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정희 기자】
【도움말 | 정신분석연구소 김혜남 박사】
툭하면 버럭 하는 상사, 차라리 혼자 할망정 도움 안 되는 동기, 개념 없이 대드는 후배…. 오늘도 김 대리는 가슴을 친다. 직장 곳곳은 스트레스 유발 요인으로 가득하다. 이곳은 ‘동방예의지국’ 아닌가. 중간에 낀 처지에 성질대로 화냈다간 제 무덤 파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참기만 하다 속 터져 죽을 지도 모르겠다며 한숨 쉬는 김 대리. 해결책은 무엇일까?
화가 쌓이면 각종 만성 질병 유발해
우리 주변을 돌아보라. ‘화내는 사람’도 많지만 그에 못지않게 ‘화내지 않는 사람들’도 넘쳐난다. 오죽하면 그런 사람을 두고 ‘착한(좋은) 사람 콤플렉스’가 있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까.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뒤통수를 쳐도 화내지 않고 웃어넘길 것처럼 온화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있다. 물론 참지 못하고 툭하면 불쑥불쑥 화를 내며 뒤집어엎는 사람은 당연히 문제가 있다. 그러나 무조건 참는 것도 문제다.
정신분석연구소 김혜남 박사는 “화는 우리를 흥분시키는 감정”이라면서 “자기 방어의 일종”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고 무력감ㆍ굴욕감을 느낄 때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드는 본능적인 감정반응이라는 것.
따라서 화가 나면 교감신경이 흥분된다. 교감신경이 흥분되면 심박동수가 빨라지고 근육이 긴장한다. 혈관이 수축되고 동공이 커지면서 입술이 바짝바짝 타고 손발에 땀이 많이 나고 손이 떨리기도 한다. 이런 문제 이외에도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면역체계나 호르몬계에 이상을 발생시켜 알레르기나 암ㆍ당뇨 등 많은 병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이러한 화를 표출하지 못하고 참고 쌓아만 둔다면 어떻게 될까?
김혜남 박사는 “우리 몸이 만성적인 교감신경의 흥분상태에 놓이게 된다.”면서 “이것이 터지는 것이 화병”이라고 설명한다. 화병은 참다참다 몸에 쌓인 화가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고 속에서 불덩이가 올라온다. 이때 역시 만성적인 교감신경 흥분상태에 있기 때문에 혈관이 수축되고 혈압이 높아진다. 그 결과 뇌졸중이나 심장마비 등이 생기게 된다. 김혜남 박사는 “화가 쌓이지 않게 그때그때 감정을 해소하는 것이 건강의 지름길”이라고 당부한다.
천사표ㆍ완벽주의자 우울증과 화병 조심
요즘 직장인 증후군 중에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이라는 것이 생겼다. 원만한 대인관계를 위해 항상 웃어야 한다는 생각에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더욱 우울해지는 증상을 뜻한다.
김혜남 박사는 “성격상 화를 잘 못내는, 일명 ‘천사표’나 완벽지향적이며 꼼꼼한 사람들이 나중에 우울증이나 화병에 많이 걸린다.”고 말한다. 상대방에게 내지 못하는 화가 가슴에 그대로 쌓여 화병이나 우울증으로 되돌아오면 자책, 자신감 상실 등이 올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조금 덜 착해지고, 덜 완벽해질 필요가 있다.
화를 못내는 사람은 보통 초자아가 강한 사람이다. 화를 내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하다. 또 화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내부에 폭탄을 안고 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이 폭탄이 터져 모두를 다치게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김혜남 박사는 “마치 자신의 내부에 괴물이 들어있다고 느끼는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이런 경우는 과거 불같고 폭력적이었던 부모 슬하에서 자란 경우가 많다. 자신도 화를 통제하지 못하면 아버지처럼 괴물로 변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건강한 삶을 위해 나쁜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두지 않고 풀려면 명심해야 할 게 있다. 김혜남 박사는 “화는 표출하는 게 아니라 표현하는 것”이라고 당부한다. 이 둘은 큰 차이가 있다. 화를 내는 것과 화가 났다는 것을 알리는 것의 차이다. 화를 표현하려면 먼저 자신이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알아야 한다. 감정만 배출했다간 평생 후회할 일을 만들 수도 있다. 지나친 분노는 자신을 해칠 뿐이다. 진정이 안 될 때는 숫자를 센다. 다섯을, 그래도 안 되면 열까지 세면서 이성을 찾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런 후 적극적으로 화를 해소하는 법을 실천해 본다.
