형’이다.
“여름이 되면 기운을 돋운다고 더위를 물리친다는 음식에 줄을 서고 비싼 보약을 찾곤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과로를 피하고 휴식과 일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입니다. 신체리듬 유지와 균형 있는 생활로 건강한 여름을 날 수 있습니다.”
TIP. 이정권 교수의 폭염 극복 10계명
1. 기상ㆍ취침시간 규칙적으로
2. 잠을 설친다면 실내온도를 27도로
3. 실내외 온도차 5도 정도가 적합
4. 물을 자주 마시기
5. 열피로엔 이온음료를
6. 자주 실내 환기하기
7. 실내 금연은 단체 냉방병 예방책
8. 시원한 숲을 찾거나 바쁠 땐 자연을 연상하기
9. 피곤이 몰려오면 낮잠이나 휴식을
10. 과로는 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