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건강칼럼니스트 문종환】
지난 10년이 넘는 시간을 암에 대해서 공부해 오면서 필자 자신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처음에 접근할 때는 당연히 물질이 치료의 핵심 소재였고 치료에 도움이 되는 물질들을 찾아 문헌을 뒤지고 자료를 정리하느라 밤을 지새웠다. 그런데 시간이 점차 흐르고 많은 암 환자의 치유 사례를 수집하고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물질 중심으로 접근하면 반쪽짜리 성과밖에 올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완전한 치유는 결국 마음에서 비롯된다.
어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한 목적은 교사인 딸이 암 진단을 받았는데 추천해 줄 만한 적절한 장소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결혼한 지 25년 된 딸의 이야기가 한 시간 동안 풀어졌다. 결국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온 딸의 이야기다. 그 스트레스는 일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사람 때문에, 그것도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서 받는 스트레스가 가장 컸다. 특별한 해결책도 없는 상태에서 무조건 쌓아둘 수밖에 없어 암의 싹을 틔우는 데 가장 좋은 조건이 된 것이었다.
스트레스 상대가 있는 경우, 상대방을 바꿀 수 없으므로 자신이 변해야 한다. 물론 가족 사이에 문제가 있으면 다양한 방법, 예를 들어 전문가를 통한 심리상담, 가족상담 등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이것도 어느 일방이 불응하면 문제를 풀 수가 없다.
그러니 내가 변해야 하고 그 도구는 사랑이 가장 효과적이다. 필자가 변즉생(變卽生), 불변즉사(不變卽死)를 강조하는 이유다.
사랑의 완성은 ‘용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성경 고린도전서에 등장하는 사랑예찬에 관한 구절이다. 불교에서는 자비라는 말로,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랑이라는 말은 다양한 형태로 발현되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한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비인격적 존재에 대한 사랑이다. 즉 돈, 집, 차량, 음식, 옷 등 물질적 사랑과 권력이나 명예에 대한 사랑이 지나치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인격적 사랑, 예를 들어 이웃사랑과 심지어 자기애(자기사랑)까지 경시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관념적인 사랑의 표현인 아가페(agape)는 사람에 대한 신의 무한사랑이며,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은 스토르게(storge), 우정을 포함한 보다 넓은 의미의 사랑은 필리아(philia), 남녀 간의 사랑은 에로스(eros)로 표현된다.
물질이 중요한 삶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이런 관념적인 사랑의 형태는 왜곡되기 시작했다. 이제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어 각종 만성질환을 만들어 내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신은 없다.”는 사르트르의 말에도 불구하고 절대자는 항상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우리는 위험과 환난을 당했을 때 아무 조건도 이유도 없이 하느님을 찾게 되는데 이는 종교를 초월한 우리 마음속의 하느님이며 절대자다. 우리 마음속의 하느님에게 약간이라도 의지하게 되면 마음이 편해지는데 우리가 투병할 때도 도움이 된다. 마음의 안정이 가장 절실히 필요하므로 종교, 혹은 절대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만약 지금까지 삶의 80% 이상이 물질추(物質錘)로 기울어져 있었다면 이를 거꾸로 해보자. 80% 이상을 진정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정신추(情神錘)로 기울게 하여 삶을 새롭게 재편하는 것이 투병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전하고 싶다.
사람에게서 사랑이라는 마음을 빼고 나면 귀하다 할 만한 것이 없다. 피부라는 껍데기가 고깃덩어리와 뼈를 감싸고 있을 뿐이다. 사람이 본능에만 따르면 짐승과 다를 바 없다. 신이 사람에게 부여한 가장 값진 감정인 사랑, 그 사랑은 용서를 전제로 함으로써 완성된다.
우리는 일상에서 많은 사람들에게서 상처를 받거나 혹은 주면서 살아간다. 그 상처는 용서로써 치유되지만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암 환자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미처 치유하지 못한 많은 상처를 마음속에 쌓아두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암이라는 물질로 변화될 수 있다. 이렇게 마음의 상처가 암화(癌化)된 사람이 있다면 물질적인 치료보다는 마음의 치유가 먼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사랑은 용서를 통해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암의 원인을 해소해 궁극적으로 암을 소멸해 갈 수 있도록 에너지를 제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러분 마음속에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해를 입힌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복수에 대한 감정이 남아 있다면 용서로 없애야 할 것이다. 부정적인 마음은 몸속에 나쁜 물질을 만들어내 암을 악화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기 때문이다.
거꾸로 생각, 암 진단은 절망이 아니다!
변화를 통한 위기 탈출, 사랑이라는 매개로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생활이 필요할 때다. 참 기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영혼이 맑은 사람은 물질이 부족해도 행복할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한다. 깨달음은 부족함에서 오는 것이며 넘침에서는 어떤 지혜나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모든 것은 궁함에서 얻을 수 있다. 당신이 암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불안해하거나 초조해 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이제부터 당신은 마음먹은 대로 얻을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쉽게 바꿀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밥상, 생각, 행동을 바꿔나간다. 통상의 경우 이런 습관들은 바꾸기 힘들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은 습관 바꿈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도 당신은 충분히 바꿀 수 있다.
습관이 당신의 몸에 암을 만들었다고 하면 당신은 수긍하지 않으려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70% 이상은 사실이다. 유전적인 요소를 빼고는 습관이 암을 만든다. 습관을 그대로 두고 수술로, 또는 항암제로만 암을 없애려 하는 것은 뿌리는 그대로 두고 싹을 잘라내는 것과 같다. 잘려진 싹은 다시 돋아날 것임은 분명하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랑과 마음의 상처와 스트레스를 용해시킬 용서와 최고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나눔과 봉사, 그리고 당신의 마음을 본래의 모습으로 바꿔줄 창작활동과 마음과 영혼에 낀 이물질과 쓰레기를 청소해 줄 미술(눈)과 음악(귀), 세포를 춤추게 하는 웃음 등은 당신의 몸에서 암을 녹여줄 훌륭한 치유 촉진제다.
암 진단을 받은 당신의 지금 심정은 어떨까. 살아온 날들이 고마운 줄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사물 하나하나가 고맙기도 하고 때로는 신비롭게도 느껴진다. 산과 들을 걷다가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산꽃과 들꽃 앞에서 발길이 멈춰지면 그 꽃들의 피고 짐이 경이롭게도 느껴진다.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감정들이 봇물처럼 쏟아지는데 죽음 앞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인이 되는 것은 그동안 억눌려 있던 감성들이 되살아나 활동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지독한 사람을 겪어보지 않고는 참된 사람의 고마움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닥쳐봐야 평온한 날들이 큰 기쁨인 줄을 알게 되는 것이 사람이다. 여러분의 고통이 다른 사람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며, 다만 지금 나를 똑바로 보고 바꿔가야 할 일만 남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