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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희망가] 유방암에 자궁경부암까지 이겨내고 항암요리 전문가로 화려하게 변신~ 황미선 씨가 사는 법

2014년 04월 건강다이제스트 초록호 12p

【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암 환자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항암요리 개발은?제게 주어진 사명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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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얼굴에 화장이라곤 못하는 사람. 샴푸, 린스, 치약조차 쓰지 못하는 사람. 박하향 냄새만 맡아도 울렁증이 생기는 사람. 심지어 주황색 옷조차 입지 못하는 사람. 한창기인 40대에 느닷없이 찾아온 암이라는 불청객은 무서웠다.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잃어버린 40대를 살았던 했던 황미선 씨(54세). 유방암 3기, 생존율은 15%, 그 와중에 자궁경부암 진단까지 받으면서 그녀의 삶은 한순간에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너무도 가혹했던 운명의 굴레 속에서 하루하루 사투를 벌여야 했다. 그랬던 그녀가 오늘은 다르다. 경기도 양평의 한 산골에서 황토집을 짓고 항암요리를 연구하며 나무처럼 별처럼 산다. ?‘항암요리 전문가 황미선’으로 화려하게 변신 중이다.

비록 지금도 항암치료 후유증으로 스킨, 로션 냄새만 맡아도 울렁증이 생기고, 항암주사에서 나던 박하향 때문에 박하향 소리만 들어도 속이 메슥거리며, 항암제 색깔이 주황색이었던 탓에 주황색 옷은 입지도 못하는 몸이 됐지만 자연과 더불어 하루를 살고, 자연에서 나온 먹거리로 요리를 하는 것이 더없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황미선 씨.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이 40에 불현듯 찾아온 불행

황미선 씨 인생에서 40대는 잃어버린 시간과도 같다. 하루하루 고통으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살기 위해 사투를 벌여야 했던 나날들이었다. 그 불행의 단초가 됐던 것은 누가 뭐래도 스트레스였다.

“지금 와서 구구절절 이야기하고 싶진 않지만 1999년 당시 경제적인 손실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었어요.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살다가 하루아침에 문제가 생기니 견딜 수 없더군요.”

그렇게 2년 정도 속앓이를 했을 때 그녀의 인생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삶의 의욕이 없었다. 매사 무기력하고 피곤했다. 말도 하기 싫었다. 생리량도 많았다 적었다 널을 뛰었다. 게다가 종종 느껴지는 강렬하고 짧은 유방의 통증. 번개가 치듯 훑고 지나가는 통증은 짧지만 강렬했다.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런가보다 했어요. 그런데 점점 더 통증을 느끼는 횟수가 잦아져서 병원을 찾았죠.”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며 담당의사는 말했다. 유방이 너무 치밀하고, 석회화가 많이 진행돼 있다고 했다. 또 유방 조직 사이사이에 모래를 뿌려놓은 것처럼 알갱이가 수없이 깔려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권한 것은 앞으로 계속 추적조사를 해보자는 거였다.

“이때부터 3개월에 한 번씩 초음파를 찍기 시작했어요. 두어 번 검사를 했지만 그 상태 그대로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7개월쯤 흘렀을 때 황미선 씨는 아연실색했다. 갑자기 입이 부르트고 코가 헐기 시작했다. 놀라 달려간 병원에서는 링거만 주었다. “피곤한 증상만 있지 다른 데 이상은 없다고 하자 링거만 한 대 놓아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오후에 또다시 병원으로 달려가야 했다. 샤워를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때 손끝에 느껴지는 딱딱한 ?감촉….

“움푹 파인 왼쪽 겨드랑이 부분에서 만져졌어요. 꼭 메추리알만 한 크기였어요. 손끝에 전해지는 너무도 딱딱한 촉감을 느끼는 순간 온몸으로 소름이 쫙 돋더군요.”

그 후의 일은 마치 꿈속 같다. 큰병원으로 가라는 말을 듣고 허둥지둥 가게 된 병원에서는 촉진만 해보고 말했다. ?“악성종양이고 너무 많이 진행됐다.”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암과 함께 사셨군요.”라는 말은 그녀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혔다.

깨끗하게 제거했습니다!

2002년 8월19일. 그날은 황미선 씨가 유방암 3기 말에서 4기 초로 접어들었다는 진단을 받은 날이다. 생존율 15%라는 선고도 함께였다. 유방에서 림프절로 전이된 것 같다며 하루빨리 수술일정을 잡아야 한다고 통보받은 날이기도 하다.

그런 때문이었을까? 수술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각종 검사가 이어졌고, 얄궂은 운명의 장난처럼 마흔두 번째 생일날로 수술날짜가 잡혔다. 2002년 8월21일 오전 8시에 왼쪽 유방 전절제를 해야 한다고 했다.

암을 이겨내고 함암요리 전문가로 변신한 황미선씨는 <자연식 해독밥상>을 출간해 독자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수술 전날은 잠도 안 오대요. 한밤중에 화장실에 가서 수술 부위를 표시해놓은 마킹을 보고 기겁을 했어요. 너무도 넓게 표시돼 있어 이렇게 절제를 하고도 살 수 있을까 싶었어요.”

