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도움말 |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강철인 교수】
작디작은 진드기가 대한민국을 공포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던 잔디밭도, 매일 오르던 뒷산도 어느새 가기 꺼려지는 장소가 되어 버렸다. ‘살인진드기’에 물릴까 봐 마음을 졸인 지 벌써 한 달이 훌쩍 넘었다. 5월 21일 국내 첫 살인진드기 감염 환자를 확인했다는 뉴스가 발표되면서 그동안의 ‘설마’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이후 전국 각지에서 살인진드기 의심환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국민의 우려는 날로 커지고 있다. 살인진드기에 물리는 것은 상상만 해도 오만상이 찌푸려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살인진드기, 진짜 살 떨리게 무서운 진드기일까? 살인진드기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알아본다.
진드기 때문에 온 나라가 벌벌
요즘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아이템이 있다. 살인진드기 퇴치를 앞세운 제품들이다. 곤충 기피제부터 진드기의 접근을 막는 기능성 의류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이런 현상은 살인진드기라고 불리는 작은소참진드기를 경계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작은소참진드기에 물리면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은 주로 고열, 구토, 설사, 혈소판 감소, 다발성 장기부전 등의 증상을 보이는 질환이다.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강철인 교수는 “현재로서는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이 의심되는 환자가 병원에 와도 마땅한 치료제가 없기 때문에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를 한다.”고 설명한다. 바이러스 자체를 없앨 수 없어서 환자가 호흡이 어려우면 호흡기를 달고, 열이 심하면 해열제를 처방하는 것이다.
작은소참진드기로 인한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은 감별이 쉽지 않다.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에서 보이는 고열, 구토, 설사 같은 증상은 다른 원인으로도 흔하게 발생한다. 특히 요즘같이 날씨가 덥고 바깥활동이 많을 때 잘 생기는 식중독, 피로 등으로 인해서 생길 수 있다. 몸속 장기들이 제 역할을 못하는 다발성 장기부전도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이 아닌 다른 원인에 의한 감염으로도 발생한다.
일단 야외활동을 한 후 6~14일의 잠복기 이내에 38~40도에 이르는 고열이나 구토, 설사 등의 증상이 있으면 검사를 받아야 한다.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은 진드기 같은 매개체를 통해 감염되는 질환이다. 매개체가 존재해야만 바이러스 감염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일상적 환경에서 사람 간에는 전파될 수 없다.
날개 없는 갈색 작은 진드기 주의!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과 관련된 야생 진드기는 작은소참진드기이며, 일반적으로 집에 서식하는 집먼지진드기와는 아주 다른 종류다. 작은소참진드기는 주로 전국의 들판이나 산의 풀숲 등에서 서식한다. 드물게 도시지역 수풀이나 시가지 주변 풀숲에도 존재할 수 있다. 진드기가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어 의심환자는 특정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있다.
작은소참진드기의 크기는 약 2~3mm이며, 몸은 갈색이다. 날개는 없다. 작은소참진드기 등 야생진드기는 5~8월에 활동이 가장 왕성하며 가을철까지는 조심해야 한다.
강철인 교수는 “작은소참진드기로 인한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을 예방하는 유일한 방법은 살인진드기에 물리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먼저 야외활동을 하기 전에는 노출을 최소화해야 한다. 긴 소매 옷이나 긴 바지를 입고, 발을 완전히 덮는 신발을 신는 것이 좋다. 논밭에서 일할 때는 토시와 장화를 착용하면 진드기의 접근을 막을 수 있다. 또한 풀밭에 갔다가 집에 돌아온 후에는 야외에서 입었던 옷을 세탁하고 몸도 깨끗이 씻어야 한다.
강철인 교수는 “야외활동을 할 때에는 진드기에 작용하는 곤충 기피제를 사용하는 것도 좋다.”고 설명한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곤충 기피제의 종류는 여러 가지다.
강철인 교수는 “진드기는 일반적인 곤충류가 아니므로 진드기를 쫓는 기능이 있는 곤충기피제를 사야 한다.”고 당부한다. 기피제를 코로 흡입하거나 입으로 들어가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므로 얼굴 부위 사용은 주의해야 한다. 아이나 임신부라면 약품 함량을 줄여서 만든 기피제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TIP. 만약 진드기에 물렸다면?>
대부분의 진드기는 몸에 붙으면 피부에 단단히 고정되어 장시간 흡혈한다. 진드기를 발견했다고 무리하게 당기면 진드기 일부가 피부에 남아 있을 수 있다. 이때는 핀셋 등을 이용해 제거하는 것이 좋다. 또 진드기에 물린 후 심한 발열, 구토 등의 증상이 있다면 신속하게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야 한다.
– 질병관리본부는 의사가 직접 상담하는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 전담 민원상황실(043-719-7086)을 운영하고 있다.
진드기 무서워 야외활동 못한다?
작은소참진드기를 조심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작은소참진드기 때문에 야외 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현재 국내에 서식하는 작은소참진드기의 100마리 중 1마리 이하에서만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 바이러스가 발견되고 있다. 따라서 진드기에 물려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에 걸릴 가능성은 극히 낮다. 야생진드기에게 물린다고 해도 당시 바이러스 양, 개개인의 면역력에 따라 감염확률은 더 낮아진다.
강철인 교수는 “흔히 불리는 살인진드기의 ‘살인’은 과장된 것”이라고 말한다. 모기에 물려 일본뇌염이나 말라리아에 걸려서 사망하는 사람이 훨씬 많은데 여기에는 ‘살인모기’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강철인 교수는 “현 상황에서 지나친 공포심으로 여행이나 야외활동을 제한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TIP. 작은소참진드기 예방 수칙 9가지>
1. 긴 팔, 긴 바지, 긴 양말 등 피부 노출을 최소화할 수 있는 옷을 입는다.
2. 등산, 트래킹 등 야외활동을 할 때는 진드기 기피제를 준비해서 뿌린다.
3. 작업 및 야외활동 후에는 즉시 샤워나 목욕을 한다.
4. 작업 및 야외활동 후에는 작업복, 옷, 속옷, 양말 등을 세탁한다.
5. 풀밭 위에 옷을 벗어놓고 눕거나 잠을 자지 않는다.
6. 풀밭 위에서는 돗자리를 펴서 앉고, 사용한 돗자리는 씻어서 햇볕에 말린다.
7. 논밭 작업 중 풀숲에 앉아서 용변을 보지 않는다.
8. 논밭에서 작업을 하기 전에 기피제를 뿌린 작업복과 토시를 착용한다.
9. 논밭에서 작업을 할 때는 소매와 바지 끝을 단단히 여미고, 장화를 신는다.
강철인 교수는 삼성서울병원에서 감염성 질환을 전문으로 진료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전임의, 미국 미네소타주 Mayo clinic, Rochester 연구전임의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