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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수기] 여명 2개월 진단받았던 췌장암과 친구처럼~ 구문회 씨 체험고백

2013년 08월 건강다이제스트 냉방호 16p

【건강다이제스트 | 구문회 (54세, 경남 진주시 거주)】

“5년 후, 10년 후에도 근황을 알리고 싶습니다.”

여명을 2개월 진단받았었는데 벌써 6년째 접어들었습니다. 앞으로 투병하며 살아야 할 길이 너무 멀고도 먼데 덤으로 사는 세상 너무도 고맙고 감사해서 이 글을 올립니다.

명치에 나타난 통증의 정체

저는 2008년 여름까진 산에 미친놈이었습니다. 시간만 나면 산에 올랐고 시간이 안 나면 만들어서라도 산에 올랐습니다.?2008년 초여름에는 일본 북알프스산을 4박5일 동안 종주를 했습니다. 그때 소변은 평상시대로 봤는데 대변을 한 번도 보지 못했고 국내에 들어와서야 약간의 대변을 봤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 후로 체중이 빠지면서 명치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소화도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동네의원에 갔더니 “먹은 게 얹힌 것 같다.”면서 소화제를 처방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소화제를 먹어도 아픔은 계속됐습니다. ?

그렇게 해서 받게 된 위내시경 검사 결과는 당혹스러웠습니다. 위 내시경 결과 십이지장 구멍은 완전히 막혀 있었으며, 내시경 사진은 쓸개즙 색깔이었습니다.?의사도 놀랐던지 초음파와 CT도 찍어보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빨리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췌장암 말기에 여명은 3개월?

바로 다음날 새벽, 첫차를 타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을 했습니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OO병원 응급실로 가서 바로 입원을 했습니다. 이틀 동안 각종 검사가 이어졌고, 그리고 나온 검사 결과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담당의사는 말했습니다. “췌장암 말기(간 전이, 림프 전이, 복수 많이 참)로 여명은 3개월 정도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 상태로는 수술도 불가능하고, 항암치료, 방사선치료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했습니다. 더 이상 병원에서는 해줄 것은 없는 상태라고 했습니다.?

이럴 수도 있나 싶었습니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3개월치 진통제(봉지에 붉은 사선 두 줄에 마약이라고 인쇄되어 있었음) 두 봉지를 처방받아 퇴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항암치료는 포기하다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경상남도 암센터에 근무하는 친구가 하는 데까지 해보자며 대전에 있는 한 대학병원의 사이버나이프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또다시 이것저것 검사를 받았고, 담당의사는 말했습니다. “시술 도중에 죽을 수도 있으며, 성공(1년 생명연장) 확률은 5%밖에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런 치료도 안 할 경우 여명은 2개월 정도라고 했으며, 아내에게는 빠르면 보름 안에 죽을 수도 있으니 장례식 준비까지 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많이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마음은 많이 달랐습니다. 치료를 꼭 받아야 한다면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아내에게 항복하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거금을 들여 시술을 받았습니다. 시술을 받고 나자 담당의사는 항암치료도 권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간암으로, 어머니는 폐암, 누님은 혈액암으로 고통스런 항암치료를 받다가 생사를 달리하셨기에 항암치료의 실상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항암치료는 확답을 하지 않고 사이버나이프 치료만 받고 퇴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약 한 달 후 경상남도 암센터에 가서 검사를 해보았습니다. 혹시나 사이버나이프가 효과가 있었는지 궁금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검사를 마친 의사가 강한 어조로 “상태가 이런 데도 사이버나이프를 하자고 하던가요?” 물으면서 “지금 상태로는 항암치료를 해도 가능성은 별로”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항암치료는 안 할 생각이었고, 이쯤 되니 매달릴 곳은 한 군데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로지 하나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아내와 함께 경기도 휴전선 부근에 있는 산속 기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한 달간 생수만 먹고, 또 한 달간 작정금식을 했습니다. 또 한 달간 보호식을 한 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하고 보니 이때는 이미 병원에서 말한 여명이 훨씬 지난 뒤였고, 몸 상태는 아주 좋아져 있었습니다. 그러자 살며시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더군다나 아내와 자식들이 저를 살려보겠다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니까 죽을 날만 기다리면서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되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하루 일과표를 만들어 계획적으로 살아보자.’

살고자 하면 살 수 있다!?

● ?새벽 05시 기상 ● ?05시 30분 새벽예배?● ?07시 조식 ● ?09~11시 산행?● ?12시 중식 ● ?14~16시 산행?● ?18시 석식 ● ?21시 취침?

제가 만든 일과표였습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긴 했지만 아무리 아파도 일과표대로 움직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의원을 하는 친구를 우연히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 사정을 알고 한약을 처방해주면서 먹어보라고 했습니다. 물론 의사나 대체의학자들 중에 한약은 먹지 말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친구를 믿었기에 먹었고, 지금도 먹고 있습니다.?

한약은 암을 치료하는 목적보다 제 몸에 이상 증상이 나타나면 증상 치료용으로 먹는 편입니다.?

아마 암환자들 대부분이 고통스런 통증 때문에 많이들 힘들어하실 것입니다. 저 또한 발병 당시에는 명치 부근이 많이 아팠고, 발병 2달 후에는 등쪽이 많이 아팠으며, 발병 4달 후에는 배 전체가 아팠습니다.?

그래서 6개월 보름 동안은 통증 때문에 누워서 자본 적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방 한쪽 코너에서 엄마 뱃속에 있던 자세로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머리는 무릎 가까이 대고 입안에는 손수건으로 재갈을 물고 그렇게 6개월 반을 보냈습니다. 그때 입에 재갈을 물었던 탓에 지금 제 어금니는 다 빠지고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하루하루 고통스런 나날이었습니다. 그런 제게 어느 날 문득 섬광처럼 스치는 글귀가 있었습니다. 암 진단을 받기 몇 년 전 암 관련 서적을 뒤적이다가 눈에 확 들어왔던 문구였습니다.?