‘다시 가족을 볼 수 있을까?’ 장담도 못하겠고, ‘왜 좀 더 일찍 발견하지 못했을까?’ 땅을 치고 후회도 했다. 1분이 10년처럼 흘러 수술날! 그날의 기억은 황미선 씨 인생에서 없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의사가 하던 말만 지금도 또렷이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 “의사 선생님이 ‘깨끗하게 제거했다.’고 하는데 그 말이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렸어요. 이제 살았구나 했어요.”

뒤에 전해 듣기로는 오픈했을 때 암세포는 림프절에 뭉쳐 있는 상태였고, 림프절을 타고 온몸으로 뻗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찰나였다고 했다. 그래서 림프절을 최대한 끌어당겨 28개를 잘라버렸는데 그 중 18개에는 이미 암세포가 전이돼 있었다고 했다.

차라리 죽고 싶었다!

“깨끗하게 제거했다.”는 말을 ‘이제 살았구나.’로 해석했던 황미선 씨. 하지만 그때는 미처 몰랐었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 줄.

“수술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항암치료를 하면서 비로소 알았어요. 세상에 그런 고통이 있을 줄 몰랐어요.”

수술 후 이어진 6번의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황미선 씨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고 한다. “첫 번째 항암주사를 맞고 30분도 지나지 않아 구토가 나오는데 똥물까지 다 올라왔어요.”

먹으면 먹는 대로 다 토해버렸다. 음식 냄새만 맡아도 울렁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벽을 손톱으로 긁으며 울렁증을 참아내야 했다.

“수술 전에는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강했는데 항암치료를 한 번 받고나니 살고 싶은 생각이 단 1%도 없었어요. 차라리 죽고 싶었어요.”

한쪽 유방이 없는 상실감은 상실감대로 그녀를 괴롭혔고, 항암치료 15일째 되던 날 뭉텅 빠져버린 머리카락은 그것대로 차마 감당키 어려운 절망이었다. 설상가상 항암주사를 맞으면서 얼굴은 새까맣게 변해버렸고, 손바닥·발바닥은 진흙탕에 넘어진 것처럼 까만 색소가 앉아 새까맸다. 손톱·발톱 10개도 새까매지더니 쑥쑥 빠져버리고 눈썹·코털까지도 죄다 빠져버렸다.

“그러니 어디 사람 몰골이겠어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룸과 꼭 같았어요.”

너무나 수치스러웠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하루에도 수십 번 자살을 꿈꿨다.

그런 그녀의 발목을 붙잡은 건 가족이었다. 두 아들의 눈빛이었고, 남편의 정성이었다. 아무 것도 먹지 못하는 그녀를 남편은 지극정성으로 돌봤다. 음식 냄새만 맡아도 울렁증이 생기는 그녀를 피해 밤마다 아파트 놀이터로 나가 현미미음을 만들었고, 묵은지국물도 끓였다.

현미로 밥을 지어서 누룽지로 만든 뒤 체에 걸러 만든 현미미음은 겨우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묵은지를 깨끗이 씻어서 된장을 풀고 다시마 한 조각을 넣어 멸치로 지져서 만든 묵은지국물도 황미선 씨가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목넘김을 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음식이었다.

그렇게 해서 겨우겨우 6회의 항암치료가 끝났을 때 황미선 씨 몸은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백혈구 수치는 바닥이었고, 몸무게도 10kg 이상 빠져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얼굴이며 피부며 모두가 새까맣게 변해 있었고, 느글느글 구토 증상은 항암치료가 끝나도 가라앉지 않았다. 냄새만 맡으면 울렁증이 생겼다. 음식 냄새는 말할 것도 없고 화장품, 샴푸, 린스, 심지어 치약냄새까지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몸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자 남편이 그러더군요. ‘당신을 살려야겠다.’며 공기 좋은 곳으로 가자고 하더군요.”

2003년 12월 21일, 황미선 씨 가족은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한 산골로 향했다.

자연의 품에서 축복을 받다

경기도 양평군의 산골로 삶의 터전을 옮긴 황미선 씨. 이때부터 그녀의 생활은 180도 달라졌다. 철저하게 자연을 닮은 생활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먹는 것부터 완전히 바꿨다. 가공식품, 인스턴트식품은 식탁에서 자취를 감췄고, 그 대신 직접 농사지은 것, 산에서 캐고 따온 것들로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저는 여성호르몬의 영향을 받는 유방암이었어요. 가공식품, 인스턴트식품은 독이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죠. ”

웬만한 것은 직접 길러서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선택했던 것이다. 상추며, 배추며, 고추며, 토마토며 쌀농사만 빼고는 손수 키워서 먹거리로 삼았다.

또 있다. 시간 나는 틈틈이 산으로 향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으로 향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산에서 나는 각종 나물, 산에서 따는 각종 열매, 뿌리, 줄기는 그야말로 음이온과 별빛, 달빛으로 자라는 천연 항암제라는 걸.

