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은혜 기자】
“인생 2막은 하루하루가 설레요”
누구에게나 한 번뿐인 삶…?그런데 그 삶이 너무 불행하다면? ?신의 실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너무 가혹하다면? ?많이 억울할 것이다. ‘왜 내게만?’ 화도 날 것이다. 누구든 붙잡고 따지고 싶기도 할 것이다.
지금 소개할 정윤숙 씨(59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내 든 생각이었다.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 너무나 혹독했던 시련. 불행한 가정사에 직장암 진단까지…
그랬던 그녀가 오늘은 웃고 산다. 비록 장루 2개를 달고 사는 몸이 됐지만 인생 2막은 너무나 행복하다며 감사해한다.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4년 만의 결단
열여덟 나이에 결혼을 하고, 2남 1녀를 두고…. 이 사실만 놓고 보면 정윤숙 씨 삶은 평범해 보인다. 결혼을 좀 빨리 했네 정도다. 그러나 그녀 인생에서 결혼생활 24년은 결코 떠올리고 싶지 않다. 남편의 폭력 앞에서 참고 참고 또 참아낸 24년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구구절절 말해 무엇 하겠어요.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마음도 닫고, 입도 닫고 오로지 아이들 크기만을 기다렸다가 맨몸으로 집을 나왔으니까요.”
그 후의 일은 모두가 상상하는 대로다. 40줄에 들어선 여자가 맨몸으로 집을 나와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식당일도 하고 청소도 하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던 중에 새로운 인연도 만났다.
“암으로 아내와 사별한 사람이었는데 사람이 참 자상했어요. 그래서 다른 것 따지지 않고 재혼을 했어요. 이제부터는 정말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누가 시샘이라도 한 걸까? 그 행복은 그리 길지 않았다.
오래된 치질이 직장암이라니?
1999년 7월경. 재혼을 하고 생활의 안정도 되찾았던 정윤숙 씨는 항문병원을 찾았다. 오래된 치질 증상 때문이었다.
“혈변이 나오고 변이 가늘고 항문이 묵직하고…. 그래서 수술이라도 받아볼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항문에 손을 넣어 직장수지검사를 하던 의사가 이상한 말을 했다.
“지금 치질이 문제가 아닙니다. 암 덩어리가 있으니까 빨리 입원 수속부터 밟으세요.”
세상에 이럴 수도 있나 싶었다. 암이라니…그것도 당장 입원을 하라니….
“너무 놀라서 따져 물었죠. 그게 무슨 말이냐고? 조직검사도 안 해보고 암이냐고? 만약 암이면 집에 가서 상의도 하고 준비도 해야 되지 않겠냐고….”
그러나 되돌아온 담당의사의 말은 냉정했다. “이 상황에서 준비할 것이 뭐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나이를 물었다.
“마흔 넷이에요.” 그러자 의사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아깝네.”
그 후의 일은 마치 꿈속 같다. 암인지 드러나는 순간 맹렬히 커진다며 하루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따라 수술을 했고, 불행 중 다행으로 항문은 살렸다는 말도 들었다. 또 1년 정도는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기에 고통스런 항암치료도 거뜬히 견뎌냈다.
그런데 왜였을까? 수술하고 항암치료만 하면 될 줄 알았던 암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1년 만에 또다시 재발했다고 하대요. 수술한 그 자리에 또다시 암이 생겼다고 했어요.”
담당의사는 “처음 수술할 때 미심쩍은 것이 있었는데 항문을 살리기 위해 그냥 뒀던 것이 화근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믿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항암치료도 받았는데 재발이라니…. 무엇보다 재발했다는 말을 듣자 남편의 낯빛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것은 곧 이별의 신호가 됐다.
재수술 대신 요양원으로…
재혼 1년 만에 또다시 벼랑 끝으로 내몰린 정윤숙 씨. 병원에서는 재수술을 하자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재혼한 남편에게 더 이상 짐이 되기 싫었다. “그래서 도망치듯 집을 나오면서 재혼한 남편과의 인연도 종지부를 찍었어요.”
다시금 혼자가 된 몸. 상황은 더 나빠져 있었다. 이제는 병까지 든 몸이었다. 그런데 그 작은 몸 하나 맡길 데가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하나밖에 없었어요. 무작정 하나님 앞에 엎드렸어요. 사실 그동안 너무도 혹독한 시련을 주시기에 원망하는 마음이 커서 애써 외면하고 있던 하나님이었어요. 그런데 최악의 상황이 되니 매달릴 곳은 하나님밖에 없더군요. 그래서 무릎을 꿇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세상에 대한 원망도, 사람에 대한 미움도 눈물 속에 흘려보냈다. 원망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이며, 미워한들 달라질 것도 없음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런 그녀에게 한 권의 책은 안식으로 인도하는 길을 밝혀주었다. <사랑받는 세포는 암을 이긴다>는 책을 접하면서 전남 보성에 있는 한 종교단체에 병든 몸을 맡길 수 있었다.
