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서울메디칼랩 김형일 의학박사】
G 그룹의 P 부장은 며칠 전부터 가슴이 불편하였다. 지난번 검진에서 고지혈증이라는 판정을 받았었는데, 아무래도 혈전증으로 관상동맥이 막혔거나 심근경색증이 생길까 걱정 되었다. 고교 동창이 있는 G대학병원으로 가서 심장검진을 받았다. 손쉬운 심전도(EKG)부터 어렵고 힘든 조영촬영과 CT까지, 이틀 동안 꼬박 검사만 받았다. 결과는 “별일 없으니 안심하고 퇴원하라.”는 것이었다.
다음날 목욕탕에 갔는데 옆구리에 뭔가 뽀골뽀골한 것이 군데군데 나와 있었다. 병원에서는 그것을 대상포진(帶狀疱疹, Varkcella zoster)이라 진단하였다. 고지혈증에 의한 심장병 때문에 가슴이 불편했던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 감염 때문에 그렇게 아팠던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진단이라고 생각했던 대상포진이 치료된 후에도 피곤증은 계속되며 체중감소가 지속되고 온몸이 저리고 아팠다. 그래서 또 부인의 권유로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갔는데, 이 모든 증상은 “혈액에 노폐물이 쌓이고 탁해져서 혈액순환장애 때문에 생긴 만성피로증후군”이라고 진단하였다.
거기서 주는 약을 열심히 먹었으나 피곤증은 계속되고 아침에는 도저히 일어나기가 어렵고 하루 내내 온몸이 노곤하였다. 그 후에도 P 부장은 여기저기서 약도 많이 먹고 검사도 많이 받던 중, 결국 혈액정밀검진에서 ‘만성골수성 백혈병(CML)’과 ‘부신피질 이상에 의한 포타슘(칼륨K+) 부족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처럼 어이없는 사건은 사실 너무도 흔하고, 오늘도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이다. 그런 병이 어떻게 CT나 MRI로 발견될 수 있겠는가? 그런 병이 어떻게 노폐물이 쌓이고 탁해지는 혈액순환장애 피곤증이라고 진단될 수 있단 말인가?
뭔가 부족하여 피곤해진 것을 오히려 뭔가 많이 쌓이고 탁해서 피곤한 것이라고 약을 먹는다면 도대체 우리 몸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추겠는가?
만성피곤증(慢性疲困, Chronis fatigur syndrome)증이란 인체 성분의 부족 현상이다. 부족 성분을 찾아내어 그것을 보충할 수 있을 때에만 진정한 치료가 성립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두루뭉술하게 얼버무려서 그저 “혈액이 탁하고 노폐물이 쌓이고 혈액순환장애가 생겨서 피곤한 것”이라고 약이나 먹고 있다면, P 부장처럼 암이나 괴질에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성피로를 그저 감기나 몸살, 혈액순환장애쯤으로 여기며 세월을 보내는 것은 애써 더 큰 병을 만들고자 함과 같은 자살행위다.
만성피곤증은 신체의 자율조정 능력이 깨어진 상태를 알려주는 경고이며, 암에 걸리려는 전단계임을 알아야 한다. 큰 병원이나 용한 의원이 더 좋은 것은 결코 아니다. 환자의 불편 증상을 잘 들어주고 상태를 세심하게 살펴주는 진료가 정말 좋은 시스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