“한의학에 조예가 깊었던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기도 했어요.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다니면서 약용식물이며 민간요법에 대해 웬만큼은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런 그녀에게 양평군의 산골은 천혜의 약용식물 보고였다. 참나물, 엄나무순, 두릅, 홑잎나물까지…눈만 돌리면 약효를 숨긴 다양한 약용식물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모르는 것은 식물도감을 찾아가며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래서 산에 오르는 그녀의 배낭에는 늘 식물도감이 넣어져 있었고,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산에서 보내기 일쑤였다.

“그렇게 1년 정도가 지나면서 새까맸던 얼굴은 다시 살색으로 돌아오고 몸이 회복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러나 한 번 깨진 항아리가 제 모습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던가 봐요.”

양평군의 산골로 들어온 지 2년 만에 또다시 닥친 불행… 자궁경부암 초기라고 했다. 여성호르몬을 억제하는 약이 도화선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이렇게 되자 그 동안에 해왔던 노력들이 뭐였나 심한 회의감이 들기도 했어요. 약초 공부도 해가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에 오르면서 암 재발을 막기 위해 목숨 건 노력을 했었거든요.”

결국 자궁경부암 초기는 자궁을 들어내는 것으로 마무리가 됐다. 여성호르몬이 최대한 안 나오는 몸으로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그런 탓에 골다공증, 안면홍조, 우울증, 불면증, 노안 등 각종 증상이 쓰나미처럼 불어닥쳤지만 지금의 그녀는 그것마저도 거뜬히 이겨낸 불굴의 승리자가 됐다.

그 비결을 묻는 질문에 황미선 씨는 두 가지를 꼽는다. 하루 2시간 이상 꼬박꼬박 하는 운동과 목숨 걸고 실천하는 식이요법이 바로 그것이다.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는 죽미산 휴양림에 들어가서 운동을 합니다. 고강도로 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빼놓지 않고 목숨 걸고 합니다. 또 자연이 준 건강한 먹거리로 음식을 만들어 맛있게 먹습니다. 산속에 살면서 제철 식재료를 가지고 음식만 잘해 먹어도 많은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은 산속으로 들어와 십년 정도 살면서 깨우친 천금 같은 깨달음이기도 해요.”

오늘도 두 번의 암으로 반드시 끝낸다며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자연에서 얻은 제철식품으로 맛있게 음식도 만들어 먹는 황미선 씨. 그런 그녀가 최근 의미있는 행보를 보여 관심을 끈다. 암 환자들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항암요리 개발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저도 그랬지만 암 환자들은 끓이는 음식, 지지고 볶은 음식은 못 먹습니다. 냄새 때문에 먹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새큼한 샐러드는 괜찮습니다. 살짝 데친 산나물은 잘 먹습니다.”

그래서 시작했다. 암 환자들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항암요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신선한 제철 채소나 산나물로 샐러드를 해먹는 법, 엄나무순으로 물김치를 담가 먹는 법, 아린 맛이 없는 참나물로 김치로 나물로 해먹는 법 등 자연에서 베풀어주는 식재료를 가지고 다양하게 요리해 먹고, 맛있게 요리해 먹고, 또 약처럼 먹을 수 있는 레시피를 연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기를 수 년…. 이제는 항암요리 전문가 황미선으로 불려지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놀라운 ?결실을 세상에 내놓기도 했다. 그동안 연구하고 개발한 항암요리 레시피를 모아 한 권으로 책으로 농축한 <자연식 해독밥상>을 출간, 독자들로부터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해준 자연에 감사하며, 신에게 감사하며, 가족에게 감사하다는 황미선 씨. 그런 그녀가 본지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다. 건강한 먹거리를 먹으라는 것이다. 제철에 나는 음식을 감사한 마음으로 먹으라는 당부다. 그것이 그녀에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건강이라는 축복을 내려주었기 때문이란다.

《TIP. 황미선 씨가 밝히는 ‘나의 항암식’은…》

1. 가공식품, 인스턴트식품 No!

2. 설탕도 No! 단맛은 사과, 배, 산에서 나는 머루, 다래 등으로 내고 조청이나 메이폴시럽을 쓴다.

3. 기름진 음식도 No! 상큼한 샐러드나 물김치로 요리해먹는 걸 좋아한다.

4. 식초는 모균을 길러서 직접 담가 먹고 된장, 간장 등 모든 것을 손수 만들어 먹는다.

5. 육류는 꿩이나 방사해서 기른 닭, 유황오리를 조금 먹는 편이다.

6. 녹주죽, 호박죽을 자주 끓여 먹는다. 화학적인 중금속 배설을 돕기 위해서다.

7. 주식은 현미오곡밥을 기본으로 한다.

8. 자연에 역행하는 음식은 안 먹는다. 겨울에 수박, 딸기는 절대 안 먹는다. 오로지 제철 식재료를 먹는다.

9. 5대 항암제라는 산양산삼, 상황버섯, 부처손, 자연산 와송, 꼬리겨우살이는 목숨 걸고 먹는다. 한 달에 한 가지씩 달여서 차처럼 마신다. 음식에도 넣어 먹는다. 와송을 달일 때는 생강 한쪽을 넣어야 법제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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