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도움말 | 차의과학대 분당차병원 가정의학과 박계선 교수】
“아들이 아빠를 똑 닮았네요!” “엄마와 붕어빵이네요!” 외모가 똑 닮은 것은 핏줄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많은 부모는 자녀가 자신과 닮았다는 사실에 감동과 경이로움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자신과 모두 똑같길 바라는 부모는 없다. 자신보다 더 건강하고, 더 현명하고, 더 매력적인 외모를 가졌으면 할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좋은 유전자만 물려주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물려주고 싶지 않은 점을 닮았다면? 그것이 건강과 직결되어 있고 여러 병의 근원이 되는 비만이라면? 비만한 부모는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속이 타들어 갈 것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금쪽같은 내 새끼에게 비만 유전자 대신 건강한 체형을 선물하는 방법을 알아본다.
비만, 정말 유전될까?
비만한 부모에게 나쁜 소식이 하나 있고, 좋은 소식이 하나 있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나쁜 소식부터 소개한다. 안타깝게도 부모가 비만이면 자녀도 비만이 될 확률이 높다. 즉, 비만도 유전된다.
차의과학대 분당차병원 가정의학과 박계선 교수는 “부모의 체중이 자녀의 체중과 연관성이 높다는 것은 20세기 초반부터 여러 관찰연구에서 보고됐다.”고 설명한다.
미국의 스턴커드 박사는 쌍둥이를 대상으로 한 연구를 통해 체중에는 약 70% 정도의 유전적 요인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또한 입양되었던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입양된 사람의 체질량지수가 환경을 공유한 입양부모와는 연관성이 없고 생물학적 부모와 매우 연관이 있었다는 것이다.
1997년 미국의 휘태커 박사팀은 부모가 비만이면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비만이 될 확률이 2배 이상 증가한다는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박계선 교수는 “2008년 미국 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에서는 이러한 통계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한 명의 부모가 비만한 경우 아이가 비만이 될 확률은 50%이며, 부모 모두가 비만이면 아이가 비만이 될 확률은 80%라고 밝힌 바 있다.”고 말한다.
또 다른 비만유전자, 생활습관
이제 좋은 소식을 말할 차례다. 사람의 체중은 유전의 영향만 받지 않는다. 유전자와 환경의 영향 둘 다 받는다. 부모가 비만이라고 해서 모든 자녀가 비만이 되지는 않는다.
인구의 유전적인 분포는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비만 환자가 빠르게 늘어가는 것은 바로 환경적인 변화 때문이다. 우리는 이전 세대보다 쉽게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제한 없이 먹을 수 있게 됐다. 신체활동이 확연히 줄어들었고,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었다. 이 외에도 부족한 잠, 스트레스, 내분비질환 등도 비만을 만드는 환경이다.
박계선 교수는 “어떤 사람에게 여러 비만유전자 변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비만해지기 위해서는 풍부한 음식과 적은 신체활동 등 다른 환경적 요인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만약 비만에 취약한 유전자를 물려받았다고 하더라도 환경을 비만이 되지 않게 바꾸면 비만을 예방할 수 있다.
비만 유전자를 물려주는 이유
비만이나 과체중인 사람은 늘 체중을 줄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을 것이다. 자신에서 끝나지 않고 자녀의 체중에도 영향을 미친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체중 조절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다짐하고 또 다짐해도 실패하기 일쑤다.
박계선 교수는 “무리한 목표를 세우지 말고 현재 체중의 5~10% 정도를 3~6개월 동안 감량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원하는 기간에 목표 체중에 도달하지 못하면 체중 감량을 포기하기 쉽다. 또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잘못된 다이어트법을 선택해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 5~10%의 체중 감량만으로 비만과 관련된 합병증이 좋아지거나 예방될 수 있다.
체중을 줄이기 위해 오랫동안 운동을 했는데도 체중이 생각만큼 빠지지 않는다는 사람이 많다. 사실 음식의 양이나 종류를 바꾸지 않고 운동만 한다면 뺄 수 있는 체중은 평균 2kg 미만에 불과하다.
그 이유를 박계선 교수는 “운동을 정기적으로 하면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고, 식욕이 늘고, 운동에 대한 보상으로 더 음식조절에 소홀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진짜 제대로 체중을 줄이고 싶다면 식사량을 줄이고 주로 에너지 밀도가 낮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 운동도 중요하지만 원하는 체중까지 살을 빼는 데는 음식조절이 더 중요하다.
식사량을 줄였는데도 체중이 줄지 않으면 식사 시간 이외에 간식이나 음료수를 먹지 않았는지 기억해보자. 빵이나 과자는 부피는 작지만 에너지 밀도(칼로리)가 높은 경우가 많다. 당이 첨가되어 있는 음료수도 습관적으로 먹지 말아야 한다.
비만유전자 물려주지 않는 법 & 비만 안 만드는 법
자녀 비만 예방의 핵심은 적절하게 먹고 적절한 신체활동을 하도록 돕는 것이 핵심이다. 그 방법을 자세히 알아본다.
1 고칼로리 음식 노출을 줄인다
지금 아이들은 어느 때보다 패스트푸드, 과자, 기름진 음식을 쉽게 먹을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산다. 이런 음식들은 비만 만들기 딱 좋은 음식이다. 되도록 집에서 조리한 음식, 자연식을 규칙적으로 먹여야 한다. 기름기가 적은 음식 위주로 짜지 않게 조리를 해야 한다.
한창 크고 있는 아이니까 많이 먹어도 괜찮다는 생각도 위험하다. 과식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당분이 많은 음료수를 습관적으로 먹지 않게 해야 한다.
유난히 많이 먹는 아이는 음식을 빨리 먹고 있지 않은지 살핀다. 이럴 경우 천천히 먹어야 적당히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음식을 꼭꼭 씹어서 먹게 한다.
2 신나게 놀고 움직이게 한다
박계선 교수는 “유산소 운동, TV 과다 시청, 놀이 시간 부족 등이 소아기 체중 증가의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부모가 아이가 TV를 2시간 이상 보도록 그냥 두고, 고칼로리 음식을 자주 사주고, 밖에서 신나게 뛰어놀거나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았다면 비만유전자를 물려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3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풀게 하지 말자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야 좋을지 잘 모르는 아이들이 많다. 그래서 쉽게 음식으로 지친 마음을 보상하려고 든다. 단 음식도 많이 찾는다. 아이가 좋아하는 운동 등 먹는 것이 아닌 다른 적절한 방법으로 스트레스 푸는 법을 가르친다.
4 비만 예방 황금기를 놓치지 말자
소아 비만은 주로 만 5~6세부터 청소년기 사이에 나타난다. 부모는 이 시기 전부터 자녀가 좋은 식습관을 가지고 적절한 신체활동을 할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부모가 비만이라면 부모가 먼저 비만 탈출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는 등 가정에서 모범을 보이는 것도 필요하다.
5 체중 줄이는 법만이 아닌 건강한 습관을 가르친다
아이가 과체중이나 비만이면 체중을 줄이는 것만 급급한 부모가 적지 않다. 먹으면 구박하고 무작정 살을 빼라고 면박을 준다.
박계선 교수는 “체중을 줄이는 궁극적인 목표는 더 건강해지고, 활기차며, 삶의 질이 나아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체중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건강한 식습관, 신체활동의 증가를 꾸준히 실천하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좋은 생활습관은 저절로 비만을 해결하고 예방한다.
박계선 교수는 분당차병원에서 건강증진, 비만, 여성갱년기를 전문으로 진료하고 있다. 대한가정의학회, 대한비만학회 등에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