“아무런 대가없이 나을 생각을 하지 마라.”

그래서 통증이 오면 저는 이 글귀를 생각하며 ‘그래, 나는 지금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이 대가만 치르고 나면 반드시 나을 수 있다.’고 세뇌시켰습니다.?

통증이 오면 저는 미친 듯이 웃기도 했습니다. 웃음치료를 배운 것은 아닙니다. 희한하게 미친 듯이 웃고 나면 통증이 없어진다는 걸 느꼈습니다. 통증은 스트레스하고 깊은 관계가 있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그렇게 생활한 때문이었을까요? ?어쩐 일인지 6개월 이후부터는 통증이 서서히 없어지더니 지금까지도 괜찮습니다.?

통증이 사라진 이후부터는 암과 관련된 세미나나 모임이 있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라도 찾아다녔습니다.?

제일 처음 찾아간 모임은 ‘췌장암길잡이(현재는 한국췌장암환우협회)’라는 카페를 통한 췌장암 환우들만의 모임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카페지기를 만났는데 제게 너무나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애석하게도 그 친구는 저희 집에 놀러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인하여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

임종하기 전 카페운영을 제게 부탁해 임종 후부터 카페 회원들의 만장일치로 카페를 운영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온라인상으로 또는 오프라인상으로 많은 정보를 나누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이후부터 암환우가 있는 곳이라면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이 다녔고, 암환우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전국체전 성화봉송 주자도 했습니다.?

지금은 백운쉼터 조계산힐링센터 강석진 원장님을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강 원장님 또한 암을 이겨내신 분으로서 암환우를 위하는 마음이 저와 일맥상통하다고 느꼈기에 백운쉼터에서 부원장이라는 과분한 자리에 앉아있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제2의 인생을 어떻게 꾸려 나갈지 깊이 생각해 볼까 합니다.?

황토방을 짓고 매일 산에 오르다

췌장암 진단을 받고 투병을 시작하면서 제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시골에 자그마한 부지를 구입해서 황토방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화학약품(본드, 시멘트 등)을 하나도 쓰지 않고 제 손수 황토방을 지었습니다. 이렇게 지은 황토방은 지금 ?우리 동네 명물이 되었습니다. 모두들 구경하는 집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황토방을 지어서 시골로 이사를 한 후 저는 한 가지 생각만 했습니다. 누워있으면 죽는다는 일념 하에 잠자는 시간 외에는 반드시 방에서 무조건 나왔습니다. 아침 먹고 나서 배낭 챙겨 산에 올라가면 저녁 먹을 때까지는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

그러면서 투병 3년 동안 가장 신경을 많이 썼던 것은 신진대사입니다. 일단은 잘 먹고 잘 싸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일 년은 대변을 집에서 양변기에 본 적이 없습니다. 산에 올라가서 볼일을 본 후에 변의 색깔, 묽기, 이물질이 있는가 없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만약 이상이 생기면 바로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일기장을 가지고 다니면서 일기를 썼습니다. 하루 일과를 빠짐없이 기록했고, 뭘 먹었는지, 얼마만큼 배출했는지까지 꼼꼼히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기록한 일기장은 제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종종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5년 후, 10년 후에도 근황 알리고파

제 생각에 암은 뭘 먹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물을 한 잔 마셔도 꼭 낫는다는 일념 하에 마시면 그것이 약물이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그래서 제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강 덕목은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식사는 현미+찹쌀현미+차조+서리태 등등의 밥으로 하며, 반찬은 체질에 맞는 채식을 주로 합니다. 생선은 일주일에 두세 끼 정도 먹으며 육식은 절대로 먹지 않습니다.?

식사시간은 40분에서 1시간 정도로 먹습니다. 숟가락으로 먹지 않고 젓가락으로만 먹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산행은 빼놓지 않으며, 초창기 때부터 그랬지만 산행은 남들이 걱정할 정도로 ‘빡세게’ 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좀 건방진 소리일지 모르지만 병을 낫게 하는 것은 어떤 좋은 약을 먹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뭘 먹어도 꼭 낫는다는 믿음 하에 먹어야 하며,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저는 늘 이렇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인간인지라 힘들 수 있으나 노력하면 될 거라 믿습니다.?

저는 통증이 오면 나사 하나 빠진 사람처럼 웃었습니다. 그렇게 해보니 신기하게도 통증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2개월밖에 못 산다고 했지만 2개월 하고도 5년 이상의 세월을 더 살았고, 지금의 제 몸 상태라면 앞으로도 10년 아니 20년, 30년도 더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웃으면 엔도르핀이 생긴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일 것입니다. 엔도르핀이 생기면 NK세포가 생성됩니다. 감동을 받거나 희열을 느끼면 엔도르핀의 4000배인 다이돌핀이 생깁니다.?

늘 많이 웃으시고 많은 감동이나 희열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면역력을 키우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몸에 좋은 세포를 깨워야 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암과 싸우고 있다면 우선 암을 사랑하세요. 암을 죽이려고 하면 사람이 먼저 죽습니다. ?

췌장암은 항암으로는 생명의 연장일 뿐이지 치료의 목적은 절대 아니며, 항암으로 암의 크기를 줄이거나 시간을 번 후에 대체요법을 공부하며 어떤 요법들을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할 겁니다.

암과 관련된 책들이 수백 권이 나와 있지만 항암으로 치료했다는 책은 단 한 권도 없습니다. 암과 싸우시는 모든 분들 희망을 가지고 파이팅합시다. 저는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투병하여 5년 후, 10년 후 다시 이런 글을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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