적극적으로 화를 해소하는 투덜이 건강법
첫째,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떤다
내 얘기를 들어주는 데 친구만한 존재는 없다. 직장과 가정과 무관한 친구라는 존재는 사적인 험담을 하기에 제격이다. 친구와 남편 욕, 시집 욕, 처가 흉, 상사 험담을 늘어놓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친구가 문제의 정답을 맞히거나 해결책을 내려 줄 필요는 없다. 투덜투덜 대다 보면 어느새 화가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집에 돌아가서, 내일 출근해서 다시 잘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이때 가벼운 술 한 잔과 맛있는 먹을거리를 곁들여도 좋다. 그러나 지나친 술ㆍ담배는 피한다. 치료하기는커녕 감정이 격해지고 건강을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둘째, 거절 훈련을 한다
화가 나는 또 다른 이유는 ‘아니오’라고 말하지 못하는 데 있다. 적절한 때 거절 의사를 분명히 말하지 않으면 자책이나 남에 대한 원망이 쌓인다. 물론 신뢰도 없는 사람이 거절과 불평만 일삼는 것은 문제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놓고 의사 표현을 하는 게 중요하다.
직장의 경우 굳이 회의 때뿐 아니라 점심이나 회식 메뉴를 주도적으로 잡는 것도 도움이 된다. 가정에서는 특히 여성이 헌신적으로 여러 가지 일을 다 하려다 탈나는 경우가 있다. 일이 많거나 몸이 안 좋을 때 남편과 아이의 요구에 적극적인 거절 의사를 표한다. 할 수 없는 이유, 힘든 이유를 말하며 휴식을 취해야 자신뿐 아니라 원만한 가정을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된다.
셋째, 주절주절 글을 쓴다
나만의 일기장에 나를 화나게 한 일을 적는다. 화난 상대에게 편지나 이메일을 써도 좋다. 이 방법이 바로 화내는 것보다 낫다. 문자를 쓰는 이성적인 행위는 한결 정리가 된 상태로 문제의 핵심과 감정을 정리하기 좋은 방법이다.
또 블로그나 미니홈피 같은 인터넷 공간을 활용할 수도 있다. 공적으로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다수가 보는 곳이니 더 이성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 화가 난 이유를 적고 그때 내 감정이 어땠는지, 다른 사람이라면 어떻게 느꼈을지, 내 잘못은 무엇인지 적어내려 간다. 이때 ‘재수없다’거나 ‘때리고 싶다’는 등 극단적인 표현으로 감정을 배설하지 않았는지 돌아본다. 공공연하게 인신공격을 하지 않도록 유의한다.
넷째, 일방통행 No! 대화를 한다
화난 상대에게 화를 표현할 때 둘은 대화중이라는 점을 명심한다. 내 말을 폭포처럼 쏟아 붓지 마라.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을 표현했으면 마찬가지로 상대의 말도 들어준다. 자기 말만 퍼붓고 반론이 두려워 휙 가버리면 상황은 악화된다. 또 상대를 앞에 두고 어중간하게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리는 일도 좋지 않다. 상대가 내 말을 아예 못 들을 수도 있고, 듣더라도 심각하게 안 좋은 말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 최대한 눈을 맞추고,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 톤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TIP. 투덜이 건강법을 실천할 때 주의사항》
● 쌓았다 한꺼번에 표출하지 말고 그때그때 조금씩 해소한다.
● 너무 자주 화내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
● 정당하지 않은 감정을 말해도 동의나 공감을 얻을 만큼 편한 사람에게 말한다.
● ‘나는 ~라고 느낀다’라는 문장을 쓰면 순수한 내 느낌을 전하는 데 도움 된다.
●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욕이나 모욕, 빈정거림을 피한다.
김혜남 박사는 국립서울정신병원 정신분석 전문의를 거쳐 현재 서울의대 초빙교수로 활동 중이다. 2006년 한국정신분석학회 학술상 수상.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외 다수 저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