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도움말 |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통증의학과 김응돈 교수】
평소에는 당신의 몸에 잠복하며 별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바이러스가 있다. 이 바이러스가 돌변할 때는 어떤 이유로 당신 몸의 면역력이 떨어질 때다. 그 틈을 타 쑤시고, 결리고, 기분 나쁜 통증으로 본색을 서서히 드러낸다. 그리고 물집과 더불어 바늘로 찌르는 듯한 참을 수 없는 통증까지 만든다. 몸속의 은둔자에서 무법자로 변한 이 바이러스는 때론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신경통이라는 합병증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너무 너무 아프기로 유명한 대상포진 이야기다. 통증으로 고통 받고, 합병증으로 잠 못 드는 대상포진은 치료의 골든타임을 지키면 비교적 수월하게 넘길 수 있다. 대상포진의 치료 골든타임과 예방법을 알아보자.
면역력 떨어질 때 공격하는 수두 바이러스
너무 아파서 유명해진 질환이 몇 개 있다. 그중 하나가 대상포진이다. ‘통증왕’이라고도 불린다. 대상포진은 어릴 때 수두를 앓게 한 원인 바이러스인 베리셀라 조스터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질환이다. 이 바이러스는 보통 우리 몸 척추에서 나오는 신경절(신경 뿌리)에 잠복하고 있다. 건강한 상태라면 별문제가 안 된다. 우리 몸의 세포 면역력이 이 바이러스를 억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면역력이 떨어지면 제 세상을 만난 듯 돌변한다. 이 바이러스가 재활성화되면서 신경절을 따라 피부에 물집을 일으키는 것이다. 또 장악당한 신경절이 지배하는 부위는 바늘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생기는데 이것이 바로 대상포진이다.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통증의학과 김응돈 교수는 “대상포진 초기에는 감기와 증상이 비슷하다.”고 말한다. 몸살이 온 듯 몸이 쑤시고 열이 나며 기분 나쁜 통증이 생긴다. 하지만 대상포진은 통증이 시작된 지 2~3일 후부터 통증 부위에 물집이 올라온다. 이 수포는 대체로 가슴과 몸통에 잘 생기지만 눈, 귀, 항문, 사타구니 등 생기지 않는 곳이 없다.
김응돈 교수는 “눈, 귀 같은 두경부에 대상포진이 생기면 안과나 이비인후과 진료를 통해 안신경이나 청신경 손상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눈이나 귀에 생긴 대상포진을 그대로 두면 시력이나 청력 혹은 평형기관에 손상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치료 골든타임 72시간
대상포진이 의심되면 전문의를 찾아가 빨리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물집이 생긴 지 3일, 즉 72시간 안에 항바이러스제 치료, 신경치료 등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통증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 대상포진 통증은 바이러스가 증식하면서 신경절을 손상해서 발생하므로 그냥 두면 통증이 심해진다. 또한 증상이 심각한 대상포진은 대상포진 후 신경통으로 갈 확률이 높다.
김응돈 교수는 “통증을 한 달이나 두 달 이상 내버려 두면 통증 회로가 몸에 각인되어 대상포진 후 신경통으로 이어질 확률이 급격히 높아지게 된다.”며 “치료를 통해 통증 신호를 전달하지 않도록 억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젊은 층인 경우 빠르고 적극적인 통증 치료를 받아 대상포진이 완치된 사례가 많다. 노년층이라도 치료를 제때 잘 받으면 합병증 확률이 확실히 줄어든다.
60세 이상이라면 예방접종을!
대상포진은 세포 면역력이 떨어지기 쉬운 50~60대 이상의 연령에서 주로 발생한다. 김응돈 교수는 “60세가 넘으면 대상포진 후 신경통의 빈도뿐 아니라 심각도도 커진다.”고 설명한다. 특히 70대 이상은 대상포진 후 신경통 비율이 매우 높다.
이 때문에 60세 이상이라면 대상포진 예방접종이 권장된다. 대상포진 예방접종은 50세 이상이라면 맞을 수 있다고 ‘허가’가 나 있고, 60세 이상에서 ‘권장’되고 있다.
60대 이상이라면 예방접종을 통해 대상포진이 예방되는 효과가 55% 정도다. 김응돈 교수는 “생각보다 낮은 예방 효과에 실망할 수도 있지만 대상포진 예방접종을 하면 대상포진 신경통으로 진행될 확률은 무려 60% 이상 감소시킬 수 있다.”고 설명한다.
결론적으로 대상포진 예방접종은 접종하더라도 절반 정도는 대상포진에 걸릴 수 있지만 두고두고 속을 썩이는 대상포진 후 신경통으로 고통 받을 확률을 60% 이상 줄일 수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럼 대상포진에 한 번 걸렸던 사람은 예방접종을 해도 될까? 김응돈 교수는 “이 경우 나라마다 약간씩 다른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만 대상포진 급성기 이후 1~2년 이후에 접종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대상포진 예방의 핵심 키워드 면역력을 사수하라!
대상포진은 우리 몸의 세포 면역력이 대상포진 바이러스의 재활성화를 억제하지 못할 정도로 떨어지면 생긴다. 다음의 노력으로 면역력을 유지하면 대상포진을 예방할 수 있다.
1. 규칙적으로 운동한다
좋아하는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은 면역력 저하 예방에 매우 좋다. 단,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적당히 해야 한다.
2. 규칙적으로 먹고, 규칙적으로 잔다
신체 리듬을 깨뜨리지 않도록 주의한다. 먹는 시간과 자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거나 그 양이 부족하면 면역력이 쉽게 떨어지게 된다. 요즘같이 바쁜 세상에 진짜 잘 먹고 잘 자는 것은 제때 먹고, 제때 자는 것이다.
3.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다
스트레스 자체가 대상포진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 혹은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은 후에 대상포진이 생기는 경우는 흔하다.
평소 휴식에 신경 쓰고 유난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면 취미활동, 운동, 명상 등으로 스트레스를 털어내자. 또한 걱정해도 변하지 않는 일을 곱씹어 걱정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4. 술·담배도 자제한다
술과 담배 역시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요인 중의 하나다. 술·담배를 최대한 절제해서 우리 몸의 면역력에 힘을 실어주자.
한편 대상포진은 노년층에서 주로 발생하지만 최근에는 20~30대나 심지어 10대까지 걸리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생기고 있다. 감기 같은 증상 후 몸에 수두처럼 보이는 물집이 생기거나 물집이 몸의 한쪽에만 생기면 대상포진을 의심해야 한다.
김응돈 교수는 대한통증학회 학술위원회 간사와 대한통증학회 정보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통증 세부 전문의를 취득했으며 대한마취통증학회, 대한척추통증학회 등에서도 활약 중이다. 최근에는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하나인 ‘마르퀴즈 후즈 후 인 더 월드(Marquis Who’s Who in the World)’ 2018년 판에 등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