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전용완 기자】
【도움말 |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정진호 교수 (독성학자)】
첫 시작은 유럽이었다. 달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는 해외 언론보도가 국내 전파를 탔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지구 반대편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불과 며칠 후 우리나라 달걀에서도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는 보도가 전파를 탔다. 달걀에서 ‘피프로닐’ 외 DDT 등 5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는 거였다. 이 보도가 전해지면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그도 그럴 것이 달걀은 전 국민식품이다시피 했다. 하루 한두 알씩 먹지 않는 사람도 드문 편이었다. 우리 모두가 좋아했고, 우리 모두가 먹었던 달걀이 살충제 달걀이었다는 사실에 너나할 것 없이 경악했다.
달걀에서 발견된 살충제 성분 뭐길래?
이번에 문제가 된 피프로닐은 1993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사용한 살충제로 곤충이나 진드기를 잡는 데 주로 쓰였다. 인간이 직접 섭취하는 동물에게는 사용이 전면 금지돼 있는 성분이기도 했다. 이 성분이 우리 몸속에 들어가면 구토, 복통, 현기증 등을 유발하고, 몸속에 쌓이면 간·신장 등 유해물질을 걸러주는 체내기관을 손상시키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살충제 달걀에서 발견된 DDT 또한 환경뿐 아니라 인체에 치명적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전면 사용이 금지된 살충제다. 하지만 이 같은 부작용도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이 학계의 주장이다.
서울대 약학대학 정진호 교수는?“최근 외국 독성학계는 농약과 살충제 성분이 환경호르몬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크게 주목하고 있다.”며 농약과 살충제에 빈번하게 노출되는 것이 갑상선암의 유병률을 높이는데 깊숙이 관여돼 있는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갑상선 암환자가 최근 급증하고 있어 농약과 살충제와의 관련성에 관하여 정부의 정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왜 달걀에서 살충제가 나왔을까?
달걀과 살충제, 언뜻 보면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케이지식 사육환경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다. 정상적인 사육 환경이라면 닭은 모래를 끼얹어 진드기를 떼어내고 면역력을 키울 수 있다. 하지만 케이지 사육은 닭끼리 다닥다닥 붙어 있고 스스로 털을 관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말 그대로 ‘알 낳는 기계’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진드기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진드기에 시달린 닭은 스트레스로 인해 달걀 생산량이 줄어들거나 폐사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많은 양계농가에서 이러한 진드기를 구제하는 데 살충제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양계농가는 하나같이 “살충제와 농약은 주변의 입소문을 듣고 사용했고 인체에 유해한지는 전혀 몰랐다.”고 항변했다. 사육 체계에서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관리체계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던 셈이다.
또 ‘식품안전관리 운영기준’도 유명무실하게 운영됐음이 여실히 드러났고, 주무부서의 전문성 부족과 관리감독 체계 미비도 도마에 올랐다. 달걀 하나로 먹거리 안전에 구멍이 숭숭 뚫린 우리나라 식품정책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났던 것이다.
이제는 문제없다고 하지만…
온 나라를 발칵 뒤흔들어 놓았던 살충제 달걀은 어느새 진정국면으로 접어든 상태다. 슈퍼나 마트에서는 달걀을 판매하고 있고, 고공행진으로 널을 뛰었던 달걀 값도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정부당국에서도 급성독성과 만성독성으로 농약 위해성 평가를 실시하여 지금까지 섭취한 달걀은 안전하다고 발표하는 등 국민들을 진정시키고 있다. 안심하고 달걀을 먹어도 된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좀체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도 분분하다. 정진호 교수는 “농약 위해성 평가로 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내린 결론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단기간에 많은 양에 노출되는 급성독성 검사로 인체 유해성 여부를 검토하는 시나리오는 크게 의미가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살충제 및 농약의 식품 오염은 소량씩 장기간 노출되기 때문에 만성독성 시나리오를 가지고 인체 유해성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살충제, 농약의 일반적인 특징은 기름에 잘 녹는 지용성으로 상당히 천천히 배출되는 특성을 갖고 있어 인체 내 잔류 기간이 길기 때문에 어떤 부작용이 나올지 예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살충제 달걀 사태가 우리에게 남긴 것
살충제 달걀 사태를 지켜보면서 너나할 것 없이 바랐던 건 적어도 먹거리만큼은 안전하게 먹고 싶다는 열망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생명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잊을 만하면 터지는 먹거리 사고는 이제 충격을 넘어 공포로 다가오고 있다. 믿고 먹을 게 없다는 볼멘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살충제 달걀 사태는 우리에게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진호 교수는 “이번 일을 계기로 살충제와 농약 같은 ‘살생물제(생명파괴물질)’에 대해 새로운 기틀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다음의 3가지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첫째, 살생물제 허가 기관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둘째, 유해화학물질 관리에 대하여 환경부, 농식품부, 식약처는 역할 분담을 명확히 하여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셋째, 먹거리 안전을 위해서 체계적인 모니터링 시스템이 중요하다. 농식품부는 농축산물 생산현장에서, 식약처는 식품의 유통 및 소비현장에서 모니터링 하는 더블체킹 시스템을 갖추고 양 부처가 정보를 공유하여 소비자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자도 생산자도 함께 바뀌어야~
온 국민이 먹는 식품에 살충제가 무차별적으로 뿌려졌음을 확인하게 된 살충제 달걀 사건. 아직도 그 충격은 채 가시지 않은 상태다. 문제는 이런 일이 이번으로 결코 끝나지 않으리라는 의구심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농축산식품 전반에 대한 정부의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우리 소비자도 좀 더 현명해져야 할 것 같다. 생명의 기본적인 생리활동도 할 수 없는 좁은 케이지에서 항생제로 닭을 키우는 현실을 묵인해 온 책임이 우리에게 없는지 한 번쯤 자문해봐야 할 것 같다. 또 다시 오염된 식품으로 더 큰 대가를 치르고 싶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똑똑한 소비문화를 형성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정진호 교수는 독성학자로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에서 제약학을 전공했고,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독성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 30여 년간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로 학생을 가르치며 약, 식품, 대기, 물에 포함된 화학물질의 인체 독성과 유해화학물질의 안전성을 연구했다.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장, 서울대학교 환경안전원장, 한국독성학회 회장, 한국식품위생안전성학회 회장, 아시아 독성학회 부회장을 지냈으며, 국무총리실 식품안전정책위원회 심의위원, 국회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의약학부 학부장을 맡고 있다.