용서하며, 기뻐하며 살았던 3년의 축복
전남 보성에 있는 전인치유센터는 정윤숙 씨 삶에서 결코 잊을 수 없다. “3년 동안 있으면서 식습관도 바꾸고, 생활도 바꾸고, 생각도 바꾸면서 비로소 건강의 큰 밑그림을 그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암이 왜 생겼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비로소 그 해답을 찾았다고 말한다. 암에 대해 알면 알수록 잘못 살아온 지난 세월이 후회스러웠다. 무절제한 생활, 원망, 미움으로 가득 찼던 마음속 응어리, 이 모든 것이 암이 생기는 데 일조를 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렴풋이 윤곽이 잡히더군요. 그래서 식습관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생활을 바꿨어요.” 이때 정윤숙 씨가 정성을 다해 실천한 생활신조는 7가지였다고 한다.
첫째, 과식 안 하기
둘째, 간식 안 먹
셋째, 고기 안 먹기
넷째, 물 많이 마시기
다섯째, 햇볕 충분히 쬐기
여섯째, 하루에 두 번 산책하기
일곱째, 하나님께 기도하기
이 같은 생활이 정윤숙 씨의 암 투병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렇게 3년을 보냈지만 암에는 큰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이런 생활을 하면서 비로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걷어낼 수 있었고, 남편에 대한 미움도 사라졌다.”고 말한다.
비로소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을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고, 핍박한 사람도 사랑하고 심지어 원수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도 이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런 깨달음을 얻으니 그동안 안 좋았던 기억들이 안개 속에 묻힌 것처럼 생각에서 모두 지워졌다고 말한다.
그런 때문일까? 정윤숙 씨에게 있어 치유센터에서의 3년은 너무 기쁘고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종종 찾아오는 암의 통증은 고통스러웠지만 그 고통마저도 기꺼이 받아들였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참는 데도 한계는 있나 보다. 더 이상 통증 조절이 안 되자 정윤숙 씨는 최후의 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생각지도 못한 행운의 주인공 되다!
진통제를 먹어도 아무 소용이 없을 때 말기암 환자들이 최후의 방법으로 선택하는 것이 있다. 척추신경을 끊는 수술이다. “제가 결심한 것도 바로 이 방법이었어요.”
그래서 찾게 된 병원. 그러나 수술실에 들어갔던 정윤숙 씨는 그대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척추뼈가 기형이어서 시술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실망하고 돌아서던 그녀를 불러 세운 의사가 있었다. 방사선과 의사였다. 검사를 한 번 해보자고 했다. 그러나 검사 결과는 좋지 않았다. 암 덩어리가 너무 커서 당장 수술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암 덩어리가 엄청 크긴 한데 돌덩이처럼 딱딱하지 않고 물렁물렁해서 방사선을 쬐어 크기를 줄이면 수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갖은 우여곡절 끝에 2003년 2차 암 수술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지금 생각해도 행운처럼 느껴진다는 정윤숙 씨. 암의 크기를 줄여 수술을 했고, 전이도 없어 암은 깨끗이 제거됐다는 말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는 전혀 새로운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장루 2개를 단 몸이지만 인생 2막은 행복해요!
2차 암 수술은 정윤숙 씨에게 인공항문을 선물했다. 암세포가 남긴 상흔처럼 장루를 달아야 했다.
?“똥이 배로 나온다고 생각하니 처음엔 기가 막히더군요. 그러나 그렇게 해서라도 생명을 건졌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그 당시 하나로 시작됐던 장루는 지금 두 개다. 장 폐색이 몇 번 오면서 소장의 기능도 장루로 대신하게 됐다. 장루 두 개를 수시로 갈아야 하고 냄새도 나지만 그래도 정윤숙 씨는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고 말한다. 비록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한 요양병원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가지만 인생 2막은 하루하루 너무 설레고 기대된다며 어쩔 줄 몰라 한다.
“기타를 배우면서 힐링소리단을 만들어 노래봉사도 다니고 찬양 인도도 하고…지금까지 제 불행만 쳐다보고 살았는데 지금은 저보다 더 어려운 이웃도 돌아보게 되면서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온통 실패와 좌절뿐이라고 여겨졌던 인생, 그런데 그 인생이 지금은 축복처럼 느껴진다는 정윤숙 씨.
그래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고, 열심히 봉사활동도 다닌다. 그런 그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하나다. 죽음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암이 무서운 것도 죽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누구나 죽는다. 모두에게 공평하다. 단지 조금 빠르고 늦은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 차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게 정윤숙 씨 생각이다. 그저 오늘 주어진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고 최고로 즐겁게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도 기타연습을 하고, 봉사계획을 세우며 그녀에게 주어진 하루를 여한 없이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